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5 (수)

[조성금의 스토리텔링 본생담] 13. 선우태자 본생담

효·우애·인의 가치 보인 부처님 전생

‘월인석보’ 수록된 본생담 중 하나
선우·악우태자 형제 이야기 담아
‘선우태자’는 석가모니 부처 전생
악우 악행에 선우는 자비로 품어

둔황 막고굴 제296굴에 그려진 〈선사 태자 입해 본생도〉의 모습. 6세기 북주시대에 조성됐다.
둔황 막고굴 제296굴에 그려진 〈선사 태자 입해 본생도〉의 모습. 6세기 북주시대에 조성됐다.

수백 번의 희생과 보시를 통해 부처가 되신 석가모니의 전생 이야기는 불교 경전뿐만 아니라, 숭유억불을 정치와 교육의 기본 원칙으로 삼았던 조선왕실에서 간행한 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세조 5년(1459)에 간행되어 조선 전기 훈민정음 연구와 불교학 및 문헌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는 〈월인석보(月印釋譜)〉이다. 세조가 돌아가신 아버지 세종과 일찍 죽은 아들 의경세자를 위하여 편찬하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라 사육신 등 많은 신하를 죽인 끝에 당하는 정신적인 고통, 회한과 무상(無常)의 깊은 수렁에서 벗어나 구원을 얻기 위하여 추진한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세종의 ‘월인천강지곡’과 세조 자신이 지은 〈석보상절(釋譜詳節)〉을 합편하여 만든 〈월인석보〉는 간행 당시에는 대략 30권 정도로 구성되었던 것으로 추측하지만 현재 전하는 것은 모두 19권이다. 

현존하는 내용을 살펴보면 〈사분률(四分律)〉 〈현우경(賢愚經)〉 〈분별공덕론(分別功德論)〉 〈다론(多論)〉 〈계단경(戒壇經)〉 〈대품(大品)〉 〈지론(智論)〉 〈갈마소(鞨磨疏)〉 〈십송률(十誦律)〉 등에서 인용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시 최고의 학자인 신미(信眉)·수미(守眉)·홍준(弘濬)·학열(學悅)·학조(學祖)·김수온(金守溫) 등이 세조의 명을 받아 조선 초기에 유통된 중요 경전을 취합하고 선별한 것으로 당시 불교 경전의 수용 태도를 살필 수 있는 귀한 자료이다. 

내용은 석보(釋譜)란 이름에 맞게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 혹은 전생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한글로 기록된 〈월인석보〉에 실린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라면 조선 전기 사회에서 정치적 혹은 교육적으로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거나, 민간에서 큰 유행을 하고 있었던 이야기였을 것이다. 

〈월인석보〉에 현전하는 14개의 전생담 중에는 지난 연재에서 다루었던 ‘수대나태자 본생담’, ‘시비왕 본생담’, ‘사신사호 본생담’, ‘인욕태자 본생담’ 등 익히 잘 알고 있는 이야기들 이외에, 우리에게 조금은 생소한 ‘선우태자(善友太子) 본생담’이 실려있다. ‘선우태자 본생담’은 14개의 본생담 중에서 이야기가 가장 길며 18~19세기에 유행한 고전 소설 〈적성의전(翟成義傳)〉의 내용과 거의 같아서 간혹 ‘선우태자전’이라 칭하며 15세기에 창작된 작자미상의 고전 소설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선우태자 본생담’은 불교 경전을 원전으로 하는 본생담이 분명하다.

〈월인석보〉에 기록된 ‘선우태자 본생담’은 바라내국을 배경으로 마하라사왕의 두 아들인 이복형제 선우태자와 악우태자(惡友太子) 사이에 벌어지는 선행과 형제간의 우애에 관한 이야기이다. 당연히 선우태자는 석존의 전생 인물이며, 악업을 쌓고 선우태자를 시기하여 해하려한 악우태자는 제바달다(提婆達多, Devadatta)의 전생이다. 이러한 ‘선우태자 본생담’의 기원은 〈현우경〉 제9권 ‘선사태자 입해품(善事太子 入海品)’이라고 할 수 있으며, 두 이야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등장인물의 이름과 몇 곳의 지명만 다르게 적혔을 정도로 큰 차이는 없다. 

〈현우경〉의 ‘선사태자 입해품’의 내용을 자세히 도해한 그림은 북주(北周, 577~581) 시기에 조영된 둔황(敦煌) 지역의 막고굴 제296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선사태자 입해 본생도〉는 복두형 천정 동·서·남의 삼면에 길게 서술식으로 묘사돼 있어, 마치 장황한 한편의 본생담을 읽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지금부터 경전의 내용에 비춰 그림을 살펴보겠다. 

