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5 (수)

[조성금의 스토리텔링 본생경] 15.효자 섬자 본생담

孝로 불도를 이룰 수 있다

장님 부모 지극히 보살폈던 ‘섬’
효행으로 회생하고 부모 개안도
우리나라 설화 ‘심청전’과 유사
효로 불도 수행할 수 있음 시사

흔히들 불교가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중국에 정착할 수 있었던 정치적인 배경에 관해서 북방 기마유목민족이 중원지방을 통치할 수단으로 한족 문화가 아닌 당시 최고의 종교인 불교를 이용했고, 여기에 중국 전통의 효사상을 개입시켜 정치권과 민간에서 더욱 유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중국에 전래되기 전의 불교에는 효와 관련된 이야기가 없었을까? 정말 초기 불교는 효에 대해 가치를 두지 않았을까? 오로지 불교에 들어간 효사상은 중국인들의 유교 덕분일까?

이러한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초기 경전에 속하는 팔리어로 기록된 남전 장경에서 효와 관련된 이야기를 찾아보았다. 팔리어로 기록된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 547개 중에서 540번째 ‘사마 자타카’(Sama Jataka)는 내용만 본다면 중국에서 만들어진 효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겠다. 
눈먼 부모에게 지극한 효를 행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마 자타카’는 일찍부터 형상화 되었는데, 가장 먼저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경에 조성된 산치대탑(Sanchi Great Stupa)에서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이후 간다라 지역의 파키스탄 페샤와르(Peshawar)와 스와트(Swat) 그리고 6세기경 조영된 인도의 아잔타 석굴(Ajanta Caves) 제 10굴에도 현존하고 있어 ‘사마 자타카’의 유행을 짐작할 수 있다. 

중국에 전해진 ‘사마 자타카’는 ‘눈먼 맹인의 자식’이라는 뜻으로 번역되어 주인공의 이름이 ‘사마’에서 ‘섬자’(콠子)로 바뀌었을 뿐 줄거리에 큰 차이는 없다. 번역자는 알 수 없으나 대략 4세기 초에 한역됐으며, 불도를 닦는 늙은 맹인 부부를 잘 섬겼다는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를 하고 있어 〈불설 섬자경(不說 콠子經)〉 〈섬자경(콠子經)〉 〈섬경(콠經)〉 〈효자 섬경(孝子 콠經)〉 등으로 부른다. 한역 경전에는 서진(西秦)의 승려 성견(聖堅)이 한역한 〈불설 섬자경〉과 〈육도집경(六度集經)〉 제5권에 ‘섬자장(콠子章)’이 수록돼 있으며, 두 경전의 내용은 거의 같다. 

중국에서 ‘섬자 본생담’을 도해한 사례는 기원후 4~6세기경 조성된 신장 위구르 자치구 쿠차(庫車, Kucha) 지역의 키질 석굴(克孜爾, Klzil) 7·8·17·69·114·157·175·186·198굴, 북위 시대(北魏, 386~534) 맥적산(麥積山) 석굴 127굴, 운강(雲崗) 석굴 9굴, 북주(北周, 557 ~581)와 수대(隋代, 581~619)에 걸쳐 돈황(敦煌) 막고굴(莫高窟) 461·299·301·302·417굴 등에서 다수를 찾아볼 수 있다. 

성견이 한역한 〈불설 섬자경〉을 돈황 막고굴에 도해된 〈섬자 본생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막고굴 229굴의 그림으로 읽어 보고자 한다.(그림 위) 막고굴 229굴은 6세기 후반에 개착돼 조성된 굴로서, 복두형 천정의 사면에 걸쳐서 〈섬자 본생도〉가 표현돼 있다. 이야기의 전개에 따라서 그림을 보면 다음과 같다. 

 

그림은 돈황 막고굴 제229굴 천정 벽화인 〈섬자 본생도〉. 북주시기 5세기 후반에 조성됐다.
그림은 돈황 막고굴 제229굴 천정 벽화인 〈섬자 본생도〉. 북주시기 5세기 후반에 조성됐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비라륵국(比羅勒國)에서 1천 250명의 비구들에게 오랜 과거에 도솔천(兜率天)의 자혜보살(慈慧菩薩)로 계셨을 때의 인연을 이야기 말씀하셨다. 자혜보살이 중생들을 구제하며 도솔천에서 인간 세상을 내려다 보니, 가이국(迦夷國)이라는 나라에 눈이 보이지 않는 부부가 산속에 들어가 불도를 닦고자 하나 앞이 보이지 않아 서원을 이루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까이 여겼다. 자혜보살은 내가 지금의 목숨이 끝나면 그들을 위하여 아들로 태어나, 지극정성으로 봉양하고 모셔야겠다고 맹세하였다. 곧 맹인 부부의 아들로 태어난 자혜보살은 일곱 살이 되자 이름을 섬(콠)이라고 지었으며, 지극한 효행과 선행을 행하고 산목숨을 죽이거나 도둑질하지 않았다. 섬의 나이 열 살이 지나자 부모에게 어린 자신을 키우느라 산에 들어가 불도를 정진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이제 본래의 뜻대로 부모님을 따라 함께 산에 들어가서 두 분을 모시고 봉양하겠다고 청하였다. 이후 섬은 집안의 온갖 재산과 보배를 모두 가난한 이들에게 크게 보시하고 부모와 함께 깊은 산으로 들어갔다. 섬은 부모를 모시고 깊은 산중에 이르러서 나무와 풀로써 집을 짓고, 단 열매와 샘물을 양식 삼아 불도를 닦으며 살았다. 

