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의경(無量義經)〉

얼마 전, 남쪽의 한 절에 다녀왔다. 자원봉사로 해설을 해주시는 불자님이 계셔서, 어느 때보다 도량을 진지하게 둘러볼 수 있었다. 그 큰 절에서, 특이한 것(그 전에는 발견하지 못한 것)은 ‘가람각(伽藍閣)’의 존재였다.
친절한 문화유산해설사는 “주지스님께서 정성을 다해서 예배를 드린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러나 정작 ‘가람각’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잘 모르셨다. 무슨 부처님이라 하였으나, 역시 ‘가람신’이 아닌가 싶었다.
손에는 무기를 들고 있었고, 얼굴은 셋이었다. 중국의 절에서도 ‘가람전’은 흔한데, 그 분은 바로 관성(關聖, 〈삼국지〉의 주인공 관운장. 도교에서 신으로 모신다.)이다. 도교의 신을 데려다가 불교의 절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삼은 것이다.
“주지스님께서 정성을 다해서 예배를 드린다”는 말씀이 가슴에 와닿았다. 주지스님의 도량수호 의지를 읽을 수 있어서이기도 했고, 도량의 수호신인 신중 한분 한분의 존재에 대한 경건한 신심이 느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도대체 가람신은 누구이길래, 주지스님은 그렇게 간절히 예배한다는 말씀일까? 사실 우리는 그러한 각론적 고찰에 약하다. 그 절의 ‘가람각’에 모셔진 가람신이 어떤 분인지 잘 모른다는 이야기다. 그저 ‘신중’의 한 분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그래도 나쁜 것은 아니지만, 신중의 존재를 말하는 〈화엄경〉의 제1품을 찾아보았다. 60권본 〈화엄경〉 제1품의 제목이 세간정안품(世間淨眼品)인데, 거기에는 수많은 금강역사를 비롯하여, 도량신 등 신중들을 나열하고 있다. 〈화엄경약찬게〉에도 등장하는 “주○신”이라는 존재들이 바로 다 그와같은 신중들이다.
“○를 주관하는 신”이라는 뜻이니, 산, 나무, 물 … 등등 자연현상을 비롯한 모든 존재들에는 사실상 다 신이 존재하고 있다(혹은 그 존재들이 다 신이다)는 입장이다. 다신교(多神敎)이다. 이 다신교의 세계를 〈화엄경〉에서는 받아들여서, 그 만다라의 체계 속으로 집어넣었다 볼 수 있으리라.
신이 된 까닭
도대체 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가 어떤 존재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화엄경〉(60권본)을 열어보았다. 과거에 한량없는 시간 이전에 부처님을 모시고 큰 서원을 세웠다. 깊이 수행한 덕분에 수많은 공덕이 생겼다. 이제 불가사의한 해탈경계를 내보일 수 있게 되자, “모든 중생들을 따라다니면서 마땅히 제도할 만한 자들에게는 능히 그 몸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정답이 나왔다. 불교에서 말하는 신중, 즉 불교의 수호신들은 그 위상이 ‘보신(報身)’이라 볼 수 있다는 말이다. 보신은 수행의 과보로 얻어진 몸이다. 아미타불 같은 분도 보신이다. 48가지 서원을 세우신 뒤 5겁이라는 긴 시간 동안 사유(思惟, 명상)한 결과 아미타불이 되셨기 때문이다.
신은 서원을 세우고 수행해서 공덕을 성취한 뒤에는, 즉 보신이 된 뒤에는 다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능히 그 몸을 나타낸다”고 했으니, 이는 화신(化身)을 나투신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가람각’의 가람신도 그러한 화신으로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를 도와주러 오신 분이다.
그런데 바로 똑같은 이야기가 〈무량의경〉 덕행품(德行品)에서도 반복된다. “세존께서는 과거의 한량없는 세월동안 / 갖가지 덕행을 정성껏 부지런히 닦았기에 / 우리를 위하여 사람, 하늘, 용, 신, 왕이 되어주시고 / 두루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 버리기 어려운 재물과 보배, 처자와 나라까지 / 능히 다 버리시며 / 안으로든 밖으로든 아끼는 것이 없으시니 / 머리, 눈, 골수 등도 모두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셨네.”
세존 부처님께서 직접 천(天=神), 용, 신들로 나투셨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수 있다면, 어찌 신중이 우리의 숭배대상이 되지 않겠는가.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