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37 (수)

뜻 얻었다면 거리의 한담도 다 진리

경허 스님 수행 일화 <24> <25>

“모르면 용궁 경전도 잠꼬대 일뿐”

스님 무애행에 日헌병대장 감탄

관음보살이 북으로 행한 뜻 묻자

법제자 삼아 불조의 밀전 지도

<24> 관헌(官憲)에 잡히다

을사조약 이후 한일합방으로 일본 경찰들이 치안을 담당할 때의 일이다. 비로관을 크게 만들어 머리에 쓰고 검은 장삼을 걸친 한 스님이 거리를 누비고 있었다.

구척장신의 그 스님은 맨발에 한손에는 담뱃대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고기를 주장자에 매달아 어깨에 메고 있었다. 그 괴승(怪僧)의 정체는 바로 경허 스님이었다.

마침 거리를 순찰하던 일본 헌병 보조원 두 명이 정체불명의 행색을 한 스님의 괴이한 행색에 산적 괴수로 오해해 다짜고짜 경허 스님을 체포했다.

스님을 헌병대로 끌고 가려 하는데 경허 스님이 입을 열었다.

“이놈들아, 끌고가려면 너희들이 나를 메고 가거라.”

경허 스님은 땅에 넙죽 주저앉아 버렸다. 두 헌병 보조원은 하는 수 없이 긴 장대를 갖고와 경허 스님의 양다리와 양팔을 밧줄로 꽁꽁 묶어 들쳐 메고 헌병대로 데려갔다.

두 헌병 보조원이 땀을 뻘뻘 흘리며 헌병분견대로 향하는데 이에 대한 경허 스님의 말이 걸작이었다.

경허 스님은 “흥, 경허가 그래도 어지간한가 보구나!”하고 통쾌한 웃음을 지었다.헌병 보조원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한 헌병 보조원이 퉁명스런 말로 “여보 대사(大師). 그 무슨 소리요?” 했다.경허 스님이 다시 한바탕 웃으며 말했다.“나를 너희들이 이렇게 메고 가야지 내발로 걸어 갈 수야 있겠느냐. 이놈들아”

더욱 화가 난 헌병 보조원들은 경허 스님을 내려놓고 손발에 동여 맨 밧줄을 풀었다.

“그럼 걸어갑시다.”헌병 보조원들은 경허 스님에게 발길을 재촉했다. 경허 스님은 한참을 걷다가 다시 크게 웃었다.

“흥, 흥! 경허가 그래도 어지간하다. 이놈들아, 내가 내발로 걸어가야지 너희들에게 메어가서야 어디 되겠느냐?”

헌병분견대에서 일본 헌병대장이 직접 경허 스님을 취조했다. 독립군의 수뇌나 산적두목으로 알아본 것이었다.취조에서 아무 표정 없이 묵비권을 행사하던 경허 스님이 갑자기 지필묵을 청했다.

헌병대장이 기이하게 생각하고 지필묵을 갖다 주게 했다.경허 스님은 헌병들에게 양쪽에서 두루마리를 붙들게 하고 가져다 놓은 붓에 먹물을 찍어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의 휘호를 써 갈겼다.

스님의 글 쓰는 자세를 보던 헌병대장은 깜짝 놀라 자세를 정중히 했다. 헌병대장은 글을 다시 읽어보아도 그 깊은 뜻을 알 수 없었지만 경허 스님이 큰 도인임을 짐작했다. 헌병대장이 큰 절을 하며 경허 스님에게 말했다.

“스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알아 모시겠습니다.”경허 스님은 일제 치하에서 이런 일이 비일 비재 했다.

강계(江界) 땅에서는 박진사로 행세하던 중 일본 경찰에 끌려간 적이 있었다. 공주(公州) 경찰서에서 경허 스님을 취조한 야마모토(松山) 경찰서장에게 경허 스님은 붓과 종이를 청해 일필휘지의 글을 남겼다.“그 뜻을 얻었다면 거리의 한담도 다 진리의 가르침이요, 말하는 주인을 알지 못하면 용궁(龍宮)에 간직된 보배로운 경전도 한 낫 잠꼬대일 뿐.”

야마모토 서장은 경허 스님의 글의 깊은 뜻을 알아보고 스님을 자기 집 내실로 모셨다. 야마모토 서장은 자기 부인에게 일렀다.

“이 어른의 시봉을 잘 해드리고 어떤 행동을 하시든 언제나 원하시는 대로 모시도록 하시오.”야마모토 서장은 집안 하인들에게도 행여나 조금도 경허 스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도록 극진히 봉대토록 했다.며칠을 융숭한 대우를 받던 경허 스님은 놀라운 행동을 보였다. 서장 집에 보관된 금고를 털어 시가(市街)에서 술을 사 먹은 것이었다.

경허 스님은 그 뿐만이 아니라 배고픈 걸인과 주민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었다.하지만 야마모토 서장은 일체 참견 하지 않고 경허 스님이 하는 대로 하게 했다. 도인의 무애행을 그대로 펴게 하는 것이 모시는 도리라고 본 야마모토 서장은 자기 부인에게 누누이 당부해 아무도 제지하거나 흉보는 사람이 없도록 극진히 대접했다.

하지만 경허 스님은 며칠 뒤 아무 말 없이 그 집을 나섰다. 야마모토 서장은 자기가 잘못해 큰 도인을 더 모시지 못했다며 못내 애석하게 생각했다고 전해진다.


<25>혜월 스님의 주먹

혜월(慧月) 스님이 정혜사(定慧寺)에서 공양주를 할 때였다. 혜월 스님은 역력고명 무형단자(歷曆孤明 無形丹子) 화두에 깊게 들었다. 하루는 의심이 매우 솟아나 뒷방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1주일을 앉아 무아지경에 들었다.

1주일 뒤 혜월 스님이 홀연히 문을 열고 나와 은사 스님에게 화두를 깨달은 경계를 말했다. 하지만 은사 스님은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나로서는 네 공부를 판단해 줄 능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은사 스님은 이어 “개심사(開心寺) 경허 스님을 찾아가 네가 공부한 경지를 지도받도록 하여라”고 천거했다.혜월 스님은 그 길로 개심사에 찾아가 경허 스님이 계신 선방 앞에 이르렀다.

혜월 스님은 다짜고짜 “스님!”하고 부른 뒤 “관음보살이 북으로 향한 뜻이 무슨 뜻이오리까?”하고 큰 소리로 물었다.이에 대해 경허 스님은 눈도 뜨지 않고 답했다.

“그 것 말고 또”

경허 스님은 큰 소리로 되받아 물으면서 동시에 눈을 딱 뜨고 바라보았다.

혜월 스님은 아무 말 없이 주먹 하나를 높이 들고 서 있었다.그제야 경허 스님이 말했다.“앉으라”그제야 경허 스님은 불조(佛祖)의 밀전 밀맥(密傳 密脈)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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