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스리나가르여, 스리나가르여 2
취재차 와봤던 곳이라고 하더니 기사가 아니었으면 고생깨나 했을 길이었다. 기사가 주민청을 금방 찾았다.
지저분한 거리의 길 끝에 낡은 블록 건물이었는데 오오스마 기자가 안으로 들어간 사이 셋은 길가에서 팔고 있는 차로 더위를 식혔다. 무슨 차인 줄도 몰랐다. 그저 시원하다기에 시켰는데 별로 차지도 않았지만, 입맛에 맞지 않았다.
삼십여 분을 기다렸을까. 주민청에서 나온 오오스마 기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혼자가 아닌데요?
송 서화가가 바라보며 말했다.
-누구죠?
송 서화가가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가까이 다가온 낯선 사람을 보았더니 머리가 길었고 수염이 입과 턱을 덮었을 정도로 길었다. 동양인이 아니었다. 코가 높고 눈이 노랗다. 이제 마흔이나 되었을까.
오오스마 기자가 내게 먼저 그를 소개했다.
-안에서 만났습니다. 자신도 아디카야 검을 찾으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라고 하는군요. 영국에서 왔다고 하는데 인사나 하지요.
내가 먼저 그에게 손을 내밀어 내 이름을 밝혔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밝혔는데 알렉스라고 했다. 자신은 불교도는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을 찾아다니다가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고 하였다.
일전에 영국 방송에서 예수의 인도 생활을 방송한 적이 있었는데 그래서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하 여기 어디 있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을 찾아오셨구나!
송 서화가가 그와 악수하며 말했다. 나름대로 영어가 유창했다. 말을 알아들은 알렉스란 사람이 그렇다고 했다. 예수의 논문을 하나 쓰고 있는데 예수의 무덤이 있다는 스리나가르 로자발이라는 곳에 들렀는데 여행객들이 너무 몰려들어 문이 닫혔더라고 했다. 잡상인이 판을 치고 순례객들이 닥치는 대로 무엇이든 가져가는 바람에 문을 닫아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는 로자발 예수의 무덤이 있는 건물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창고처럼 지어진 푸른 집이었다. 꼭 한국의 시골 방앗간을 연상시켰다. 문이 닫히자 순례객들이 몰려들어 문에다 키스하고 찬송가를 부르고 하는 바람에 근접조차 하기가 힘들었다고 하였다.
말을 나누다 말고 오오스마 기자가 나를 한쪽으로 끌었다.
-왜요?
내가 묻자 오오스마 기자가 사내를 히끗 쳐다보다가 이상한 말을 했다.
-우리도 아디카야 검을 찾아 여기까지 온 사람이라고 하니까 저 사람이 이상한 말을 해요.
-이상한?
-자기가 예수의 행적을 살피다 보니 예수의 스리나가르행을 알게 되었고 아디카야의 검에 대해서 알게 되었는데 이곳 로자발에서 예수가 생활할 때 제자가 왈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었답니다.
-그런데요?
-예수가 이곳으로 와 로자발에서 살 때 지팡이를 하나 가지고 있었답니다.
-지팡이?
-왈리가 예수가 죽은 후 우리가 방금 들른 아디카야의 석관 속에 넣고 봉인했는데 그곳이 이곳이라는 겁니다.
나는 뜨악하게 오오스마 기자를 쳐다보았다.
-무슨 소립니까? 그럴 리가요? 그러니까 아디카야의 검이 아니라 예수의 지팡이 무덤이었다 그 말인가요?
-스리나가르로부터 동남쪽 60km. 모세의 돌이 있는 비즈비하라 14km. 바로 여기가 분명하다는 겁니다. 예전에는 아이슈 무쿠암이라는 건물이 동굴 입구에 서 있었답니다. 그 과정도 정확하게 일치해요. 동굴에 살던 쉼라 가문에는 자신의 선조로부터 전해 내려온 지팡이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지팡이가 든 석관은 언제나 푸른 천이 덮어져 있었고 함부로 접근할 수가 없었답니다. 주위의 사람들도 전염병이 돌거나 큰 문제에 부딪히면 이곳으로 와 기도하고는 했답니다. 그 지팡이는 길이는 2.5m 직경 2.5cm라고 하더군요.
-그럼 칼이 아니라 예수의 지팡이였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아이슈 무쿠암이라는 이름 자체가 예수가 붙인 것이라는 겁니다. 아이슈 이사(Issa)에서 나온 것이며 무쿠암은 ‘쉴 장소’라는 뜻이라는 겁니다. 더욱이 그 증거가 솔로몬의 옥좌에 새겨져 있답니다.
-솔로몬의 옥좌?
-여러 세기 비바람을 견딘 솔로몬의 옥좌에 분명히 새겨져 있다는 겁니다. 고바땃따라는 카슈미르 왕이 솔로몬의 신전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중에 페시미르의 한 건축가가 복원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스리나가르에 있는 솔로몬의 옥좌에 그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고 하네요. 예전에 심 작가에게서 그런 말을 듣고 솔로몬의 옥좌에 새겨진 글을 본 적이 있었는데, 전에 내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예수가 이곳에서 생활했었다는…. 그런데 그가 있다고 하는 그런 글귀는 없었어요. 예수의 지팡이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면 모를 리가 없거든요.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확인한 것은 그 기둥을 만든 사람이 누구다. 므르얀의 아들인 크와자 루큰이 만들었다. 그 시기에 유즈 아사프는 예언자적인 소명을 밝혔으며 그가 곧 이스라엘 자손들의 예언자 예수다. 뭐 그 정도였던 것 같은데….
