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윈테 재한미얀마학생연합회장
한국 대기업서 12년간 근무
코로나 여파로 퇴직한 이후
미얀마 학생들 이끌며 활동
어려움·고통, 명상으로 극복
최근 ‘오징어게임’이라는 넷플릭스 드라마가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은 제 각기 기구한 삶의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다. 금전적인 큰 빚을 져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게임의 초대장이 발송된다. 몇 십억이 넘는 큰 빚을 갚지 못 할 것이라는 불안감, 사회에서 다시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없을 거라는 불안감, 악덕 업주를 만나 고향인 파키스탄에 돈이 없어 돌아가지 못 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그들을 게임으로 이끌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우리 삶에서 불안함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닫게 되었다.
누구나 한 번쯤 불안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엉뚱한 선택을 했던 경험이 있다. 불안이라는 감정은 우리 삶에 다양한 영향을 미친다. 불안함을 극복하기 위해 긍정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불안함을 극복하지 못하고 심해지면 이유 없이 불안을 느끼는 불안장애를 겪는 사람들도 있다.
스무 살 초반 극단적인 다이어트 스트레스로 인해 ‘체중증가’라는 불안감을 겪었던 시절이 있다.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 108배를 100일 동안 꾸준히 한 적도 있다. 절과 사경을 통해 불안함을 알아차리고 안심(安心)을 되찾은 후 부처님 법에 정말 감사함을 느꼈다. 이번 연재를 하면서 주변의 미얀마 사람들에게 ‘불교를 믿어서 인생에서 가장 큰 도움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자주 했다. 그 때마다 ‘편안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공통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미얀마 사람들이 편안한 마음을 얻기 위해 공통적으로 하는 것이 명상이다. 호흡에 집중하며 과거와 미래에 갔던 혼란스러운 마음을 현재로 되돌려 편안한 마음을 느낀다. 이러한 명상을 일상생활 속에서 늘 수행하며 혼란스러운 미얀마 정세를 위해 한국에서 헌신하고 있는 재한미얀마학생연합회 저윈테 회장을 이번 연재를 위해 만났다.
그의 이력을 들으면서 가장 놀란 것은 한국 사람들도 입사하기 어려운 신세계에서 12년 동안 근무를 한 점이다. 2008년에 입사해 2020년까지 근무를 하다가 코로나로 인한 경기침체로 명예퇴직을 했다. 또 하나 놀라운 점은 그는 학생도 아닌데, 한국에 거주하는 미얀마 유학생들을 돕기 위해 무보수로 재한미얀마학생연합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쿠데타 반대 시위와 학생들을 돕기 위해 사방팔방 자신의 사비를 들여 활동하는 그를 보면서 많은 감동을 받기도 했다. 특히 자신의 삶은 불교가 전부라는 그의 말을 듣고 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미얀마 사람들에게 정말 불교는 그들의 전부이자 보물과도 같이 소중한 가치이다. 미얀마에서 2007년 샤프론 혁명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시위에 함께 동참했던 그에게 현재 미얀마 쿠데타 상황은 과거의 데칼코마니와도 같다. 한국에서는 샤프론 혁명 때와는 달리 미얀마 승가 전체가 군부편에 선 것처럼 언론에 보도된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서 들은 미얀마 내부 현지 승가 상황은 달랐다.
“군부 편으로 돌아선 일부 승가의 행동이 미얀마 승가 전체로 평가받는 것 같습니다. 군부 편에 서서 기득권을 유지하는 스님들은 소수입니다. 미얀마 국민들과 함께 거리로 나와 반군부 의사를 밝히기도 하고 미얀마 전국민의 안전 또한 기원해 주고 계십니다. 이로 인해 많은 스님들이 군부에 구속되었습니다.”
불교가 그와 미얀마 사람들에게 있어 삶의 시작이자 마지막을 함께 하지만 반드시 모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불교적 가치관이 현대 미얀마 사회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간혹 이러한 불교적 가치관이 빠른 현대 사회의 흐름의 유입을 막는 부정적인 역할을 할 때도 있다며 그는 부처님께서 설한 중도(中道)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처님 말씀은 중도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중도의 가르침을 적용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생에 있어 너무 느슨하게도 살지 말고, 너무 타이트하게도 살지 말고, 중도의 길을 따르라는 부처님 말씀을 가장 좋아하지만, 실천은 늘 쉽지 않습니다.”
