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아버지의 생명 구한 소금
일제 강점기를 살았던 이 땅의 모든 이들이 힘든 삶을 살았겠지만 필자의 아버지는 그 중에서 좀 더 힘든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일본 탄광 노동자로 징용에 끌려간 것이다. 아버지는 그렇게 끌려간 지옥과도 같은 탄광 징용을 견디고 기적적으로 살아왔다.
징용으로 끌려갈 때 아버지는 두 딸을 둔 젊은 가장이었다. 어린 두 딸과 아내를 두고 일본으로 끌려간 것이다. 암울한 일제 강점기 일본의 탄광에서의 강제 노동은 인간 이하의 생활이었으며 매일같이 생사를 넘나들어야 했다. 매일 굶주림과 매질 그리고 사고의 연속으로 견딜 수 없는 나날이었다고. 그렇지만 고향에 두고 온 처자식이 있었고 언젠가 일본이 패망하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아버지는 해방을 얼마 앞둔 어느 날 이질에 걸리고 말았다. 일제는 이질이 확산될 것이 두려워 병든 아버지를 탄광 인근 야산에 거의 버리다시피 감금했다. 안 그래도 먹을 것이 부족한 상황인데 버려진 것이나 다름 없는 아버지에게 음식이 제대로 전해질리 없었다.
그때 기적처럼 은인이 한 사람 나타났다. 그 사람 역시 징용으로 끌려온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은 공부를 좀 했던지 일본 사람과 대화가 좀 되고 해서 일본인 일도 도와주고 있었다. 그렇게 질병과 굶주림과 싸우고 있던 어느 날 그 사람이 아버지에게 죽을 쑤어 왔다. 그리고 그 사람은 가지고 온 죽 위에 굵은 소금을 뿌려주었다고 한다. 고작 소금간이 전부였던 죽이었지만 아버지에게 그 죽은 황제의 식사 그 이상이었다. 아버지는 너무나 고마워 그 사람에게 큰절을 했다. 그렇게 가끔 일본인의 눈을 피해 가져다주는 그 사람의 식사로 생명을 연장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분이 헐레벌떡 달려와서는 일본이 패망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사실은 전날 일본이 항복 선언을 했는데 한국인한테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고 그날 밤 전부 도망을 가버렸다는 것이다. 그들이 말도 없이 도망가 버린 바람에 땅속 탄광 갱도 속에 있던 징용자는 나오지도 못한 채 깊은 탄광 갱도 속에 고립되어 있어야 했다. 그 사람은 해방이 되어 일본인 관리자가 다 도망갔으니 갱도 속에 있는 사람들을 구해내야 한다고 했고, 아버지는 그를 도와 갱도 속에 갇혀있던 징용자들을 구해냈다.
긴가민가하면서 지상으로 나온 그들은 그동안의 긴장과 허기, 피곤이 겹쳐 그냥 쓰러져 버린 사람도 많았다. 그들 중에는 심각한 상황에 처한 사람도 여럿 있었다. 그 사람은 일본인의 사무실과 숙소 창고 등을 뒤져서 먹을 것과 쓸 만한 것을 찾게 했다.
사람들은 아직도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 악랄했던 일본이 정말 패망한 것일까? 다시 돌아와서 행패를 부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다. 어쨌든 일본인은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그 사람의 말을 따랐다. 창고에서 링거액과 주사기를 찾아내 심하게 탈진한 사람들에게 놓아 주었다. 아버지도 이질로 인한 후유증과 깊고 너른 탄광 속을 이리저리 다니면서 사람들을 구해내는 과정에서 탈진한 상황이라 그 주사를 맞고 기운을 차렸다. 아버지는 신기해서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그 사람은 그것이 링거액이며 즉 소금물을 희석한 것과 성분이 비슷한데 몸에 필요한 체액을 공급하는 것이라고 했다. 몸에는 각종 액체가 있는데 그 액체를 보충하여 주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이 기운을 잃고 쓰러지는 것은 먹지 못하거나 수분을 많이 빼앗겨서 몸에 체액이 부족하거나 그 속에 영양분이 균형을 잃었기 때문인데, 그때 몸에 그 링거액을 넣어주면 원기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그분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다. 아버지는 이중 삼중으로 그분의 도움을 받았던 것이다. 심하게 탈진한 사람들은 주사를 맞고 나머지 사람들은 창고에서 찾아낸 쌀로 식사 준비를 했다 그렇게 식사를 한 후 사람들은 그때서야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그 사람은 찾아낸 사무실 금고에서 돈을 꺼내어 징용자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차비를 하라고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소금도 조금씩 가지고 가라고 했다. 밥은 안 먹고도 얼마쯤은 살 수 있지만, 소금은 그렇지 않으니 가지고 가다가 반찬 삼아 먹고 물을 마실 때 조금씩 타서 먹으라고 했다. 소금을 챙겨가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고 했다. 사람들은 그 사람이 나누어준 돈과 소금을 가지고 고향의 집을 찾아 하나둘 길을 떠났다.
아버지도 그렇게 해서 해방이 된 지 10개월 만에 꿈에 그리던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아버지가 일본 땅을 종단하여 한국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소금의 힘이라고 했다. 10개월의 굶주림과 힘듦을 견딜 수 있었던 것도 오로지 소금의 힘이라고 했다. 죽 위에 뿌려진 몇 알의 소금의 맛을 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링거액 주사를 맞으면서 경험한 소금의 힘을 아버지는 신앙처럼 간직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렇게 소금을 먹으며 걸었고 힘든 길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일본은 패망한 상황이라 일본인도 먹을 것이 없었다. 무법천지인 상황이라 민가에 가서 함부로 신세지기를 요청할 수도 없었다. 운 좋게 마음씨 좋은 사람을 만나면 다행이지만 봉변을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목숨을 걸고 일본인의 신세를 지기도 하고 야생의 과일이나 곡식을 먹기도 하고 때로는 짐승을 잡아먹기도 하면서 걸었다고 한다.
그때마다 소금은 아주 긴요한 반찬이자 맛을 내는 조미료이며 미네랄 보충제로서 역할을 확실하게 했다고 했다. 그 사람이 나누어준 소금이 아니었다면 필자의 아버지는 그 고난의 시간은 견딜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소금은 생명을 살리는 생명 그 자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