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델라, 감옥에서도 “감사합니다”
“말이 씨가 된다”… 늘 말조심
“미안하다”보다는 “감사하다”는 말을…
수필가 이경희 선생님을 만나는데 일행 중 한 사람이 좀 늦었다. 그가 늦어서 죄송하다고 말하자 이경희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집보다 시원한 곳에서 한 시간 동안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러시더니 헤어질 때쯤 “아까 그렇게 미안한 일이 아니에요. 앞으로는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하고 다시 한 번 일깨워주셨다. 상대방이 미안하지 않게 진심을 담아 말씀하시는 것이 인상 깊었다. 그런 분들을 볼 때마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초를 선물로 드렸더니 “남편이 좋아하겠다.”고 하시면서 즐거워하셨다. 그분은 외출할 때 얼마 전 돌아가신 부군께 이렇게 인사를 한다고 했다.
“여보, 나 갔다 올게요. 젊은 친구들 만나고 올게!”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선생님은 사람을 만나면 웃는 얼굴로 상대방을 칭찬하고 격려하시는 분이며, 여든이 넘은 연세에도 이름을 불러 주는게 좋고 예쁜 것 좋아하시고 마음이 큰 분이다.
한번은 뵈었는데 주황색 스웨터에 주황색 백, 주황색 머플러를 하고 나오셨다. 나이 들어서도 맵시 있게 자신을 다듬을 수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선생님을 여러 번 뵈면서 사람을 만나면 그에게 무엇을 요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봐줘야겠구나 하는 것을 배웠다.
내 시가 게재된 책을 드렸더니, “나는 수필은 쓰겠는데 시는 어려워요. 시를 쓸 수 있는 사람들은 위대해. 당신이 부러워.”하며 격려해주셨다.
내가 주부클럽에서 붓글씨와 자수, 차 공부를 했다고 했더니, 당신도 주부클럽 창립멤버라고 하시면서 반가워하셨다.
“이렇게 만나 젊은 분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듣고 서로 에너지를 나누니 좋습니다.”
그러시면서 나에게 “얼굴에 아무나 가지지 못하는 맑은 빛이 있다”고 칭찬해주셨다.
인생에서 좋은 분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동맥경화만 병이 아니다. 살아가면서 좋은 분을 만나 지혜로움을 배우지 못하는 인맥 경화가 더 심각하다.
나는 지금도 감성이 많은 편이어서 눈물이 금방 흘러나온다. 달력 나이, 사회 나이, 감성 나이가 있다는데 근수를 달아보면 나는 아마 감성의 나이 지수가 가장 높을 것이다. 감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감사한 일 앞에선 더 눈물이 나온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던 전 남아공화국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 27년을 감옥에서 보냈다고 한다. 그분이 감옥에서 풀려나왔을 때는 이미 칠십 살이 넘었을 때였는데, 그가 감옥에서 나올 때 사람들은 그가 초췌하고 늙었으며 몸이 약한 모습으로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그분은 어느 젊은이 못지않게 건강하고 활기찬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그를 기다리던 기자가 비법을 묻자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나는 감옥에서 하늘을 보고 감사하고 땅을 보고 감사하고, 물을 마시면서 감사하고, 강제노동을 할 때도 감사하고, 늘 감사했기 때문에 건강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감옥에서 나온 만델라는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대통령에도 당선되었다. 인욕과 감사가 빚어낸 결과였다. 미안하다는 말보다는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살아야 감사한 인생이 된다.
말조심
외출했다가 돌아가는 길이었다. 집 근처 전철역에서 군고구마를 사는데 외국인 한 사람이 내 앞에 서 있었다. 다른 사람에 비해 고구마를 조금 사야했기 때문에 군고구마 장수에게 “저부터 싸주면 안돼요?” 하고 물었더니 외국인이, “나, 한국말 잘해요!” 하지 않는가. 그날도 그렇게 공부했다. 외국인이라고 우리 말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큰 잘못이었고, 언제 어느 곳에서든 늘 말은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모든 일은 허공이 증명한다. 티끌처럼 미세한 한 생각도 아뢰야식에 쌓였다가 연을 만나면 거대한 폭발을 한다. 몸으로 한 행동, 입으로 내놓은 말, 마음속의 생각이 내 인생을 만들어간다. 조심해야 한다. 사람은 신구의(身口意) 업으로 사는 것이다.