한국의 동자승 출가와 같이 미얀마에서도 신쀼의식이 있다. 그에게 솔직하게 신쀼의식을 했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냐고 물어봤는데 매우 솔직한 대답이 돌아왔다.
“저도 불자라 어렸을 때 신쀼의식을 치렀습니다. 하지만 너무 어릴 때 한 거라 저녁을 못 먹어 힘들었다는 기억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미얀마의 남자들은 어릴 때 신쀼의식을 하고나서 성인이 된 다음에 야한칸의식(7일~60일동안 부처님께서 수행한 것처럼 같은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 더 엄격한 수행)을 다시 합니다. 미얀마에 다시 가게 되면 꼭 야한칸 의식을 할 계획입니다.”
한국에서는 출가를 한다고 하면 사회적으로 파격적인 선언으로 받아들인다. 단기 출가를 하는 일도 사회적인 분위기에서 쉬운 일이 아니다. 미얀마 사람들처럼 부처님의 삶을 인생에 있어서 잠시라도 살아보는 일이 모두에게 찬탄 받는 일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미얀마를 생각하면 빠질 수 없는 키워드에 ‘불교’ ‘명상’ 그리고 ‘아웅산수찌’ 국가고문이 있다. 그와의 인터뷰에서도 그녀의 이름은 빠지지 않고 꼭 등장했다.
“미얀마의 존경하는 고대 왕과 대통령은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하지만 존경하는 분은 아웅산수찌 국가고문님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인이 누릴 수 있는 부와 명예 그리고 가족, 심지어 본인의 자유 혹은 목숨까지 받쳐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을 통해 미얀마 국민들의 아웅산수찌 국가고문을 향한 존경심을 느낄 수 있었다. 현재 그녀의 정확한 위치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현재 미얀마 쿠데타 상황에 대해 미얀마 국민들이 함께 저항할 수 있는 힘의 근원에는 아웅산수찌가 있는 점은 확실하다.
한국 불자들에게 미얀마 불교에 대해 어떤 점을 알리고 싶냐는 질문에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한국 사람들은 불교라고 하면 다 같은 불교인줄 알고 있는 게 대부분입니다. 사실은 동남아 쪽의 상좌부 불교권과 동북아시아(한국,일본,중국)의 대승불교하고 달라도 너무 다른 불교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그의 말에 한 가지 일화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미얀마에서는 스님들이 주최하는 행사를 하면 절에서 숙소, 식사등 모든 것을 제공해준다. 불자들은 승가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참석하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신행생활을 하던 미얀마 불자들이 한국에 오면 혼란스러운 경험을 하게 된다.
아세안 불자들의 참석이 필요한 행사가 지방에서 열린 적이 있다. 아침 일찍 차로 대여섯시간을 달려 가야하는 먼 거리여서 하루 전날 주최하는 절이나 절 근처에서 잘 수 없냐는 요청을 했지만, 주최하는 측의 여러 사정으로 인해서 잘 수가 없다고 했다. 이러한 사소한 점에서부터 미얀마 불자들은 미얀마 불교 문화와 한국 불교 문화의 다른 점을 느껴서 혼란스러워 하는 점을 본적이 있다.
대승 불교권인 우리는 간혹 ‘한국 불교의 세계화’를 이야기 하지만 한국 불교의 세계화를 이루기 위해서 다른 나라의 불교 가치관과 문화에 대해 얼마나 깊은 이해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돌이켜보는 뜨끔한 그의 대답이었다. 한국사람보다 더 한국사람다운 그는 올해 민주평통 외국인스피치 대회에서 남북한의 통일과 미얀마의 현실에 대한 스피치를 해서 1위를 한 경험도 있다.
“미얀마의 평화가 중요한 만큼 남북한의 평화통일도 중요합니다. 미얀마와 한반도의 평화가 곧 세계의 평화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자비가 모든 평화의 첫 걸음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의 대기업에서 12년을 근무하고 코로나로 인해 일자리를 잃었지만 그는 명상을 통해 우울한 마음에 깊게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어려운 조국의 사정을 극복하기 위해 미얀마 유학생들을 대표해 회장직을 맡고 있는 그에게 부처님의 지혜와 복덕이 가득하길 바란다. <양곤대 박사과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