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 판결’보다 훌륭한 부처님 전생담
마하 움마가 자타가·단니기품
친자 분쟁서 賢人 명판결 담아
열왕기 ‘솔로몬 판결’과도 유사
키질 석굴 벽화 등서 도상화돼
지혜로운 왕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솔로몬 왕’을 떠올린다. 솔로몬 왕은 정치적으로도 이스라엘의 가장 강력한 왕으로도 손꼽힌다. 다윗과 밧세바의 아들인 솔로몬은 어머니의 출신 때문에 왕이 되기 어려웠으나, 뛰어난 지혜로 왕위에 올라 군사·행정·상업 등 여러 문제를 잘 해결해 이스라엘을 부강한 나라로 만들었다고 한다. 현인으로서 기억하는 가장 대표적인 일화는 ‘솔로몬의 판결’ 즉 한 명의 아이에 대해 두 명의 여인이 서로 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구약성경〉 열왕기 상편 3,16-28절에 기록돼 있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어느 날 솔로몬 왕에게 여인 둘이 찾아와서 한 아이를 사이에 두고 서로 엄마라고 주장했다. 아이를 빼앗겼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던 여인이 말하기를 두 여자가 사흘 차이로 아이를 낳았는데, 나중에 아이를 낳은 여자가 자다가 자신의 아들을 깔아뭉개어 죽였다고 했다. 죽은 아이의 엄마가 모두 잠든 사이 먼저 태어난 아이와 죽은 아이를 바꾸어 놓았는데, 날이 밝은 뒤에야 품 안에 죽어 있던 아이가 자신이 낳은 아이가 아님을 알았다고 한다.
참과 거짓을 가리기 위해 두 여인은 솔로몬 왕 앞에서 산 아이는 내 아이이고, 죽은 아이가 네 아이라고 말싸움을 벌였다. 그때 왕이 칼을 가져오라고 명령을 내리며 말하길, 산 아이를 공평하게 둘로 나누어 반쪽은 이 여자에게 또 반쪽은 저 여자에게 주라고 하였다. 그러자 산 아이의 어머니는 제 자식을 생각하며 산 아이를 저 여자에게 주시고, 아이를 죽이지만은 말아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러나 다른 여자는 어차피 내 아이도 네 아이도 아니니 똑같이 나눠 갖자고 하였다. 이를 본 왕이 아이를 죽이지 말라며 애원하던 처음 여자가 진짜 어머니라고 판결했다.
이 같은 솔로몬 왕의 판결로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팔리어로 적힌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와 한역 경전 〈현우경(賢愚經)〉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초기 경전에 해당하는 팔리어 자타카 547편의 이야기 중 546번째 ‘마하 움마가 자타카’(Maha-Ummagga Jataka, 큰 용솟음 또는 큰 불기둥이라는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마틸라(Mithila) 지역의 베데하(Vedeha) 왕국은 실제로 남쪽은 갠지스강, 서쪽은 간다키강, 북쪽은 히말라야 산기슭으로 둘러싸인 지역으로 인도 아리아인이 이곳에 베데하 왕국을 세우고 후기 베다 시대(기원전 1100~500년경) 동안 고대 인도의 주요 정치 및 문화 중심지 중 하나가 됐던 곳이다. 매우 방대한 ‘마하 움마가 자타카’의 내용을 아주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마틸라의 베데하 왕은 어느 날 밤 꿈에 궁전의 네 개의 기둥 한가운데에서 하늘을 향해 불타오르며 온 세상을 비추는 다섯 번째 커다란 불기둥을 보았다. 왕이 네 명의 지혜로운 조언자들에게 꿈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 자신들보다 더 지혜로운 다섯 번째 조언자가 곧 태어나 왕을 섬기게 될 것이라 예언했다. 그때 부유한 상인의 집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인 남자아이가 태어났는데, 이미 7살이 되었을 때 왕국 전체에서 그보다 현명한 사람은 없었다. 어느 날 굶주린 야차녀가 젖을 먹이고 있는 어머니와 아기를 보고, 아기를 잡아먹으려고 데리고 도망쳤다. 아기의 어머니는 쫓아가서 야차녀를 잡았으나, 두 여인 모두 그 아기의 어머니라고 주장했다. 이때 지혜로운 소년은 야차녀의 검붉고 깜빡이지 않는 눈 그리고 햇빛에 서 있어도 그림자가 없는 몸을 보고 사람이 아닌 것을 알았다. 하지만 두 여인이 서로 아기의 어머니라 우겨서 재판을 통해서 진짜를 가리기로 하였다.
