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고통 극복시킨 유마힐 ‘不二법문’
코로나19 겪으며 읽게 된 〈유마경〉
팬데믹 인한 가족 불화 해법 전해줘
병에 대한 유마·문수 대담 ‘압권’
불이법문, 연기·대자비심 일깨워
지난 봄 김현준 불교신행연구원장이 직접 번역·출간한 〈유마경〉(효림출판사, 2021)을 보내줘 읽게 됐다. 4년여의 긴 기간 동안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코로나19가 아직도 버티고 있는 때 노후의 생사문제에 대해 부처님께서 시의에 맞게 과외 공부까지 시켜주심에 감사드리며 기쁘게 유마거사를 만났다.
〈유마경〉은 〈유마힐소설경〉이라고도 불린다. 부처님과 같은 시대에 북인도의 상업도시 바이샬리(비야리 성)에 살던 재가불자 유마힐 장자가 설법주이다. 유마힐(維摩詰)은 산스크리트어 ‘Vimalakirti’의 한자 음역으로 ‘깨끗한 이름’(淨名) 또는 ‘때 묻지 않은 이름’(無垢稱)을 뜻한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전교했으며, 숙세의 불연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에 버금가는 위신력을 구사하며 대승(大乘) 그 자체인 대보살로 그려진다.
〈유마경〉은 경 전체가 하나의 거대하고 재미있는 희곡 무대처럼 구성돼 있다. 각 장면마다 끝 가는데 모를 문학적 상상력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른다. 그중에서도 제2 ‘방편품’과 제5 ‘문수사리 문질품’ 그리고 제9 ‘입불이법문품’(入不二法門品)은 절경이다.
유마 거사는 칭병하고 자리에 누웠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32명의 고명한 제자들에게 거사의 병문안을 부탁하셨으나 아무도 응하지 않았다. 그들이 어느 한 때 유마 거사로부터 그들의 소승적 태도를 지적받았던 경험 때문이었다. 유마 거사는 마지막으로 부처님의 부촉에 응한 문수보살의 문질을 받으며 두 철인의 유명한 대론을 펼친다.
문수보살이 병이 생긴 원인과 어떻게 하면 나을 수 있는지, 마음은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 지, 불이법문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등에 대해 묻고 거사가 대답하는 형식이다.
“어리석음을 좇아 애착을 갖게 되어 나의 병이 생겼나니 중생이 병들었으므로 나도 병든 것이요, 만약 모든 중생이 병들지 않으면 곧 나의 병이 사라질 것이니, 왜냐하면 보살은 중생을 위하는 까닭에 생사에 드는 것이요, 생사가 있으면 곧 병이 있거니와, 만약 중생이 병을 여의면 곧 보살도 병이 없습니다. 무엇으로 인해 병이 생겼냐고 물었는데 보살의 병은 대비심(大悲心)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이 병은 나라고 하는 집착으로 말미암아 생긴 것이므로 나에 대해서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백 한 가지 병에 시달리고 있는 이 몸은 재난 덩어리이며 늙어 죽을 날이 가까이 오고 있는 이 몸은 저 언덕 위의 마른 우물과 같고…, 오음과 십팔계와 십이입이 합하여져서 만들어진 이 몸은 독사 같고 원수 같고 도둑 같고 텅 빈 마을과 같습니다.”
“근심덩어리인 이 몸을 싫어해야 할 것이며 좋아해야 할 것은 불신(佛身), 곧 법신(法身)이며, 법신은 무량한 청정 법으로부터 생겨나니 일체 중생이 여래의 몸을 얻고 병을 끊고자 한다면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야 합니다.”
〈유마경〉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제9‘입불이법문품’(入不二法門品)은 32명의 보살들이, 상대적인 두 가지 사항이 결코 둘이 아님을 깨달아 해탈의 세계로 들어감을 설하는 장면이다. 유마 거사가 보살들에게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생각을 말하게 하니 보살들이 차례로 ‘서로 다른 둘이면서 전체로는 같은 하나’인 불이법문에 들어간다. 마지막으로 문수보살이 32번째의 불이법문에 든 다음, 거사에게 물었다.
