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5 (수)

스타 검사출신 CEO…강원랜드 ‘명상힐링 1번지’로 / “걸으면서 사유 성찰, 불교명상 매력”

함승희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변호사(前 강원랜드 사장)

드라마 ‘모래시계’ 속 실제 검사
1년 간 조직 폭력배 280명 구속
1996년 로펌설립하고 변호사로
2000년 제 16대 국회의원 당선
부패방지 자금 세탁방지법 제정
국민자유 침해 테러방지법 반대

2008년 집단지성 ‘포럼오래’ 설립
“국가의 수준 국민의 수준에 달려”

2014년 강원랜드 대표로 취임해
2016년 세계명상대전 개최 성황
명상대전에 3백여스님 무료초청
하늘길에 고승 핸드 프린팅 설치

대학시절 상원사·청평사서 공부
서산지청장 때 만공탑 매일 참배
“불교, 모든 중생 무차별한 종교”

함승희 변호사는… 1951년 강원도 양양군에서 태어났다. 서울양정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 후버 연구소에서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후인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검사로 근무하였다. 1993년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 율곡사업 비리 등을 파헤치며 주목받았다. 1996년 법무법인 대륙을 창립했으며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노원구 갑 선거구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후 새천년민주당에서 원내부대표를 역임했다. 2014년부터 3년 간 강원랜드 대표이사도 맡았다. 현재는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변호사를 맡고 있다.사진=박재완 기자
함승희 변호사는… 1951년 강원도 양양군에서 태어났다. 서울양정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 후버 연구소에서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후인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검사로 근무하였다. 1993년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 율곡사업 비리 등을 파헤치며 주목받았다. 1996년 법무법인 대륙을 창립했으며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노원구 갑 선거구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후 새천년민주당에서 원내부대표를 역임했다. 2014년부터 3년 간 강원랜드 대표이사도 맡았다. 현재는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변호사를 맡고 있다.사진=박재완 기자

 

드라마 ‘모래시계’와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검사는 많은 조직폭력배들을 소탕한다. 드라마와 영화 속의 검사는 실제 검사를 모델로 하고 있다. 지금은 변호사인 함승희 前 검사다. 당시 1년 동안 280명의 조직폭력배를 검거한 기록은 기네스북에도 올라있다. 현대한국사에 전무후무한 역사를 쓴 함승희 변호사는 국회의원과 강원랜드 사장을 역임하면서 현대한국사에 또 다른 역사를 보태었다. 특히 ‘카지노’로 대변되는 강원랜드의 사장으로 있으면서 새로운 역사를 썼다. 도박하는 곳에서 세계 불교성자를 초청한 세계명상대회를 열어 대성공을 거뒀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복합 문화공간으로의 지평을 넓혔다. 또한 그의 인생길 곳곳에서 불심의 흔적도 많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만나봤다. <편집자 주>

Q. 첫 질문은 특수부 검사시절 얘기부터 해보겠습니다. ‘함승희’라는 이름 석 자를 세상에 알린 계기여서 입니다. 당시 ‘함승희’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드라마 ‘모래시계’ 속 검사,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 등장하는 조직폭력배 소탕 검사의 모델이었는데요. 그 증거로 1년간 조직폭력배 280명을 구속시키며 기네스북에도 이름을 올린 경력을 갖고 있어서입니다. 전무후무한 대단한 기록입니다. 그 당시 어떻게 이런 기록이 가능했는지요?

A. 조직폭력배는 원래 검사의 수사 대상이 아닙니다. 경찰이 하는 거죠. 그런데 1989년 정부에서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걸 선포했어요. 그 당시 집값이 많이 오르고 노동운동이 전에 없이 격해지는 등 사회가 많이 혼란스럽고 민생과 치안이 좋지 못했어요. 그런데다가 당시에 승합차를 이용해 부녀자들을 납치하는 인신매매 범죄로 사회분위기가 많이 불안하고 어수선했죠. 그래서 정부가 국면전환을 위해 ‘민생’ 쪽으로 방향을 정하고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전국 검찰에 민생침해 사범 위주로 수사 해달라고 요청했어요. 그래서 특수부를 ‘민생 특수부’로 이름까지 바꾸었지요. 그때부터 폭력배 검거를 시작하게 됐어요. 그 때 유명한 조직폭력배 두목들도 많이 검거했죠.

