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37 (수)

[백금남 장편소설 아디카야의 검] 29. 예수가 인도에 왔었다는 기록은 사실일까

29 스리나가르여, 스리나가르여 3

식사나 하자며 다섯이 인근 식당을 찾았다. 허름한 간이음식점이었다. 차와 자빠디를 시켜 먹으며 좀 전에 오오스마 기자와 나누던 말을 곱씹었다. 생각할수록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렉스와 말을 나누게 되었다. 먼저 알렉스에게 입을 연 것은 오오스마 기자였다. 그도 나와 나누던 말을 곱씹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곳이 이슬람 문화권이긴 한데 그보다 먼저 불교 문화권이라는 것은 모르시지는 않으셨을 텐데…?

오오스마 기자의 말에 알렉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습니다. 알고 있어서 더 이상했습니다. 이곳으로 와보니 이곳은 불교라는 종교가 속으로 퍼져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분명히 이슬람 문화권인데 말입니다. 이슬람교에 묻혀 불교의 사원들은 이슬람교의 모스크로 변해 버렸다는 걸 알 수 있었지요. 스님 대신 이슬람교의 선승들이라고 하는 수피들이 영성(靈性)을 전파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레에 있는 한국 절에 들렀어요. 한국 선승들의 공부 방법이 지켜지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 공부 방법이 특이했어요. 공부 방법이 이곳 계절과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엇보다 여름과 겨울에 사원에 들어앉아야 하는 승들의 안거(安居)가 잘 지켜지고 있는 것 같았고요.

안거란 여름 한 철과 겨울 한 철을 택해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기간을 말한다. 이곳은 따뜻한 곳이었지만 비가 많은 곳이라 그래서 더욱 여름 한철 안거를 정해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체계를 잘 갖추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곳 사찰 스님들의 공부 방법도 특이했어요. 주로 앉아서(좌선) 하고 있었는데 무엇보다 특이한 것은 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신 대신 책상다리하고 명상에 들어 조용히 우주를 관한다고 해요. 그걸 보면서 정말 예수 그리스도가 무덤에서 일어나 이곳으로 와 불법을 연구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혹시 깨달음이란 말을 알고 있습니까?

듣고 있던 오오스마 기자가 알렉스에게 물었다.

-깨달음? 음 그거 이해 아닌가요?

-이해?

나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깨달음과 이해? 알렉스의 이해는 안다는 차원의 말 같았다. 그렇다. 깨닫는다는 것은 앎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 불교를 모르고서야 불법을 알 수는 없다. 그렇다면 먼저 불법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이해의 수준이다. 하지만 붓다는 앎을 비우지 않고는 붓다가 될 수 없다고 했다. 불법은 이해의 차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불법의 모순이 시작된다. 알지 않고 불법을 어떻게 알며 성불해 낼 것인가? 그런데도 붓다는 앎은 비워야 붓다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정녕 비웠을 때 새벽별이 깨침이 된다고 했다. 깨달음? 깨침? 그렇다면 이 말은 다른 말이다. 깨달음이 이해의 수준이라면 깨침은 지금까지의 내가 깨어진다는 말이다. 병아리가 껍데기를 깨고 나오듯 한순간 세상 빛을 본다는 말이다.

-그럼 깨침이란 말을 아십니까?

잠시 생각하던 내가 알렉스에게 물었다.

-깨침이라고 하셨나요?

-네.

-무슨 말인가요? 깨어진다는 말인가요?

-맞습니다.

-네?

-종교는 하나 같이 깨어져야 하지요. 깨어지지 않고 새로운 내가 태어나겠습니까. 이곳 승들은 자신을 깨기 위해 앉아 있는 겁니다. 미련하게.

좀 화가 난 듯한 나의 어투에 알렉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웃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어렵군요.

나는 입을 닫아버렸다. 그렇지. 어렵지. 어렵지 않고 어떻게 불법을 얻을 수 있으랴. 너도 깨어지기 위해 예수의 무덤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겠느냐.

알렉스와 헤어져 뉴델리행에 몸을 실었다. 여행객들이 태반이었다. 알렉스와 헤어지긴 하였지만, 아직도 예수의 지팡이가 의식의 언저리를 맴돌고 있었다.

-저 사람(알렉스)이 그토록 보고 싶어 하는 예수의 무덤을 그 후로 본 적 없습니까?

차에 몸을 실으면서 내가 오오스마 기자에게 물었다. 예수가 석관 속에 묻혀 있다는 곳까지는 가보지 못했으므로 취재한 적이 있느냐는 말이었다.

오오스마 기자가 고개를 내저었다.

-국장님이 어떻게 구워삶아 혼자 들어가 보았다고는 하더군요.

-그래요?

-뭐 볼 것도 없더랍니다. 안이 너무 조악했다고 해요. 예수의 묘석과 시에르의 묘석 그리고 예수의 발자국은 우리도 보았고 그것을 지나자 너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랍니다. 여명의 빛에 의해 나무로 된 성배 용기가 아닐까 싶은 것들이 보였는데 그래서 불이 필요하다고 하니까 켜지 못하게 하더랍니다. 예로부터 함부로 그곳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지만 들어가 보았다가 일을 당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신성한 곳이라 부정을 탄다는 말 같은데…?

오오스마 기자가 웃었다. 내 말의 의미를 안다는 웃음이었다.

