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레이몬 교수
유학 준비중에 힘들게 찾은
미얀마어 학습 교재의 저자
언어와 문화적 이해 필수적
통번역계 손꼽히는 ‘능력자’
미얀마 유학을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미얀마어를 배우는 일이었다. 제2외국어로 많은 사람들이 공부하는 일본어, 중국어, 베트남어와는 다르게 미얀마어를 배울 수 있는 학원도 과외선생님도 교재를 찾는 일도 무척 어려웠다.
한국 사람들 중에서 미얀마어를 잘 하는 사람을 찾기는 매우 어려운 편인데, 반대로 미얀마 사람들 중에서 한국어를 잘 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간혹 한국인 비즈니스맨들과 미얀마 통역사 사이에서 트러블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양측의 입장을 듣다 보면 결국 ‘문화 차이’에서 오는 서로에 관한 오해였다.
이러한 고충들을 직접 듣거나 마주하기 전까지는 ‘통역’이라는 일이 언어만 잘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통역을 정말 잘 하는 사람은 ‘언어’는 기본이고 ‘문화’ 그리고 그 나라의 ‘사회 시스템과 대화법’까지 잘 아는 사람이며 이러한 폭 넓은 이해가 바탕이 된 통역이 될 때 의뢰인과 문제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국 사람들이 간혹 ‘한국어는 잘 하지만 한국 문화는 잘 모르는 미얀마 사람보다는 한국어는 좀 서툴러도 한국 문화를 잘 아는 통역사를 소개해 줄 수 있니?’라고 요청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매우 난감했다. 왜냐하면 그런 통역사가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자신 있게 추천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이번 칼럼의 주인공인 레이몬 교수이다.
그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첫 미얀마어 교재 때문이었다. 많지 않은 미얀마 교재 속에서 그의 책은 초보자가 포기하지 않고 알기 쉽게 미얀마어를 배울 수 있게해 준 유일한 책이었다. 한 번쯤 만나면 직접 미얀마어 수업을 요청하고 싶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주한미얀마대사관의 통역관으로 일하고 있어 부탁을 해도 바쁜 업무로 인해 들어줄 수 없었다.
한 번은 그와 함께 미얀마어를 하는 한국인 채용 심사위원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비로소 소문으로만 듣던 그의 진가를 몸소 느끼게 되었다. 그동안 만나고 일했던 미얀마 사람들은 아무리 일을 잘 해도 소소한 문화차이를 느낄 수 있었는데 그와는 단 한 순간도 느끼지 못했다.
그는 12년 전 한국에 오기 전 코이카에서 미얀마어 강사로 활동을 하고 한국 드라마의 번역가로 1년 반 정도 일했다. 만약 그가 드라마의 번역가로 활동하지 않았다면, 미얀마 사람들 마음에 한국 드라마가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할 정도였다.
2008년도에 한국정부초청장학생으로 입국하여 석사과정을 마친 후 주한미얀마대사관에 한국어 통역관으로 근무를 하면서 연세대학교 박사과정 전액장학금을 받았다. 박사과정을 작년에 졸업한 후에 현재는 한국의 모 대학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수 생활을 새롭게 시작했다.
한국에서 미얀마의 불교문화에 관해 발표할 기회가 생기면 발표자료를 만든 후에 꼭 그에게 감수를 부탁한다. 한 번은 그가 나에게 추가하면 좋을 내용을 말 해준적이 있다. ‘재희씨, 미얀마에서는 왜 일찍 점심 준비를 하는 줄 알아요?’라는 질문에 ‘아침식사를 일찍 해서 그런가요?’라고 대답했다.
“불단뿐만 아니라 스님들에게 점심 공양을 올려야 하기 때문에 점심 준비를 이르게 해요. 집마다 불단이 있고 공양을 올리기 때문에 대부분 가정집의 일상이 비슷해요. 주 2회마다 꽃을 사서 불단에 꽃 공양을 하는 것도 모두가 하는 일이며 사찰에 가지 않아도 대표적인 불경을 보지 않고 독송할 정도로 생활화되어 있어요. 매일 잠자기 전에 불단 앞에 가서 기도를 하는 것도 부담 없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예요. 재희 씨에겐 당연한 미얀마 문화지만,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모를 것 같아요.”
