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5 (수)

수리아의 검 -Ⅳ. 철의 산 차크라발라 (2)

난다는 대답 없이 밤하늘을 바라봤다. 눈썹 모양의 달이 바다 위에 곱게 떠 있었다.

무니 네 생일, 이제 사흘 후로구나.”

그건 왜? 생일 같은 거, 내가 얼마나 싫어하는 지 알잖아.”

걱정 마, 축하 같은 건 안할 테니까. 그래도 우리 출발은 네 생일에 하는 걸로 하자.”

난다는 바닥에 드러누우며 말했다. 하지만 무니는 벌떡 일어나 답답한 표정으로 친구를 바라봤다. 잠은 이미 다 달아났다. ‘생일이라니.’ 무니는 오랜만에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렸다. 마음이 허물어지는 것 같았다. 무니는 의식적으로 어머니 생각을 하지 않으려 애써왔다. 아마 난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는 잠든 친구를 바라봤다. 자신보다 생일도 빠르고 키도 훨씬 크지만, 거기 누워있는 사람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아직 어린 소년일 뿐이었다. 사흘 후면 자신은 열두 살이 된다. 그날은 마을이 불길에 휩싸여 사라진 지 이 년 째 되는 날이기도 했다.

 

이윽고 사흘이 지났다. 카필라 마을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두 소년은 잠부의 동쪽 끝 바닷가에 서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먼저 일어난 사람은 무니였다. 오늘은 그의 생일, 새로운 무니가 태어난 지 사 년째 되는 날이었다. 무니는 목걸이를 꺼내 내려다보았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누프르산에서 깨어나 뭔가 불길한 예감에 마을까지 내달렸던 그 밤이 아직도 생생했다.

일찍 일어났네?”

막 상념에 빠져가던 무니를 깨운 건 난다였다. 무니는 아침 햇살에 눈을 찡그리며 친구의 얼굴을 쳐다봤다.

이제 오늘로 사흘째야. 어떻게 할 거야?”

출발해야지. 일단 칸타카 상태 좀 보고 이야기하자.”

난다는 언제나처럼 책가방부터 챙기며 말했다. 마지막 날, 유리 영감이 마구간에서 주었던 바로 그 가방이었다. 다 타버린 마을을 정신없이 헤맸던 두 사람이 그걸 열어볼 정신이 들었던 건 한참 후였다. 거기에는 리시 아시타의 예언서, 사르나트의 바퀴, 그리고 유리 영감이 그들을 위해 남긴 비망록이 들어있었다. 할아버지의 글씨체를 본 난다는 또 참지 못해 목 놓아 엉엉 울었었다. 벌써 이 년이나 지났다니. 아니, 아직 이 년 밖에 지나지 않은 건가. 무니는 오늘따라 그 가방에 새삼스레 보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며 칸타가가 있던 곳으로 향해 가는 난다를 쳐다봤다. 그런데 칸타카가 보이지 않았다!

칸타카는 어디로 갔어?”

어리둥절한 표정의 무니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정지한 듯 움직이지 못했다.

넌 주인이 자기 말도 못 알아봐? 여기 있잖아, 칸타카.”

난다는 늠름하게 서 있는 흰 말의 목덜미를 두들기며 말했다.

무니는 이제 너 못 알아본다. 어쩌지?”

그는 짐짓 큰일이라는 듯 팔짱을 끼며 칸타카와 무니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러자 가만히 서 있던 말이 꼬리를 흔들며 무니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 예의 그 풀피리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여전히 멍한 표정이던 무니가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너 칸타카 맞구나! 하룻밤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

, 아무리 칸타카가 이상한 소릴 잘 낸다고 하지만, 인간의 언어까지는 무리라구.”

무니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칸타카를 쳐다봤다.

 

진짜 어떻게 된 거야? 좀 이상하잖아. 내 생일과 칸타카 생일이 같고, 너는 내 생일에 출발하자고 했는데, 칸타카는 갑자기 이렇게 커버렸어. 또 너 혼자만 알고 있는 뭔가가 있는 거지?”

그럼. 물론이지!”

난다의 그야말로 당연하다는 말투로 대답했다

내가 지금 그런 말 듣겠다는 거냐? 도대체 뭐야, 뭐냐고!”

그러나 난다는 계속 대답 없이 싱글거리기만 했다. 때 마침 데비의 하품 소리가 들려왔다.

. 데비, 일어났네?”

눈을 비비며 주위를 둘러보는 데비를 보고 난다가 말했다. 무니의 눈총을 피할 수 있어 잘 됐다는 말투였다.

칸타카와 남카 사이에서 자고 있던 데비는 한 쪽이 빈 걸 보고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윽고 무니 앞에 있는 칸타카를 발견하고는 일어나 쪼르르 그 다리에 가서 매달렸다.

칸타카. 칸타카야.”

하하. 데비는 금방 알아보네?”

뭐야. 저 녀석들.”

무니는 한껏 다정해 보이는 칸타카와 데비를 번갈아가며 입을 삐죽거렸다.

근데 정말 말 안 해줄 거야?”