Q. 1992년 대검찰청 중앙 수사부 검사를 역임하는 등 검찰 내에서 승승장구하며 비교적 탄탄대로가 보장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는데, 돌연 1996년 법무법인 〈대륙〉을 창립하고 변호사로 전업하신 이유는 무엇인지요?

A. 제가 법무법인을 설립하기 전, 마지막으로 동화은행장 비자금 사건을 수사했어요. 그것은 당시의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해야 하는 일이라서 정치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있어서 수사 결과와는 별개로 담당 검사는 어떤 대가를 치를지 모르는 상황이 됐죠. 수사가 마무리(?)되고 저는 서산 지청장으로 발령받게 되는데, 표면적으로는 승진발령이지만 제 자신은 그렇게 생각할 수 없는 인사였죠. 아무튼 지청장으로 발령이 났으니 이제 수사 검사는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거죠. 그때부터는 부장검사로 일해야 하는데 그때 제 나이가 40대 초반이었습니다. 수사는 평검사가 하는데 수사검사로서는 할 일 다했다고 생각했죠.

Q 2000년에는 제16대 국회의원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서울 노원갑에 출마, 당선되고 정치인으로 변신하였는데요. 정계에 진출하게 된 특별한 연유가 있으신가요?

A. 변호사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는데, 모 출판사의 권유로 검사 시절 이야기를 자서전 형식으로 출간하게 됐어요. 그런데 그 책이 나오자마자 정치권의 예민한 사안에 휘말리게 됐어요. 검사 시절 이야기이다 보니 정치권에서 주목했던 것 같은데, 책에 언급되지도 않은 사안을 교묘하게 이용해 사회적 이슈를 만들더군요. 실제 책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언급 자체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일이었어요. 그 바람에 제 책은 많이 팔렸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가 그 이슈의 중심에 서게 됐죠. 그래서 한 2년 동안 해외로 나가서 공부를 하기로 하고 스탠포드, 하버드 등 유명 대학의 컨퍼런스를 찾아다니며 공부하고 돌아왔죠. 그런데 돌아오자마자 정치권에서 국회의원 출마 제의를 받게 됐어요. 하지만 전혀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라 일언에 거절했죠. 제가 여러 국회의원을 수사하고 구속까지 했던 사람인데, 제가 국회의원이 된다는 것은 정말 난센스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정치권의 권유가 집요했어요. 제가 거듭 거절을 하니까 나중에는 당시 대통령까지 나서서 권유해 왔어요. 그래서 결국은 국회의원 출마를 하게 됐고, 우여곡절 끝에 당선됐지요.

Q. 정치를 하면서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공적이라면 어떤 것을 꼽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평소 정치철학이라고 강조하는 좌우명이 있으면 들려주시지요.

A. 자금세탁방지법 제정한 것이 제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부패를 견제할 수 있는 대표적인 법률을 꼽는다면 금융 실명제와 자금세탁방지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법이 우리나라의 부패를 견제하는 양 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법의 제정과는 반대로 법안을 폐기했던 일도 있었는데, ‘테러방지법’이었습니다. 당시 911테러가 발생해서 국제적으로 테러에 대한 걱정이 많을 때였어요. 법안의 취지는 좋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니 테러를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국민의 자유가 지나치게 침해당하는 것이어서 반대했어요. 결국 테러방지법은 상정되지 못했죠. 그 두 가지가 국회의원 하면서 가장 잘 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법의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국민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건 옳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제 정치철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2008년 5월 ‘포럼오래’를 만들었습니다. 설립 취지문에서 ‘대한민국은 자유주의를 기본이념으로 하는 민주공화국이라는 국가 정체성을 지켜나가면서 시장만능주의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경제적 병리 현상들을 바로 잡아야 국가의 지속발전이 가능하다는 논리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고 밝히고 있는데요. 어떤 모임이며 현재까지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요?

