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37 (수)

조계종 제15대 종정 중봉성파 대종사 질의응답

3월 24일 통도사에서 조계종 제15대 종정 중봉성파 대종사의 추대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지난해 12월 종정추대 이후, 임기가 시작되는 3월 26일이 다가오기까지 공식적인 대외활동이나 언론 인터뷰를 자제해 왔다는 점에서 사실상의 첫 행보인 간담회에 관심이 집중됐다. 성파 대종사는 참석한 기자들의 질문에 특유의 소탈함으로 진솔한 답변을 이어갔다. 현장에서 진행된 질의응답을 정리해 싣는다.<편집자주>  

중봉 성파 대종사 인사말
"기자간담회 자체를 누가 주최했는지 모르지만, 마땅치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웃음) 절집에서는 종정이라고 하지만, 국가 통치자도 아니고 민족의 지도자도 아닌 일개 산승으로서 여러 기자분들을 모시고 간담회 한다고 하니 그렇지요. 앞으로 어떤 이야기 오고 갈지 모르겠지만, 특별히 기획한 바도, 큰 계획을 말씀드릴 것도 없습니다. 다만 먼 길 오셨으니 차 한 잔 하시고, 다담으로서 편히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 듯 합니다."

이하 질의응답.

Q. 종정교시는 종도에게 당부하는 말로 이해합니다. 일상에서의 실천도 중요하다고 보여지는데요. 이런 가르침을 내린 배경이나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A. 출가 승려는 성과 지역, 출신도, 연령도 모두 다른 이들이 각각 모인 특별사회입니다. 승려로서 새롭게 태어나 교육을 받고 공부하고 여기서 마칩니다. 특수한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청규입니다. 곧 질서고 법이지요. 때문에 항상 요긴하게 지니고 지켜야 합니다. 또한 개개인의 성격이 다 다르니 청규를 토대로 화목을 이뤄야 하고, 또한 부단히 지혜를 닦아야 합니다. 이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상구보리입니다. 이러한 덕목들이 갖춰진다면 이제 중생을 이롭게 하는 본연의 역할에 나서야 합니다. 하화중생이지요. 그런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Q. 2002년 은사 월하 스님으로부터 환성지안 문하 13세손으로 인가를 받으셨습니다. 당시 받으신 게송은 공개됐지만, 당시 어떤 가르침을 받았고 어떤 의미인지, 또 이후 20년간 이를 어떻게 이어오셨으며 종정이 된 후 어떠한 법을 설하시 것인지 궁금합니다.

A. 은사스님으로부터 ‘법을 전함이 없이 전하고, 말 없는 말을 전함이 없이 전하는 법'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흔히 물건을 보거나 문자처럼 보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주고 받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것을 제3자에게 명확하게 전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다만 우리 스님께서는 항상 ’평상심이 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평상심이 도라 함은 평상심이 곧 법이고 상식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벗어나지 않으면 중노릇 잘하는 것이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저는 평생 그 가르침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가르침을 설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고 앞으로 할 일이니 닥쳐봐야 알겠습니다.(웃음)

Q. 코로나 시국에 불교 역할은 무엇이 있을까요. 불교계 어른으로서 메시지를 주신다면.

A. 내게 큰 부담을 주는 말인데요(웃음). 바이러스를 산승이 말로서 막을 방법은 없지요. 다만 드릴 수 있는 말씀은 물에 빠져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하듯이, 어떤 상황에 맞닥뜨리거나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정신 차리고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굳건히 살아가면 모든 일은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답이 좀 시원찮지요(웃음)

Q. 친견하니 소탈하신 면모에 친근함이 느껴집니다. 그동안 상징적인 모습의 종정 이미지와 달리, 좀더 현장에서 기댈 수 있는 모습을 기대하는 분위기도 있는데요. 그런 점에서 요즘 대통령 선거 이후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분열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가르침을 주신다면.

A. 내 앞이 놓인 일대사도 제대로 못깨치는데 어떻게 사회에 직접적인 가르침을 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저보다 공부를 많이 했으니 더 잘 알고 있지 않나요?(웃음)

코로나보다 악랄한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인간의 악심, 악하게 물드는 마음입니다. 사람에게는 선심도 있고 악심도 있지만, 어느 마음을 사용하느냐 따라서 달라지지요.

악심을 품어 행사하면 남에게 코로나보다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어요. 그래서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이나 권력이 없는 사람을 떠나서, 모든 개개인들이 악심을 품지 말고 선심을 품으면 마치 봄바람과 같이 춘풍이 불어 꽃이 피듯할 겁니다. 선심을 갖는 게 좋은 것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소승 또한 모두가 한 발짝만 더 양보하고 악한 맘 품지 말고 선한 마음으로 살면 좋겠다 라고 할 뿐입니다.

