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5 (수)

[병상포교일기] 가족이 그립습니다

삽화= 최주현
삽화= 최주현

지난 여름 한 간호사를 통해 인연이 됐던 환자에게 안부 문자가 왔다. ‘스님 가을비 내리면 더욱 가을이 깊어질 것 같아요. 환절기에 감기 유의하세요.’ 시를 읊조리는 듯한 표현들이 유난히 우수에 젖은 목소리여서 기억에 남는 환자였다.  

젊었을 땐 한창 잘나가던 사업가였는데 사기와 배신으로 모든 것을 잃고 그 충격으로 건강까지 악화되어 의지할 곳 없이 기초수급자로 살아가는 50대의 여성 환자였다.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언니와 동생이 있었지만 서로 소식을 끊고 단절된 채 살아온 지 10년이 되었다고 한다.

부모님의 산소에 오가며 자매들은 서로 흔적을 남기는 것으로 서로의 존재를 알리며 살아왔다고 한다. “그런데요 스님, 가족이 뭔지…. 너무 그리워요.”라고 말하며 환자는 한참을 숨죽여 울었고 나는 전화기 너머의 흐느낌에 가슴이 아팠다. 

참 무어라 위로를 해주어야 할지 난감하기 그지 없었다. 그저 환자가 토해내는 회한의 눈물과 이야기들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먼 세상에 가신 부모님들이 보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시겠어요. 힘을 내셔요”라고 위로의 말을 전하자, 환자는 눈물을 거두는 듯 훌쩍이며, “스님, 며칠 전 꿈에 아버지를 보았어요. 아버지가 큰 도장을 제게 주셨어요. 그 꿈을 꾸고 ‘거룩한 만남’과 연결이 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나는 가슴이 뭉클하였다.

빨리 몸을 추스르고 언니와 동생에게 전화를 먼저 걸어 보겠다고 다짐하던 떨리는 목소리가 엊그제인 듯 귀에 맴도는 것 같은데 그것이 벌써 지난 여름의 일이 되었다.

‘문자를 보낼 때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용기를 냈을까’라는 생각에 내가 먼저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환자는 한껏 들뜬 목소리로 소소한 일상의 소식들을 전해주었다. 불자들의 도움 덕분에 고장난 시계같던 ‘고장난 자신의 인생’이 힘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모처럼 웃음소리를 전했다. 

언니와 동생에게 연락을 취해 보았는지 물었더니 환자는 좀 망설이다가 “전화를 했었는데요. 나중에 문자가 왔어요. 지금은 아직 만나고 싶지 않다고 나중에 보자고요”하고 천천히 얘기했다. 나는 괜히 상처를 건드린 것 같아 미안했다. “아휴, 많이 실망했겠어요.” “아녜요. 스님, 그래도 문자를 보내왔잖아요. 저는 그것만으로도 좋고 감사했어요.” 전화기 너머에서 길게 그늘을 드리운 환자의 외로움이 전해졌다. 한 시인의 시구처럼.

산그늘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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