지혜로운 소년은 마루에 선을 긋고 아기를 그 위에 눕히고, 각각 두 여자에게 아기의 손을 잡고 힘껏 당기라고 말했다. 어느 쪽이든 아기를 많이 잡아당기는 사람이 어머니라고 이야기하자, 두 여자들은 아기를 당기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기가 고통으로 크게 울부짖자 진짜 어머니는 아기의 손을 놓아주고 울기 시작했다.
이를 본 지혜로운 소년은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자식을 아끼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 진짜 어머니라고 말하면서, 다른 여자는 아기를 잡아먹으려는 야차녀라고 밝혔다. 이에 야차녀가 자신의 정체와 나쁜 의도를 고백하자 지혜로운 소년은 그녀가 과거의 생에 죄를 지어 야차녀로 태어났는데, 또다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영원히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녀를 꾸짖었다.
베데하 왕은 부처님의 제자인 랄루다이(Laludayi)의 전생이었으며, 왕의 네 명의 조언자들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존경하고 따랐던 네 명의 금욕주의자들의 전생이었다. 그리고 지혜로운 소년은 당연히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의 인물이다.”
이러한 팔리어본 ‘마하 움마가 자타카’를 그림으로 잘 표현한 예를 태국 방콕의 왕실 사원 왓 크루아완 와라위한(Wat Kruawan Worawiharn) 사원 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림을 보면 궁전의 전각 마루에 한 아기가 누워있으며, 그 옆으로 두 명의 여인이 앉아서 아이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전각 아래 사람들이 아이와 두 여인을 보면서 귓속말을 나누거나 손가락으로 아이의 앞에 앉은 한 여인을 가리키고 있다. 손가락으로 여인을 가리키는 인물이 아기의 진짜 엄마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 석존의 전생인 지혜로운 소년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그림①)
한역 경전인 〈현우경〉 권11 ‘단니기품(檀훮羈品)’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어떤 두 어머니가 한 아이를 데리고 왕에게 와서 제각기 제 아들이라 주장했다. 왕은 현명하고 지혜로워 방편으로 그 두 여자에게 말했다. ‘지금 아이는 하나인데 두 어머니가 서로 주장하는구나. 너희들 둘은 각기 그 아기의 팔을 한쪽씩 잡고 당겨라. 누구든 빼앗는 이가 바로 그 어머니다.’ 어머니가 아닌 이는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므로, 힘을 다해 마구 잡아당기면서 아이가 상할까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아이를 낳은 어머니는 아이를 매우 사랑하기 때문에 끌려가면서도 아이를 아껴 차마 잡아당기지 못했다. 왕은 곧 참과 거짓을 분별하고, 그 힘을 낸 여자에게 말하였다. ‘이 아이는 실로 네 아들이 아니다. 억지로 남의 아이를 욕심낸 것이다. 지금 내 앞에서 사실대로 고백하라.’
그녀는 곧 머리를 조아리고 왕에게 아뢰었다. ‘실로 거짓이었습니다. 남의 아이를 억지로 제 아이라 하였습니다. 대왕님의 밝고 거룩하심으로 저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왕은 아이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고 보내었다.”
〈현우경〉 속의 60여 개의 전생담을 벽화로 도해한 중국 신장성 위구르 자치구의 쿠차현(庫車縣) 키질(克孜爾)석굴에서 위의 내용과 관련이 있는 그림을 찾아보면 키질 38굴의 벽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키질 38굴의 벽화는 6세기경 그려진 것으로, 이 그림은 19세기 초 독일의 중앙아시아 탐험대에 의해 절취돼 현재 독일 베를린 아시안아트 뮤지엄에 소장돼 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화면의 왼쪽에 무릎을 꿇은 여인이 강보에 싸인 아기를 안고 있으며, 그 앞에 긴 칼을 든 사람이 아기를 향해 칼을 내리치려는 듯한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그림②)
만약 이 그림을 ‘마하 움마가 자타카’나 〈현우경〉 ‘단니기품’의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이 벽화의 제목을 ‘솔로몬 왕의 판결’이라고 하였을지도 모른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고, 그 또한 내가 본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부처님의 말씀 ‘군맹무상’(群盲撫象)이 떠오른다.
이스라엘에 솔로몬 왕이 있다면, 불법을 믿고 따르는 우리 불자들에게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