Q. 역대 종정 중에서도 예술적으로 가장 돋보입니다. 취임 후에도 예술 활동이 유지하실 계획이십니까. 종정 이후 혹시 달라진 점이나 변화될 부분이 있다면.

A. 저는 예술가도 아니고 딱히 조예가 깊지도 않습니다. 다만 언론에서 부풀려서 말 한게 아닌가 싶은데(웃음)

그런 게 있다면(예술적 활동) 종정으로서 한 것이 아니라, 승려생활을 하면서 여가로 혹독, 혹서, 혹화라고 하갰습니다. 간혹 나무도 하고 간혹 글씨도 쓰고 간혹 그림도 그리고 좌선도 한 것이지요. 모든 것이 승려 생활 가운데, 일상 속에서 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듣기에 ’된장 스님이 종정 됐으니 귀추가 주목된다‘는 말도 있었다는데(웃음)

앞으로 계속 하겠다 하지 않겠다는 자체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합니다. 승려로서의 생활이었기에 종정이라는 소임과 결부시키거나 필요 이상으로 주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냥 태풍 불면 태풍 단속하고 가뭄 심하면 산불 예방하고 그러면 되겠지요. 형편 따라서 하겠습니다.(웃음)

Q. 평상심이 도라고 하셨습니다. 평생 이러한 교훈을 지키며 살아오셨다고 하셨는데, 왜 스님들은 평상심을 배우려고 좌선을 하시는지요. 우리가 오해하는 것이 아닌지요. 평상심,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평상심이 도인줄 모르고 있기에 하는 이야기입니다. 부처라야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범부가 부처 되는 것이지요. 중생심으로 보면 태도나 외면을 혁신하거나 바꾸는 것으로서 성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평상심이 도임을 깨치면 어떤 중생이든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평상심이 있고 부처될 소지가 있으니 알아서 해라 이겁니다. 손에 쥐어줘도 모르면 어쩔수가 없지요. 다만 평상심이 도임을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Q. 유난히 우리 문화에 관심과 애착이 많으신 듯 보입니다. 중국조사어록이나 경전보다도 우리 불교의 가르침을 강조하십니다.

A. 불교는 누구든지 깨달으면 부처 될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중국 사람만 부처가 되고 우리나라는 부족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중국고승 한국고승을 꼭 구분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엔 말마디 입당구법이라 했지요. 당나라에서 법을 구한 것인데요. 이것에 끄달리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부처라는 것은 마음에 있습니다. 마음 없는 사람은 없으니 부처 아닌 사람도 없지요.

특히 저는 우리 민족문화에 대해 자긍심을 갖고 있습니다. 중국이나 서구, 어느 문화보다 뒤지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저는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우리의 전통문화에 많은 관심을기울이고자 합니다.

Q. 60년 수행자로 살아오신 시간 중 가장 아름다운 시절은 언제라고 생각하시나요?

A. 시작부터 현재까지 나날이 좋은 시절이었습니다.(웃음)

Q. 한국사회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지켜야 하고 바꿔야 하는지 고민이 많은 듯 합니다. 21세기 조계종이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 지, 또 어떻게 나아가길 바라시는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A. 조계종은 한국불교 전통종교입니다. 전통은 시대가 바뀐다고 해도 급하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도 안되지요. 조계종이 나아갈 길이라는 것은 여태껏 걸어온 길입니다. 한국정신 문화의 주축이 되는 것이지요. 전통은 곧 자동차의 바퀴와 같습니다. 굳건한 기반이 되지요. 바퀴가 튼튼해야 상황에 따라 나아갈 수 있습니다. 흙밭이든, 자갈밭이든, 중심을 잡아주면 된다는 것입니다.

한국불교는 앞으로 우리민족 정신 문화의 중심 역할을 하고, 이 점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대통령 선거 이후 정권 교체가 있었습니다. 당선인이 활동하면서 새 정부를 준비 중인데요. 당부의 말씀이 있으시다면.

A. 당부의 말을 할 생각도 없고, 산승이 이래라 저래라 할 여지도 없습니다.

옛날 백거이란 사람이 불도가 어떤 겁니끼 물으니 ’제약막작 중선봉행‘,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함을 행하라고 했습니다. 세 살 아이도 아는 것이죠. 다만 세 살 아이도 알지만 팔십 노인도 행하긴 어렵습니다.

