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5 (수)

[박태수의 알아차림의 파워] 9. 희망이 이끄는 삶의 길

아무리 하찮은 경험도 모두 선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 ‘희망’
매순간 선택 따라 결과도 변해
삶을 보다 윤택히 하는 건 경험
35년간의 제주생활 마감할 때

오랜 인연들의 송별회에 감사
남은 인생 할 일도 상담·명상
공간·관계 등 복잡한 요인에
안동서 새로운 길 개척하기로

얼마 전 35년간의 제주생활을 하고 떠나는 나를 위해 송별회가 열렸다. 많은 분들이 자리를 메웠고, 수시로 이분 저분이 나에게 다가와 이별의 마음을 나누었다. 어떤 분들은 떠나는 나를 원망하거나 안타까워했다. 그분들 중에는 내가 제주에 계속 살지 못하고 가게 됨을 자신들의 부족한 마음 때문이라고 자책하기도 했다.

이러한 송별회를 경험하면서 문득 송별회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명상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는 나눔의 장이라고 보았다. 서로가 어디에 가서 살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러한 송별은 미운정도 버리고 고운정도 버리며 나와 세상에 도움을 주는 기쁨의 장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자면 자연히 서로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2시간여의 송별과정은 감사한 마음이 가득한 행복한 시간이었다.

행복은 삶을 지속하는 데 필수 요소이다. 인생을 한 번에 한 걸음씩 나아가는 여행이라고 볼 때 첫 번째 걸음과 마지막 걸음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라고 묻는다면 그 답은 단순하지 않다. 구태여 중도적인 답을 제시한다면 처음이나 마지막 걸음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밤낮으로 치열하게 공부할 때를 떠올려보면 그 과정이 뚜렷할 것이다. 이때 멈추지 않도록 하는 것이 희망이다. 희망이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견인으로써 한걸음, 한걸음을 더 내 딛게 하는 힘이다.

희망은 노력을 끌어낸다. 나의 경우 4~50대는 상담심리전공 대학원생들이 상담 전문가로서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6~70대는 명상센터에서 상담과 명상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희망이자 내가 존재하는 보람이었다. 이러한 희망은 젊어서는 내가 만들고 나이가 들면서 환경이 지속시킨다. 젊어서는 신체적으로 체력이 왕성하고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으며, 아무리 활동을 해도 에너지가 소진되지 않는다. 희망이야말로 나로 하여금 몸을 앞으로 내밀도록 한다. 희망이 멈추면 삶도 소멸된다. 사실 제주국제명상센터 이사장직을 그만두었을 때 나에게 절박하게 다가왔던 것은 머무를 공간이 없어지고, 일할 거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희망을 사라지게 한 가장 큰 요인이었다.

현실적으로 내가 이사장직을 이임하고 차기 이사장이 취임을 하는 과도기적 시기이다보니 명상센터 운영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취임을 하기 전에 충분히 업무에 대한 협의를 하였다면 운영에 대한 누수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텐데, 형편상 그러지 못했다. 그러니 제주국제명상센터 운영을 원활하게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를 테면 장마철에 홍수로 인해 피해를 입게 될 상황과 같다.

어느 마을에 해마다 여름철에 홍수가 나서 마을이 물난리를 겪었다. 그러자 마을에서 홍수를 막을 대책을 논의했고, 한 청년이 저 산꼭대기에 있는 돌을 옮겨서 둑을 막으면 어떻겠습니까?”라고 제안을 했다. 그러자 의견들이 분분했고 크게는 양분되었다. 한편은 어느 세월에 그 돌을 날라서 둑을 쌓겠느냐며 그렇게 하느니 마을을 떠나겠다고 하였고, 다른 한편에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방법이 자기네들을 살리는 길이라고 하며 지금부터 시작하자고 하였다.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논쟁의 현상인데, 이럴 때 바로 삶의 태도가 나타난다. 위기에 처했을 때, 이에 굴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희망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 창립당시의 제주국제명상센터는 상담과 명상을 병합하여 명상의 내적인 힘을 바탕으로 세상을 평화롭게 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현 체제는 통합적인 방법보다 명상이라는 영성을 일깨우는 방향으로 가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초기의 창립의도와는 다르게 운영되는 것이어서 전체가 통합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우리가 멈추지 않고 꾸준히 앞으로 나가는 것은 희망이 있기 때문이며, 매순간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희망에 따른 현실의 결과는 달라진다. 나는 제주에 남는 것보다 안동으로 가는 것을 선택했다. 안동에 희망을 걸었기 때문이다. 남은 인생을 10년으로 볼 때 그 10년간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내가 할 일은 어디를 가나 상담과 명상이다. 상담에서 개인 상담과 집단상담, 그리고 상담자의 슈퍼비전을 할 수 있고, 명상에서는 사마타와 위빠사나, 요가명상을 지도할 수 있다. 어느 분야에서든 교수-학습준비가 미숙하다면 학습자들을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상담과 명상은 삶 자체라고 할 정도로 삶의 과정에서 대상과의 관계를 통찰하고 알아차릴 때 발전할 수 있다.

