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회광반조 1
차는 잘도 달렸다. 오오스마 기자의 핸드폰이 드디어 터졌다. 말이 없던 오오스마 기자의 얼굴에 비로소 생기가 돌았다.
-왜 그렇게 전화가 안 돼?
분명히 심 작가였다.
-아무리 인도가 인터넷 강국이라고 하더라도 스리나가르 골짝까지야 핸드폰이 터질 리가 있나 이 사람아.
-지금 어디야?
-뉴델리로 돌아가는 중이야.
-그쪽 일은 어떻게 됐어?
-몰라.
-왜?
-암튼.
-왜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이상한 문제에 부딪히고 있어. 갑자기 예수의 지팡이가 등장하는 바람에.
-예수의 지팡이?
-무쿠암 석관 속의 검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검이 아니고 예수의 지팡이라는 사실이 제기된 거야.
-무슨 소리야? 이미 그건 내시경에 의해 판명 났잖아. 지팡이가 아니었다고….
-그렇다고 검이라고 하기엔….
-하긴 옛날에 그런 말들이 있었어. 영국 모 방송국에서 그 문제를 제기했었는데 확실한 건 없다고 판명 났잖아. 불교도들을 의식한 이슬람의 장난질일지 모른다고.
-어쨌거나 그 바람에 제정신들이 아니야.
-그렇겠네.
오오스마 기자가 웃었다. 햇살이 웃는 그의 얼굴에 물들어 있었다. 보기가 좋았다. 꼭 햇살에 물든 물너울이 그의 얼굴에서 일렁거리는 것 같았다.
-자네가 같이 왔다면 좋았을걸.
오오스마 기자가 말했다.
-그래도 날 생각해주는 사람은 그대밖에 없네. 하하하
-불쌍해서지. 사실 이런 종류의 사건은 소설에나 어울릴 것 같거든.
-정말 성과가 없었던 모양이네.
-전번에는 동굴 주위에 사람도 살았고 군인들도 지키고 있었잖아.
-그런데?
-텅 비었어. 허허벌판이야. 사람 그림자라고는 보이지 않는다니까.
-그래? 그럼 동굴 안은?
-석관은 그대로 있더군. 빈 것이었어.
-역시 이미 늦었다는 말이로군!
-거기다 예수의 지팡이 설까지 제기되었으니. 문제는 동굴 주인을 찾아야 할 것 같아. 전에 왔을 때 동굴 주인이라던 주민이 있었잖아. 보지는 못했지만, 그 사람 집도 비었고 폭삭 내려앉았어.
-그럼 그곳 관청이 있을 거 아냐. 그가 어디로 이주했는지 알아보면 되겠네.
-관청이라고 하지만 제대로 알려 주겠어.
-가보긴 했고?
-내가 찾아가 보았는데 모르쇠야. 전에도 그랬잖아. 자기들은 아무것도 모른대. 그곳에 살던 주민이 어디로 이사를 한 것이냐고 물어도 노야. 모른대. 모를 리가 있느냐고 했더니….
-했더니?
-어느 날 사라져 버렸는데 그걸 어떻게 아느냐는 식이야. 넨장 관청 찾기도 쉽지 않더라고.
-하기야…. 원체 이동이 심한 나라니, 안다고 해도 가르쳐주겠어.
-보통 문제가 아니라니까. 예수의 지팡이냐? 아디카야의 검이냐? 동굴을 지키던 그 사람을 만나야 확실해질 것 같은데….
-아디카야의 검이라고 대서특필했던 신문사도 그렇겠네.
-그래. 내가 뭘 잘못 알고 긁은 거 같기도 하고…. 그러니 한 번 알아봐. 저번에 대사관에 아는 선배가 근무하고 있다고 했지? 고위층과 잘 통하는 선배가 있다고 했잖아. 그 성물이 문화재급이라면 혹시 알 수 있을지도 몰라.
-젠장할, 그렇게 따지면 네가 났지. 신문사 인력을 가동시키면….
-안 돼. 지금 정치인들 잘못 건드려 신문사가 벌컥 뒤집어졌어.
-아무튼 알았어. 알아볼게. 그것도 모르고 하하 참….
잠을 깬 배낭족 하나가 듣다못해 역정을 내자 오오스마 기자가 미안한지 눈치를 보다가 좀 소리를 죽였다. 그래도 그는 우리가 반응을 보이지 않는 이상 아랑곳하지 않을 눈치였다. 오오스마 기자는 우리들의 침묵 때문에 오히려 더 큰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과장된 어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실망으로 인해 말이 없어져 버린 동료들을 어떡하든 깨워볼 양으로 그는 헛웃음을 계속 치고 있다는 걸 송 서화가나 내가 눈치 못 챌 리 없었다.
핸드폰의 성능은 좋아 보였다. 심 작가의 말이 두 사람의 귀에까지 들릴 정도니. 아니 그만큼 뉴델리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송 서화가와 나는 멍하니 오오스마 기자의 통화 내용을 듣고 있다가 서로 쳐다보았다.
전화가 꺼졌다.
-뭐래요?
내가 시큰둥하게 오오스마 기자에게 물었다.
오오스마 기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들었잖습니까. 동굴 주인이나 찾았으면 좋겠군요.
허 참! 하고 송 서화가가 혀를 찼다.
심 작가를 만나 자이누딘 왈리 쉼라의 후손 왈리 슈트라 쉼라가 있다는 곳을 향해 네 사람이 출발한 것은 뉴델리에 도착하는 즉시였다.
