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5 (수)

[병상포교일기] 초발심시 변성정각

삽화= 최주현
삽화= 최주현

한 환자가 법당에 내려와 하는 첫 마디가 “스님 저는 죄가 많은가봐요”였다. 자초지종을 물으니 2년 사이에 4번의 수술과 자궁암을 비롯하여 유방암, 갑상선암까지 3개의 암을 갖고 있다고 하면서 눈물을 훔쳤다. 

“정말 얼마나 많이 놀라셨을까요? 고생 많으셨네요”하고 위로하자 환자는 눈물을 닦으며 말을 이어갔다. 처음엔 암이라는 병명을 듣고 사람에 대한 분노와 사회에 대한 비난으로 견딜 수가 없었다고 한다. 

“암수술을 한 환자들의 5인실 병실의 밤풍경은 낮과는 사뭇 달라요.” 자궁 적출하는 수술을 하고 자신의 슬픔과 고통에 매몰되어 있어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은 흐느끼는 환자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떤 환자는 온몸에 암이 전이되어 손을 댈 수도 없는 환자도 있었고, 어떤 환자는 암 3기라는 소리를 듣고 좌절에 빠진 환자도 있었다. 게다가 자신보다 젊은 사람도 있었다.  

“그 순간 나만 고통스러운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리고 비로소 종교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고 한다. 병원에 있다 보니 유튜브로 목사님의 설교도 듣고 스님들의 말씀도 듣게 되었는데, 특히 108배의 한 구절 한 구절을 들으면서 온 몸의 세포가 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단다. 

“저는 불교를 종교로 갖고 있는 친구에게 당장 전화를 했어요. 그랬더니 그 친구가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만 하라고 하는 거예요.” 그 뜻이 무엇인지를 모르지만 특히 방사선치료를 받으러 들어가면 여기저기 가렵기도 하고 몸이 뒤틀리는데 그 때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에 집중하고 있으면 참을 수 있었다.

“유방암과 갑상선암까지 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땐 정말 기가 막혔어요. 그런데 다행히 0기에서 1기 사이라고 합니다. 암이 왜 저는 3개나 있는 걸까요?”  
“저는 기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0~1기에 발견되는 것은 정말 드문 일입니다.” 

환자는 나와 눈을 마주친 후 의사도 같은 말을 했다고 되뇌이며 눈물을 훔쳤다. “뜻도 모르고 열심히 부른 염불 덕분에 가피를 입었네요”라고 내가 큰 소리로 말하자 환자는 ‘가피’가 뭐냐며 눈이 동그래졌다.

‘초발심시 변성정각(初發心時 便成正覺)’이 떠올랐다. 뜻도 모르고 불렀지만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부른 그 간절함과 순수함이 문득 깨달음을 이루듯 기적을 가져온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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