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37 (수)

[조성금의 스토리텔링 본생경] 18. 늑나사야 본생담

‘살신성인’ 공덕으로 부처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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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상인이었던 전생이야기
풍랑에 자신 공양해 타인 구해내
키질석굴 등 벽화에 내용 도상화
‘공덕 통해 깨달음 이른다’ 교훈

쿠차 키질석굴에 그려진 벽화 〈늑나사야 본생도〉. 4세기 중엽에서 5세기 말에 조성됐다.
쿠차 키질석굴에 그려진 벽화 〈늑나사야 본생도〉. 4세기 중엽에서 5세기 말에 조성됐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전생에 왕, 왕자, 가난한 수도자, 젊은 청년, 여러 동물 등으로 태어나 수많은 보시와 희생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셨다. 지난 이야기에서는 부처님께서 스리랑카 싱할라 민족의 시조였던 먼 옛날이야기를 들려드렸다. 부처님께서 전생에 인도가 아닌 다른 나라의 백성으로 태어나셨던 이야기가 또 없을까? 아마 여러분들도 궁금하셨을 것이다.

5세기 초 양주(쏐州) 출신 혜각(慧覺)을 비롯한 여러 승려들이 고창군(高昌郡, 오늘날 투르판)에서 한역한 〈현우경(賢愚經)〉 제10권 ‘늑나사야품(勒那?耶品)’에 부처님의 전생 인물로 ‘살박 늑나사야’라는 상인의 희생과 구제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소리나는 대로 읽으면 살박이지만, 원래는 ‘살보’로 발음하며 역사서와 경전에 ‘薩寶’ 혹은 ‘薩保’로도 기록된다. ‘살보’라는 명칭은 일종의 관직명으로서, 소그드어로 대상(隊商)의 리더를 의미하는 ‘사르트포’(Sartpaw)의 음을 빌려 중국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는 상단의 주인(商主) 즉 상단의 장에 해당하는 직위로, 우리가 알고 있는 개성 송상이나 의주 만상의 상단주와 같은 역할과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문헌에 의하면 소그드인들이 정착해 거주하는 지역에서 상단주의 역할뿐만 아니라, 제사장과 무장의 역할도 겸하고 있었던 듯하다.

소그드 상인이라고 하면 다소 생소할 수 있으나, 서역 상인 혹은 ‘상호’(商胡), ‘호상’(胡商)으로 알려진 페르시아계에 속하는 민족으로서 현재의 우즈베키스탄의 부하라와 사마르칸트 지방에 오아시스 도시국가를 세운 이들이다. 

소그드인은 이미 중국의 한나라 시대부터 중앙아시아, 몽골고원, 중원 사이에서 중계무역으로 활약하고 있었으며, 실크로드의 교역 루트에 집단 거주지를 형성해 상업 활동의 전진기지를 구축함으로써 교역 이익으로 막대한 이익을 추구하고 있었다. 이들의 활동영역은 서쪽으로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 감숙(甘肅) 지역의 돈황(敦煌)에서부터 동으로는 장안(長安), 낙양(洛陽)을 거쳐 화북(華北) 지방의 각 지역, 그리고 북으로는 몽골고원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교역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으며, 남으로는 계림(桂林), 광주(廣州)에 이르러 동남아시아를 경유하여 인도와 페르시아에 이르는 해상루트와도 연결돼 있었다.

경주 괘릉이나 흥덕왕릉에서 이미 보았던 서역인 석상이 바로 이 소그드인들을 표현한 것이다. 그 모습을 묘사해보면 눈이 깊고 코가 높은 이목구비에 덥수룩한 구레나룻 그리고 머리 뒤로 묶은 긴 머리끈, 근육이 두드러진 팔, 긴 몽둥이, 허리에 매단 두 개의 돈주머니. 통일신라 시기에 조성된 석상에서는 무기를 들고 있어 무시무시한 무장으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이들은 이미 기원전부터 이윤이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든 동쪽과 서쪽의 세계를 종횡무진하였던 상인들이다. 최고 품질의 담비 가죽을 구매하기 위하여 소그드 상인이 발해까지 왔었던 증거가 발굴되는 것으로 보아서, 이들이 신라까지 오지 못했을 거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현우경〉의 ‘늑나사야품’에 기록된 페르시아계 소그드 상인 살박 늑나사야는 어떤 보시와 희생을 하였기에 다음 생에 부처가 될 수 있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오랜 옛날 이 염부제의 바라내국에 범마달(梵摩達)이라는 왕이 있었고 그 나라에는 늑나사야(勒那?耶)라는 큰 살보(薩薄: 소그드 상주)가 있었는데, 그는 밖에 놀러 나갔다가 어떤 숲속에 이르렀다. 어떤 사람이 못내 슬피 울면서 목을 걸어 자살하려는 것을 보았다. 살보 늑나사야가 그 이유를 묻자, 죽으려 하는 자가 답하길 ‘박복하여 극도로 가난할 뿐 아니라, 또 빚을 잔뜩 져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빚쟁이들은 다투어 와서 무엇이나 뺏어 가면서 밤낮으로 독촉하기 때문에 근심이 풀릴 때가 없습니다. 천지는 넓다 하지만 몸 둘 곳이 없기로 이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이 괴로움에서 떠나려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처럼 충고하지만 내게는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합니다’라고 말하였다.

