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능엄경의 도량안립(道場安立)
〈원문〉
아난이 가사를 정돈하고 절을 하고 부처님께 솨뢰었다.
“대비하는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부처가 되는 법문을 깨달아서 의혹이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항상 여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자신이 제도 받지 못했어도 먼저 남을 제도하려는 것이 보살의 발심이요, 자기의 깨달음이 이미 원만해지고 다른 이를 깨닫게 하는 것은 여래가 세상에 응하는 일’이라 하셨습니다. 저는 비록 제도되지 못했으나 말겁의 일체중생을 제도하려 합니다. 세존이시여, 말겁의 중생들이 부처님 계실 때와 점점 멀어져 그릇된 스승들의 설법이 갠지스강 모래알 수만큼 많아질 적에 그 마음을 거두어 삼마지에 들게 하려면 어떻게 도량을 안립하여야 마군의 일이 멀어지고 보리심에서 물러나지 않겠습니까?”
그때 세존께서 대중 가운데서 아난을 칭찬하셨다.
“훌륭하구나. 네가 물은 것처럼 도량을 안립하여 말겁에 빠진 중생을 구호하려거든 나의 비나야 가운데 설한 세 가지 결정적인 뜻을 수행해야 하느니라. 이른바 마음을 거두는 것을 계(戒)라 하고 계(戒)를 인하여 정(定)이 생기며 정(定)을 인하여 혜(慧)가 일어나나니 이것을 삼무루학(三無漏學)이라 하느니라. 만약 모든 세계의 육도 중생이 그 마음이 음란치 아니하면 곧 생사의 상속을 따르지 아니하리라. 네가 삼매를 닦는 것은 진로(塵勞)에서 벗어나려 하는 것이니 네가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삼마지를 닦게 하려거든 마음의 음욕을 끊게 하여야 하나니 이것이 선불세존(先佛世尊)의 첫 번째 결정적인 청정한 가르침이니라.
아난아, 네가 세상 사람을 가르쳐 삼마지를 닦게 하려거든 살생을 끊게 해야 하나니 이것이 선불세존의 두 번째 결정적인 청정한 가르침이니라.
아난아, 네가 세상 사람을 가르쳐 삼마지를 닦게 하려거든 그 마음에 투도를 아니하고 투도를 끊게 해야 하나니 이것이 선불세존의 세 번째 결정적인 청정한 가르침이니라.
〈강설〉
아난이 부처님께 여쭌다. 성불하는 법문을 잘 들어 알았으나 부처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보살의 발심은 자신이 제도 받지 못했더라도 남을 먼저 제도한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하려면 도량을 어떻게 안립(安立)해야 하는지 여쭙고 있다. ‘도량안립’이란 도량을 세운다는 뜻이다. 원래 도량이란 깨달음을 이룬 장소를 뜻하는 공간적인 개념이나 그러한 공간적인 개념을 넘어서 깨달음을 성취하는 동기가 되는 모든 작용을 도량(道場)이라고 한다. 〈유마경〉에서는 직심(直心)이 도량이라 하고 이어 보시, 지계 등 육바라밀을 도량이라 하였다. 〈능엄경〉의 도량안립은 세 가지 결정적인 뜻으로 한다고 밝힌다. 비나야는 율장(律藏)을 말하는데 마음을 섭수(攝受)하는 것을 계(戒)를 삼고 계를 인하여 정(定)이 생기고 정을 인하여 혜(慧)를 발한다 하였다. 말하자면 마음이 잘 단속된 것이 계가 되고 이로 인해 삼무루학(三無漏學)이 성취된다 하였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삼학(三學)에서 계를 대승의 심계(心戒)로 설명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음계(딫戒)를 먼저 내세우면서 생사의 상속을 따르지 않으려면 음심(淫心)을 먼저 끊으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선불세존의 첫 번째 결정적인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선불(先佛)이란 과거의 부처님 곧 선대(先代)의 부처님이란 말이다. 살(殺), 도(盜), 음(딫)을 음, 살, 도로 순서를 바꾸어 세 가지 결정적인 청정한 가르침(決定淸淨明誨)이라 하였다. 〈능엄경〉은 계율의 엄격한 실천을 요한다. 육식(肉食)을 금하고 오신채(五辛菜)뿐만 아니라 우유를 마시는 것조차 금하고 있다. 육식과 우유까지를 금하는 것은 불살생(不殺生)을 계율을 간접적인 영역까지 확대하여 몸으로 행동화되지 않더라도 마음속에서도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수행은 계율을 지키는 행동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