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5 (수)

[조성금의 스토리텔링 본생경] 21. 마하 수타소마 자타카

희대 살인마도 교화시킨 전생 부처님

앙굴리마라 교화 시킨 일화 ‘유명’
식인 유희를 즐긴 왕을 교화해낸
‘마하 수타소마 자타카’와 유사해
아잔타 석굴 등에 재현돼 교훈 줘

그림① 5세기 후반에 조성된 아잔타 석굴 17굴의 〈마하 수타소마 자타카〉 벽화.
그림① 5세기 후반에 조성된 아잔타 석굴 17굴의 〈마하 수타소마 자타카〉 벽화.

잘못을 저지른 악인에게 벌을 내리는 이유는 악인이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여 다시는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지, 징벌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징벌의 무게와 참회가 비례할까? 또한 진정한 참회를 통해서 스스로의 죄를 뉘우친 악인은 과연 선인이 될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점에 부처님께 귀의한 몇몇의 인물들을 살펴보면 악인에서 선인 혹은 불교의 호법신중(護法神衆)이 된 사례가 여럿 있다.

불교사에서 데바닷타와 쌍벽을 이루는 악인을 꼽는다면 앙굴리말라(Aṅgulimāla)라고 할 수 있다. 앙굴리말라는 〈앙굴리마라경〉의 주인공으로 99명의 사람을 죽인 희대의 살인마였으나, 후에 석가모니께 귀의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된다. 그러나 탁발을 나갔던 마을에서 그에게 살해된 사람들의 가족이 던진 돌에 맞아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인물이다. 

오늘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수많은 전생 중에 앙굴리말라와의 인연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과연 연쇄 살인마 앙굴리말라의 전생은 어떠하였으며, 부처님께서는 악인을 어떻게 교화했는지 관련 경전을 통해서 살펴보겠다. 이 이야기는 팔리어로 기록된 자타카 547편 중 537번째 ‘마하 수타소마 자타카’(Maha-Sutasoma Jataka)와 당나라 승려 지엄(智嚴)이 한역한 〈불설사자소타사왕단육경〉(佛說師子素駄裟王斷肉經)에 실려 있다. 아주 긴 이야기를 간략하게 줄이면 다음과 같다.

“먼 과거에 바라나시의 왕은 인간을 아버지로 사자를 어머니로 하여 태어났다. 그에게는 탁실라에서 함께 공부한 의롭고 지혜로운 한 친구가 있어 곁에서 늘 왕을 보좌하며 충언을 아끼지 않았다. 살생을 통한 육식은 좋지 않다는 친구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왕은 어렸을 때부터 고기가 없이는 음식을 먹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개들이 왕실의 주방에 들어가 왕의 상에 올릴 모든 고기를 먹어 치우자, 요리사는 자신의 부주의로 벌을 받을까 두려워서 얼마 전 죽은 어린아이의 시체에서 살을 잘라 냈다. 그는 그것을 쌀과 함께 볶아 왕에게 대접했고, 그 음식이 왕의 혀에 닿는 순간 왕은 지금껏 먹었던 그 어떤 음식에 비할 수 없는 천상의 맛이라 느꼈다. 왜냐하면 왕은 현생에서는 인간과 사자의 자식이며, 전생에서 인간을 잡아먹는 야차였기 때문이다. 왕은 곧 요리사에게 어떤 종류의 고기인지 물었으나, 요리사는 단지 일반적인 고기를 정성껏 잘 구웠다고 답하였다.

하지만 왕은 이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 요리사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면 죽임을 당할 것이라 하자, 요리사는 개들이 고기를 모두 먹어서 어쩔 수 없이 사람의 고기를 사용하였다고 말하였다. 이후 이 일은 왕과 요리사 두 사람만의 비밀로 하고, 요리사는 포로들을 죽여 왕에게 바치게 되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전쟁 포로들을 모두 먹어치운 왕은 감옥의 죄수들을 처형하여 먹었고, 점점 사람의 고기 맛에 취한 왕은 두려움이나 죄책감이 없어져,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무작위로 살해하여 매 식사마다 점점 많은 양의 사람의 고기를 가져오게 하였다. 백성들은 주위의 사람들이 이유 없이 사라지는 무서운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서 두려워하며, 왕에게 사람을 먹는 살인자를 잡아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러나 왕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자, 백성들은 다시 군대의 최고 사령관에게 요청하여 사람을 죽이려는 왕실 요리사를 붙잡았다. 요리사가 왕 앞에 끌려가서 모든 살인이 왕의 명령으로 이루어졌다고 스스로 자백하였으나, 식인종이 된 왕은 사람들을 먹는 것을 중단하면 자신은 죽을 것이라 말하면서 왕국과 왕실의 가족들보다 사람의 고기가 더 중요하다고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식인종 왕은 칼 한 자루와 요리사만을 데리고 숲으로 추방되었고, 숲에서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먹으며 살았다. 

 

그림② 5세기 후반에 조성된 아잔타 석굴 17굴의 〈마하 수타소마 자타카〉 벽화.
그림② 5세기 후반에 조성된 아잔타 석굴 17굴의 〈마하 수타소마 자타카〉 벽화.