-그럼 아디카야의 검이 검이 아니라 지팡이이며 그것이 동굴 속에 묻혀 있다. 그 근거는 없었다. 그 말인가요?
내 물음에 오오스마 기자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 그런 말입니다. 그런데 지팡이나 검에 대한 말은 없었어요. 그렇잖아도 나도 생각해 보던 문제이긴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이곳은 불교의 영향 아래 있던 곳입니다. 예수가 이곳으로 왔는지 어떠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도 이슬람 문화권의 술수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렇잖아요. 예수가 이슬람에서 특별히 찬양받는 지위에 있고 보면 붓다가 남긴 성물이 예수의 지팡이로 둔갑할 수도 있는 일이고. 저 영국 사람도 그게 이상하다는 겁니다. 조금 전 이런 말을 해요.
-뭐라고?
-라자발 예수의 무덤에 가면 그 증거가 있을지 모른다고….
-거긴 들어갈 수가 없다면서요?
-무슨 증거가 있다는 것인지…?
그렇게 말하고 오오스마 기자는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말을 이었다.
-거기 가면 예수의 발자국이 있는데 그때 짚었던 지팡이 자국이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팡이의 행방도 기록되어 있다는 겁니다.
-지팡이 자국? 지팡이의 행방? 아이슈 무쿠암의 성물이 그것이라는 기록이 있다 그 말인가요?
오오스마 기자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하니까 되게 헷갈리네요. 뭐 내가 잘못 보았나 싶고…. 정확하게 발자국 옆에 누운 지팡이 자국이나 기록이 있다는 겁니다. 말도 안 돼요. 그런데 그런가 하다 보면 정말 지팡이 자국이나 기록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오오스마 기자가 고개를 연신 갸웃댔다.
나는 어이가 없어 그를 쳐다만 보았다.
-꼭 로자발에 들어가야 한다면 못 들어갈 것도 없긴 한데….
오오스마 기자의 말에 내가 눈을 크게 떴다.
-들어갈 수가 있다고요?
-그곳 책임자가 편집부 국장의 형 되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요?
-지팡이 자국이나 행방의 기록이 있다고 해도 그렇지요. 그것이 아디카야의 석관에 묻혔다는 것이 말이 돼요?
-문제는 지팡이 자국과 행방일 것 같은데요. 사실 예수의 발자국이라고 하지만 그게 정말 예수의 발자국이겠어요. 후세의 사람들이 만든 것이겠지. 그때 지팡이 행방을 함께 기록했다면 그만큼 그 지팡이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는 증거가 될 테고 무쿠암 석관에 들어갈 공산도 커지는 거겠지요.
-그러네요. 지금 우리가 먼저 확인할 수 있는 건 그 방법밖에 없을 것 같긴 한데?
오오스마 기자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뇌까렸다.
-이게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넷이 그 길로 로자발로 향했다. 알렉스는 로자발로 들어갈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상기되어 있었다. 여기서 이렇게 좋은 인연을 만난 것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돕는 것 같다며 연신 성호를 긋고 “아멘”을 내뱉었다.
반면에 세 사람은 말이 없었다. 침통하다고까지 해야 할까. 혹시 예수의 발자국 옆에 지팡이 자국과 행방이라도 있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나 역시 그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토록 믿고 이곳까지 왔는데 그 내용물이 아디카야의 검이 아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그 많은 신문 기사는 뭐고 그렇게 알고 있던 사람들은 뭔가. 어떤 이는 그에 대한 꿈을 꾸고, 어떤 이는 그 바람에 이국땅을 헤매고, 그 일을 기사화하려는 사람도 있고, 소설로 쓰겠다는 사람도 있고, 아비를 죽이고 그것을 찾아 나선 사람도 있고…. 그런데 그것이 칼이 아니라 예수의 지팡이일지도 모른다?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속에서 불이 일어 고함이라도 질러 버리고 싶었다. 가자. 가보자. 지금에 확인할 수 있는 건 거기밖에 없지 않은가.
스리나가르 구도시 칸자르 지역. 안지마르. 예언자의 무덤이라는 라우자 발(Rauza bal). 일명 라자발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오오스마 기자가 다 와 간다고 일러주었다.
가는 길에 언덕 정상에 지어진 사원으로 향했다. 한시라도 빨리 라자발로 가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오오스마 기자가 뜸을 들였다. 그도 막상 라자발로 들어가 예수의 지팡이 흔적을 확인하려고 하니 선뜻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사원 문 입구까지만 들어갈 수 있었다. 검문이 심했고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비둘기 떼가 유독 많았는데 마당 가득 비둘기 떼였다. 검문을 피해 사원 안을 살펴보았는데 퍽 특이하게 지어진 사원이었다.
사원에 들어가기 전에 택시를 보내버렸으므로 걸어서 라자발까지 갔다. 택시 요금 때문에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는데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선에서 끝났다. 라자발로 향하자 도중에 오오스마 기자가 헷갈리는 모양이었다. 길 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었다. 이곳 사람들도 그곳을 잘 모르는 눈치였다.
라자발은 골목 뒤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알렉스의 사진에서 본 그대로였다. 녹색 지붕을 가진 건물이었다. 무덤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 모습을 핸드폰에 담고 있었다. 사람들이 건물 가까이 다가들어 키스하자 관리인이 달려왔다.
-여기서 이러면 안 됩니다.
관리인은 건물 가까이 누구도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
-여기서 잠시 기다려주십시오.〈계속〉
▶한줄 요약
이 기자 일행은 주민청에서 만난 영국인 알렉스로부터 아이슈 무크암 석관엔 예수의 지팡이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예수의 지팡이 기록이 있다는 라자발로 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