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정일근의 색과 공에 대한 변주
색(色)과 공(空)에 대한 변주(變奏)/ 정일근
1. 색즉시공(色卽是空)
평생을 쪽잎 속에 숨은 푸른색을 찾는 사람을 알고 있다. 그는 한 번도 자신의 쪽빛을 자랑하지 않았으므로 누구도 그의 푸른색을 보지 못했다. 그의 쪽빛은 세상 어느 그릇에도 고이지 않고 세상 어느 옷감 한 올도 물들이지 않고 그냥 그대로 하늘로 돌아간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만 떠돌았다. 다만 세월이 흘러갈수록 쪽빛에 물든 듯 그의 눈빛은 청(靑)에서 람(藍)으로 람(藍)에서 백람(白藍)으로 변해갔다. 어느 깊은 여름밤 그를 만나러 가다 홀로 광목에 쪽물을 들이는 그를 보았다. 그는 자신의 몸을 둥근 항아리 삼아 온몸 가득 쪽물을 머금었다 다시 입으로 뿜어내며 무명 광목을 푸르게 푸르게 물들였다. 아아, 그분이 미륵에게 약속하신 하늘나라가 저러하려니 최초의 푸른빛이 퍼져 나와 새로운 우주를 만들고 그 우주 속에 또 다른 푸른빛이 퍼져 나왔다. 그 빛 속에 다시 우주가 태어나고 그 우주 속에 새 빛이 태어나는 장엄한 탄생이 끝없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꿈결 같은 시간이 흘러 새벽이 오자 그는 그의 쪽빛을 빨랫줄에 무심히 걸어놓고 자신의 처소로 돌아갔다. 그가 사라진 뒤 너무나 신비스러워 조용조용 다가가 그의 푸른색을 들추는 순간 내 손에는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 빨랫줄에는 아무런 형체도 색도 걸려 있지 않았다. 그 허공으로 내 몸이 일탈하고 있었다.
2. 공즉시색(空卽是色)
보석반지는 영롱한 보석만으로 존재할 수 없다. 손가락이 들어갈 허공이 있어야만 보석은 비로소 반지가 된다. 빛나는 아름다움을 완성하게 하는 텅 빈 허공이 보여주는 또 다른 아름다움!
-정일근 시집, 《경주 남산》, (주)문학동네, 1998-
불교는, 모든 것이 시의 주제가 되고 소재가 된다. 아무리 관념적인 것일지라도 그려놓고 나면 당당한 실체가 된다.
그것을 가장 잘하는 (우리나라) 시인 가운데 한 명이 정일근 시인이다. 이 시만 봐도 알 수 있다.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은 퍽 어려운 관념적 불교용어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손으로는 잡을 수가 없다. 그런데 시인(작가)이 그리면 눈으로도 잡히고 손으로도 만져진다. 분명 “쪽잎 속에 숨은 푸른색을”[색(色)] “찾는 사람을 알고 있”는데, “누구도 그의 푸른색을 보지 못했다”[空(공)]. “그의 쪽빛은 세상 어느 그릇에도 고이지 않고 세상 어느 옷감 한 올도 물들이지 않고 그냥 그대로 하늘로 돌아”가기[空(공)]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깊은 여름밤 그를 만나러 가다 홀로 광목에 쪽물을 들이는 그를 보았”는데 “그는 자신의 몸을 둥근 항아리 삼아 온몸 가득 쪽물을 머금었다 다시 입으로 뿜어내며 무명 광목을 푸르게 푸르게 물들였다”[色(색)]. “아아, (그런데 그것이) 그분이 미륵에게 약속하신 하늘나라”[色가(색)]였고, “그가 사라진 뒤 너무나 신비스러워 조용조용 다가가 그의 푸른색을 들추는 순간 내 손에는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 빨랫줄에는 아무런 형체도 색도 걸려 있지 않았다”[空(공)]. (그리고) “그 허공으로 내 몸이 일탈하고 있었다”[空(공)]. ‘색즉시공’을 (가시적으로) 기막히게 잘 풀어놓았다.
다음 연의 ‘공즉시색’은 또 어떤가. “보석반지는 영롱한 보석만으로 존재할 수 없다”[空(공)] “손가락이 들어갈 허공이 있어야만 보석은 비로소 반지가 된다[色(색)]”. “빛나는 아름다움을 완성하게 하는 텅 빈 허공이 보여주는 또 다른 아름다움!” 정말 기막힌 묘유(妙有)의 ‘공증시색’(空卽是色)이다.
부처님과 부처님 섬기는 것을 업으로 하고 사는 사람이지만, 필자도 정일근 시인의 이 시를 보면 주눅이 든다. 도무지, 어느 경지에 이르러야 이렇게 공과 색을, 색과 공을 마음대로 시로 주무를 수 있을까. 어설픈 공부로는 도저히 이를 수 없는 경지다.
어설픈 붓질은 관념을 관념으로 덮어 더 깊은 관념으로 만들어버린다. 그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최소한 그 용어가, 관념이 무슨 관념인지, 뜻인지, 언제 쓰이는지, 어떤 세계인지, 상징인지는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정일근 시인은 그 모든 것을 다 알고, 잘 알고 이 시를 썼다.
사실은 〈경주 남산〉 시집 전체가 불교시로 가득 차 있다. 시집 속의 2/3가 불교를 소재로 쓴 작품들이다.
아니, 수많은 석불과 석탑으로 가득 찬 경주 남산 전체를 이 시집으로 옮겨놓았다. 그것도 수밀도처럼 구체적으로 매우 깊게. 이 시집 한 권만 읽어도 경주 남산 왕정골과 절골과 부처바위골과 탑골과 미륵골과 천암골과 철와골과 국사골과 오산골과 대지암골과 쑥드듬골과 승소골과 천동골과 봉화골과 천룡골과 용장골과 비파골과 약수골과 삿갓골과 삼릉골과 선방골과 기암골과 유느리골과 포석골과 장창골과 식혜골 등을 다 답사한 것이나 마찬가지다.(실제 답사를 가고 싶은 독자는 이 시집을 꼭 한 번 읽고 가기 바란다. 훨씬 밝고 감동적인 답사가 될 것이다.)
같은 시집에 실린 다음의 시들을 보면 정일근 시인이 이 시집 한 권을 펴내기 위해 경주 남산을 얼마나 싸돌아다녔는가(무엇 때문에, 무슨 고통 때문엔 줄은 모르지만, 정일근 시인은 〈후기〉에서 “어려운 때 시집을 묶어준 출판사에 감사한다.”고 적고 있다)를 알 수 있다.
정일근 시인이 이 시편들을 쓸 적의 나이를 유추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위 시에 나오는 “오래지 않아 불혹의 생이 찾아오려니”이다. 40대를 앞두고 정일근 시인에겐 어떤 아픔이 있었을까. 사회적 아픔이었을까, 개인적 아픔이었을까, 삶에 대한 아픔이었을까? 사실 필자도 불혹 직전까지 암흑의 시대를 살았다.
시를 한 편도 쓰지 못할 정도로 우울과 자책과 자학의 시절을 살았다. 정일근 시인과 필자는 동년배인데다, 그 무렵 자주 만나고 살기도 했다. 그 시절, 그 아픔(고통)들은 우리 시대가 감내해야 할 필연적인 아픔(고통)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정일근 시인의 〈경주 남산〉을 읽은 몇 해 뒤, 필자도 경주 남산을 답사했다.
그리고 〈나를 치유하는 산사기행〉이라는 산문집 속에 한 꼭지 넣어 펴낸 바 있다. 정일근 시인, 예나 지금이나 참, 대단한 시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