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5 (수)

“한꺼번에 다 놓아버려라”

47. 타성

“대덕들이여! 그대들이 바랑과 똥자루인 몸뚱이를 짊어지고 옆길로 내달리며 부처를 구하고 법을 구하니 지금 이렇게 내달리며 구하는 그것이 누구인지 아는가? 거침없이 활발하게 돌아다니지만 뿌리도 줄기도 없느니라. 손에 쥐어 모으려 해도 모아지지 않고 떨어 흩으려 해도 흩어지지 않느니라. 구하지 않으면 눈앞에 있어 신령스러운 소리가 귓속에 들어오니 만약 사람들이 이것을 믿지 못하면 평생 헛수고만 할 뿐이니라.

여러분! 한 찰나에 바로 화장세계에 들어가며, 비로자나국토에 들어가며, 해탈국토에 들어가며, 신통국토에 들어가며, 청정국토에 들어가며, 법계에 들어가며, 예토에도 들어가며 정토에도 들어가며, 범부에도 들어가고 성인에도 들어가며, 아귀와 축생에 들어가느니라. 그러나 곳곳에 들어가 찾아보아도 어디도 나고 죽는 것을 보지 못하고 오직 헛된 이름만 있을 뿐이니라. 허깨비나 허공의 꽃을 잡으려 하지 말라. 얻고 잃고 옳고 그름을 한꺼번에 다 놓아버려야 하느니라.”

수행의 세계에도 매너리즘에 빠지는 타성이 있을 수 있다. 〈임제록〉을 계속 읽어보면 임제가 바로 이점을 비판하면서 경책하고 있는 말을 자주 볼 수 있다. 선을 하고, 불법을 구한답시고 상투적인 흉내를 내며 타성에 젖어, 있는 자들을 사정없이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똥자루인 몸뚱이를 짊어지고 옆길로 돌아다니지 말고 자기 정체부터 다잡으라고 한다. 공부란 실속 없이 외형적으로 모양내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뿌리도 줄기도 없는 정체 모를 수행이 진정한 공부가 아니라는 뜻으로 말하고 있다. 이 장의 이야기도 식심(息心)을 강조한다.

화장세계, 비로자나국토 등 〈화엄경〉 용어를 인용하며 ‘한 찰나에 바로 들어간다’는 것은 ‘입법계품’의 선재동자가 손가락 한 번 퉁기는 사이에 미륵의 누각문을 열었다는 소식과 같은 뜻으로 사사무애법계 도리를 차용해 쓴 말이다. ‘한 번 뛰어 바로 여래의 땅에 들어간다(一超直入如來地)’는 선의 지취를 나타낸 돈오(頓悟)의 이야기다. ‘돈오’에 있어서도 돈오점수(頓悟漸修)의 돈오와 돈오돈수(頓悟頓修)의 돈오가 다르다. 규봉은 〈선원제전집도서〉에서 돈오점수의 돈오는 해오(解悟)이며 돈오돈수의 돈오는 증오(證悟)라고 하였다. 굳이 말하자면 이해해서 깨닫는 것과 체험해서 깨닫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당면한 현실의 문제를 가장 엄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오온(五蘊)이 공(空)하다”고 〈반야심경〉에 말하고 있지만 현실을 의식할 땐 ‘오온개공’은 뒷전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고도의 높은 수행의 경지에서는 현실 존재를 부정하는, 나고 죽는 생사(生死)가 없다고 한다. 임제도 찰나에 화상세계에 들어가면 어디에서도 생사를 보지 못한다고 하였다. 생사가 헛된 이름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허깨비나 허공의 꽃을 잡으려 하지 말라고 또 말했다. 원래 이 말은 승찬의 〈신심명(信心銘)〉에 나오는 말이다. 〈신심명〉의 4구(夢幻空華 何勞把捉 得失是非 一時放却)를 인용하여 분발을 촉구하고 있다. 조주(趙州)의 ‘방하착(放下著)’을 상기시킨다. ‘방하착’은 조주와 관계된 유명한 선화(禪話)다. 임제와 조주는 같은 시대를 살았다. 다 같은 조주(曹州) 출신으로 동향인이었다.

엄양존자(嚴陽尊者)라는 사람이 있었다. 소문을 들으니 조주선사에게 가서 뭐든지 물으면 “놓아버리게(放下著)” 이 말 한마디를 해준다고 하였다. 그는 조주선사를 찾아갔다. 그가 물었다.

“아무것도 안 가져온 사람은 무엇을 놓아버립니까?” 그 물음에도 조주선사는 또 “놓아버리게.” 하였다. 엄양이 다시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놓아버립니까?”

“그럼 짊어지고 가게나.” “?....”

이 말에 엄양이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이후로 ‘방하착’은 선가의 유명한 명언이 되어 널리 퍼졌다.

조주가 임제를 찾아간 적도 있었다. 그때 마침 임제가 발을 씻고 있었다. 조주가 물었다

“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이오?”

“나는 발을 씻고 있는 중이오.”

조주가 앞으로 바짝 다가가 귀를 기울여 듣는 시늉을 했다.

“구정물을 퍼부어야겠군.”

조주가 얼른 돌아 나와 버렸다. 임제는 867년에 입적하고 조주는 897년에 입적해 임제보다 30년을 더 살아 120세에 입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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