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37 (수)

[박태수의 알아차림의 파워] 6.마무리는 또 다른 시작

깨어있는 습관을 유지하라

매순간 깨어있는 수행자의 길
항상 생각과 행동이 일치해야
존재가 제자들 거울이던 붓다
내려놓음이 아름다운 마무리

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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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제주에서의 삶을 마무리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적당한 시기에 떠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떠나려는 이유는 이곳이 부적절한 곳이 되어서다. 제주국제명상센터의 이사장직을 그만둔 입장에서 기존에 사용하던 방을 계속 사용할 수도 없거니와, 더 이상 나의 역할이 명상센터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매주 1회 명상지도사 자격과정을 강의하는 것과 토요일마다 하는 전문상담사 슈퍼비전이 있어서 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일하는 동안 일을 수행이라고 생각하며 수행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그런데 막상 이곳을 떠나려고 하니 내 안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하나는 내가 진정 수행자로서 길을 걸어가고 있는가 하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나와 내 주변과의 관계를 깨끗이 정리하였는가 하는 점이다.

수행자로서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나의 삶이 매순간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매순간 깨어있다는 것은 그 순간의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 우리의 삶에서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일이 너무나 흔하다. 생각과 행동의 불일치를 알아차리고 일치시키는 힘을 갖는 게 바로 매순간 깨어있는 삶이고 수행이다. 나 자신의 삶에서 세상의 불필요한 것들이 입력되지 않아야 하고, 입력되더라도 곧 소멸될 수 있는 모습은 부처님 앞에서 절을 할 때 경험할 수 있다. 붓다는 자신의 존재만으로도 제자들에게 거울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그 분과 함께 있을 때, 우리는 그 분으로부터 아무런 칭찬이나 비판의 말씀을 듣지 않아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그 분이 계실 때 우리는 어느 누구를 만나더라도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과 함께 하는 길은 우선 그 분을 적당한 위치에 모시는 일이다. 그리고 시간 날 때마다 그 분께 예불을 하는 것이다. 예불을 하는 순간만이라도 부처님께 주의를 집중한다. 그리고 다음 행위를 할 때라도 주의가 다른 대상으로 가면 원래의 대상으로 돌아와 집중상태를 유지하면 된다. 이와 같은 깨어있는 습관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매순간 노력한다. 우리는 어떤 계획을 세우면 그 계획이 실행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질 때까지 미루다가 상황이 바뀌면 새로운 상황이 이전의 상황을 덮어버린다. 아직도 새로운 곳으로 가야할 날짜가 많이 남아있다. 우선 이 순간을 잘 보내고 있어야 다음 그 때가 와도 부처님을 모시는 일을 놓치지 않게 되고 깨어있는 상태가 된다. 이러한 깨어있는 삶은 내가 수행자로서 살아가는 원동력이다.

다음으로 마무리와 함께 처리해야할 일은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 중의 하나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명상지도사 2급과정이다. 당초 지난달 초에 기본과정을 끝내고 9월부터 심화과정을 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차기 이사장의 업무 일정에 따라 8월까지 심화과정을 마무리해야 함으로 일정을 수정하였다. 심화과정에 따른 학사일정을 처리해야 하고, 심화과정 자료를 준비해야 한다. 그 일정에 맞춰 제주도를 떠날 준비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지금까지는 미래가 불확실하므로 제주도를 떠날 것을 알리지 않고 현재 살고 있는 집을 팔고 이사 갈 집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였다. 그리고 그 일정도 8월에 끝날 명상 심화과정과 맞추고자 했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을 팔고, 육지에 살 집을 구해야 하는 일이 여간 까다롭지 않았다. 시세에 따라 집을 내놓고 파는 일과 사는 일을 위해 부동산 중개인을 만나서 집값을 합의해야 하고, 육지도 몇 차례 다녀와야 하는 일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육지 갔을 때 50여 년 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나와 초등학교 교사를 하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를 떠올리면서 마치 내가 그 시절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져 있는 현실은 전혀 다른 세상임을 보면서 설레는 마음도 잠시뿐이었다.

이곳을 마무리 하려니 저곳의 일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떠나야할 이곳 못지않게 가야할 그곳도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이곳의 일이 마무리가 안 된 상황에서 그곳을 떠올리니 머릿속은 한층 더 복잡했다. 꿈에서도 나타났다. 간밤에는 어린 시절 함께 지냈던 친구들의 모습이 선연히 떠올랐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를 하나하나 물었다. 부인은 어떻게 지내는지, 친구들은 어떤지, 하는 일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건강은 어떠한지 등 자세히 물으며, 그가 살고 있는 곳의 주변을 천천히 돌면서 느긋하게 정담을 나누었다.

심지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친구들도 나타났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간밤의 꿈이 너무나 선명하여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궁금하였다. 이제는 꿈에서조차 제주를 떠나 있는 내 모습이 아닌가? 사실 요즘은 현재 살고 있는 집 안팎을 정리하고 있는 중이다. 책은 이미 정리하였고, 그동안 살면서 모아놓은 온갖 장식품들, 나무나 돌, 쇠붙이로 만든 부처님들, 자기나 유리로 만든 다기들, 유리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기념패들의 이름을 지우고 박스에 담았다. 제주와의 인연을 하나 둘 지워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꼭꼭 숨기고 있는 것이 있다. 내면 깊숙이 감춘 마음이었다. 아직은 내가 제주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내가 제주에 있어야 한다고 알고 있어서다. 그들은 내가 제주를 떠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고, 지난 번 나의 아픈 경험을 알고 있다.