“정신없다.”는 말을 습관처럼 하면서 사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은 자기도 모르게 얼이 빠진 사람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밥을 실컷 먹어놓고는 “배불러 죽겠다.”고 한다. 왜 배불러 죽는가? 말을 배설하듯 한다. 말을 뭐 싸듯 해서야 되겠는가.
긍정적인 말이 성공을 부른다. 앞으로는 학교나 회사 입사시험 면접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 옷을 여미는 것, 인사를 잘하는 것을 크게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옛 말에도 세상에서 가장 고운 게 사람이고, 사람이 가진 것 중 가장 고운 게 ‘말(言)’이라는 말이 있다. 말은 마음의 표현이다. 30대 때 우연히 친구 아들이 놀이터에서 놀다 떨어진 것을 보고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나중에 그 아이가 상황 설명을 할 때 엄마 친구인 내 이름을 몰라 “말 예쁘게 하는 엄마 친구 있잖아.”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말하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다시 아이들한테 말하기 전에 내가 솔선수범하면 하면 된다. 맞추어진 시스템보다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이 훨씬 힘이 있다.
말에 내일의 씨가 들어 있다
말이 씨가 된다. 늘 말하던 것은 마침내 사실대로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말씨라는 것은 말에 씨가 들어있다는 뜻이다. 씨 안에는 ‘내일’이 살고 있다. 긍정적으로 말하면 긍정적으로 되고 부정적으로 말하면 인생이 부정적으로 흘러간다.
내 사전엔 ‘빨리’라는 단어가 없다. ‘빨리’라는 말 대신 ‘어서’라는 말을 쓴다. “빨리 가라” 보다는 “어서 가라”는 표현이 상대방에게 편한 느낌을 주지 않는가.
‘짜증난다.’는 말도 써본 적이 없다. ‘짜증난다, 피곤하다’ 라는 말을 하는 사람에겐 “증짜 난다고? 곤피하다고?” 이렇게 되물어본다. 그 말은 듣기만 해도 부정적인 에너지가 전달된다. 그러니 그 말을 쓰는 사람에게 좋을 리가 없다. 말은 레이저처럼 상대방을 쏘기 때문에 항상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내가 아는 어느 분은 자식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 때, 이 말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꼭 해야 하는 말인가를 열 번 생각하고 한다고 한다. 자식에게 무엇을 해보라고 권할 때는 “네게 선물을 하나 주고 싶어! 네가 고를 수도 있고, 받을 수도 있다.” 이렇게 대화를 통해서 본인 스스로 움직이게 해야 한다. 그것이 인연에 맡기는 것이다. 둘째 아들이 고등학교 때의 일이다. 동국대 사회교육원에서 자수 작품 전시회를 열어서 아들을 데리고 갔는데 전시회장에서 외국인하고 말을 하고 있어서 나중에 물었다.
“아까 외국인하고 무슨 말 했니?”
“저기 두루마기 입은 분 누구냐고 묻던데.”
“그래서?”
“엄마라고 했지. 그랬더니 직업이 뭐냐고 물었어.”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어?”
“마땅히 대답할 게 없어서 에티켓 티처라고 했어. 잘했지?”
“그래, 잘했네.”
아들 눈에도 엄마가 예절을 잘 지키고 그것을 중요하게 여겨는 것으로 보였다는 것이 기뻤다. 그렇게 말한 아들이 신통하게 보였는데, 그 후 ‘에티켓 티처’를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리고 가정법회를 하면서 도반들에게 예절을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말씨가 얌전하다, 말씨가 예쁘다, 말씨가 좋아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말에 씨, 내일이 들어있다는 뜻이다. 긍정적인 말이 미래를 좌우한다. 언젠가 ‘내 말에 내일이 들어있다’는 주제로 글을 한번 써보고 싶을 만큼, 말의 중요성을 실감한다.
조계종 원로의원으로 몇 년 전 타계하신 성수 스님께서는 일상에서 도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으로 좋은 말로 하루를 시작할 것을 당부하셨다. 매일아침 처음 하는 말을 좋은 이야기로 하라는 것이다. “남의 속을 푹 찌르는 송곳 말, 머리를 내리치는 도끼 말, 남을 때리는 작대기 말은 하지 말라. 말 한마디라도 선하고 푸근하게 하면 복이 찾아올 것이다.”고 하신 말을 들었다.
남편이 아침에 출근할 때 미운 일이 있어 저녁에 돌아오면 다시 대화를 하더라도 “잘 다녀오라”고 따뜻하게 인사해야 한다. 인생이란 게 사실은 낮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또, 퇴근해오면 그 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가정으로 돌아왔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