심 작가의 말에 의하면 이상하게 문화재를 관장하는 부처에 스리나가르 아이슈 무쿠암 동굴은 등록되어 있지 않더라고 했다. 지질과에 가보라고 해서 국토 지질부에 가보았더니 거기 무쿠암 동굴 주인의 이름이 나오더란다. 그것도 아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었다고 했다. 정부 요직에 있으니까 알아볼 수 있었다고 했다.
-어디로 옮겼대?
-아마 동굴 속 성물 때문에 요주의 인물이 되었던 모양이야. 세계적 논쟁거리가 되니까 이곳저곳에서 찾아오고 그러니 정부에서 간섭을 좀 했던 모양인데….
-그럴 것 같더라니까. 전번에 왔을 때부터 그런 기미를 느꼈잖아. 그래서 그냥 온 것이야. 그곳 관할 관청 그때도 시치미를 딱 떼었잖은가. 성물을 어떻게 볼 수 없겠느냐고 했더니 주인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둥 그 주인이 그때 없었잖아. 어딨냐고 했더니 모르겠다는 둥…. 아무튼 다행이네. 어디야? 그 동굴 주인 있는 곳이?
-다행히 그 관할부처가 뉴델리에 있었기 망정이지.
-뉴델리에서 좀 떨어진 로봄인쿠르라는 곳이야.
그렇게 말하고 심 작가가 주소 하나를 내보였다.
-그럼 성물은 인도 정부로 인계된 것인가?
-그걸 모르겠다고 하더군.
-응?
-소유권은 쉼라 가문에 있다고 하는데 그 중요성을 감안하여 정부에서 나서니까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는 것이야.
-이상한?
-성물이 없어졌다는 것이지.
-없어지다니? 그래서 빈 석관? 그런데 손을 댈 수 없었을 텐데 어떻게?
-그러니까 그게 이상하다는 거지. 필시 쉼라 가문에서 빼돌렸다고 정부에서는 생각하는 모양이고 그 바람에 요주의 인물로 찍힌 모양인데….
-무슨 증거라도 있을 거 아냐?
-감시 카메라에 자이루딘 그러니까 동굴 주인이 석관에서 상자를 들어내 나가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는 것이야.
-아니 주인이 아니면 손도 못 댄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걸 모르겠다는 것이야. 어떻게 그 성물이 동굴 주인에게 몸을 허락했는지….
-이상하긴 이상하네. 그럼 대답은 나온 거 아냐. 자이루딘의 후손이 그 성물의 주인이라는 말이 아닌가?
-설마? 그러잖아도 그래서 인도 정부에서 닦달했던 모양인데 지금까지 성물을 어디다 숨겼는지 말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야.
-아무튼 일단 그 사람을 만나봐야 대답이 나오겠네.
역으로 향했다. 로봄인쿠르로 바로 가는 기차는 없었다. 사알리 역에서 다시 갈아타야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기차에 오르기 전 음료수와 먹을 것을 준비했다. 인도에서는 기차만 탈 줄 알아도 여행의 반은 성공한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인도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긴 철도망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한 번 타려면 탑승 시간만 수 시간이 걸린다. 그만큼 여행객이 많다는 말이다. 열차의 종류도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다. 객실도 다양하다. 현지인이나 여행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등급의 기차를 어렵게 탈 수 있었다. 인도 기차는 고유의 기차 번호와 이름을 가지고 있다. 기차 번호와 이름을 모르고는 예약이 가능하지 않다. 그걸 알고 있는 심 작가가 스리나가르에서 돌아오는 사이 딱갈표를 끊어 놓았다.
딱갈표란 표를 구하기 어려울 때 수수료에 추가 요금이 붙는 표를 말한다. 공식 표 요금의 두 배를 훌쩍 뛰어넘는 금액을 지불해야만 살 수 있는 표다.
기차에 오르자 잡상인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여행객들이 제 세상을 만난 듯 이곳저곳에서 현지인들과 수다를 떨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그녀와 함께 배낭을 메고 처음 왔을 때였다. 객실에서 카메라를 꺼내 보다가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카메라가 없었다. 맞은편에 가족이 밥을 먹고 있었다. 정말 다정해 보였다. 그녀와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었는데 자꾸 음식을 권했다. 괜찮다고 했더니 같이 먹자고 했다. 그들이 내미는 음식을 먹고 잠이 들었다. 약 기운이 가시고 나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니까 아무것도 없었다.
때가 되었는지 승무원들이, ‘브렉퍼스트? 런치 런치? 디너르 디너르?’하면서 돌아다녔다.
고를 수 있는 요리는 일반적으로 채식 탈리와 육식 탈리로 구분되는데 오오스마 기자가 치킨을 두 마리 시켰다. 잠시 후 주문한 음식이 배달됐다. 시장기가 가시자 졸음이 쏟아졌다. 그녀가 바닷가에 서 있었다. 헤엄을 배우지 못했던 나는 바닷물에 발만 담그고 있었다.
-왜 돌아온 거야?
내 물음에 그녀가 눈을 감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난 떠난 적 없어요. 그 사람과 나 사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자기죠. 물이 차네요.
그녀도 발을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가 말했다.
내가 용기를 좀 내어 걸어 들어갔다. 허벅지가 잠길 정도의 물 깊이였다.
-들어와. 따뜻해.
그녀가 가까이 다가왔다.
-정말 따뜻하네요.
그녀가 물고기처럼 헤엄쳐 나갔다.〈계속〉
▶한줄 요약
이 기자 일행은 뉴델리에 도착하자마자 합류한 심 작가와 함께 아이슈 무쿠암 동굴의 주인을 만나기 위해 경유지인 사알리역 행 기차를 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