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37 (수)

수리아의 검 -Ⅳ. 철의 산 차크라발라 (5)

무니는 칸타카의 고삐를 더욱 꼭 쥐었다. 칸타카보다 몸집이 조금 더 커 보이는 그 동물은 생김새가 소나 염소와 비슷했지만, 확실히 그 둘하고는 다른 종류로 보였다. 머리 양 쪽으로 세차게 뻗어 나온 검은 뿔 아래의 눈은 보글보글한 검은 털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고, 뭔가를 씹는 듯 계속해서 우물거리는 입은 불길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불룩 튀어나온 어깨에서부터 등까지 흐르는 그다지 길지 않은 털은 매끄러워 보이는 검은 색인데 반해 배 아래로 늘어져 바닥에 닿을 정도로 길고 풍성한 털은 흰색이었는데, 아마도 그 털 때문에 몸집이 더 커 보이는 듯 했다. 아무튼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동물은 계속 입을 우물거리며 데비 앞에 서 있었다. 난다가 데비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저건 조라는 동물이야. 위험하지 않으니까 겁먹지 않아도 돼.”

?”

무니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 잠부에선 보기 힘든 동물이지만, 비데하에선 꽤 자주 볼 수 있대. 주로 이런 고원지 대에 사는 초식 동물이지.”

그럼 야생 동물이라는 거야?”

야생도 있고, 소나 염소처럼 길들여서 가축으로 기르기도 하고.”

아무튼 동물은 동물이라, 이 말이지. 그럼 쟤 따라가면 물이 어디 있는 지 알 수도 있겠네? 쟤도 물은 마시면서 살 거 아니야?”

무니의 눈이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그런데 그때 잠잠하던 데비가 다시 비명을 질렀다. 조가 회오리 모양의 꼬리를 살랑살랑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조가 움직이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조가 느릿느릿 몸을 돌려 어딘가로 향해 걸어가기 시작한 것은 한참 후였다. 무니가 칸타카와 함께 멀찍이서 그 뒤를 따랐고, 또 그 뒤로는 난다가 데비의 손을 꼭 쥐고 걸어오고 있었다. 조는 해가 뉘엿뉘엿 져가고 있는데도 급할 거 없다는 듯 어슬렁거리며 산비탈을 익숙하게 걸어 올라갔다. 반면 난다 일행 모두에게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위태로운 위험천만한 산행이었다.

헥헥. 저 녀석은 어째서 저렇게 여유를 부리는 거야. 설마 물 없이 살 수 있는 동물인 건 아니겠지?”

무니가 가쁜 숨을 내쉬며 말했다. 갈증이 점점 심해졌다.

물 없이 살 수 있는 동물은 없어.”

난다 역시 힘들게 고개 짓을 해보이며 대답했다. 말 할 힘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데비까지 끌고 가는 일이 점점 더 버거워지고 있었다.

! 멈췄다.”

이윽고 가장 앞에서 조를 따라가고 있던 무니가 외쳤다. 평지로 접어드는 길목 같아 보였다. 조는 그들이 처음 봤을 때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일행 역시 모두 멈춰서 그런 조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렇게 잠시 서 있던 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무니가 얼른 돌아보며 말했다.

일단 내가 먼저 올라가볼게.”

칸타카도 그런 무니의 뒤를 따랐다.

잠시 후, 무니에 이어 칸타카의 꼬리까지 시야에서 사라지는 걸 확인한 난다는 문득 아까부터 왼손이 허전하다는 걸 깨달았다. 데비를 끌고 오던 손이었다. ‘도대체 언제 사라진 거지?’ 난다는 기억을 되짚었다.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꽤 시간이 지났는데 무니 역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차크라발라산에 착륙할 때 느꼈던 불안감이 현실이 된 걸까. 난다는 다시 사르나트를 떠올리고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런데 없었다. 깜짝 놀라 모든 곳을 뒤졌지만 역시 사르나트는 보이지 않았다. ‘아직 해가 다 지지도 않았는데.’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공황 상태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었다. 난다는 잠시 생각하다 무니가 사라진 곳을 향해 걸어 올라갔다. 데비는 언제나처럼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들 곁으로 돌아올 것이다. 사르나트는? 아마 아까 그 수은이 흐르는 강가에서 데비의 비명 때문에 놀라 떨어트렸을 가능성도 있다. 분명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무니나 칸타카가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 ‘정말?’ 자신의 그런 낙관에 금방 반문이 떠올랐지만, 일단 가던 길을 마저 가는 수밖에 없었다. 난다는 아까 조가 서 있었던 그 길목 앞에 도착했다. 무니와 칸타카의 자취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 속을 짐작할 수 없는 암굴만이 친구들이 어디로 갔는지, 자신은 알고 있다는 듯 큰 입을 벌리고 있었다. 난다는 아무 망설임 없이 그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럼 무니와 칸타카는 어떻게 된 것일까. 그들은 그 조라는 동물이 동굴 안으로 사라지자, 잠시 망설이다 결국 따라 들어갔다. 그러나 무니는 금방 후회했다. 빛 한 줌 없는 굴 안이 얼음의 성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그 어둠은 뒤돌아갈 수도, 그렇다고 계속 걸어갈 수도 없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조의 발자국 소리는 점점 희미해져갔지만 도저히 앞으로 더 걸어갈 수가 없었다. 무니는 답답한 듯 옷깃을 부여잡았다. 더 이상 조의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이제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완벽한 암흑이었다. 그때, 익숙한 풀피리 소리가 바로 귓가에서 들려왔다. 칸타카였다. 마치 자신은 잠시도 무니의 곁을 떠나지 않을 거라는 것처럼 안정을 주는 소리였다. 그제야 무니는 꽉 막혀있던 숨을 토해냈다. 무니는 앞장 서 걸어가는 칸타카의 꼬리를 꼭 쥔 채, 다시 한 걸음씩 앞으로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멈춘 듯 암흑 속으로 천천히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니는 동굴이 꽤 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들의 얼굴에 금방 옅은 빛이 비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일몰의 태양처럼 주황색을 띤 그 빛은 동굴의 끝에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서서히 눈이 그 밝음에 익숙해지자 동굴 끝의 풍경도 어렴풋이 보였다. 잘 보이진 않지만 그곳이 초록색이라는 것은 알아볼 수 있었다. 이곳에 도착해 처음 보는 색이었다.

