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5 (수)

[박태수의 알아차림의 파워] 3.매순간 나를 만날 수 있을 때 행복

“나를 내려놓아야 나도 세상도 함께 편안해져”

인간의 삶에서 행복은 가장 필요…행복은 일상적 인간 관계서 이루어진다
행복은 마음 잘 챙길 수 있을 때 더욱 증진돼, 명상은 마음 다루는 수행법
명상, 자기 내면 만나 자각하는 것…자신 관찰해 알아차릴 때 바로 일어나
갈등과 위기 순간 슬기롭게 헤쳐나가게 하는 것이 알아차림 기적이자 파워

‘행복하다’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지금도 어린 시절 그때가 떠오른다. 할머니와 김을 매다가 힘들면 밭 둑 잔디밭에 누워 흰 구름 떠다니는 하늘을 바라보던 모습이다. 아지랑이 아롱거리고 나비와 잠자리가 날아다니던 그때가 내 기억속에서 가장 아름답게 다가온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평화로운 풍경이다. 이처럼 ‘행복하다’라고 하면 우선 먼저 기억 속에 어떤 상황이 함께 떠오른다. 언덕 위 바위에 앉아 먼 하늘을 바라본다든가, 길가 노란 수선화와 복수초가 환하게 피어있는 모습, 까치와 참새 떼가 날아다니는 것 등,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행복과 관련된 이런 현상들은 자연 속에서나 느낄 수 있는 것이지 자연에서 떨어진 곳에서는 경험하기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사람들 간에는 온갖 험담들이 난무하고 때로는 거칠거나 듣기 거북한 말들이 오간다. 우리들 인간네 삶 자체 대부분이 사람들간의 대화로 이루어지다 보니, 이런 언어들의 정화는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의식 수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우리의 삶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즐겁거나 슬프거나, 화를 내거나 사랑을 나누는 등 대화 없이 이루어지는 삶이란 결코 없다. 그러므로 대화를 통해서 서로에게 즐거움을 주거나 기쁨을 준다면 이러한 대화는 삶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

일반적으로 누군가에게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대개 ‘행복’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우리들이 삶에서 이루고자 하는 가장 큰 목적이 바로 행복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삶에서 진정한 행복을 경험하고 있을까?

이 물음에는 아마도 선뜻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삶의 과정에서 희망과 꿈을 이루고 욕망을 충족시키려 애쓰면서 기쁨과 만족을 갖기도 하지만 때로는 실망과 후회를 경험한다. 진정한 행복을 경험하기도 하고 슬픔과 후회의 감정을 안고 살기도 한다. 명상가 오쇼 라즈니쉬는 인간의 삶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욕망이 동기가 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이 동기가 되는 경우이다. 욕망이 동기가 되는 경우는 끊임없는 욕망의 추구로 무엇인가 성취하기도 하지만 끝내는 나를 망가뜨리게 된다. 그리고 사랑이 동기가 되는 경우는 에고가 용해되고 자만심이 없기 때문에 주고자 하는 욕망으로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무엇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욕망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자기중심적이 되거나 성취에 대한 자만심이 생겨나거나, 감정적 집착이나 무관심 때문이다.

삶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는 자신에 대해 통찰적 이해를 하여 가치 있는 것들을 수용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버릴 수 있는 의식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의식이 확대될 때 사랑과 봉사와 같은 고귀한 정신을 갖게 되며, 나를 포함하되 나를 너머 세상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 상태가 될 수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데 진정한 도움을 제공하거나 환경을 이롭게 함으로써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행복은 마음을 잘 챙길 수 있을 때 더욱 증진될 수 있다. 마음을 어떻게 챙겨야 하는가? 명상은 마음을 다루는 수행 방법이다. 인간의 마음은 생각, 느낌, 의지, 의식의 4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요가명상의 성인 파탄잘리는 “마음은 나무에 앉은 두 마리의 새와 같다”라고 했다. 한 마리는 가지에 앉아서 생각하고, 느끼며, 노래를 부른다. 이러한 것을 ‘행동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다른 한 마리는 가지에 앉아서 생각하고 노래하는 새를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것을 ‘관찰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의식은 마음이면서 다른 마음을 바라보는 본질적인 마음이므로 행동하는 마음과는 비동일시가 된다. 명상하는 사람에게는 두 마음이 존재한다. 행동하는 마음과 지켜보는 마음이다.

인간의 삶에서 행복은 가장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행복은 일상적인 인간관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늘 사용하는 언어에서 손쉽게 일어나야 한다. 마치 운동선수들이 열심히 훈련하여 시합에서 승리하는 것과 같이, 일상적인 대화의 과정에서 저절로 소통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삶속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를 통해 행복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살펴보자.