-글쎄요? 생각해 보면 그곳만큼 신성한 곳이 어딨겠어요. 자연히 잡인이 금지되기 마련이겠죠. 물론 예수가 이곳에 온 것부터가 추측이지만요. 19세기 러시아 학자들에 의하면 예수는 열세 살에 한 상인을 따라 인도에 왔다고 해요. 닿은 곳이 스리나가르라는데 이상하잖아요. 성경에도 어린 시절 대부분이 보이지 않으니까 이 말을 들으면 그래 보이고 저 말을 들으면 그래 보이고. 무엇보다 인도에서도 스리나가르행은 말리는 입장이고 보면.

-왜요?

-우리도 겁 없이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지금도 이슬람 무장 단체 등이 정부군과 총격하는 곳이 여기거든요. 그럼 그때라고 정세가 좋았겠어요. 무엇보다 예수가 부활해 이곳으로 왔다는 것이에요. 누군가에 의해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해도 말이 맞지 않아요. 사실 이곳은 불교국이 아니에요. 스리나가르 어디에서도 불교의 색채는 없어요. 대신 이슬람 문화가 잡고 있죠. 그럼 그들이 꾸며낸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슬람에서 예수의 위치는 엄청나죠. 특별히 찬양받는 지위에 있고 코란에도 예수가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다(3:45-47)고 기록하고 있으니까요. 신에서 나온 성령이며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고 있으니 신앙이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것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요.

 

-역시 조작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일리가 있다?

-첸나이에 있는 성 도마 성당의 신부가 언젠가 누군가에게 물었다고 해요. 성 도마를 아세요? 하고.

-성 도마?

-예수의 제자죠. 그는 인도 남부에서 전도하다가 첸나이에서 죽었습니다. 성 도마 성당은 성 도마의 무덤 위에 지어진 성당이죠. 그가 말했어요. 인도 카슈미르 지방의 고대 문헌에 예수의 행적이 많이 나온다고. 그런 현상들이 이슬람 문화권의 조작은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그렇군요.

분명히 무쿠암이 예수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일어나는 의혹 때문에 말을 꺼냈는데 다시 아니다 하는 확신이 들었다.

스리나가르를 벗어날 때쯤 말이 없던 오오스마 기자가 손가락을 창날처럼 세워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더니 비석이었다. 제법 컸는데 약간 비스듬하게 누워 있었다.

-비석 같은데요?

내가 물었다.

-비정(非情)의 비(碑)입니다.

-비정의 비?

-옛날 이곳에서 아주 먼 곳에 브라흐마푸라라는 나라가 있었지요. 거대한 설산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나라였는데 동녀국이었습니다.

-동녀국? 여자들의 왕국?

오오스마 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정말 동녀국이 있었단 말입니까? 난 영화에서나 보았는데….

-실제로 있었답니다.

-재밌네요. 그럼 왕도 여자였겠군요?

-물론이지요.

-그럼 남자는?

-물론 남자도 있었지요. 하지만 필요한 만큼만 남자애를 살렸다고 해요. 그리고는 가축을 키우듯이 키워 씨받이로 쓰거나 전쟁의 병사로 쓰거나 씨를 뿌리고 거두는 일을 시켰지요.

-가축을 키우듯이?

-어느 날 그것을 알 리 없는 다른 나라 스님이 설산을 헤매다가 그 나라로 들어섰답니다.

그렇게 말하고 오오스마 기자가 다시 말하기 시작했는데 이런 말이었다.

스님이 동녀국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동녀들이 창을 겨누고 달려들었다. 꽁꽁 묶여서는 여왕 앞으로 끌고 갔다. 여왕은 이제 열여덟 정도의 고운 처녀였다. 얼굴이 희고 몸이 나이답지 않게 풍만했다. 잘생긴 스님을 보더니 헤살헤살 웃으며 자신의 시중으로 쓰겠다고 하였다.

-사문을 농락한다면 무간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을 모르시오?

스님은 결박당한 채 여왕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여왕이 물었다.

-사문이라 했느냐?

-그렇소이다.

-참 이상하게 생긴 사문이로다. 어디로 가는 길이냐?

-법을 구하려 방황하고 있소이다.

-나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이냐?

그녀는 스님을 자신의 침실로 데려갔다. 침실에는 술상이 차려져 있었다. 여왕이 그의 앞에 술을 쳤다.

-한 잔 들려무나.

-사문은 술을 먹지 않소.

-왜 먹지 않느냐?

-정신을 흐리게 하기 때문이오.

-그럼 고기라도 뜯어라.

-고기도 먹지 않소.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왜 고기를 먹지 않느냐?

-살생이기 때문이오. 무엇보다 음기를 부추겨 색욕을 발동하기 때문에 먹지 않소.

-그럼 나물이라도 먹어라.

스님은 나물만 먹었다.

술상을 물리고 여왕이 옷을 모두 벗고 스님을 잠자리로 이끌었다.

스님은 벌벌 떨었다. 여왕의 육신을 보자 나물만 먹던 몸인데도 갑자기 색욕이 발동했다. 그래도 파계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스님은 붓다를 찾았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여왕이 고개를 갸웃하며 스님을 불렀다.

-어서 옷을 벗고 이리로 오너라.

그래도 스님은 눈을 감은 채 중얼거리고 있다.

-도대체 무슨 소릴 중얼거리고 있는 것이냐?

-내 주인을 찾고 있소.

-네 주인이 누군데?

-내 스승이오.

-이놈아, 이제 내가 네 주인이다. 여봐라.

밖의 시종들이 들어왔다.

-불렀사옵니까? 여왕 마마.

-저놈의 정신이 온전치 않다. 술을 먹이거라. 짐승이 될 때까지. 〈계속〉

▶한줄 요약

알렉스와 헤어진 이 기자 일행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많은 의문을 품은 채 뉴델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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