①어느 날 가이국의 왕이 궁전을 떠나서 ②섬이 살고 있는 산에 사슴 사냥을 나왔는데, ③사슴 가죽옷을 입고 샘에 물을 뜨러 온 섬을 사슴인 줄 알고 활을 쏘아 섬의 가슴에 화살이 박혔다. 화살의 독이 퍼져 나가는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섬은 자신이 죽은 뒤 돌봐드릴 사람이 없는 부모님을 걱정하며, 왕에게 늙고 눈먼 아버지와 어머니를 부탁하였다. 

섬이 죽자 왕은 자신의 살생을 후회하며, ④섬의 부모가 사는 초가에 찾아가서 샘에서 있었던 비극적인 사건을 이야기했고 이를 들은 섬의 부모는 애통해하였다. ⑤아들의 주검을 확인한 아버지는 섬의 머리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어머니는 섬의 발을 끌어안고 핥으면서 한 손으로는 상처를 어루만지고 또 한 손으로는 자신의 가슴을 치고 뺨을 치면서 부르짖었다.

섬의 어머니가 하늘을 향해 외치길 “천신, 지신과 목신(木神)과 수신(水神)이시여, 내 아들 섬이 부처님을 받들고, 불법을 믿고, 성현을 존경하고, 어버이에 효도하며, 한없이 넓은 어짊을 품어서 덕이 초목에 미치는 줄 압니다. 부처님을 받들고 지극한 효성이 있음을 하늘이 아실진대, 마땅히 화살이 뽑히고 독이 소멸 되어서 아들이 살아나 그 지극한 효성을 다하게 하옵소서. 만약 아들의 행실이 그렇지 않다면 저도 마땅히 죽어서 아들과 함께 재와 흙이 되게 하소서.

”제석천이 그 어버이의 슬픈 소리를 듣고 내려와서, (벽화 훼손 부분 추정)하늘의 신약(神藥)을 섬의 입속에 흘려 넣으니, 화살은 뽑히고 독은 몸에서 저절로 나오며 다시 살아나 생전의 섬의 모습과 같아졌다. 부모는 섬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보이지 않던 두 눈이 모두 뚜렷하게 떠졌다. 섬의 부모와 섬은 물론 왕과 신하와 따라온 자들이 슬픔과 기쁨이 뒤섞이어 또 한 번 소리 내어 울었다.가이국 왕이 온 나라 백성들에게 모두 부처님의 선을 받들고, 섬과 같은 지극한 효행을 닦으라고 명하니, 그 뒤로 나라가 풍족하고 백성이 편안하여 드디어 태평한 세계가 되었다.

그때 섬은 석가모니 부처님이셨으며, 가리국 국왕은 아난이었고, 눈이 먼 섬의 아버지는 정반왕이셨으며, 어머니는 마야부인이셨고, 제석천은 미륵이었다.  

일반적으로 팔리어로 기록된 남전 장경과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된 대승 장경은 같은 주제를 기록하고 있어도, 시기적·지역적·문화적 차이 때문에 매우 상이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특히 대승 장경의 경우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에 들어와 한역이 되는 과정에서 번역자와 편찬자에 의해서 많은 이야기가 생략되거나 새로운 이야기가 들어가는데, ‘섬자 본생담’은 ‘사마 자타카’와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아 매우 의외였다. 심지어 독화살을 맞아 죽은 섬이 제석천이 먹여준 신비로운 약 때문에 다시 살아나자, 반갑고 놀라운 나머지 눈이 먼 부모가 개안을 하였다는 세부적인 이야기까지 똑같다. 

그런데 ‘섬자 본생담’의 눈먼 부모가 효자 섬이 살았다는 이야기에 눈이 번쩍 떠졌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효녀 심청전’의 심청이 심봉사의 개안을 위해 공양미 삼천석에 팔려갔으나 용왕의 도움으로 인당수에서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싶다. 아마도 이 ‘섬자 본생담’을 읽는 독자들도 나와 비슷한 공감을 하셨을 것이다. 우리나라 전래동화나 설화의 과반 이상이 본생담과 관련이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 어쩌면 정말 ‘효녀 심청전’과 ‘섬자 본생담’은 상관이 없는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섬자 본생담’은 부처님께서 전생담을 통해 효도로써 불도를 수행할 것을 가르치신 것으로, 이미 초기 불교에서 부모에 대한 효도를 중요시 여기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낳아주시고 사랑과 정성으로 키워주신 부모님의 은혜와 마땅히 행하여야 할 효도는 중국 유교의 효사상과 상관없이 이미 불교의 중요한 수행방법의 하나로 들어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