암리타의 말.”

난다는 그렇게 짧게 대답하고는 다시 씨익 웃어보였다. 무니는 바로 그거였구나.’라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암리타의 말

자기도 알고 있었다는 듯한 무니의 예상외의 태도에 난다는 흠칫했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금세 무니는 안 그래도 나온 입술을 더욱 부풀리며 불만을 터뜨렸다.

이라고 할 줄 알았냐?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하하하. 알았어, 알았다구. 설명해줄게. 그러니까 말이지

 

사실 그 동안 무니와 난다는 칸타카가 여전히 전혀 자라지 않은 망아지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았었다. 생각해보면 의문을 품을 법도 한 일이었지만, 그들에게 칸타카는 그냥 칸타카일 뿐이었다. 어쩌면 낯선 세계 속으로 매일매일 걸어 들어가는 그들의 여정 자체가 가장 큰 의문이며 신비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만약 난다가 연금술사의 책장에서 그 책을 꺼내지 않았더라면, 그 자신도 칸타카에게 일어난 변화에 대해 무니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반응을 보였으리라. 그가 발견한 책의 제목은 암리타의 열두 가지 신비였다. 그 책의 표지에는 누가 봐도 칸타카라고 생각할 만한 망아지 한 마리가 그려져 있었다. 난다가 암리타에 관해서 알고 있는 것은 그것이 불사의 생명액이라는 뜻으로 최초의 신들이 탄생한 이후, 이를 두고 오랜 전쟁이 있었다는 이야기 정도였다. 그것도 할아버지가 칸타카를 두고 암리타의 말이라 했었기 때문에 책을 통해 알아본 것일 뿐, 열두 가지의 신비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책에 의하면, 그것은 신들의 전쟁이라는 커다란 이야기에 슬쩍 감춰지긴 했지만, 매우 중요한 연구 주제로 특히 탐험가나 연금술사에게 매력적이라 할 수 있는 열두 가지의 사물을 말했다.

처음에 신들은 주도권을 가지기 위해 암리타를 찾아 지금은 모래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는 우유의 대양을 저어갔다고 한다. 그 불사의 생명액이 대양의 중심에서 솟아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움직이는 바다에서 그 중심 역시 위치를 바꿔가고 있었고 암리타를 발견해 길어 올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힘든 열두 번의 시도 끝에 열세 번째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암리타를 구할 수 있었다. 여기서 그들이 실패했던 시도들의 결과물이 바로 열두 가지의 신비였다. 그 열두 번의 시도에서 신들은 불사의 생명액 대신 다른 신비로운 것들을 길어 올렸고, 그것들 중에는 욕망을 실현시켜주는 나무, 줄지 않는 소떼, 모든 것을 기억하는 책, 그리고 나는 말 등이 있었다고 말이다. 난다가 바로 이 나는 말이라는 부분에 시선을 고정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칸타카를 암리타의 말이라고 했던 할아버지의 말을 생각해보면 가능성이 없는 게 아니었다. 살펴본 결과, 책의 내용 역시 이런 추측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그 말이 흰색이라는 것은 대단한 근거가 되지 못했지만 다른 말과는 구분되는 특이한 소리를 낸다는 것과 성장 주기가 사 년이라는 점, 한 리시가 나는 말을 데리고 수메루 산을 떠난 이후 그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는 전설 등 많은 사실들이 칸타카의 경우와 거의 모두 들어맞았다. 암리타의 말이라는 건, 암리타에서 나온 말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걸 구하는 과정에서 얻게 된 나는 말이라는 뜻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난다는 그러니까 이제 날기만 하면 되는데.” 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그럼 이제 슬슬 출발하는 거야?”

어느 새 칸타카의 등에 올라 탄 무니가 발끝으로 친구의 등을 툭 치며 말했다. 그런 무니의 등 뒤에서는 데비가 생글생글 웃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난다 역시 데비를 향해 웃어주고는 칸타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 정말 날게 할 수 있을까. 그 생각을 하고 있었어.”

뭐야? 책에 그런 건 안 나와 있었어?”

한껏 속을 끓인 후에야 난다로부터 암리타의 말과 칸타카에 대해서 들었던 무니는 그건 또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 그냥 그런 게 나왔다더라, 하는 내용뿐이었어. 사전에도 암리타의 말이라는 항목에 대해선 간단한 설명 밖에 없고 말이야. 할아버지도 마을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로 그렇게 부르신 것일 테니까.”

무니와 칸타카의 생일을 기다리는 동안 난다는 암리타의 말이 어떻게 해서, 어떤 식으로 나는 지에 대한 설명을 하나라도 찾기 위해 가지고 있는 책 모두를 뒤졌었다. 그러나 어디에도 자세한 내용은 나와 있지 않았다. 칸타카가 정말 책에 나왔던 그 말이라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이었지만, 막상 어른이 되어 버린 녀석을 보자니 역시 맞았구나!’하는 기쁨은 잠시 반짝하고 말았을 뿐, ‘어떻게 해야 날게 할 수 있을까?’라는 궁리 때문에 점점 머릿속이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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