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37 (수)

한국서 미얀마가정 보듬는 자비보살

6 킨메이타 수원이주민센터 대표

킨메이타 대표는 한국 생활이 익숙하지 않은 채 혼란한 미얀마의 현실을 마주한 미얀마 사람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다독이고 위로해주고 있다.
킨메이타 대표는 한국 생활이 익숙하지 않은 채 혼란한 미얀마의 현실을 마주한 미얀마 사람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다독이고 위로해주고 있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이라고 학교에서 배웠다. 하지만 대학교를 들어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우리나라도 ‘단일민족’이 아니라 ‘다문화 사회’임을 점점 느끼게 되었다. 동년배 중에는 다문화 가정이 많지 않지만 4~5살 어린 후배들을 만날 때면, 우리 주변에 다문화 가정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주로 만났던 다문화 가정은 베트남, 캄보디아, 중국, 일본이었다. 미얀마에서는 미얀마 여성들과 결혼하는 한국 남자들이 꽤 있기 때문에 미얀마-한국의 다문화 가정을 볼 수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한국-미얀마 다문화 가정을 쉽게 볼 수 없었다.

미얀마 쿠데타는 정말 나쁜 일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로 인해 한국에서 살고 있는 다양한 직업군의 좋은 미얀마분들을 만나게 되었다. 경기아트센터에서 ‘미얀마의 봄’이라는 문화제가 열리기 전 날, 최종 연습을 하기 위해 모두가 모인 날 처음으로 수원이주민센터 킨메이타 대표를 만나게 되었다. 맑고 선한 두 눈을 가진 그와 대화를 하는 내내 알 수 없는 편안함을 느꼈다. 내가 한국에서 만난 최초의 한국-미얀마 다문화 가정이었다.

그는 수원에서 남편, 아들 두 명과 함께 오순도순 살면서 수원이주민센터 대표직을 맡고 있다. 이 센터는 이주여성 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다문화강사와 세계시민강사 파견 사업을 진행하며 이주민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 또한 한국 생활에 관해 필요한 상담도 지속적으로 진행하며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이주민들이 한국생활을 편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 활동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서로에 관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의 논문 이야기를 하다가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불자’라는 사실이었다. 미얀마 국민들의 대다수가 불자이긴 하지만, 미얀마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기 때문에 천주교, 기독교, 이슬람 등 다양한 종교를 가진 미얀마 국민들도 있어서 먼저 밝히기 이전에는 어떤 종교를 믿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가 없다.

수원이주민센터에서 진행한 미얀마 프로그램.
수원이주민센터에서 진행한 미얀마 프로그램.

그의 삶의 첫 걸음도 불교에서 시작되었다. 불자인 부모님 밑에서 자란 모태불자다. 아직까지 불법의 환희심 중 잊을 수 없는 일은 막내 동생의 신쀼의식을 부모님 대신 치뤄준 날이다. 부모님의 은혜를 남동생의 신쀼의식이 거행되는 날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는 마음이 들어서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그의 불심이 얼마나 깊은지 느낄 수 있는 일화였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나중에 자식을 낳는 인연이 생긴다면 나도 미얀마 사람들처럼 자식들이 10살이 되는 해에 머리를 깎이고 절에 들어가 스님들과 일주일 혹은 한달 정도 함께 생활하는 신쀼의식을 거행해주고 싶다는 간절한 원이 생겼다. 타국에서 적응해 사는 것은 아무리 옆에 좋은 사람들이 있어도 때때로 외로운 법이다.

그는 외롭거나 마음이 복잡할 때 한국 사찰에 찾아가 기도를 하거나 명상을 한다. 그러고 나면 마음 한 켠에 찾아왔던 번민과 외로움이 정화되는 것을 느낀다. 그의 말을 듣다 보니 유학생활 중 힘들거나 외로울 때마다 찬란한 황금 빛이 감도는 쉐다곤 파고다에 가서 기도하던 나의 모습과 교차 되었다.

