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37 (수)

[조성금의 스토리텔링 본생경] 7. 인욕선인본생도

붉은 피, 흰 젖으로 바꿔 佛法 증명하다   

잘린 목서 흰 젖이 쏟아지는
기적을 보여준 ‘이차돈 순교’
왕이 선인의 인욕 시험코자
팔다리 절단하니 흰 젖 나온
본생담 ‘찬제파리품’과 유사

이차돈 ‘찬제파리 기적’ 보여
신라불교 정착·발전 초석 놔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된 〈백률사 석당기〉. 818년에 조성됐으며 이차돈의 순교 장면이 조각돼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된 〈백률사 석당기〉. 818년에 조성됐으며 이차돈의 순교 장면이 조각돼 있다.

불교 전래와 관련해서 여러 나라들에 상서로운 자연 현상 혹은 신비한 일들이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신라의 이차돈(異次頓, 506~527) 순교 이야기가 가장 신비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미 4세기 말에 고구려와 백제가 불교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간 반면에, 신라는 여섯 개의 부족이 모여 나라를 이룬 까닭에 각 부족들은 건국 당시의 민간 신앙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신라의 귀족들은 선진 종교인 불교를 수용하면 자신들의 전통성과 정치적 존립기반이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이차돈이 왕명을 앞세워 절을 지으려 했던 천경림(天鏡林)은 신라의 민간 신앙에서 천신이 내려와 지신과 결합한 장소로서, 토착 세력들에게 신성시되던 장소였기에 그 반발은 걷잡을 수 없었다. 마침내 527년 불교 공인에 있어 귀족세력의 반대에 부딪히자 이차돈이 기적을 일으키며 순교했고, 이로써 법흥왕은 불교를 통치 이념으로 받아들이고 고대국가의 체계를 확립할 수 있었다.

이차돈은 불교 공인을 위해 순교하기 전에 법흥왕에게 “소신이 저녁에 죽어서 아침에 불법(佛法)이 행해지면, 불교가 일어나고 성군(聖君)께서는 길이 편안하실 것입니다. 소신의 목을 베어 만민이 굴복하게 하십시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에 관해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는 형리(刑吏)가 이차돈의 목을 베자 목에서 흰 젖이 한 길이나 솟아올랐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땅이 진동하더니 꽃비가 내렸다고 기록돼 있다. 그리고 순교 당시 이차돈의 잘린 머리가 하늘에 높이 올랐다가 떨어진 곳에 자추사(刺楸寺)라는 절을 지었다고 전해지는데, 현재 경주 동천동에 있는 백률사(栢栗寺)가 자추사였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사실을 증명하듯 백률사에서 발견된 ‘백률사 석당기’(일명 이차돈 순교비, 높이 104㎝, 너비 29㎝)는 818년에 조성된 것으로, 여섯 면의 돌기둥에 이차돈의 순교 장면을 시작으로 불교 수용을 위해 당숙 법흥왕과 조카 이차돈이 모의하는 장면, 이차돈의 순교 후 기적이 내리는 장면 등이 조각되어 있다. 이 중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장면은 첫 번째에 조각된 이차돈의 목이 잘린 곳에서 피가 솟구치고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리는 장면을 묘사한 부분이다.

누구나 이차돈의 순교 장면을 떠올리면 사람의 붉은 피가 어떻게 흰 우유 빛으로 바뀔 수 있는지 의문이 들면서, 많은 신비한 일들 중에서 왜 하필 이러한 기적이 행해졌을까 궁금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적은 이차돈만 일으켰던 것이 아니라, 이미 아주 오래전에 석가모니로 태어나시기 전 한 생에서 행하셨던 기적이다. 부처님의 전생담을 기록하고 있는 〈현우경(賢愚經)〉의 ‘찬제파리품 본생담’(嚴提波梨品 本生譚)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부처님께서 죽원림(竹園林)에서 아야 교진여(阿若 몐陳如)와 울비라 가섭(鬱卑羅 伽葉) 형제들 1000명을 제도하시며 전생의 인연을 말씀하셨다. 염부제에 바라내라는 나라가 있었고 그곳의 국왕은 가리(迦梨)였으며, 찬제파리(嚴提波梨)라는 큰 선인(仙人)이 있었다. 선인이 5백 제자들과 함께 인욕(忍辱, 온갖 욕됨과 번뇌를 참고 원한을 일으키지 않는 일)을 수행하는 숲에 국왕 가리가 신하들과 왕비와 궁녀들을 데리고 놀러 오게 되었다. 왕이 피로해 누워 쉬고 있자, 왕비와 궁녀들은 왕을 두고 꽃이 핀 숲을 구경하였다. 그러다가 찬제파리가 단정히 앉아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을 보고 공경하는 마음이 생겨 꽃을 공양하고 설법을 듣고 있었다.

