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조용미의 ‘불도’
불도 / 조용미
금골산 아래 오층석탑을 보고 나와 안치리 소포리 상고야리를 지나면 동백사가 있던 와우리에 닿는다
해질녘 날아가는 학에 마음을 빼앗긴 스님이 학을 잡으러 지력산에 날아올랐다가 바다로 뛰어들었다는 곳
학을 놓친 스님의 가사가 떨어진 곳은 가사도가 되고 장삼이 떨어진 곳은 장삼도가 되고
바지가 떨어진 곳은 하의도가, 윗옷이 떨어진 곳은 상의도가
발가락이 떨어진 데는 발가락섬, 손가락이 떨어진 곳은 손가락섬이
그리고 심장이 떨어진 곳은 불도(佛島)가 되었다
가학리나 세방리의 일몰을 만나면 한동안 옛 스님처럼 바다로 뛰어들어 심장을 바다 저 멀리 떨어뜨리게 될 사람을 보게 될까 두려웠다
불도는 사람이 살지 못하는 섬,
불이 없는 불도에서 묵언수행을 했다고 한다
삼 년 동안 붉은 가사와 검은 장삼을 버린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심장이 떨어져 생긴 섬에서
눈이 오면 꽃이 핀다는 비파나무 아래에서, 향이 그윽한 비파나무 아래에서, 빛과 그림자가 함께 어룽거리는 비파나무 아래에서
붉은 심장을 주웠다
붉은 그것을 들고 돌아서서 나는 더듬더듬 처음인 양 그를 향해 말을 꺼내어보았다
(조용미 시집,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 문학과지성사, 2007)
그것 참, 말, 된다. 가사가 떨어져서 가사도, 장삼이 떨어져서 장삼도, 바지가 떨어져서 하의도, 윗옷이 떨어져서 상의도, 발가락이 떨어져서 발가락섬, 손가락이 떨어져서 손가락섬. 그런데 심장이 떨어졌는데, 왜, 심장도가 아니고 ‘불도(佛島)’인가. 아무리 몽상하고 연구해도 필자는 그 이유를 모르겠다. 필자의 아둔함을 탓할밖에. 그런데 또 묘한 것이, 꼭 그랬을 것 같다. 그런데 또 묘한 것은, 스님은 왜 하필이면 그 학을 잡으로 지력산에 올랐을까. 그 학이 뭐길래 죽음을 불사하고 지력산에서 ‘지력’[地力, 사력(死力)]을 다해 하늘로 날아올랐다가 (다시) 바다로 뛰어들었을까.
동백사는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와우리에 있는 사찰 이름이다. 고려 초에 창건된 걸로 알려진 동백사에는 다음과 같은 ‘슬프고도 아름다운’ 전설이 어려 있다. 동백사 주변 바다에 주지도라는 섬이 있다. 그 주지도를 어미처럼 거느리고 있는 섬이 가사도. 주지도는 또 다른 이름으로 손가락섬이라고도 한다. 또 발가락섬이라 불리는 양덕도라는 섬도 있다. 가사도를 중심으로 이런 섬들의 이름이 붙은 데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
동백사에 밤낮으로 수행과 정진에 여념이 없는 스님이 계셨다. 어느 날 아리따운 여인 한 분이 절을 찾았다. 어찌나 아름답던지 열심히 도를 닦던 스님은 그만 이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러자 노한 하늘이 천둥 벼락을 내렸고, 스님의 육체는 산산조각이 나 바다에 흩어졌다. 그때 스님이 입고 있던 가사는 멀리 날아가 ‘가사도’가 되었고, 바지는 ‘하의도’, 상의는 ‘상태도’(상의도), 장삼은 ‘장산도’(장삼도)가 되었다.
더 구체적으로 확장된 버전도 있다. 전남 진도군 지산면 지력산 밑에 동백사라는 사찰이 있었다. 절의 주지 스님은 득도를 위해 밤낮없이 열심히 정진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밤 정진 중에 잠시 졸았는데 법당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스님, 스님, 저 왔어요.” 여인의 목소리였다. 깜짝 놀란 주지스님은 법당문을 열었다. 그날따라 천둥 번개와 함께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마당에는 속세에서 사랑했던 여인이 하얀 소복 차림으로 비를 맞고 서 있는 것이었다,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스님은 목탁을 던져버리고 맨발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여인을 법당 안으로 맞아들였다. 비에 흠뻑 젖은 여인은 스님이 건네준 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뒤 부처님 전에 절을 올렸다. 그런 여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스님은 순간 머리가 하얗게 변하며 수행도, 해탈도, 성불의 마음도 모두 날려 버렸다. 이제 법당에 남은 건 삼존불 앞에 두 육체뿐이었다. 두 남녀는 서로를 탐닉하며 운우지정의 늪에 빠졌다. 그 희열의 순간, 하늘이 노했는지, 뇌성벽력이 동백사를 내리쳤다. 법당 안의 모든 사물들과 함께 두 남녀의 신체 또한 갈가리 찢겨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때 멀리 날아간 주지 스님의 가사는 ‘가사도’가 되었고, 장삼은 ‘장산도’가 되었다. 또 주지스님이 벗어놓은 바지 역시 멀리 날아가 ‘하의도’가 되었고, 여인의 은장도 역시 멀리 날아가 ‘장도’가 되었다. 주지와 여인이 운우지정을 나눌 때 옆에 있던 목탁 역시 멀리 날아가 ‘불도’가 되었다.
이제 다시 시로 돌아가 보자. 어느 날 조용미 시인은 동백사지가 있는 지력산을 방문했다. 그리고 그 절에 얽힌 이야기와 함께 진도와 신안 앞바다에 흩어져 있는 섬에 대한 애절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그 순간 시인의 영감은 번뜩였고, 그 영감이 곧 이 시를 빚어냈다. 자신 역시 그 전설 속의 여인이 된 마음으로 “눈이 오면 꽃이 핀다는 비파나무 아래에서, 향이 그윽한 비파나무 아래에서, 빛과 그림자가 함께 어룽거리는 비파나무 아래에서/ 붉은 심장을 주”워 들고 자신도 “더듬더듬 처음인 양 그를 향해 말을 꺼내”보는 것이다.
시와 전설을 떠나 이 시는 ‘지족 선사와 황진이’ 이야기처럼,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퍽 인간적인 시이다. 특히 불교에도 이런 치열한(?) 남녀상열지사가 있다는 것은 불교가 얼마나 인간의, 인간적인, 인간을 위한 종교인가를 갈파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인가는 필자도 꼭 지력산 동백사와 주지도, 가사도, 장삼도, 하의도, 손가락섬, 발가락섬 등으로 만행을 가고 싶다. 그때 한 소식 얻으면 필자도 더 큰 해탈의 길로 들어설지 모르겠다. 끝으로 이 시의 백미는 마지막 행 “붉은 그것을 들고 돌아서서 나는 더듬더듬 ‘처음인 양 그를 향해’ 말을 꺼내어보았다”이다. 이유는 더 깊이 상상해보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