“내 생각으로는 일체 법에 대해 말이 없고 설할 것이 없고 보여줄 것이 없고 알 것이 없나니, 모든 문답을 떠나는 것으로 불이법문에 들어감입니다. 우리들이 제각기 설하였으니 어진이여 설하소서. 어떻게 보살이 불이법문에 들어갑니까?”
그러자 유마거사는 침묵할 뿐 말이 없었다〔良久, 默然無言〕. 문수보살이 찬탄해 말했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문자와 말과 설명, 그 모두가 없는 것이 참으로 불이법문에 들어감입니다.”
이 대화를 보고 듣고 그 자리에 있던 5000명의 보살들이 다 불이법문에 들어 무생법인(無生法忍, 남이 없는 법의 이치를 증득하는 것, 곧 공이요, 불생불멸임을 철저히 깨달아 마음의 평화로움을 얻은 경지)을 얻었다고 경전은 쓰고 있다.
〈유마경〉은 보살이든 중생이든 모든 것에 실체가 있다는 관념을 떠나서 보리심 즉 보살도로 수행할 것을 가르친다. 보리심 수행이란, 곧 우리 몸이 공(空)하다는 이해, 영원한 수명을 가진 존재는 없다는 지혜를 닦는 수행이며 지혜가 있을 때 몸, 병에 대한 집착이 없어지므로 “이 병도 곧 사라지겠구나” 하는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유마 거사가 우리에게 주는 현실적인 가르침은 전염병에 대하여, 지병에 대하여, 막연히 무섭고 불안하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도와준다. 우리 집의 경우 팬데믹이 길어지는 동안 ‘편리’라는 이름으로 맘껏 외부에서 주문해서 배달해 먹던 짜고 매운 음식 또는 간편한 패스트푸드 때문인지 건강검진 결과 신장 기능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나 식이조절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엔데믹이 선언된 이후 부부가 함께 확진자가 되기도 했다. 둘 다 가볍게 지나 간 것이 다행이었다. 그때 나는 〈유마경〉으로 면역을 기른 때가 되어서 몸과 병에 대해 집착하지 않아도 좋았기에 걱정 대신 병을 낫게 하거나 더 나쁘게 하지 않는 조건을 만드는 노력에 주의를 기울였다. 병에 대한 희망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었고 마음이 평온했다. 나아가 나와 연결되어 있는 ‘우리들’ 뿐 아니라 ‘우리들이 아닌 모든 다른 존재들’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서도 대자비심으로 바라보게 됐다.
유마 거사는 〈금강경〉의 설법을 생활 속으로 불러내주며 ‘내가 아프면 나만 아픈 것이 아니고, 남이 아프면 남만 아픈 게 아니고, 우리가 아프면 우리만 아픈 게 아니라’는 연기적인 아픔의 관계’와 ‘대비심’으로 아픔의 관계를 풀어야 함을 깨우쳐준다. 내가 아플 때 남의 아픔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남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끌어안을 수 있으며 아픈 사람을 돕는 대비심을 내는 것이 보살행의 좋은 시작이라는 가르침을 남겨준 것 같다. 〈금강경〉에서 말하는 응무소주(應無所住) 이생기심(而生起心)이 바로 이런 것 아닌가 싶었다.
〈유마경〉이 현세의 난제 중 난제인 불이(不二)를 실행하고 행복한 삶을 도와주는 최상의 방법으로 가르쳐준 ‘침묵’은 현대사회의 온갖 병폐와 갈등을 원초적으로 예방하고 해결하는 지혜로운 묘약이었다. 입을 열면 이미 그르치게(開口卽錯) 된다는 선(禪)의 가르침을 우리 생활 속에서 돌아보게 된다. 우리의 관념이나 신념 자체가 올바른 지견에서 나온 것이 아닐진대 말로써 벌어지는 사단은 알 수 없는 번뇌 망상을 불러일으키며 그 후과(後果)는 아무 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깜깜이 천지일 것이다.