잠시 후 잠에서 깬 왕이 네 명의 대신들과 함께 왕비와 궁녀들을 찾다가 선인에게 설법을 듣고 있는 장면을 보고 선인에게 무엇을 수행하는지 묻자, 인욕을 수행하고 있다고 답하였다. 곧 왕이 칼을 빼어 인욕을 잘 수행하였는지 시험해 보겠다며 선인의 두 손, 두 다리, 귀와 코를 잘라내었으나, 그는 얼굴빛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이에 왕이 놀라워하며 인욕을 수행하였음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지 다시 묻자, 선인은 인욕하는 것이 진실이며 거짓이 아니라면, 피는 젖이 되고 몸은 전처럼 회복될 것이라고 답하였다. 그 말이 끝나자 피는 곧 젖이 되고 몸은 전처럼 회복되었다. 왕이 선인의 인욕의 증명을 보고 죄를 참회하자, 선인은 먼 뒤에 부처로 태어나면 먼저 지혜의 칼(慧刀)로 왕의 세 가지 독을 끊을 것이라 이야기하였다.

가리왕은 참회한 뒤에는 늘 선인을 청하여 궁에서 공양하였다. 그때 다른 범지(梵志, 브라만교의 승려) 수천 인은 왕이 찬제파리를 공경히 대우하는 것을 보고 매우 시기하여 그가 앉은 곳에 티끌과 흙과 더러운 물건들을 끼얹었다. 이를 목격한 찬제파리가 인욕을 수행하여 중생들을 위해 쉬지 않고 그 행을 쌓으면, 뒤에는 반드시 부처가 될 것이다. 만일 내가 불도를 성취하면 먼저 법의 물로써 너희 범지들의 티끌과 때를 씻고 탐욕의 더러움을 없애어 영구히 청정하게 할 것이다라고 서원을 세웠다. 그때의 찬제파리는 석가의 전생이며, 가리왕과 네 명의 대신은 교진여 등 다섯 비구의 전생이며, 부처님께 티끌을 끼얹던 범지들은 울비라 비구들의 전생이다.”

〈현우경〉의 ‘찬제파리품 본생담’에서는 이차돈의 이야기처럼 목에서 흰 젖이 뿜어져 나오지는 않지만, 두 손·두 다리· 양쪽 귀·코가 잘린 곳에서 흐르던 피가 젖이 되었고 상처는 씻은 듯이 회복되는 기적을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그림으로 묘사한 것이 중국 신장성 위구르 자치구의 쿠차현(庫車縣) 키질(克孜爾)석굴 38굴의 벽화다. 이는 6세기경 그려진 것으로, 〈인욕선인본생도(忍辱仙人本生圖)〉 혹은 〈찬제파리품 본생도〉라고 부른다. 마름모 형태의 화면에 꽃이 핀 동그란 나무를 배경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 선인 찬제파리와 서서 위협적으로 선인을 내려다 보는 가리왕이 그려져 있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두 손이 잘린 팔을 들어 보이며 미소를 잃지 않는 찬제파리와 오른손에 장검을 들고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가리왕 사이의 긴장감과 감정이 시각적으로 잘 표현돼 있다.
 

쿠차 키질 석굴 재38굴에 그려진 '인욕선인본생도'. 6세기에 조성됐으며, 인욕선인을 시험하는 장면이 묘사됐다.
쿠차 키질 석굴 재38굴에 그려진 '인욕선인본생도'. 6세기에 조성됐으며, 인욕선인을 시험하는 장면이 묘사됐다.

한편, 팔리어로 기록된 〈본생담〉의 313번째 ‘칸티바디 자타카’(Khantivadi Jataka)도 선인 찬제파리의 온갖 욕됨과 번뇌를 참고 원한을 만들지 않는 수행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선인을 고문하고 조롱했던 왕은 참회가 아닌 땅속에서 솟아오른 불꽃 덩어리에 묶여 가장 깊은 지옥으로 끌어 내려졌으며, 선인은 부상으로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차이점이 있다. 당연히 선인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 인물이었으며, 왕은 데바다타의 전생이었고, 선인을 도왔던 장군은 부처님의 제자 중 한 명인 사리불의 전생이었다고 적혀있다. 팔리어 〈본생담〉에서는 피가 젖으로 바뀐 기적이나 가리왕의 참회 대신에 지옥의 불구덩이, 선인의 죽음, 왕의 전생으로서의 데바다타, 사리불의 등장 등 다른 요소들이 첨가되었다. 

 이차돈이 불교의 포교와 법흥왕의 고대국가로서의 체계 확립을 위하여 순교하였을 때, 정말 목에서 붉은 피 대신 우유빛 젖이 솟아올랐는지 아닌지 증명할 방법은 없다. 다만 불교라는 공통분모에서 갈등 요인이 인욕을 믿지 않는 가리왕 그리고 불교를 반대하는 신라의 귀족들이라는 묘하게 닮았음을 생각하면 어쩌면 이차돈 그리고 법흥왕은 〈현우경〉의 ‘찬제파리품 본생담’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현우경〉이 중앙아시아 및 중국에 걸쳐 널리 유포되었던 경전이었음을 감안 한다면, 인지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이미 〈삼국유사〉를 비롯한 다양한 기록에 부처님의 전생담 혹은 인연 설화의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찬제파리의 이야기 또한 신라에 전해졌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은 막연함보다 확신에 훨씬 가깝다. 

이차돈과 법흥왕은 선인 찬제파리의 기적을 신라의 왕성 경주에서 재현하여 반대세력을 누르고 천경림에 신라 최초의 사찰 흥륜사(興輪寺)를 건립할 수 있었으며, 신라를 여섯 부족 연맹체에서 고대국가로 성장시킬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