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바람은 일출봉에서 하루를 시작해 산방산에서 일몰을 배경으로 모래와 함께 한바탕 살풀이를 추고서 떠나간다. 그렇게 모래 개울이 흐른다고 하여 산방산 아랫마을을 사계리(沙溪里)라 한다.
이런 곳에 어찌 전설이 없겠는가. 옛날 어떤 사냥꾼이 한라산 백록담까지 사냥하러 가게 됐다. 마침 흰 사슴을 발견한 사냥꾼이 흥분하여 활시위를 당겼다. 그런데 흰 사슴은 옥황상제를 모시는 영물이었다. 그 눈빛과 마주친 그의 화살은 목표물을 빗나가 옥황상제의 엉덩이를 건드리고 말았다. 사냥에 눈이 먼 사냥꾼이 급한 마음에 만든 큰 사고였다. 생명을 살피는 옥황상제가 차마 인간에게 뭐라 꾸중하기도 난처해 한라산 봉우리를 뽑아서 서쪽으로 던졌다. 그것이 산방산이고, 백록담은 봉우리가 뽑혀 움푹 팬 분화구를 한 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먼 인도의 진주 스리랑카의 탄생 유래와 비교해보면 재미를 더한다. 수미산의 북서쪽 바람의 신 바유가 있었다. 그를 풍천(風天)이라고도 한다. 그는 사슴을 타고 흰 깃발을 들고서 인드라의 전차 마부 역을 담당한다. 그리고 바유신은 재산과 명성을 바람으로 실어 나르는 신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격정적인 기질을 타고났다. 그래서 언제나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싶어 했다. 그에게 우주의 산 메루산은 바람의 힘을 보여주기에 알맞다고 생각됐다. 그런데 그 산은 신조(神鳥) 가루다가 언제나 큰 날개로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힘을 쓸 수가 없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절호의 기회가 왔다. 마침 방심한 가루다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 이때를 놓칠 리 없는 바유신은 온 힘을 다해 일순간에 폭풍을 일으켜 메루산을 향해 일장을 날렸다. 그렇게 해서 정상이 떨어져 나갔는데 지금의 스리랑카라고 한다.
두 이야기는 바람의 신화 속에서 상상의 날개를 펴기로 한다. 성스러운 산에는 신비한 이야기도 많은 법이다. 고려시대 혜일(慧日) 선사가 ‘산방법승(山房法僧)’이라 하고 이곳에서 정진할 때 일이다. 고단이라는 사람이 느지막이 귀동이를 얻었는데, 선사는 이 아이를 거둬 이름을 방철이라 짓고 천축국에 보내어 공부를 시켰다. 공부를 마친 방철이는 금강산에서 기도하다가 선녀로 변한 관세음보살에게서 생진주를 얻는다. 그 후 산방굴사로 돌아와 생진주로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며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서기 깃든 데는 수난사도 있기 마련이다. 조선 중기 이형상 목사는 가을바람 좋은 날 제주를 21일간 돌며 <탐라순력도>를 남긴다. 여기 ‘산방배작’을 보면, 목사 일행이 산방굴사의 불상을 바다에 빠뜨려 버리고 그곳에 앉아서 술잔을 주고받는 장면이 있다.
그 후 100여 년 뒤, 추사 김정희가 8년 넘게 제주 유배를 지낸다. 이때 해남 대흥사의 초의 선사가 부인의 부고와 함께 정성으로 덖은 녹차를 들고 방문한다. 선사는 반년을 산방굴사에 머물면서 추사의 적거지까지 10리를 오가며 ‘밀다경’을 써 널리 전하였다고 한다. 이때 쓴 추사의 ‘초의정송반야심경(草衣淨誦般若心經)’과 ‘명선(茗禪)’은 추사체의 대표작이다.
바람이 불면 히말라야 설산의 부탄에서 날리고 있는 풍경(風經)이 보고 싶다. 그 바람이라면 산방덕이 흘리는 사랑의 눈물을 보듬어줄 수 있을 텐데. 누구는 산방산 앞 용머리 해변의 바위를 보며 베토벤의 ‘운명’을 바람 신이 형상화해 놓은 것 같다고 했다.
[인현 스님의 제주 산방일기] 여름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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