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37 (수)

[불교인문학살롱] 22. 자연의 시계와 〈숫타니파타〉

사시사철 초목이 보이는 순환의 진리

땅에게 허가 받은 초목의 뿌리 내림
개체마다 토양이 바라는 특성 갖춰 
흙도 뿌리를 받아들이면서 명한다 
뭇 생명체의 생명 보존 근원 되라고

내리쬐는 햇볕을 삼키며 식물은 거룩한 생식(生殖) 활동에 여념이 없다. 육신을 공양하려 땅에 뿌리내린 녀석들의 잔치를 보자니 가관이다. 

다랑논 몇 뙈기를 묵힌 지 석삼년째다. 초목이 요동을 친다. 밀치고 쥐어박고 비틀고 휘감는다. 온갖 씨앗이 날아들어 싹을 틔워 서로 지지고 볶으며 세를 과시하더니 급기야 사투까지 벌인다. 공격은 거침없고 방어는 빈틈을 주지 않는다. 누가 자연을 두고 자연스럽다고 찬양하는가. 잡초 무성한 진답(陳畓)에 마음이 마구 뒹군다. 춘분이 지나자 햇볕이 발산하는 에너지의 강도가 점점 높아간다. 하늘의 심부름꾼 햇살은 녹색식물의 양식인 열기를 안고 내려와서 골고루 나누어 준다. 시간의 흐름에 비례하여 먹이 삼키는 잎의 동작이 커가고, 몸집 불리기에 가속도가 붙는다. 찔레순이며 칡덩굴은 머리를 치켜들고 자기들 세상인 양 봄바람에 춤을 춘다. 새순이 며칠 새 몇 뼘씩이나 뻗어 올랐다. 

눈을 주시하고 귀를 기울인다. 잎을 입인 양 활짝 벌려 햇볕을 받아 오물거린다. 아까시 나무(콩과에 속한 낙엽목)같이 잎이 작은 녀석은 아기 입으로 빛을 흡입하고, 오동나무처럼 잎이 큰 녀석은 하마 입으로 빛을 삼킨다. 몸집을 키운 녀석들은 땅바닥에 그림자를 드리워 자신의 공간을 슬며시 넓힌다. 이를 악물고 치고받는 동작이 눈에 들어오고, 죽기 살기로 맞서는 악다구니는 바람을 타고 귀를 때린다. 동물만 영역 확보에 광분하는 줄 알았는데 식물도 땅따먹기에 혈안이다. 

첫해 봄이었다. 잡초들이 너 나 가리지 않고 목을 빼 올리면서 키재기에 나섰다. 처음엔 같은 종끼리 경쟁하느라 연약하고, 성깔 마르고, 인내심 부족한 녀석들은 하나둘 스르르 엎어졌다. 일찍 꽃피워 열매 맺은 종족은 씨가 탱글탱글해지자 가쁜 숨으로 흐느적댔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되려면 아직 멀건만 개밀, 뚝새풀, 포아풀 같은 녀석들은 씨앗이 여물자 속전속결로 한 살이 마침표를 찍고 말았다.

초여름이 다가오자 다른 종들끼리 사생결단이 시작되었다. 쑥을 비롯해 명아주며 개망초며 쑥부쟁이, 쇠비름, 여뀌 등속의 쌍떡잎 무리에 바랭이와 강아지풀 같은 외떡잎도 끼어들었다. 흡사 이 동네는 김해 김씨, 저 동네는 밀양 박씨, 아랫마을은 동래 정씨, 윗마을은 함안 조씨 등으로 집성촌을 이룬 듯했다. 이들은 종족끼리 한 덩어리를 이루어 다른 종족을 향해 세력을 떨치려 들었다. 녀석들의 아귀다툼이 배턴 터치를 하는 가을로 접어들자 금세 쑥부쟁이며 들국화 천지가 되었다. 잎과 줄기는 밖으로, 눈은 외부로 열어서 제 속을 채우고 안을 점검하면서 꽃 등불을 밝힌다. 화려하고 매력적인 꽃송이들이 펼치는 다툼, 인간 세상에서 펼쳐지는 한 편의 드라마에 못지않다. 