제바달다가 금생에서도 전생에도 여러 차례 석존을 해치려 했으나, 부처님께서는 언제나 그를 아끼는 마음을 가지셨음을 이야기하며, 먼 옛날 제바달다와의 악연을 말씀하셨다. ①사바세계에 늑나발미(勒那跋彌)라는 왕이 오래도록 아들이 없어 천인이 꿈에서 알려준 ②두 선인(仙人)을 찾아가 아들을 낳기를 청하자, ③각각 두 선인이 죽어서 ④첫째 부인과 둘째 부인의 뱃속에 잉태되었다. ⑤열 달 후 두 명의 왕자를 얻은 왕은 관상을 보는 사람을 불러 태자의 이름을 짓게 했다. ⑥임신 후 마음이 선해진 첫째 부인이 낳은 아들은 선사(善事)라 이름하고, 임신 후 마음이 악해진 둘째 부인이 낳은 아들은 악사(惡事)라 이름하였다. ⑦이후 왕은 선사태자만을 사랑하여 세 계절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아름다운 궁전을 지어 살게 했고, 선사태자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뤄 주었다. 이러한 아버지의 사랑 속에서 성장하면서 선사태자는 성품이 온화할 뿐만 아니라 총명해 모든 경전을 통달했다.⑧어느 날 궁 밖의 풍경을 좋아하는 선사태자는 금과 은으로 장식한 흰 코끼리를 타고 많은 호위를 거느리고 궁을 나와 거지들, 짐승을 죽여 고기를 베어 파는 백정들, 힘든 고역을 하는 농부들, 동물들을 무참히 죽이는 사냥꾼, 그물로 물고기를 잡는 어부를 보았다. 사람들이 의식을 위하여 중생을 죽이고, 몸을 힘들게 부리면서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살기 위해 쌓는 죄업과 뒷날의 과보를 걱정하며 궁으로 돌아왔다.
 

둔황 막고굴 제296굴에 그려진 〈선사 태자 입해 본생도〉의 모습. 6세기 북주시대에 조성됐다.
둔황 막고굴 제296굴에 그려진 〈선사 태자 입해 본생도〉의 모습. 6세기 북주시대에 조성됐다.

⑨선사태자가 부왕에게 궁 밖의 백성들을 가엾이 여겨 부왕의 창고를 열어 보시하기를 청하자, 왕이 승낙했다. ⑩선사태자는 곧 왕의 창고를 열어 온갖 보물을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다 나누어 주어 왕의 보배 창고는 3분의 2가 줄게 되었다. 나라의 운영과 궁의 살림에 쓸 재산이 바닥을 보이자, 태자가 스스로 재물을 구하여 중생에게 보시할 방법을 생각하게 됐다.
⑪그때 어떤 사람은 말하길 큰 바다에 들어가 용왕궁에 이르러 여의주를 구하면 가장 많은 재물을 얻을 것이라 했다. 부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큰 결심을 한 선사태자는 동생 악사태자와 동행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칠보가 가득한 보배섬에 이르렀다. ⑫보배에 눈이 먼 일행들과 헤어진 선사태자가 홀로 천녀들이 사는 성에 이르러 전타마니 여의주를 얻어서 일행들과 헤어진 곳으로 돌아와 보니, 보물을 욕심내어 가득 실은 배가 가라앉고 있었다. ⑬선사태자가 물결이 거친 바다에 빠진 악사태자를 구해주고 여의주를 얻은 이야기를 들려주자, 나쁜 마음이 든 악사 태자가 가시나무로 잠이 든 형의 두 눈을 찌르고 여의주를 빼앗아 도망쳤다. 

⑭두 눈을 잃은 선사태자는 떠돌다가 우연히 약혼녀의 나라인 이사발타국(梨師跋陀國)에 이르러 어느 소치는 사람을 만나 그의 집에서 지내었다. ⑮그러나 더 이상 신세를 지지 않기 위해 거문고를 연주하며 눈먼 악사로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거문고를 연주하는 태자를 본 이사발타국 왕의 딸이 약혼자인줄 모르고 선사태자에게 시집가기를 청하여 선사 태자와 결혼을 하여 부부가 되었다.    

한편 부왕의 나라로 돌아간 악사태자는 형님과 배가 함께 침몰해 죽었다고 말했으나, 이를 믿을 수 없었던 왕이 선사태자가 기르던 비둘기에 편지를 묶어 태자를 찾아오라 명하였다. 먼 하늘을 날아다니던 비둘기가 선사태자의 거문고 소리를 듣고 아버지의 편지를 전해주자, 눈이 먼 태자는 편지에 그간의 사정을 모두 적어서 비둘기에 묶어 보냈다. 비둘기가 전해준 편지를 통해 악사태자의 악행을 알게 된 부왕은 악사를 옥에 가두고 선사태자 부부를 모셔오게 하였다. 

궁에 돌아와 부왕과 어머니를 만난 선사태자가 더 이상 악사를 미워하지 않으며, 여전히 동생을 아낀다고 맹세하자 두 눈을 뜨게 됐다. 이후 선사는 동생이 땅속에 숨긴 여의주를 찾아 여의주의 신비스러운 힘을 빌려 텅텅 빈 국고를 채우고, 배고프고 헐벗은 이들에게 먹을 것과 의복을 끝없이 나누어 주었다.  

제바달다의 악행에 분노하는 아난에게 석가모니께서 “말 못할 고통을 겪었지만 그래도 나는 자비로운 마음으로 제바달다를 사랑하고 가엾이 여겼다. 하물며 지금 나는 불도를 이루어 번뇌를 모두 없애고 자비를 널리 펴는데 나에게 조그만 해를 입혔다 하여 어찌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지 않겠는가”라고 말씀하셨다.

수백 개의 전생담 중에서 〈월인석보〉에 ‘선우태자 본생담’이 실린 이유는 악인 악우태자를 향한 선우태자의 변치 않는 사랑과 형제애 그리고 부모에 대한 효와 고통받는 백성들을 위해 위험도 무릅쓰고 여의주를 얻어 온 선우태자의 행동이 유학을 통치의 기본으로 삼는 조선의 이념을 널리 알리기에 가장 적합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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