그러나 이 숲에 무시무시한 식인종 왕이 산다고 소문이 나자 더 이상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고, 마침내 굶주림을 못 견딘 왕은 요리사까지 잡아먹게 되었다. 식인종 왕의 위험을 알고 있던 사람들은 숲 가장자리에 높은 담을 쌓았으나, 왕은 담을 넘어 사람들을 공격하고 더하여 이웃 나라의 왕 백 명을 붙잡아 나무에 매달아 놓기까지 하였다. 이때 더 이상 절친한 친우의 악행을 볼 수 없었던 왕의 친구가 왕의 사악함을 꾸짖고, 스스로 자신의 몸을 왕에게 바치며 이 몸을 먹고 더 이상의 살생을 하지 말라고 청하였다. 

그리고 친구가 마지막으로 왕에게 지옥의 두려움과 극락의 아름다운 세계를 들려주자, 결국 왕은 눈물을 흘리며 살인과 식인 행동을 그만두겠다고 약속했다. 자신의 죄를 뉘우친 왕은 스스로 굶어 죽겠다고 하였으나, 친구의 설득으로 바라나시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고 다시 왕좌에 올랐다. 이후 왕과 모든 백성들은 살생을 하지 않으며, 살아있는 모든 생명을 소중하게 여겼다고 한다.”

‘마하 수타소마 자타카’의 식인종 왕은 앙굴리말라의 전생으로, 그가 살해한 99명의 손가락을 잘라 목걸이로 만들어 목에 두르고 더하여 석가모니 부처님까지 해하려다가 부처님께 계몽돼 제자가 된 무시무시한 인물이다. 그리고 왕의 악행을 막으려 스스로를 희생하려 했던 친구가 부처님의 전생이다. 이 이야기는 매우 이른 시기부터 형상화되었는데 기원전 2세기경에 조성된 바르후트 스투파(Bhārhut Stupa)의 난순(欄楯)에 묘사되어져 있으며, 이후 5세기 후반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하는 아잔타(Ajanta, 인적이 드문 혹은 고요한) 17굴과 15세기경 도해된 태국 방콕의 왓 크루아완 와라위한(Wat Kruawan Worawiharn)사원 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잔타 17굴의 ‘마하 수타소마 자타카’가 그려진 벽화를 살펴보면 인간 왕의 아들을 낳은 어미 사자가 아이를 아버지인 왕이 사는 궁전에 데리고 와서, 왕과 신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들을 왕에게 부탁하는 장면이 묘사돼 있다. 그리고 맞은편에 왕이 두 손으로 아이를 안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아이를 바라보고 있다.(그림①) 
 

그림③ 5세기 후반에 조성된 아잔타 석굴 17굴의 〈마하 수타소마 자타카〉 벽화.
그림③ 5세기 후반에 조성된 아잔타 석굴 17굴의 〈마하 수타소마 자타카〉 벽화.

점차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면서 인간의 모습을 갖추어 성장한 왕자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다. 어느 날 왕의 음식을 요리해야 할 요리사가 고기를 개들에게 빼앗겨 몰래 어린아이의 시신에서 고기를 떼어내어, 왕의 음식에 사용하였다. 지켜보는 사람이 없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요리사의 모습과 주방의 다양한 조리 도구가 이야기의 배경으로 표현되어 있다.(그림②) 

그리고 이러한 왕의 식육 행위와 요리사의 악행은 점점 커져서 마침내 군대의 사령관과 분노한 백성들이 활과 칼을 들고 식인종 왕을 몰아내는 장면이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그림③)이어지는 뒷이야기는 위의 경전 요약에서 보아서 이미 알고 있지만, 악행을 계속하던 왕이 마지막에는 친구의 충언과 희생을 통해서 자신의 죄를 진정으로 참회하게 된다. 

당나라 승려 지엄이 한역한 〈불설사자소타사왕단육경〉은 ‘마하 수타소마 자타카’에서 교훈적인 여러 비유(譬喩) 부분만 빠지고, 거의 원전에 가깝게 한역이 되어 전해지고 있다. 다만 식인종 왕은 제석(帝釋)이 사자 소타왕(素馱王)으로 태어난 것이며, 왕의 친우는 이웃 나라의 문월왕(聞月王)으로 서술되어 있는 차이점이 있다. 

사람을 잡아먹는 야차에서 식인종 왕으로 그리고 앙굴리말라로 환생한 인물은 윤회를 거듭하면서 선업이 아닌 악업 위에 악업을 쌓아서 너무도 안타깝게 여겨지는 한편,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바뀌지 않는 것일까’라는 두려운 생각이 든다. 더불어 지금 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전생의 내가 어떤 생을 살았는지 보다는 지금부터 그리고 앞으로 선업을 쌓으며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제자인 앙굴리말라의 죽음 앞에서 “수행자여! 그대는 인내하라. 그대는 인내하라. 그대가 업의 과보로 수백 년, 아니 수천 년을 지옥에서 받을 업보를 그대가 지금 여기서 받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과 어려움이 지옥에서 치뤄야 할 업보를 미리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마냥 힘들고 억울하기보다는 지금 치룰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여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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