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오온
수행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묻기 전에 수행을 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무엇인가를 먼저 고민해 보아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집 있는 곳에서 집 없는 곳으로 떠나 수행승이 됩니다.” 아마 초기경전인 〈니까야〉를 읽어 보신 분이라면 왕을 비롯해 누구에게나 진리를 참구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궁금할 것이다. “번잡한 곳에서 번잡하지 않은 곳으로 떠납니다.” 부처님의 이 말씀이 그 해답이 될 것이다. 번잡한 일을 하면서 진리를 탐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신 것이다. 집이라는 대상과 번잡하다는 행위에 대해 처음에야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수행을 하다보면 그 말씀 속에 숨어 있는 뜻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 집이라는 것이 세상이 될 수도 있고, 자신이 사는 집일 수도 있고, 친지와 가족의 공간이 될 수도 있고, 하고 싶은 일이 될 수도 있지만, 최종적으로 귀결하는 곳은 오온이 집이고, 오온이 ‘나’라는 생각의 집이고, 오온이 나의 자아라는 집착의 집일 것이다. 번잡한 일도 마찬가지다. 세상의 일일 수도 있고, 가족 간의 대소사일 수도 있고, 하고 싶은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과적인 것은 세상의 일에 내가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의 번잡함일 것이다. 이 두 가르침은 우리가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수행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과 개체와 개체 간에 일어나는 갈등에 대해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 즉 생로병사로 일어나는 괴로움에 대해 참구하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괴로움에 대한 탐구는 옳고 그름으로 간택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이것은 누구나 겪어야 하는 괴로움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소한 개체의 문제에 빠져 참구해야 하는 근원적인 문제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은 개체의 사소한 문제에 빠져 몸이 소멸할 때까지 진정한 수행을 하지 않는다. 이런 일은 출가자이든 재가자이든 비슷하다. 아마도 진정으로 바른 견해의 가르침을 듣지 못했을 경우가 태반일 것이다.
팔정도에서 바른 견해가 제일 먼저 나오는데, 이것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어떤 가르침인지를 참구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세상의 견해로서 사유한다면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바른 견해가 무엇인가? 앞에도 잠깐 언급했듯이 세상의 일과 개체간의 갈등에 대한 옳고 그름의 판단을 버리고, 괴로움에 처해 있는 몸과 마음에 대해 ‘나’라고 하는 생각과 나의 것이라고 하는 생각과 나의 자아라고 하는 생각이 올바른 생각이 아니라는 바른 견해를 갖는 일이다. 이러한 바른 견해가 생겨날 때, 바른 사유는 장애물이 사라지고 급물살을 만난 배가 빠르게 바다로 나아가듯, 사유에 불필요한 요건들이 사라지고 해야 할 사유에 집중하게 된다. 만약 몸과 마음이 내가 될 수 없다는 바른 사유가 되어 있다면 조사의 언어에 계합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과 같다. 그는 불덩어리를 던질 준비를 항상 하고 있는 것이다. 오온이 불덩어리라는 사유를 항상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누가 오온에 대한 바른말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아난존자는 부처님 열반 후 1차 결집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가섭존자는 그러한 아난존자의 안타까움을 보고 아난존자에게 마지막 일갈을 해줬다. “문 앞에 있는 찰간을 꺾어버려라(倒却門前刹竿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벽은 ‘나’라고 하면서 살아온 오온이다. 그 오온의 벽을 부숴버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벽이 무너지지 않으면 ‘내가 한다, 내가 하지 않는다.’, ‘이렇다, 저렇다.’라는 개념에서 해방되지 못한다. 이러한 개념에서 해방되지 않고서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고,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개념에서 해방되는 것을 알려주어도 또 다른 개념으로 모든 것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버린다. 해방이 그에게는 더 복잡한 일이 되어버린다. 그것은 불덩이를 들고 던졌을 때, 자신에게 좋은지 나쁜지를 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덩어리를 들고 고민하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 줄을 모른다. 불덩어리를 던져버리는 것이 지혜이고 번민에서 해방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