A. 오늘의 문제를 분석하고 미래의 대한민국을 준비한다는 뜻의 오래포럼은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개방적 소셜네트워크를 지향합니다. 학연, 혈연, 지연, 직장, 종교 등을 인연으로 하는 폐쇄적 네트워크는 패거리문화로 이어져 사회적 통합을 저해하고 부정부패를 조장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오래포럼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 갈 민주엘리트를 양성합니다. 오래포럼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정책 과제를 개발하고, 다양한 회원들의 토론과 평가를 거쳐 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정책대안을 만들어 내는 집단지성입니다. 또한 인간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바탕으로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의 인간다운 삶을 증진시킴으로써 더불어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사회적 책임 공동체입니다.

3년 전부터는 포럼의 기본 가치인 자유주의, 번영, 작은 정부, 강한 국가 등 포럼의 4대 지표에 부합하는 도서를 선정해서 유튜브로 저자 특강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국가의 미래는 국민의 수준에 달렸다고 생각해서 입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가 각성하고 대중을 계몽하려는 것이죠.

Q. 2012년 포럼오래의 첫 번째 책 〈세상을 바꿔라〉 발간 이후, 국가운영을 위한 통치구조와 제도, 정책을 다룬 두 번째 시리즈에 이어, 국가개혁을 위한 각론적 주제를 중심으로 한 〈세상을 바꿔라Ⅱ〉도 펴냅니다. 대한민국의 현실은 개혁적 사고와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개혁주도 세력도 없고 한 시대의 역사를 책임질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도 부재한 상황입니다. 어떻게 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A. 세상을 바꾸는 데 있어서 제가 늘 주목하는 것은 국민의 수준입니다. 100년 전 일본이 문화적으로 우리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우리보다 못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크게 발전하게 되고 우리는 그들의 식민지가 됩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들과의 격차가 여러 방면에서 존재합니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문제의식을 지닌 객관적인 역사관의 부재와 스스로를 제대로 평가하는 문제의식의 부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의식의 변화는 지배층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수준이 곧 국가의 수준인 것이죠. 결국 세상이 바뀌는 문제는 우리 국민이 바뀌는 것으로,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첩경이고, 오래포럼이 그런 역할을 하자는 것이죠.

일본과 우리가 여러 면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런 의식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아주 오래 전(메이지 유신)부터 번역서 출간사업, 독서권장 등 국민의 지적 수준 향상을 위한 국가적 차원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Q. 2014년에는 강원랜드 대표로 취임합니다. 가장 먼저 임직원에게 던진 화두가 ‘인무원려난성대업(人無遠慮難成大業)’이었죠. 안중근 의사가 중국 뤼순 감옥에서 쓴 이 글귀는 ‘멀리 생각하지 않은 사람은 큰일을 이루기 어렵다’는 뜻인데요. 아마도 당시는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폐특법)’ 종료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강원랜드 임직원이라면 10~20년을 내다보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결과적으로 임기동안 이 소신이 잘 반영됐나요?

A. 강원랜드의 취지는 ‘폐광’이라는 갑작스러운 시대적 변화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고 대안 없이 힘겨워해야 했던 해당 지역의 30만 노동자와 지역주민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의 현실만을 보지 말고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있는 것들을 계획하고 실천하자는 뜻으로 했던 말이었습니다. ‘카지노’만 생각하면서 살 수는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강원랜드가 여러 차원으로 확장된 문화공간으로 거듭나야겠다는 생각에 가 닿았던 거죠. 그래서 ‘운탄고도’도 추진하고 합작투자를 통해 가족 단위 참여 문화공간으로 강원랜드의 정체성을 확장시키려고 했습니다. 또한 직원들의 비전을 생각하는 차원에서 그들에게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죠. 그래서 한 달에 두 번 저명인사를 초청해 특강도 했죠.

