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심재휘의 ‘경주’
경주/ 심재휘
가을 경주에게는 불국사로 간다는 버스가 있어서 낙서하듯 몸 하나가 덜컹거려도 긴 이야기가 된다 지나쳐온 정류장들도 기와를 얹은 집 모양을 하고 있다 낯선 길에 내려 찡그린 얼굴을 햇살에 새기면 시월은 몇 층짜리인지 헐리지 않도록 바람 속에 쌓은 돌 그 돌 위에 돌을 쌓으며 좁아져가는 생애가 내 발자국들을 죄다 모아서 석탑 위에 얹어준다 내 이름은 탑이 가리키는 곳으로 올라갈 만하다고
하지만 박모의 하늘에
매일 조금씩 덧칠해온 얼굴 하나가 붉게 떠서
오늘밤에 나는 불국에 이르지 못하고
왕릉 곁의 막걸리집에 국물 자국처럼 앉으면
경주의 밤은 속을 알 수도 없는 탁한 술을 마신다
깊어가는 어둠을 시큼하게라도 맡을 수 있는 곳
평생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입 밖으로 뱉지 못한 말뿐이라는 걸
흠집이 많은 술집의 탁자에게 배운다
그러면 내 어깨에 손을 얹어주는 경주
뒤를 돌아보면 경주
누구에게나 늘 그리운 오늘이다
-심재휘 시집, <용서를 배울 만한 시간>, 문학동네, 2018
어느 날 시인은 경주에 갔다. 가을이었다. 불국사에 갔던 모양이다. 불국(佛國)을 찾으러. 극락정토를 찾으러. 그런데 탑이 서있다. 석가탑과 다보탑이었을 것이다. 두 탑을 보는 순간, 시인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알아차렸다. “헐리지 않도록 바람 속에 (위태롭게) 쌓은 돌 그 돌 위에 돌을 쌓으며 좁아져가는 (돌탑 혹은 자신의) 생애”를 보며 자신의 “발자국들을 죄다 모아” “석탑 위에 얹어준다”. 그리고 시인 자신의 “이름은 탑이 가리키는 곳으로 올라갈 만하다”는 것을 깨우친다.
하지만, 시인은, 이내, 다시 깨우친다. “하지만 박모의 하늘에/ 매일 조금씩 덧칠해온 얼굴 하나가 붉게 떠서/ 오늘밤”에 자신이 “불국에 이르지 못”할 것이라는 걸. 이에 차라리 “왕릉 곁의 막걸리집”에 들어가 “국물 자국처럼 앉”아 “경주의 밤”과 함께 “속을 알 수도 없는 탁한 술을 마신다”. 그리곤 “깊어가는 어둠을” 막걸리처럼 “시큼하게라도 맡을 수 있는 곳”에서 “평생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는 / 입 밖으로 뱉지 못한 말뿐이라는 걸/ 흠집이 많은 술집의 탁자에게 배운다”. 그러자 비로소 “경주”가 자신의 “어깨에 손을 얹어”준다. 그리고 그 경주가 실은 자신을 포함한 그 “누구에게나 늘 그리운 오늘”임을 깨닫는다. 경주는 결국 시인의 애인이자, 친구이자, 함께 길을 걸어가는 도반이자, 사랑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필자도 30여 년 전 그렇게 바람 속에 탑을 쌓은 적 있다. “탑은 꼭, 절[寺]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공원에도 있고/ 바닷가에도 있고/ 텅 빈 벌판에도 있고/ 더욱이는/ 우리들의 몸 안에도 있다/ 탑이라고 꼭, 다보탑과 석가탑 같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무탑 같은 것도 있고/ 돌탑이나 철탑이나 피라미드 같은 것도 있고/ 더욱이는/ 에펠탑이나 바벨탑 같은 것도 있다/ 그러나 탑 중에서도 가장 높고, 크고, 아득한 탑은 우리들의 마음탑이다 마음의 첨탑이다/ 정말이지 탑은,/ 무너져 내릴 때는 한꺼번에 무너져 내린다/ 보라, 비 오는 날이나 눈 오는 날/ <중략> / 죽는 날까지 다시금 탑을 쌓아 올릴 수 있는/ 근육이 있기 때문이다/ 피가 있기 때문이다/ 기쁨과 희망의 혈류가 있기 때문이다/ 슬픔과 기쁨 같은 눈금이 있기 때문이다/ 몸 안에,/ 몸 안에,/ 내 몸 안에/ 마음의 첨탑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탑을 쌓는다/ 이슬의,/ 바람의,/ 탑을 쌓는다”. 졸시집 <퍽 환한 하늘>이라는 시집에 실린 ‘탑’이라는 시 전문이다.(심상과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전문을 다 인용했다)
