44. 수음(受陰)이 다하는 과정에서
〈원문〉
아난아, 선남자가 삼마제와 사마타를 닦는 가운데 색음(色陰)이 다한 자는 부처님의 마음을 보되 밝은 거울 가운데 영상이 나타나는 것과 같아서 부처님 마음을 얻은 것 같으나 능히 쓰지 못하는 것이 가위눌린 사람이 손발이 제대로이고 보고 듣는 것은 의혹할 게 없으나 마음이 가위눌림에 걸려 움직이지 못하는 것과 같으리니 이를 수음(受陰)의 구우(區宇)라 하느니라. 만약 가위눌림의 허물이 쉬면 그 마음이 몸을 떠나서 그 얼굴을 반대로 보게 되며 가고 머무는 것이 자유로워 더 이상 장애가 없으면 수음이 다했다고 하느니라. 이 사람은 곧 능히 견탁(見濁)을 초월하리니 그 연유를 관하건대 허명(虛明)한 망상이 그 근본이 되었기 때문이니라.
아난아, 그 선남자가 색음이 다하고 수음이 다하는 가운데 있으면 큰 빛이 밝아짐을 얻어 그 마음이 일어남에 안으로 억누름이 분을 넘으며 홀연히 거기에서 한없는 연민심이 일어나 모기나 등에 따위를 보고도 마치 갓난아기처럼 생각하여 마음에 불쌍하다는 생각이 일어나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리라.
〈강해〉
〈능엄경〉 ‘변마장’의 특징은 삼마제와 사마타를 닦을 때 오음(五陰)이 색음(色陰)부터 차례로 다해지면서 신비한 경계가 나타나는데 이 경계를 잘못 알고 속아서는 안 된다고 일러주는 내용이다.
먼저, 색음이 다하고 수음(受陰)이 없어지려는 단계에 이르면 거울에 영상이 나타나는 것처럼 부처님 마음이 보이기 시작하여 내 마음이 부처님이 마음이 된 것 같으나 가위눌린 사람이 손발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것과 같아 그 마음이 응용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마음이 몸을 떠나 몸 밖에서 자기의 얼굴을 본다고 하였다. 이는 유체이탈(幽體離脫)현상으로 볼 수 있는 이야기다. 흔히 말하는 몸과 영혼이 분리되는 경우와 같은 말이다.
유체의 유(幽)는 유명계(幽冥界)를 뜻하는 말이다. 사람이 죽으면 몸과 영혼이 분리된다고 한다. 이 상태를 유(幽)라 한다. 다시 말하면 유는 저승이다. 가끔, 죽었다 깨어난 사람들을 두고 저승에 갔다 왔다고 한다. 이런 경우를 요즈음 죽음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근사체험(近死體驗)을 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완전히 죽지는 않았으나 죽음을 가까이해 본 체험이라는 말이다. 이때 몸 밖으로 나간 혼이 자신의 몸을 보는 수가 있다고 한다. 교통사고를 당하여 몸이 피투성이가 되었던 사람이 숨을 거뒀다가 깨어나 피투성이가 된 자기 몸을 몸 밖에서 전체 모습을 보았다는 근사체험의 이야기도 있다.
경전에는 수음이 없어질 때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마음의 빛이 몸 밖으로 나가 자기 얼굴을 반사하여 그 얼굴을 본다는 말이다. 또 하나의 예는 마음에 한없는 연민심이 일어나 모기나 등에 따위의 미물을 보고도 불쌍하다고 여겨 눈물을 흘린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일반적으로 비마(悲魔)라고 하기도 한다. 지나친 슬픈 생각으로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것을 말한다. 내가 젊었을 때 전통 강원에서 공부하는 학인으로 있을 때, 노스님 한 분이 마당을 걸어가다 땅바닥에 개미가 죽어 있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하는 것을 본 적도 있다. 오음이 차례로 하나씩 다할 때 오탁을 하나씩 초월하는데 수음이 다할 때는 견탁(見濁)이 초월된다고 하였다. 앞장에서 설명했듯이 사견(邪見)이 무성하게 일어나 세간을 흐리게 하고 어지럽히는 것을 말하는데 이러한 사견에 의해 동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정(禪定)을 다른 말로 정수(正受)라고 하기도 한다. 글자 그대로 바르게 정확하게 외부의 경계를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선정의 마음에서 보는 경계가 가장 정확하다는 말이다. 선정을 닦는 마음속에 일어나는 경계가 각기 오음이 다해감에 따라 불가사의하게 여러 가지 다양한 경계를 나타내 보여준다는 변마장의 이야기는 매우 신기한 게 많다. 이는 내적으로 마음을 닦는 수행이 세속적 외부 환경에서 체험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내공(內功)이 있음을 말해주는 이야기들이다. 비록 중생이 망상으로 살지만, 이 선정의 수행으로 망상이 정화될 때 신비한 내적 체험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