그리곤 서서히 막이 내렸다. 북풍한설이 휘몰아치자 어느 것 하나 고개 쳐들고 눈 부라림 하지 않았다. 일년초는 그렇게 씨앗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다년초는 내년 봄을 기약하며 겨울잠에 들었다. 잡풀은 힘센 놈, 잘난 놈 가리지 않고 어김없이 자기 몸을 흙에 바쳤다. 그들에겐 어제가 오늘 되게 하고, 오늘이 내일 되게 하는 원형질이 담겨있었다. 초본식물 하나하나를 짓뭉개는 게 계절의 질서라면, 개체 하나하나의 완전 해방은 그 본체였다.몇 해가 지나자 나무들이 점령군이 되었다. 잡풀이 돋아나는 틈새를 비집고 소나무와 아까시나무를 비롯해 오리나무며 참나무며 버드나무 들이 이젠 내 차례라며 어깨에 힘을 주며 세를 뽐내었다. 나무는 억센 팔뚝으로 공간을 휘어잡았다. 바람 부는 날은 현악기 연주에 동참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큰 놈은 큰 놈대로 굵고 긴 가지로, 작은놈은 작은놈대로 가늘고 짧은 가지를 흔들며 연주를 했다. 녀석들은 몸 높이만큼 땅속 깊이 뿌리를 내렸다. 서로서로 치고 막는 모순, 그 가운데 치솟는 상승이 뻗어 내리는 하강을 품어드리는 역리(易理). 하늘의 기와 땅의 기가 짝이 되는 조화. 이러한 자연의 시계(時計)가 풀과 나무의 몸집을 불리고 높이를 더한다. ‘짧디짧은 두레박줄로 어찌 깊은 샘물을 마실 수 있으랴.’ 초목은 자신의 행(行)이 삶의 순(順)이라며 몸말로 그려낸다. 

초목의 뿌리 내림은 땅으로부터 허가증을 받은 게다. 개체마다 토양이 바라는 특성을 갖춰 자격이 입증되었다. 흙도 너그럽게 식물의 뿌리를 받아들이면서 그들에게 명한다. 뭇 생명체의 명줄 보존에 근원이 되라고. 

우리는 본다. 사자를 비롯한 맹수들이나 독수리 같은 맹금류는 먹이를 낚아채면 뼈를 남기고 먹는다. 악어와 뱀 등 파충류는 뼈는 물론 털도 남김없이 먹어치운다. 식물은 뿌리에서 물을 잎까지 끌어올리고,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입하며, 엽록체에서 햇빛을 빨아들인다. 이러한 광합성작용으로 탄수화물을 만들어 자급자족한다. 먹는 것에 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따진다면 식물이 단연 경제적인 삶이다.초목 하나하나는 주변을 거부하면서도 주위를 포용한다. 타의 먹이와 산소 공급, 이 두 가지 사명을 한꺼번에 실행한다. 만인이 만인의 적이 되어 서로 경계를 넘고 넘다 생을 마감하는 인간과는 달리, 자신들의 고유한 정체(正體)를 지키기 위해 서로 경쟁하면서도 한정된 범위를 넘보지 않는다. 그게 풀이며 나무다.초목의 자자손손 이음줄에 마음이 뒤엉킨다. 오직 생식에 목표를 둔 녀석들. 종족마다 제반 환경을 따지면서 뿌리를 내린다. 대다수 식물은 양질의 토양을 찾지만, 갈대나 부들은 개울가나 웅덩이에서, 부처손이나 와송은 메마른 바위틈과 기와지붕에서, 민들레나 질경이는 다른 종과의 경쟁을 피해 길가나 보도블록 틈새에서 꽃피워 씨앗을 맺는다. 생명체의 생식 활동은 신의 영역인지라 그 어떤 훼방꾼이 나타나도 기꺼이 이겨낸다. 

