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37 (수)

수리아의 검 -Ⅳ. 철의 산 차크라발라 (6)

 무니는 이 동굴 속을 어떻게 걸어갔지.’ 난다는 어두컴컴한 동굴 속을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무니는 종이버터로 등불을 피우는 방법을 모른다. 그렇다면 저런 암흑 속을 빛 없이 걸어갔단 말이 된다. 걱정으로 난다의 얼굴이 흐려졌다. 얼음의 성이라는 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준 적은 없지만, 그 후로 무니는 어둠에 대해 강한 두려움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난다는 얼른 호주머니에서 휴대용 등잔을 꺼내 종이버터에 불을 붙였다. 화르륵 크게 타오르던 불꽃이 손가락으로 톡톡 매만지자 조금씩 작아지며 적당한 크기의 불꽃이 되었다.

불빛에 비친 동굴 안은 희귀한 식물로 가득했다. 음지에서만 자란다고 알려진 것들이었다. 난다는 무니 걱정에 빠르게 걸으면서도 눈에 들어오는 다양한 식물들에 감탄했다. 구하기 힘든 정도가 아니라 책에서만 보던 식물과 약초들이 가득했다. 채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일단 무니를 찾는 일이 급했다. 그 순간, 한숨을 내쉬며 다시 걸음을 재촉하는 난다의 눈에 오묘한 색의 식물이 눈에 들어왔다. 빛을 움직일 때마다 다른 색깔을 띠는 식물이었다. 긴 줄기에 아기 손바닥만한 크기의 잎이 대 여섯 개, 그 잎 하나하나는 여덟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저건!” 난다는 펄쩍 뛰듯 그 식물이 모여 자라고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정말 팔색초잖아!”

팔색초는 여덟 색깔을 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워낙 여러 곳에 쓰임이 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약초였다. 내상 및 외상의 치료제에 약초를 더하면 그 효능이 배로 증가하며, 양을 조절하여 불면증이나 기면증 치료에 이용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정령을 불러내는 주문에 꼭 필요한 약초로 특히 나크라는 정령이 팔색초를 아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난다는 정신없이 팔색초를 뜯어 자신의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순간 주위가 컴컴해졌다. 손에 들고 있던 등불이 꺼지고 만 것이다. 난다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주머니를 뒤져 종이버터를 꺼내 다시 불을 붙인 다음,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동굴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동굴은 처음에 예상했던 것보다 깊지 않은 모양이었다. 난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보라색 빛이 새어나오는 끝에 도착했다. 그는 일단 동굴 끝 부분에 발을 걸치고 바깥을 살펴봤다. 동굴 밖하고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다. 온통 회갈색의 산이 둘러싸고 있기는 했지만 풀이 보였고, 무엇보다 농사를 짓고 있는 밭도 있었다. 바랜 연회색의 집들은 각각 크기가 달랐지만, 마치 하나로 이어진 것처럼 벽들이 쭉 연이어 붙어있었다. 작은 창과 드나드는 출입구가 집마다 있지 않았다면, 하나의 집이라고 할 수도 있을 거 같았다. 자신이 살던 마을을 생각하면 역시 황량한 풍경이었지만, 반나절을 철로 이루어진 산만 쳐다봤더니, 마을의 모습이 훈훈하게 다가왔다. 잊었던 갈증이 또 다시 느껴졌다. 급박한 마음에 잠시 잊고 있었으나 이런 풍경을 보고 나서인지 오히려 더욱 심해진 느낌이었다. 난다는 한 발을 살짝 아래로 떨어뜨렸다. 낮은 계단 하나 쯤 되는 높이일까, 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기분으로, 한참을 아래로 떨어졌다. 이윽고 바닥에 닿았을 때, 난다는 어리둥절해 뒤돌아 동굴을 쳐다봤다. 등잔이 저만치에 뒹굴고 있었다. 다시 봐도 분명 출구는 지면과 별로 떨어져 있는 않은 곳에서 자리한 것처럼 보였다. 고개를 갸웃하던 난다는 자리에서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다. 희한하게도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다시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느낌이었다.

뭐야. 결계라는 건가?”

난다는 갸웃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던 조와 눈이 마주쳤다. 예상치 못한 마주침이었다. 난다는 깜짝 놀라 다시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때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맑고 높은 목소리였다.

거기 누구야?”

난다의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조의 뒤에 가려져 있던 한 사람이 얼굴을 내밀었다. 석양빛을 등지고 있기는 했지만, 낯익은 얼굴이었다. 까만 눈동자, 하얗고 가지런한 이, 하나로 높게 묶은 머리까지.

쎄라야?”

쎄라?”

소녀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발음해 보며 난다를 쳐다봤다. 난다 역시 빤히 그 소녀를 바라봤다. ‘아차! 여기선 잠부어를 쓰지 않지!’ 난다는 이마를 쳤다. 동굴 안에서 팔색초를 뜯어온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팔색초를 좋아한다는 나크는 바로 통역을 도와주는 능력이 있는 정령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주머니에서 팔색초의 잎 하나를 꺼내들었다.

가만! 그런데 주문이 뭐였지?”