늑나사야가 목에 맨 줄만 풀면 진 빚은 얼마든지 대신 갚아 주겠다고 약속하고, 숲에서 나와 빚을 갚아 주겠다고 소문을 내자 빚쟁이들이 서로 다투어 구름처럼 몰려와 빚을 받아 갔다. 오는 사람이 한이 없어 늑나사야의 재물은 벌써 모두 떨어졌지만, 빚은 아직도 끝나지 않아 오히려 살보의 가족들이 가난에 몰려 구걸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그때 여러 상인들이 살보에게 보물을 캐러 바다에 같이 가자고 권하였다. 상단의 주인으로서 배를 장만할 돈이 없어 곤란한 처지에 상인 5백 명이 재물을 모아 3천 냥을 살보에게 주었다. 이에 살보는 3천 냥 금 중에서 천 냥으로는 배를 마련하고 천 냥으로는 양식을 준비하고 또 천 냥으로는 배 위에서 필요한 것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나머지로는 가족들의 생활에 썼다.

살보 늑나사야는 바닷가에서 일곱 겹의 튼튼한 큰 배를 만들어 일곱 개 큰 밧줄로 바닷가에 메어 두었다. 그리고 큰 금방울을 흔들며 ‘누구라도 바다에 들어가 크고 묘한 보물을 얻어 진기한 물건을 마음껏 쓰고 싶은 사람은 모두 여기 모여 저 보물 있는 곳으로 함께 가자.’라고 말하였다. 또 ‘누구라도 부모처자와 염부제의 즐거움과 또 그 목숨을 사랑하지 않는 자라면 가도 좋다. 왜냐하면 저 바다에는 험하고 어려운 일이 많기 때문이다. 물결의 소용돌이, 사나운 바람, 큰 물고기, 귀신 등 이런 여러 가지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이렇게 말하고는 이레째 날에 그 밧줄을 모두 끊자, 배는 곧 바다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도중에서 갑자기 사나운 바람을 만나 배가 부서져 바다에 빠진 사람들이 모두 살려 달라 부르짖었으나, 어디에 의지할 곳이 없었다. 널빤지나 돛대나 부낭(浮囊)를 얻어 살아나기도 하였고 혹은 물에 빠져 죽기도 하였다. 

그중에서 어떤 다섯 사람이 살보에게 ‘당신을 믿고 여기까지 왔다가 지금 물에 빠져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구제하여 주십시오’라고 말하자, 살보가 ‘큰 바다는 송장을 묵히지 않는다고 나는 들었소. 당신들은 지금 곧 나를 붙드시오. 나는 당신들을 위해 내 몸을 죽여 그 화를 구제하고 맹세코 부처가 될 것이고, 부처가 된 뒤에는 위없는 바른 법의 배가 되어, 나고 죽는 큰 바다의 괴로움에서 당신들을 제도할 것이오’라고 말하고 스스로 칼로 목을 찔렀다. 

살보가 죽은 뒤에 바다 신(海神)은 바람을 일으켜 다섯 사람을 저쪽 언덕까지 밀어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바다를 건너 모두 안온하게 되었다. 그때의 살보 늑나사야는 석가모니 부처님이시며, 그 다섯 사람은 부처님의 첫 제자들인 구린(拘隣) 등이다.”

경주 괘릉에서 출토된 호인석상. 통일신라 8세기 후반의 작품이다.
경주 괘릉에서 출토된 호인석상. 통일신라 8세기 후반의 작품이다.

〈현우경〉의 ‘늑나사야품’을 그림으로 도해한 사례는 쿠차(庫車) 지역의 키질석굴(克孜爾石窟) 13굴, 114굴, 키질가하석굴(克孜랑燕哈石窟) 14굴, 21굴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4세기 중~5세기 말경에 조성된 키질석굴 114굴의 벽화를 살펴보면 소용돌이치는 깊고 어두운 바다의 한가운데에 누워 오른손으로 긴 칼을 들어 자신의 목을 베는 살보 늑나사야가 화면의 중앙에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늑나사야의 팔과 몸통, 다리를 잡고 험난한 바다에서 버티는 네 명의 사람이 묘사돼 있으며, 화면의 상단에 긴 널빤지를 두 손으로 꼭 붙잡고 있는 긴박한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오늘의 부처님의 전생이야기는 페르시아계 소그드 상인 살보 늑나사야가 자신의 재물과 목숨을 보시하고 희생하여 빚에 시달리는 사람과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한 늑나사야 본생담을 풀어 보았다. 부처님은 천하고 귀함도 그리고 민족도 차별하거나 가리지 않으신다. 누구나 공덕과 희생을 쌓아서 부처가 될 수 있음을 이렇듯 수많은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깨달음을 주시려 하시는데, 정작 불법을 공부하고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겠다고 이야기하면서 실천하지 못하는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참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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