초목의 생존 경쟁에서 녀석들의 본능을 읽는다. 봄부터 겨울까지 사계절 내내 종마다 특질을 발휘하면서 잉태를 위해 혼을 불태운다. 개밀과 뚝새풀 같은 종족은 인고의 시간을 보낸 끝에 영근 씨앗을 봄바람에 날리고, 매실나무와 살구나무 등은 꽃샘추위에 꽃피워 오뉴월 햇살 받으며 과육 속의 씨를 야물게 한다. 참나무와 밤나무 등은 삼복더위를 기꺼이 이겨내어 가을바람에 투두둑 열매를 떨구고, 도꼬마리며 귀심초 등은 메마른 몸피로 씨앗을 한가득 이고서 휘몰아치는 눈보라에 휘청댄다. 한서(寒暑)를 이겨냄은 물론 홍수와 태풍에 휘몰리면서도 자웅(雌雄)은 합일에 열중이었다. 종족 보존, 힘의 논리를 뛰어넘어 살아있다는 존재 그 자체이다. 

치고받음 속에서 종족 보존을 위한 진화는 현재진행형이다. 자손 번영을 따져보면 단세포 생명체는 스스로 분열하여 자손만대를 이어가고, 암수로 나뉜 동물은 어렵게 짝을 만나 새끼를 친다. 식물은 씨앗 영글기에 절차와 시간상은 물론 양적으로도 탁월하다. 모순덩어리 초목들의 경쟁과 투쟁, 대립과 반론, 생성과 소멸. 진공묘유(眞空妙有)이다.

초목의 대대손손 이음줄이 크게 보이는 현시점이다. 물질적, 기술적, 구조적 발전이 오히려 인간사에 숙제 하나를 던진다. 엥겔지수가 높았던 농경시대에는 자급자족이 태반이었다. 활동폭이 좁은 덕으로 먹을거리 외엔 생계비 지출에 큰 걱정 없이 자녀를 건사하고 가정을 지킬 수 있었다. 지금은 지출의 명세서가 늘어나 가벼운 지갑에 마음이 허우적대는 처지이다. 이런저런 연유로 활짝 피우지 못한 꽃망울들이 앞, 뒤, 좌, 우에 즐비하다. 

주변을 둘러보자니 마음이 무겁다.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짝을 찾지 못해 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널려 있다. 요행히 반려자를 맞아 가정을 이루었어도 경제 사정에 짓눌려 배태할 생각은 엄두조차 못 낸다. 가구 평균소득에 눈높이를 같이하자니 가장 혼자서는 감당하기가 벅차다며 자녀 두기를 아예 포기한다. 

하지만 ‘인간은 집착을 기쁨으로 삼는다’고 불교 초기 경전 〈숫타니파타〉는 일렀다. 집착할 데가 없는 사람은 기뻐할 것도 없고, 근심할 것도 없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살아가면서 자녀에게 집중하는 만큼의 큰 보람은 없으리라. 자녀를 두지 않으면 근심거리조차 없다고 하지만, 미래도 없고 꿈도 없다. 어찌 행복한 삶이라고 자부할 수 있으랴. 

“여름철 첫더위에 우거진 나뭇가지가 꽃을 피우듯, 그와 같이 평안에 이르는 오묘한 이법을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이익이 되는 최상의 일들을 위해서, 이 훌륭한 보물들이 눈뜬 자에게 있다. 이 진리에 따르면 복되리니,” (〈숫타니파타〉 김운학 옮김) 

공자께서도 ‘천하동귀이수도(天下同歸而殊途)’를 언급하며 천하 만물은 한 군데로 돌아가게 되어있으니, 그저 자연의 일부로 자연의 시계에 따라 살아가라고 권한다. 이 진리에 따르면 복되리니.

초목은 만궁(滿宮)으로 진공묘유(眞空妙有)로되, 여태껏 비어있는 여인의 포궁(胞宮)은 언제쯤 만궁(滿宮)이 될까. 

▶ 박순태 작가는
영남알프스 산자락 울산 울주에서 태어나다. 2015년 〈동리목월〉에서 수필로 등단했다. 제4회 수필미학 문학상, 농어촌 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수필집 〈사이시옷〉이 있다. 울산광고 대표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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