강원랜드를 ‘카지노가 있는 곳’에서 ‘가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힐링 명소’로 탈바꿈하는 데 주력했어요. 북카페도 만들고 연초에는 신년음악회, 연말에는 송년음악회를 개최하고 여름에는 매일 밤 산상카페에서 음악회를 개최하고, 그림, 붓글씨, 사진 등 각종 전시회를 열어 언제 오더라도 볼거리가 끊이지 않는 복합리조트로 변모시켰어요.

Q. 2016년 2월에는 연인원 4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세계명상대전을 개최하며 명실공히 힐링문화 리조트로 거듭나는 데 성공합니다. 당시 카지노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있는 곳에서 어떻게 그런 진풍경이 연출될 수 있었나요?

A. 강원랜드는 가족단위의 고객이 즐겨찾는 리조트로 명상과 수행을 하기에 적당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빼어난 자연환경과 양명한 기운이 어우러진 곳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당시 세계명상대전은 강원랜드가 명상과 힐링의 최적지임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또 강원랜드의 주력 사업 분야가 카지노이다 보니 다른 일반 기업의 사업들과는 다르게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발생할 소지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도박 중독’이죠. 그래서 ‘명상’과 같은 아이템은 강원랜드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에 세계명상대전준비위원회와 함께 명상을 통한 도박중독 치료 사업도 공동으로 추진하고 전방위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해 상호 협력하기로 했죠. 세계명상대전 당시 300여 스님들을 무료로 초청했고, 하이원리조트 하늘 명상길에 동판 표지 안내판으로 혜국 스님, 아잔브람 스님 등 불교 고승 핸드 프린팅 영구 기념물도 설치했습니다.

Q. 불교와의 인연이 깊으신걸로 아는데 실제로 언제부터였나요.

A. 할머니가 절에 다니셨고요. 제 자신이 불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생 때 절에 공부하러 들어간 것이죠. 당시(1970년대)는 시대상황상 휴교령이 많았어요. 그래서 학교 갈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았죠. 그래서 고시 준비차 절을 찾았죠. 아마도 그때부터 불교와 많이 친해진 것 같아요. 춘천 상원사에도 있었고요. 소양호 근처 청평사에서도 고시공부를 했죠. 특히 서산지청장 시절에는 수덕사 경내에 있는 만공탑에 거의 매일 올라갔었죠. 제가 경허 스님 만공 스님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서산지청장으로 발령받고 가보니 인근에 예산 수덕사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매일 아침에 일찍 운동 겸해서 다녀오곤 했죠. 당시 주지 스님이셨던 법장 스님과 가끔 아침 공양도 하고 좋은 법문도 듣곤 했어요. 그리고 이후에 아버님 돌아가시고 나서는 아버님을 낙산사에 모셨지요. 당시에 오현 스님이 주지로 계셨는데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서 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Q. 마지막으로 불교에서 좋아하는 사상이나 철학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죠.

A. 불교는 무엇보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아서 좋은 것 같아요. 가난하든 부자든 많이 배웠든 아니든 모든 대중을 하나의 같은 중생으로 보는 것이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깨우치면서 살아가게 하는 것이 특히 좋은 것 같아요. 그 깨침을 위해 하는 것이 명상이잖아요. 그래서 강원랜드 사장시절 운탄고도 길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운탄고도가 행선하기 정말 좋은 길이거든요. 살면서 힘든 일이 많잖아요. 걸으면서 잠시나마 고요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게 불교, 명상의 매력인 것 같아요.

함승희 前 강원랜드 대표가 강원랜드서 열린 음악회에서 지휘자로 깜짝 변신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다.
함승희 前 강원랜드 대표가 강원랜드서 열린 음악회에서 지휘자로 깜짝 변신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다.
2016년 2월 25일 강원랜드 하이원리조트에서 열린 2016 세계명상대전에서 인사말을 하는 함승희 前 강원랜드 대표.
2016년 2월 25일 강원랜드 하이원리조트에서 열린 2016 세계명상대전에서 인사말을 하는 함승희 前 강원랜드 대표.
2016년 2월 25일 강원랜드 하이원리조트에서 열린 2016 세계명상대전 모습.
2016년 2월 25일 강원랜드 하이원리조트에서 열린 2016 세계명상대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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