행복은 ‘좋은 느낌’의 다른 표현이다. 대화를 하되 의식이 깨어있는 좋은 느낌의 상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대화는 일반적으로 내 마음을 전달하거나 상대방이 말한 것에 반응하는 것이 전부다. 우선 내 마음이 어떻게 잘 전달되는지 살펴보자. A라는 운전자가 도로에서 60킬로미터로 달리는데, 갑자기 골목길에서 B라는 운전자의 자동차가 불쑥 튀어나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고 멈췄다고 하자. 그 순간 운전자 A는 놀라고 당황하며 옆 차를 바라보자 화가 나서 “야 이 새끼야, 운전 똑바로 해”라고 소리를 지른다. 그러자 운전자 B도 “뭐야 이 새끼야, 너나 운전 똑바로 해”라고 소리를 지르고, 끝내 둘 다 운전석에서 나와 멱살을 잡고 난투극이 벌어진다. 차는 부딪치지 않았으나 사람이 부딪쳐 더 큰 사고로 확대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순간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명상으로 만난다면 어떻게 만나게 될까? 명상은 자기의 내면을 만나 자각하는 것이므로 사건의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자신을 관찰하여 알아차릴 때 바로 일어난다. 우선 운전자 A는 “어이쿠, 큰일 날 뻔했구나. 내가 좀 더 천천히 운전했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한다. 골목길에서 나온 운전자 B도 “어이쿠. 큰일 날 뻔했구나. 내가 골목길에서 나오니까 더 조심했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한다. 비록 상대방 차로 인해 생긴 일이지만 그쪽에 마음을 두기보다 자신의 행위에 초점을 둔다면 바로 이런 대화가 오갈 것이다. 그래서 상대방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어디 다치신 데는 없습니까?”라고 묻게 된다. 상대방 탓이 아니라 자기에게 초점을 두고 말하니까, 운전자 A도 “괜찮습니다. 댁은 어떠세요?”라고 반응한다. 두 사람 모두 일어난 사건에 대해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탓하지 않고 자신의 행동에 초점을 두어 대화를 하니 화가 잘 일어나지 않게 된다. 이러한 상황의 흐름이 바로 명상을 하는 사람들의 삶의 태도다. 그만큼 명상은 삶의 질도 높일 뿐만 아니라 순간순간 삶속에서 부딪히는 갈등과 위기의 순간을 슬기롭게 헤쳐나가게 도와준다. 이것이 바로 알아차림의 기적이자 파워인 셈이다. 우리가 행복을 위해서 명상이 반드시 필요한 큰 이유중 하나이다. 명상은 그렇다고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얼마든지 손쉽게 할 수 있다.

필자는 하루의 행복을 위해 면도 명상을 한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명상자세로 앉아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뒤 전기면도기로 면도를 한다. 턱부터 시작하여 코밑으로, 오른쪽 얼굴에서 왼쪽 얼굴로 얼굴 곳곳에 안부를 묻는다. 눈을 감은 채 모터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얼굴과 만나니 얼굴 곳곳을 섬세하게 만날 수 있다. 10여 분 정성스레 면도를 한 뒤 감사한 마음으로 세수를 한다. 이렇게 나 자신을 보여주는 얼굴과 매일 처음 만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다른 이야기이지만 내려놓는 것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비결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누구나 올라가는 데만 익숙해 있지, 서서히 내려오는 법은 잘 모른다. 사실 자기가 쌓은 지위에서 내려오고 모든걸 내려놓는데 행복이 있다는 걸 모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제주국제명상센터 이사장이란 짐을 지고 오래 지고 있다가 벗어놓을 시기를 고민중이었지만 마땅한 적임자를 찾지 못해 힘들지만 계속 짐을 지고 있었다. 오랜 시간 짐을 지고 있으니 몸도 마음도 지쳐서 고갈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나를 내려놓아야 나도 세상도 편안해지겠구나’ 하는 생각을 꾸준히 해왔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최근에 이사장직을 맡을 적임자를 찾아서 내 짐을 내려놓으니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비로소 버리고 비우고 떠날 때 가벼워지고 행복감이 서서히 밀려오는 걸 오랜만에 느낄 수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 또 생각하니 이제 다시 내가 가야 할 삶의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지난번 칼럼에서 한라산에 올라갈 때는 최정상인 백록담에 도달하겠다는 목표가 있지만, 내려갈 때는 출발지가 목표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제주국제명상센터에서 일을 할 때는 상담과 명상으로 ‘세상’과 함께 하는 것이지만 일을 멈출 때는 ‘참 나’를 만나는 일이라고 했다. 이제는 남은 인생을 ‘참 나’를 만나는 일을 주로 하고 회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온전히 ‘나를 바라보는 삶’이다. 그러면 짐을 내려놓거나 설령 놓지 않더라도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매 순간 나를 만나고 나와 대화를 한다면 저절로 행복이 솟아나지 않을까? 이것이 바로 인생을 행복하게 회향하는 비결인 것 같다.

▶한줄요약

내용을 입력하세요.일반적으로 누군가에게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대개 ‘행복’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우리들이 삶에서 이루고자 하는 가장 큰 목적이 바로 행복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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