심재휘 시인의 ‘경주’와 필자의 ‘탑’은 30여 년의 시·공간을 갖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 탑에 대한 생각을 비슷하다.(물론 작품의 우열을 떠나서다.) 사실 지금 필자는 승려지만, 출가하기 이전에도 절집에 많이 다녔다. 그때마다 탑을 보았다. 그 속에는 불국사 석가탑과 다보탑도 있고 황룡사지와 분황사지 탑도 있고, 화순 운주사 천불천탑과 미륵사지 석탑도 있다. 그 탑들을 생각하며 필자는 30여 년 전에 이 시를 썼고, 그 시 밑에 다음과 같은 시작노트도 써 놓았다. 그리고 글쎄,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당시 탑에 대한 필자의 생각(삶 혹은 고통)을 그대로 담고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필자가 이번에 불교시 감상으로 심재휘 시인의 ‘경주’를 고른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아서, 그리고 심 시인의 시상 속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가 보고 싶어서 그 시작노트도 전문을 인용해본다.
“절에 가면 내가 가장 먼저 찾는 것이 탑이다. 그리고 탑 앞에 서서 탑이 되는 것이다. 탑의 속성은 묘하다. 쌓아 올리는 것이 탑이기도 하지만, 무너져 내리는 것도 탑만의 아름다운 속성이다. 탑 앞에 서면 삶의 희로애락이 사라진다. 고집멸도(苦集滅道)가 사라진다. 사라진 자리에 대신 나만의 탑이 들어선다. 때로는 기쁘게,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매우 아프고 처량하게, 나만의 탑을 처연히 쌓는다. 그리고 바로 무너뜨린다. 내가, 내 삶 자체가 또한 바로 탑이기 때문이다. 내가 고통 속에서도 울지 않고, 슬픔 속에서도 울지 않고, 절망 속에서도 울지 않는 것은 바로 내 마음속에 항상 그런 탑이 서 있기 때문이다. 첨탑으로 서 있기 때문이다. 문득, 탑이 묻는다. “아직 살만한가”. 문득, 탑이 또, 묻는다. “언제든지 죽을(무너져 내릴) 수 있는가”. 그런 마음탑 앞에서 나는 항상 진실할 수밖에 없다. 내 삶, 내 인생, 이슬이어도, 바람이어도 서럽지 않다고. 삶(인생) 전편이 탑을 쌓아올렸다가 다시 무너뜨리는 과정이므로. 그렇게 왔다가 그렇게 가는 것이 삶(인생)의 원형질이므로.”
심재휘 시인이 그렇게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필자의 ‘탑’을 다시 일으켜 세워줬다. 하지만 심 시인의 말처럼 그 ‘탑’이 또 언제 와르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릴지는 모르겠다.
심 시인처럼 필자도 이젠 입을 닫아야겠다. 심 시인의 말처럼 “평생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입 밖으로 뱉지 못한 말뿐이”기에. 그러고 보니, 필자는 그동안 ‘너무 많은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살았다. 변명과 탓과 핑계가 왜 그리도 많았던지. “부끄럽습니다. 참(懺)하고, 회(悔)합니다. 모두들 행복하실 진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