저기라면 정말 물이 있을 거 같지 않아?”

무니가 쥐고 있던 칸타카의 꼬리를 흔들며 밝게 말했다. 그들의 얼굴이 석양빛으로 물들어 갔다.

 

태양이 서쪽 바다 아래로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진한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바다는 부드럽게 출렁거렸고, 하늘은 고요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태양이 바다에 잠기는 소리마저 들릴 것 같은 적막이었다. 이제 곧 어둠이 찾아올 터였다. 그때, 그 풍경 속에 무엇인가 빠른 속도로 들어오고 있었다. 한 마리의 말이었다. 그것은 고요를 깨뜨리며 공중에 힘차게 발을 굴렀다. 그리고 이내 거의 잠겨버린 태양의 윗부분을 빠르게 지나 순식간에 그 풍경 속에서 사라졌다. 하늘은 이제 보랏빛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한편, 한 노인이 눈의 산 정상에 서서 연못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었다. 연못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 작은 움직임도 없는 수면 위에는 둥근 달이 떠 있었다. 수면에 비친 달 아래로 보이는 노인의 얼굴은 달의 색과 비슷했다. 흰 얼굴에선 차가움이 느껴졌으나, 미소에선 은은한 온기가 느껴졌다. 각진 부분이라고는 없었다. , , 입술마저도 둥글둥글 했다. 전체적으로 티 한 점 없이 깨끗하고 매끄러운 피부라서 지난 세월을 말해주듯 깊게 패인 주름이 아니라면 노인이라고 믿기가 힘들 정도였다. 게다가 그는 눈의 산의 한기에도 전혀 추위를 느끼지 않는 듯 가벼운 옷차림이었다. 한참 연못을 들여다보고 있었던 탓에 고개가 아프다는 듯 노인은 시선을 하늘로 향하고 뒷목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마침 저기 하늘 위에서 자신의 말이 아래로 내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생각났다는 듯 연못의 물을 손바닥으로 떠서 한 모금 마셨다.

괴로움이 없는 연못이라…….”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젓더니, 연못에 손을 넣어 수면 위에 파문을 일으켰다. 아주 가벼운 움직임이었음에도 넓은 연못에 금방 커다란 물결이 일어났다. 노인은 돌아서서 자신의 애마가 내려오는 모습을 지켜보며 알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었다.

땅에 발을 디딘 말은 곧바로 풀피리 소리를 내며 꼬리를 흔들었다.

그래, 그래. 먼 길에 고생이 많았구나.”

노인은 애썼다는 듯 자신의 말을 몇 번 쓰다듬어주고는 연못을 가리켰다. 말은 주인의 손짓을 따라가 연못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일단 목을 축인 다음,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다오. 아샹티야.”

아샹티’, 무니 일행에게는 잠시 남카라고 불리기도 했던 말은 주인에게 귀를 한 번 쫑긋해 보이더니 꼬리를 흔들며 답했다. 그저 고개를 끄덕끄덕하던 노인은 갑자기 시선을 허공으로 돌렸다. 입가엔 여전히 희미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젠장!’ 그의 시선 변화에 놀라 이 소리를 입 속으로 삼킨 자는 테드모였다. 그는 모습을 감추고 노인을 몰래 훔쳐보는 중이었다. 테드모는 더 높은 공중으로 얼른 날아올랐다. 저 노인네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눈의 산까지 올라온 것일까. 분명 루드라가 자신의 신전에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게 틀림없다. 테드모는 이제 루드라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같은 건 포기하고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저 노인네를 이번에 놓치면 또 어디서 찾을 수 있을 런지 모를 일이다. 아무래도 크리슈나를 찾아가야할 거 같다. 이제 곧 그의 수면기도 끝나가니 말이다. “젠장!” 이번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그 꽉 막히고 아니꼬운 크리슈나의 수하랑 맞닥뜨려야 하다니! 그와의 마지막 만남이 떠오르자 입맛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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