팬데믹 기간 중 유마 거사의 침묵 설법은 내 가정의 평화를 지켜준 천상의 구원과 같았다. 밖으로 나다니지 않고 집안에서 소심하게 웅크리고 지낼 때 제일 힘들었던 일은 남편과 자주 부딪혔던 일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전혀 듣고 있지 않는 것처럼 무응답이나 침묵으로 대응하는 남편의 속마음을 알 길 없어 답답했던 적이 많았다. 이유를 모른 채 화를 내거나 찡그린 남편의 얼굴을 보게 될 때는 내 안에서 화와 원망이 솟구치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남편에게 많은 말을 쏟아내곤 했다. 왜 평생 애쓰고 산 아내를 무시해, 늙고 힘없는 아내의 말을 왜 안 들어줘, 친절하지 않다, 자비가 없다, 사랑을 모른다, 기울어진 사람이다… 등등,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 심한 말도 서슴지 않았다. 서로 원하는 것이 가정의 화목 하나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말은 빗나갔다. 이러다가는 평생의 관계가 무너지겠다 싶은 위기감을 느꼈고 뭔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싶던 때에 〈유마경〉을 만났다.
부처님의 사자로 유머거사가 나의 전담 상담자가 되어 주면서 내 마음속 병의 원인을 내 스스로 알아차리도록 도와주었다. 지혜가 있는 사람이 대비심을 내고 대비심을 냄으로써 더 지혜로워지고 ‘나’와 ‘너’가 다르지 않다, “나와 너 우리는 하나다”라는 불이(不二)를 알아차리면 사람들 사이에 쓸데없는 갈등이 저절로 소멸한다는 가르침이었다. 그 해법을 들으니 나의 지혜와 자비심이 얼마나 부족했던 것인지, 남편의 침묵에 담긴 뜻은 알려고도 하지 않고 말과 자기주장으로 상대편을 통제하려고 했던 허황된 욕심을 자성하고 참회할 수 있었다.
노자(老子)는 무위의 철학을 말하면서 성인(聖人)은 일을 삼지 않는 무사(無事)로 임하며 ‘말하지 않음의 가르침을 행한다’(行不言之敎)고 하였는데, 남편이 내게 일일이 응대하고 가르치려 하지 않고 침묵이나 함구, 그리고 간혹 화난 얼굴로 나를 대해준 것이 일을 크게 벌이지 않고 나를 곤경에 처하지 않게 하는 지혜로운, 오히려 친절한 처사였음인데 말이다.
나는 어느덧 남편을 마음으로 보살님으로 부르게 되었다. 팬데믹 기간 내내 집안 쓰레기 치우는 것은 물론 부엌살림을 도와주고 글을 쓴다고 책상 앞에 붙박이처럼 앉아 있는 나를 위해 스마트 폰이나 노트북 등이 작동되지 않을 때 손을 봐주는 것도 그였다. 감사한 줄은 모르고 나는 더, 더 하며 내 욕심을 부린 꼴이었다.
1~2세기에 성립된 것으로 알려진 〈유마경〉이 ‘불교 대승 운동’의 선언서와 다름없는 중요한 경전이며 재가자인 유마힐 장자가 대승운동을 선도하였다는 것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요즘말로 유마힐 거사가 사회참여 불교, 재가자 불교운동의 개막을 연 것이다. 승속이 하나임을 보여주는 이 경전이 나를 변화시키고 있듯이 재가자들에게 행복한 인생의 등불이 되었으면 좋겠다.
▶성민선 명예교수는
서울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카톨릭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1년까지 성심여대와 카톨릭대 사회복지학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한국산문작가협회 이사이며 카톨릭대 명예교수이다. 저서로 수필집 〈징검다리꽃〉(2018), 〈섬세한 보릿가루처럼〉(2020)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