그런데 정작 주문이 생각나지 않았다. 설마 팔색초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 하지 않았기에 미처 제대로 외우지 않았던 까닭이다. ‘일단 외워놓기면 이럴 때 쓸모가 있기 마련인데!’ 난다는 자신을 탓했다. 소녀는 이미 어딘가로 사라졌지만 전혀 눈치 채지도 못했다. 소녀가 사라진 자리에 다른 어른들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난다는 주문을 생각하는데 온 정신을 쏟고 있었다. 자신을 둘러싼 어둠을 눈치 챘을 때는 한참 후였다. 늦어버린 다음이었다.

 

난다가 어른들에게 끌려 들어간 곳에는 예상했던 대로 무니와 칸타카가 있었다.

늦어, 너무 늦어.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거야?”

난다는 이 와중에도 자신에게 불만을 표시하는 무니를 보니 피식 웃음부터 나왔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되긴! 너도 겪었을 거 아냐. 또 갇히다니! ! 도무지 이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 지 알아들을 수도 없고.”

난다는 다시 !”하며 주머니에서 팔색초를 꺼냈다.

그게 뭐야?

후후. 이게 뭐냐 하면 말이지.”

난다는 팔색초 몇 잎을 잘게 손으로 찢은 후, 칸타카가 등에 지고 있던 가방에서 사전을 꺼내며 말했다.

아주 재미난 풀이거든?”

무니는 시큰둥한 얼굴로 친구의 모습을 지켜봤다. 난다는 완전 그 풀과 책에 정신을 뺏긴 거 같았다. 잠시 후, 난다는 책을 탁 덮더니 찢어놓은 팔색초를 엄지와 검지로 비비면서 주문을 외웠다.

브라바투, 브라바투, 아르탐!”

그러자 두 손가락 사이에서 연기 같은 게 나는 듯 했다. 난다는 기대에 찬 눈빛이었고, 무니도 그제야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난다의 손끝에 연기만 좀 났을 뿐, 별 다른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에게? 도대체 뭐가 재미있다는 거야?”

좀 기다려봐.”

무니는 귀 뒤를 긁으며 난다의 손끝을 다시 쳐다봤다. 역시 별 다른 변화는 없었다. 힘이 잔뜩 들어갔던 난다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아닌가?”

. 뭔지는 몰라도 아닌 거 같은데……, ! 이거 뭐야? 꼬물꼬물 거리는 거.”

난다는 무니가 가리키고 있는 곳을 쳐다봤다. 아지랑이 같아 보이는 것이 피어오르면서 어떤 형체를 만들어 내는 게 보였다. 아지랑이가 점점 잦아들자 형체는 더 뚜렷해졌다. 언뜻 보기엔 사람 같았다.

재미있다는 게 저거야?”

난다는 무니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금방 그 형체가 완전히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형체의 생김새는 정말 사람하고 비슷했다. 난장이처럼 아주 작은 키, 보통 사람의 2배는 되어 보이는 큰 귀와 그 안이 훤히 비칠 것처럼 투명해 보이는 피부를 제외하면 말이다. 순간, 그 형체가 입을 열었다

뭘 봐!”

마치 심술 같은 노인의 얼굴 같아 보였다. 그 소리에 놀란 칸타카는 펄쩍 뛰었고, 아이들은 그한테서 멀찌감치 몸을 떼었다.

어린 녀석들이, 어디서 뭘 읽고 장난질이냐! 정령 무서운 줄 모르는 게로구나. 고얀 놈 들!”

그 말에 무니가 발끈해 소리쳤다.

이 희한하게 생긴 게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난다가 무니의 손목을 붙잡았다.

! 조용히 해! 내가 이야기해볼게.”

난다가 자신이 불러낸 존재 곁으로 다시 다가갔다.

당신이 혹시 나크인가요?”

에헴. 그렇다. 내가 나크지.”

나크……? 나크? 나크라구!”

무니가 깜짝 놀라며 난다를 쳐다봤다. 난다는 무니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뭐냐. 너희 녀석들은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불러냈다는 게냐?”

아니에요. 아닙니다.”

난다는 얼른 손을 내저었다.

도움을 청해야할 일이 있어서요. 바쁘신 줄 알지만, 이렇게 실례를 하게 됐습니다.”

나크는 .” 하는 소리를 내며 자신의 큰 귀를 만지작거렸다. 금방 화를 냈다가 또 금방 가라앉는 편인 거 같았다. 난다는 자신들의 사정을 간단히 그에게 전했다.

그래? 그랬구만. 차크라발라 사람들이 쓰는 말은 매우 단순하지. 사용하는 단어도 풍부 하지 않고 말이야. 그래서 썩 재미있는 말은 아니야. 하긴 워낙에 환경이 이러니까 그렇 겠지만. 잠부어는 구석구석 방언까지 많아 훨씬 재미난 말이고.”

나크는 생각에 빠지는 모습이었다. 많은 정령들이 그렇듯이, 나크 역시 아주 오래 전엔 사람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다른 정령들이 기기묘묘한 요술을 부리거나, 인간계에 가끔 나타나 행패를 부리는 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는 것과는 달리, 그는 꽤 고상한 취미의 소유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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