“선생님에게 불교는 어떤 의미인가요?”라는 질문을 하자 그는 “불교는 인생의 동반자”라고 답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부처님께서 설하신 자비를 바탕으로 매순간마다 삶에서 평화로운 선택과 행동을 하려고 노력한다는 말에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자비로운 마음을 갖는 것 이외에 부처님께서 설하신 오계를 최대한 잘 지키려고 노력한다고 하는 그의 말에 스스로의 어리석었던 생각을 반성하게 되었다. 가장 기초적이면서 근본적인 오계와 같은 것은 너무 쉽다며 한 때 불교의 심오한 교리만이 진리라고 생각하던 편협한 생각을 했던 이십대 초반의 과거의 내가 생각났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갈수록 ‘오계’를 지키고 ‘자비심’을 갖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고 인생에 있어 중요한 일인지 깨닫고 있다.

미얀마 문화 속 불교의 가치가 가장 잘 녹아 있는 것이 ‘기부문화’라고 했다. 쿠데타가 어느덧 100일이 지난 지금 힘든 시간 속에서 미얀마 국민들이 버틸 수 있었던 부분에 국민들 서로가 서로를 돕는 기부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킨메이타 대표는 미얀마 사람들에게 정서적인 안정감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킨메이타 대표는 미얀마 사람들에게 정서적인 안정감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 여러 시위 활동 뿐만 아니라 자신이 한국어로 번역한 미얀마 전래동화 책인 ‘마운포와 호랑이’와 ‘왜 물소는 윗니가 없을까?’의 수익금을 미얀마 현지 민주화 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 생활의 노하우와 따뜻한 마음을 바탕으로 미얀마 쿠데타 상황으로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는 미얀마 사람들에게 정서적인 안정감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본인 스스로도 쿠데타에 대한 많은 분노와 좌절감이 있을 텐데 오랜 명상을 통해 다져온 평정심과 자비심을 바탕으로 한국 생활이 익숙하지 않은 채 혼란한 미얀마의 현실을 마주한 미얀마 사람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다독이고 위로해주고 있다. 불교의 교리만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진리를 삶에서 실천해야 한다고 그는 굳게 믿고 있다.

하지만 이번 쿠데타를 겪으면서 ‘불교의 나라’인 미얀마에서 스님들의 목소리가 예전만큼 적극적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큰 스님들의 감금이 ‘리더’의 부재를 만든 것일 수도 있다. 그는 이번 일이 끝나고 나면 미얀마의 종교 개혁이 일어날 수 있음을 조심스럽게 시사했다.

미얀마가 오랫동안 불교국가이긴 했지만, 민주주의 국가로 거듭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자유를 존중하고 서로의 종교 문화가 다른 점을 이전보다 더욱 잘 이해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불교는 자비를 기본으로 해서 평화적인 실천이라고 봅니다. 제 생각에 미얀마인들이 마음의 평화를 실천하는 것이 바로 불교의 가치라고 봅니다. 욕심 없고 자비를 삶에서 수행하는 생활이라 생각합니다.”

그의 말이 오랫동안 가슴 속에서 울려 퍼졌다. 미얀마에서 만났던 다수의 미얀마 지인들이 했던 말들과 동일한 말이었다. 한국에서 다문화 가정의 어머니로 살면서,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는 이주민들을 위한 정착 지원활동을 하는 킨메이타 대표님의 행(行)에서 불법의 향을 느낄 수 있었다.

미얀마 사람들의 대다수의 삶의 나침반인 ‘오계’와 ‘자비’가 아름답게 사회 속에서 퍼지던 나라였지만, 소수 사람들의 삼독으로 인해 현재 미얀마의 삶은 모든 것이 파괴되어 가고 있다. 스스로 지은 일의 과보를 받는 ‘자업자득(自業自得)’의 결과가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나타나, 미얀마 사태가 파사현정(破邪顯正)으로 올바른 길로 나아가길 부처님오신날인 5월을 맞아 더 열심히 기도 해야겠다. 미얀마에 다시 좋은 날이 올 때 킨메이타 대표님이 추천해주신 천불천탑의 신비가 가득한 바간에 진득하게 머무르며 명상을 하는 날을 꿈꿔본다.〈양곤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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