사실 내 인생을 보면, 서울에서 태어나 6.25 동란을 겪으면서 육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태어난 곳에 대한 무의식적인 그리움이 남아있어서인지 초등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대학 3학년 편입, 대학원 진학 등을 위한 꿈을 펼치면서 서울에서 가족들과 어렵게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제주 친구와 인연이 되어 제주대학으로 오게 되었다. 이후 35년간의 인생중년기를 보내고 칠순을 지나 팔순에 가까운 나이가 되니 이제는 제주에서 나의 생을 마무리하리라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렇게 살고 있음을 주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런데 누가 알리오. 차기 이사장을 추대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힘들게 이루어질 줄을. 이사장 자격조건의 합의과정이 어렵게 되면서 나에 대한 거부감이 차기 이사장을 추대하는데 역기능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눈을 뜨자 가슴이 싸늘해짐을 느꼈다.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시간이 흐르고 이런 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마음을 다스렸지만 싸늘해진 가슴은 따뜻해질 줄 몰랐다. 그리고 그 마음은 서서히 제주를 떠나라는 신호로 다가왔다.

내 마음은 그렇게 점차 변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도 내 삶의 외형은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은 듯하였고, 내가 제주를 떠나려고 하는 마음은 수면 아래서 조용히 자라고 있었다. 그것은 두려움이 만든 작품이었다. 여리박빙(如履薄氷)이라고 했던가? 지난해 말 이사회와 금년 초 총회에서의 경험이 여전히 나를 힘들게 하고 있었고, 나는 더욱 조심스레 살고 있다. 문득 문득 일어나는 그 사건과 관련된 사소한 감정조차 그냥 지나가지 않고 일어나는 순간 제주를 떠나라고 일깨워주었다. 이처럼 나에게 일어난 경험은 사라지지 않고 철저히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더욱 제주에서의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 흔적은 하나를 마무리하면 저것이 나타나고 저것을 마무리하면 또 다른 것이 나타났다. 이처럼 기억의 흔적은 흐려지더라도 어느 땐가 나타나서 겪어야 할 것들이었다.

어제는 명상센터의 한 분야인 명상교육원의 책임자와 만났다. 7월에 있을 초청 강사의 특별강연을 계획하고 홍보해야할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강연할 내용에 대한 구체적 일정을 잡고, 일정에 따라 식사와 간식, 강사료 등 운영비를 책정하고, 이러한 일정이 차기 이사장의 운영에 혼선이 일어나지 않도록 배려했다. 같이 일하는 동료 책임자에게도 일체 말하지 않았고, 제주국제명상센터에서의 마지막 일이이라고 생각하니 더 소중하고 귀하게 만났다. 모든 것이 매순간 충실하게 이루어졌고 더 소중하게 여겨졌다. 이럴 때 나는 시간이란 관념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낀다. 우리가 이렇게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실시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 순간의 일일뿐 과거로 흘러가고, 또 새로운 현재를 맞이하게 될 것임을 알게 되니 지금 그 순간을 더욱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가 필요함을 보게 된 것이다.

법정 스님은 <아름다운 마무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가 걸어온 길 말고는 나에게 다른 길이 없었음을 깨닫고 그 길이 나를 성장시켜 주었음을 긍정한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과 모든 과정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에게 성장의 기회를 준 삶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아름다운 마무리는 이 세상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내려놓음으로 완성된다고 하였다. 나는 제주를 떠나기 위해 준비를 하면서 그동안 모은 무수한 것들을 하나하나 버리는 작업을 해왔다. 모을 때는 대단히 값지고 귀한 것이었으나 버릴 때는 대수롭지 않음을 느끼며 미련 없이 버렸다. 빈 공간이 점점 커졌다.

마무리는 마무리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나는 이사 갈 준비를 하면서 인생을 마무리한다는 생각으로 정리를 해왔다. 그런데 점점 인생을 마무리한다는 말이 왠지 적절하지 않음을 느꼈다. 무엇을 마무리한다는 말인가? 마무리라는 말은 일의 끝을 맺는다는 말인데, 일의 끝이 무엇이며 어디에 있다는 것인가?

흔히 인생을 끝낸다는 말을 한다. 인생이란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동안을 말한다. 제주에서의 35년 인생을 돌아보자. 무엇을 버려야 하나? 그동안 눈에 보이는 것은 내 손 가까이 있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일 뿐임을 알았다. 눈에 보이는 것은 그렇게 위치가 바뀌는 것을 보면 된다. 그렇다면 위치가 아닌 마음은 어떻게 정리를 하지? 그것은 관계에서의 일이다. 그동안 희로애락을 나누었던 분들과는 관계를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하나? 앞에서 마무리할 때 우선이 내 마음임을 알았으니 이제는 관계에서 일어나는 내 마음을 보면 된다. 그동안 나와 만났던 많은 사람들을 떠올린다. 이때의 감정을 바라본다. 뭔지 불편한 느낌을 주는 분들이라면 편안한 느낌이 일어날 때까지 바라본다. 그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편안한 분들이라면 그대로 바라본다. 떠오르는 분들마다 이러한 과정을 경험한다.

이제 제주를 떠날 준비가 되고 있다. 제주에서의 삶의 마무리가 되면서 기쁜 마음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마무리는 새로운 기쁨의 순간을 창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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