정부나 정치인 등을 보면 말을 얼마나 참 잘하지요. 사람들이 그들이 얼마만큼 그 말대로 행하나 보고 있을 따름입니다. 제가 이래라 저래라 당부해서 될 일도 아니고. 잘 하도록 두고 볼일입니다. 산승이 간섭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Q. 불교 집안에서 이판사판이라는 말을 하는데 이것과도 조금 다른 제3의 길을 살아오셨습니다, 앞으로 종정으로서도 역대 종정과는 다른 모습이 기대됩니다.

A. 개인으로 있을 땐 하고 싶은대로 했는데, 종정은 소임인지라 개인이 아니라고 그러지요. 그런 입장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금 당장 방향을 설정해놓고 있지 않습니다. 이제 종단의 여러 소임자 큰스님들도 계시니 소임을 맡아 혼자 하고자 하는대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겠지요, 다만 좋은 방안들을 같이 하고자 합니다. 종정이라고 해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대답이, 좀 시원찮겠습니다(웃음)

Q. 종교인의 역할 중 하나가 사회와 약자에 대한 고민과 연민인 것 같습니다. 우크라니아 피난민 전쟁 피해자 위로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옛날에도 지금도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많습니다. 세게적인 역사학자 이야기를 보니 ’지구상 어느 한구석이라도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고 그래요. 지구상에 사람이 많이 사니까 그만큼 갈등이 많지요. 저는 이래라 저래라 말하고자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스스로 느낀 것을 말하자면 개인도 가정도, 나라도 살림살이라는 것이 있지요. 이 살림살이란 말이 사실상 절집안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 의미를 이 시점에 널리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들 자기가 잘났다고 서로 각을 세우거나, 남은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상과 인상입니다. 인아상을 무너뜨리고, 공덕림을 길어야 합니다. 공덕의 숲은 복전입니다. 숲이 우거지면 곤층과 새 등 모든 짐승이 살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를 살림살이로 보고 적용하면 국가 지도자 등이 잘 살아야합니다. 그리고 반목과 질시를 지양해야 합니다. 그렇게 조성된 공덕림에서 나라도 백성도 편하지 않겠습니까.

코로나보다 더 나쁜 게 사람 마음입니다. 전쟁을 일으킨 이들은 악심으로 많은 이들을 죽였기에 참으로 안타깝니요, 상불경 보살이 필요한 지점입니다.

Q. 불교계 큰 어른으로서 새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A. 우리 불교도 새 정신으로 자정하고 새 마음 가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다르지 않습니다. 남의 탓만 하는 시대에서 내가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그뿐이지 산승이 새 정부에 특별히 바라고 요구하는 것은 없습니다. 답이 시원찮습니까(웃음)

Q. 출가 후 30대 초, 통도사 경봉 스님 주석할 당시 당대 선지식으로부터 공부에 대한 인가를 받으셨지요. 그런데 그 얘기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렇게 드러내지 않으셨는지 이유가 있다면.

A. 깨달음이 있었는 말은 한 적이 없지요. 대단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여기저기 알리고 말할 것은 못됩니다.

Q. 조계종은 종정예하에 대한 의전 방침으로 종정예경실을 운영하는 등의 체제가 정해져 있는데요. 스님께서는 예경실 제도를 그대로 수용하실 것인지, 혹은 다른 복안이 있으신지요.

A. 그것은 우리 불교계 내부의 일인데 말해야 합니까(웃음) 숨길 일도 아니긴 합니다만.

일반사회에서는 비서실이 있고 비서실장이 있다고 하는데 조계종은 종교단체이니 예경실, 예경실장이라고 명칭을 하고 사서가 있어 종정을 돕는다고 하니다.

제가 다른 곳에 거처하면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통도사에 살고 있기에 본사가 있습니다. 그러니 필요하면 본사 주지가 예경실장의 역할을 하면 되고 사중 스님들이 내 식구, 우리 식구이니 굳이 별도의 조직이 필요한가 생각하는 것이지요. 어찌보면 옥상옥이 될 수 있습니다. 총무원 역시 각자의 소임대로 잘 운영되니 순리대로 두면 문제가 없으리라 봅니다.

Q. 지금껏 봉축메시지는 조사어록 등 너무 어렵다는 시각들이 있습니다. 변화를 생각하시는지요.

A. 신구를 비교하게 되는 질문입니다(웃음) 저는 별다른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임할 뿐입니다. 미리 생각하거나 고민하지는 않습니다. 법문 역시 그때가 되어봐야 그에 맞는 법문을 하겠지요. 다만 사람들이 좀더 잘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그러고 보면 쉽게 법문을 해도 사람들이 어렵게 알아들을 수도 있는 문제이기에, 그에 대한 답은 묵답으로 대신하겠습니다.(웃음)

정리=송지희 기자 jh35@hyunb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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