삶의 과정에서 경험은 삶을 윤택하게 한다.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경험일지라도 모두 다 선물이다. 지난해 12월 이사회에서 일어났던 이사장의 자격 조건에서 철저하게 자격을 갖춘 자여야 한다는 측과 자격이 좀 미흡하더라도 인품을 갖추었다면 괜찮다는 입장이 팽팽하게 대립되었다. 발언자들의 주장이 내용 자체만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그 내용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감정이 작용하여 고성이 일어나고 아예 상대방의 말은 듣기보다 비난함으로써 험악한 상황까지 가는 모습이어서 차마 보기가 민망하였다. 이때 내 마음은 이쪽으로 갔다가 저쪽으로 가는 등 계속 양쪽을 방황하였다. 감정이나 고성만 뺀다면 모두 옳은 발언이었다. 이 과정에서 나와 관계된 모든 사람, 상대하기 어려운 상황과 다루기 힘든 사람들로부터 나는 인내와 관용을 배울 수 있었다. 사실 나와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싫어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 서로간의 관계를 해칠 수도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렇지 않을 경우는 어느 쪽이든 받아들일만한 일이었다.

삶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별로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러나 삶의 과정에서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삶의 형태를 달라지게 하는 만남과 헤어짐은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침을 경험한다. 나에게는 35년 전 내가 제주에 올 때 대학 편입 동기생이요 같은 전공을 공부하는 H교수가 있다. 이 친구와의 인연은 특이하다. 대학에서 대학원으로,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제주대학으로, 그리고 제주상담활동 과정 등 인생의 절반 가까운 세월을 함께 활동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H교수는 늘 나보다 앞장서서 활동했고 뒤따라오는 나를 안내하였다.

제주대학에 올 때만 해도 당시 상황으로 보아 2~3년 있다가 기회가 생기면 육지에 있는 다른 대학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제주도는 육지에서 동떨어진 섬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마흔 두 살이나 된 나는 한계상황에 놓여 있었고 더 미루면 제주대학에도 못 갈 위기였다. 머뭇거리기에는 여유가 없었고 선택이 불가피했다. 교수라는 보다 큰 희망이 제주대학을 선택하도록 나를 견인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내가 제주를 떠나든가, 제주가 나를 떠나게 하든가의 기로에 서있다. 떠남을 누가 선택하는가? 35년간의 나의 제주에서의 삶은 매우 단단하여 어지간해서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만큼 제주에 대한 믿음, 신뢰, 사랑이 깊었다. 그런데 그러한 마음을 움직인 것은 바로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마을을 떠난 사람들이 희망을 보지 못했던 것과 유사하였다. 삶을 위한 공간과 일거리, 삶을 위한 관계 등이 모두 취약해서 안동으로 가고자 하는 마음이 결심으로 굳어지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삶에는 때가 있다. 내가 서울에서 제주에 올 때처럼 제주에서 육지, 안동에 갈 때는 때를 결정하는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노년을 맞이하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 그것은 조상들의 보이지 않는 영적 부름이었다. 그리고 몇몇 주변 사람들의 나와의 관계로 인한 불편함, 그리고 내가 보금자리처럼 10여 년을 살아왔던 연구실의 부재, 마지막으로 평생을 함께 살아오며 아내를 외롭게 한 미안함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나보다 더 큰 힘이 나에게 영향을 미쳤다. 태어날 때부터 본질적으로 뿌리내리고 있던 내 안의 영성 세계에 대한 움직임이요 그것에 대한 선택이었다.

결국 안동으로 가는 희망을 갖게 한 것은 머물러야할 공간과 일거리가 없긴 하지만 그보다는 앞으로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내 삶의 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이제 그것으로 고개를 돌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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