빙그레 웃으며 이유를 설명해주는 그의 대답에 미얀마 일상생활은 ‘삼보(三寶)’를 예경하는 마음과 함께하는구나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한국드라마 번역 담당으로
한류열풍에도 크게 기여해
“불교 강점은 마음의 평화”
일상에서 꾸준한 명상당부
미얀마 쿠데타가 터지면서 그와 대화를 나눌 일이 예전보다 더 많아졌다. 쿠데타가 터지면서 제일 속상했던 점은 미얀마의 고승으로 유명했던 한 스님이 살생을 무자비하게 일삼는 군부의 편으로 돌아섰을 때다.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미얀마 문화 속 불교적 가치관에 대해서 현대적 의의를 톺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교수님, 미얀마 불교문화가 현대사회를 이끄는 데 어떠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에 양날의 검과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불교적 가치관은 미얀마의 국민성을 느긋하게 하고 욕심을 덜 갖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 발전에 있어 국민의 열정과 노력이 한국에 비해 천천히 진행되는 면이 있어요. 한국은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현대사회에서 개인들의 마음의 병이 많이 생긴 걸로 알고 있어요. 미얀마 사회에서 불교 사상은 개인의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주는 데 반해, 진보적인 사회 변화를 이루는 데 지장을 주는 면도 있어요. 두 나라의 장점을 서로가 배우면 단점이 상쇄될 것 같아요. 미얀마인들은 한국인들의 열정과 노력을 배우면 좋을 것 같아요. 한국인은 열정이 대단한 국민성을 갖고 있죠. 그로 인해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대신 한 가지를 잃은 것 같습니다. 바로 ‘균형’입니다. 균형 또한 불교의 가치입니다. 때로는 ‘방하착(放下着)’ 하는 마음을 수용해 보시기를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동서양의 유명한 기업인들도 명상을 이제서야 시작하는 걸 보면 경제성장과 마음성장을 균형 있게 이루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님을 추론할 수 있다. 어느 가치에 좀 더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서 미얀마 불교문화가 갖는 현대적 의의가 달라 질 수 있음을 그의 대화를 통해 생각할 수 있었다.
그는 나에게 불교문화 속에서 현재 미얀마 상황과 세계의 어려운 상황에 필요한 가치가 있다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바로 ‘평화’였다.
“불교가 주는 가치는 마음의 평화입니다. 패배 속에서 나를 구하는 돌파구이고요. 마음을 다스리는 데 불교의 수용 정신 만한 것이 없는 것 같아요. 미얀마 사람들은 패배해도 극단적인 방법을 잘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다시 한 번 얘기하자면 불교는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줍니다. 수용을 배우게 되고 순리를 생각하게 해줍니다. 심적으로 의지가 필요할 때 도움이 됩니다. 그게 좋다면 좋은 건데 단점으로는 무조건적인 수용은 발전이 없다는 데 있어요.”
그리고 그는 마음의 평화를 위해 ‘명상’을 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존경하는 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저는 파욱 스님을 가장 존경합니다. 재희 씨도 기회가 되면 멀르먀잉 파욱 명상센터에서 명상체험을 해보세요. 파욱 스님을 존경하는 이유는 사람을 멀리하시고 과시를 싫어하세요. 그리고 유명세를 타지 않으시고 신념에 따라 평생 일관된 가르침을 보여주시고 욕심이 없으셔서 입니다. 제자에게 사찰을 맡기시고 권한을 주고 사찰 운영에 관여를 안 하시는 것 같아서 좋아합니다.”
그리스 로마신화에는 신과 인간들 사이의 메신저 역할을 하는 ‘헤르메스’라는 신이 있다. 레이몬 교수와 대화를 하면서 그가 한국과 미얀마 사이의 보이지 않는 언어와 문화의 벽을 자연스럽게 넘나들며 양국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선사는 도심에 없고 사람이 드문 깊은 산골에서 수행해서 우리가 잘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한국어 실력과 한국 문화이해 능력은 누구보다 뛰어나지만 스스로 드러내려 하지 않아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미얀마 쿠데타 상황이 인과법에 따라 종식된 후 그가 추천해준 파욱 명상센터에 가서 명상을 하며 그와 나눈 대화를 추억하며 웃는 날이 오길 기원해본다.<양곤대 박사과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