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8호 12월 12일]
조주 스님이 어떤 행자에게 물었다.
“어디에서 왔는가?”
행자가 말했다.
“북원(北院)에서 왔습니다.”
조주 스님이 말했다.
“저쪽은 여기와 비교하여 어떠한가?”
행자는 대답이 없었다. 스님은 그 옆에 서있던 학승에게 대신 대답하도록 시켰다. 그 학승은 대신하여 대답했다.
“저 사원에서 왔습니다.”
조주 스님은 웃었다. 조주 스님은 문원에게 다시 또 대신 대답하도록 시켰다.
문원이 말했다.
“행자는 스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師問一行者 從什麽處來 云北院來 師云 那院何似者院 行者無對 有僧在邊立 師令代行者語 僧代云 從那院來 師笑之 師又令文遠代之 文遠云 行者還是不取師語話
문원은 왜 “저쪽은 북쪽이고 이쪽은 남쪽입니다” 라고 말하지 못하는가.
조주 스님이 좌주에게 물었다.
“어떤 학업을 익히고 있나요?”
좌주가 말했다.
“유마경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조주 스님이 말했다.
“유마경에 ‘한 걸음 한 걸음이 도량이다’라고 했는데 좌주는 어디에 있습니까?”
좌주는 대답이 없었다. 스님은 전익(全益)에게 명하여 좌주를 대신하여 대답하게 했다.
전익이 말했다.
“다만 이 한 물음이야말로 도량을 알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자네의 몸은 도량 속에 있는데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빨리 말해보아라.”
전익이 말했다.
“화상께서 학인의 마음을 찾고 계시는 것입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그렇다.”
전익이 말했다.
“다만 이 일문일답은 무엇입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노승은 심소(心所) 속에 있지 않아. 진리는 6근을 벗어나야 알게 돼.”
전익이 말했다.
“이미 심소 속에 있지 않다 하시면서 화상께서 무엇을 찾습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자네가 대답하지 못하니까 그래.”
전익이 말했다.
“진리는 6근을 벗어나도 알지 못합니다. 어찌 대답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자네는 나의 침(唾)을 먹은 거야.”
師問座主 所習何業 云講維摩經 師云 維摩經步步是道場 座主在什麽處 主無對 師令全益代座主語 全益云 只者一問可識道場麽 師云 你身在道場裡 心在什麽處 速道取 云和尙不是覓學人心 師云是 云只者一問一答是什麽 師云 老僧不在心所裡 法過眼耳鼻舌身意而知解 云旣不在心數裡 和尙爲什麽覓 師云 爲你道不得 云法過眼耳鼻舌身意而不解 作麽生道不得 師云 喫我涕唾
마음은 6근을 벗어나 있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그 존재는 알 수 없다. 알 수 없지만 없는 것은 아니다. 선사와 대담에서는 알 수 없는 그 마음을 보여야 인정을 받는다. 논리에 치우치면 말은 맞으나 인정받을 수는 없다.
조주 스님이 또 수유 스님에게 갔다.
수유 스님이 말했다.
“어르신께서 어찌 주처를 구하지 않으십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어디에 살 곳이라도 있는가?”
수유 스님이 말했다.
“어르신께서 주처(住處)도 모르십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30년이나 말을 타고 다루었는데 오늘은 당나귀에게 내동댕이질 당하고 말았군.”
師又到茱萸 茱萸云 老老大大 何不覓箇住處去 師云 什麽處住得 茱萸云 老老大大 住處也不識 師云 三十年弄馬騎 금일각被驢撲
노사라 해도 맞는 말에는 할 말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