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보시바라밀
원행지와 부동지에서는 암마라식이 쓰이고 선혜지에는 원통식이 활용된다. 법운지에서는 생멸문 전체를 대상으로 보시를 행한다. 원통식이 활용된다. 선혜지는 9지 보살이다. 9지 보살은 생멸문 전체를 덮지 못한다. 그래서 반연(攀緣)이 없는 중생들은 제도하지 못한다. 반연은 육입(六흙),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 사(死)의 과정에서 맺어지는 인연을 말한다. 육입 이전에 진행되는 명색(名), 식(識), 행(契), 무명(無明)의 과정은 반연이 아니다. 반연이 없는 중생을 제도하려면 역무명색진(亦無名盡), 역무식진(亦無識盡), 역무행진(亦無契盡), 역무무명진(亦無無明盡)을 행해야 한다. 이 과정이 법운지에서 이루어진다. 역무노사진(亦無일死盡) 내지 역무육입진(亦無六흙盡)까지는 아라한도와 선혜지까지의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환희지에서 이루어지는 보시 바라밀은 열반상에서 벗어나서 생멸심으로부터 전이되는 그리움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것이 자성중생서원도(菱性衆誓願度)의 시작이다. 자성보시라 한다. 해탈지견이 쓰여진다. 이구지에서 행해지는 보시 바라밀은 생멸심과 진여심을 동등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일치된 생멸심을 진여심과 동등하게 바라보고 제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이때에 행해지는 보시바라밀이다. 해탈지견이 쓰여진다. 초지 보살과 2지 보살은 아기보살이다. 해탈지견은 9식이지만 아직까지 식근(識根)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9식의 식근은 암마라식을 통해 갖추어진다. 암마라식은 자기 생멸심을 제도하면서 갖추어진다. 때문에 초지와 2지에서 자성중생서원도를 일으키지 않으면 암마라식이 갖추어지지 않는다. 열반락을 누릴지언정 안, 이, 비, 설, 신, 의가 없는 일면불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떨어트려 놓은 생멸심을 제도한 만큼 암마라식이 갖추어지고 암마라식이 갖추어진 만큼 육근이 생긴다. 5지 난승지를 넘어서서 6지 현전지에 들어가야 비로소 암마라식이 원만해진다. 환희지, 이구지, 발광지, 염해지, 난승지까지는 암마라식이 완전하게 갖추어지지 않는다. 3지 발광지에서 행해지는 보시바라밀은 진여신의 밝은성품으로 생멸신을 감싸는 것이다. 생멸신이 영혼으로 있으면 영혼을 감싸고, 육체를 갖고 있으면 육체를 감싼다. 이 상태가 되면 생멸신의 상태가 그대로 진여심에 전달된다. 심과 식, 몸의 상태가 포괄적으로 일치된다. 본성으로 비춰주고 각성으로 제도한다. 해탈지견이 쓰여진다. 4지 염혜지에서는 진여심의 무념처와 생멸심의 식업을 일치시킨다. 그 상태에서 생멸심의 식업을 제도하면서 보시바라밀을 행한다. 염혜지에 들어가면 생멸심의 식업이 무념처에 덧씌워진다. 그렇게 되면 진여보살이 생멸식을 갖게 된다. 그때의 생멸식을 무념처와 간극으로 제도해서 원만보신과 법신청정을 이룬다. 이것이 염해지에서 이루어지는 보시바라밀이다. 5지 난승지에서는 생멸심의 심업을 무심처에 복사하고 생멸심의 식업을 무념처에 복사한다. 이렇게 되면 보살의 진여식 안에 생멸식이 갖추어진다. 이 상태에서는 심과 식의 정보가 무작위로 교류한다. 그러면서 번뇌를 만들어낸다. 이때의 번뇌는 쉽게 다스려지지 않는다. 그래서 난승지라 부른다. 보살이 이때의 번뇌를 다스리지 못하면 다시 반야해탈도의 과정으로 퇴전할 수도 있다. 난승지에서의 보시바라밀은 일치된 심과 식의 번뇌를 다스리는 것이다. 간극에 각성을 집중하고 무념처와 무심처를 덮고 있는 생멸심을 비춰본다. 그러면서 법신청정행과 원만보신행, 천백억화신행을 함께 행한다. 제도된 생멸심이 암마라식으로 전환되면서 식근이 생겨난다. 그렇게 되면 번뇌를 다스릴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난승지의 한 과정 한 과정이 모두 다 보시행이다. 일치되었던 생멸심이 모두 제도되면 다시 간극과 무념, 무심이 뚜렷하게 현전한다. 현전지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