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세상을 하얗게 덮고 있는 날 정적을 깨고 뉴스가 들려왔다. 오등동사지 발굴 보고 기자회견 소식이었다. 함께 하는 벗들 탐라유사팀과 현장으로 가보았다. 돌담을 따라 대나무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죽성길을 헤집고 갔다. 골프연습장과 개발 중인 공사물들이 가로놓인 길을 비집고 들어선 현장에도 하얗게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이곳 오등동사지는 예로부터 절왓, 또는 불탄터라고 구전되던 곳이다. 절에서 사용하던 샘물이 흐른다고 해서 붙여진 절새미에서는 여전히 다량의 용천수가 흐르고 있었다. 20여 년 전 지표발굴 당시 과수원 일대에서 고려 후기에서 조선 중기 사이의 기와편과 청자 대접, 매병 기종과 백자 접시 저부편도 발견되었다.
그리고 절새미에는 고요한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지금 샘물 앞에는 ‘이곳은 4.3 당시 11연대 1대대 군인들이 천막을 설치하여 주둔했던 군 주둔소 옛터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군 주둔소가 있었던 곳이다. 죽성에 살던 한 주민은 이미 잡혀간 사위를 빼내려고 황소를 이끌고 갖다가, 평소 알고 지내던 군인의 밀고로 무참히 매 맞고 사위와 함께 1948년 11월 14일 총살되기도 했다. 4·3과 같은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이 표석을 세운다’는 기록물마저 눈에 파묻혀 있었다.
그렇게 역사의 사연들은 묻히고 또 묻혔다. 가슴에 묻어놓은 기억은 눈물 되어 절새미물로 언 눈밭에서 흐르고 있었다. 2020년 오등동 250번지 일대에서 고려~조선시대 유구와 주거지 등이 발견돼 주변은 문화재 유존지역 일명 ‘오등동절터’로 등록돼 개발하려면 발굴조사를 반드시 밟아야 했다.
해당 부지는 토지주가 창고 시설을 새로 짓기 위해 지난해 여름 표본조사를 했다. 이에 정밀조사가 진행되어 총 5호 건물지가 드러났다. 그 가운데 3호 건물지에서 ‘금동다층소탑’이 발견됐다. 크기는 성인 손바닥으로 가려지는 정도로, 탑의 중간 몸체 부분인 탑신부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연구진은 이번 유물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이번 조사를 담당한 이영철 대한문화재연구원장은 보고회에서 “한국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고려시대 청동소탑은 30여점에 불과한데, 출처가 정확하지 않고 신고되는 경우가 다수다. 정식 발굴조사를 통해 출처가 밝혀진 사례는 5개 안팎에 불과하다. 제주에서 고려시대 청동소탑이 정식 발굴조사로 확인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고, 국내 전체로 봐도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에서는 고려시대 건축 문화를 유추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이영철 원장은 “고려시대는 외침이 많아서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이런 탑 모형을 보면 고려시대 목조 건물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건축사적 의미를 복원하는 높은 가치를 지녔기에, 국내 건축사 연구의 획기적인 발전이 가능한 유물”이라고 강조했다.
역사는 기억하고 기록하는 자의 몫이다. 천년의 역사는 또 다른 역사에 파묻혀 있다가 기억하는 자에게로 그 사연을 전한다. 눈밭에 절새미물은 무언설로 설법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