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5 (수)

수리아의 검 -Ⅲ. 사막의 세 머리 용 (10)

용들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우린 질문하는 존재야.”

대답을 듣는 존재이기도 하지.”

진실과 거짓, 인간은 이 둘 중 하나를 택할 수 있어.”

그 대답이 맞으면 아무 것도 변하지 않지만, 틀리다면 모든 것이 사라져.”

마치 지금 이 사막처럼.”

그런데 이 녀석은 그렇지 않아.”

이 녀석이 우리라는 건 이상한 일이야.”

원래 우리는 진실과 거짓, 둘 중 하나만을 말해. 혼동을 주지는 않지.”

그리고 인간이 택하는 거야, 진실과 거짓 중에. 하지만 이 녀석은 진실과 거짓을 섞어 놔.”

인간이 무엇을 선택하든 상관없어.”

의미와 표현을 섞어놓지. 게다가 우리는 오래 전의 언어 밖에 하지 못하는데, 이 녀 석은 그렇지 않거든.”

이 녀석은 요즘의 언어를 할 수 있어.”

 

난다가 물었다.

 

그럼 아이는요? 아이를 삼킨 것도 지금 자고 있는 저 용인가요?”

우리는 인간을 먹지 않아. 이건 우리 둘과 저 녀석 모두 마찬가지야.”

맞아. 우린 먹지 않아. 그 아이가 우리 뱃속으로 들어간 건 우연이었어.”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우릴 죽여야 해.”

왜 신들이 우릴 이대로 두는지 모르겠어. 우린 죽어야 해.”

그러니까 어떻게요?”

수리아의 검이라면 우릴 죽일 수 있어.”

맞아. 우린 전에도 그걸로 죽임을 당했지.”

 

난다는 놀라서 무니를 쳐다봤다. 그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있던 무니는 친구의 그 시선에 무슨 영문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친구에게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흔들어 보인 난다가 다시 용을 보며 말했다.

 

그게 아니면 용님들을 죽여드릴 수 있는 방법이 없나요?”

있나?”

 

용이 다른 용에게 물었다.

 

없을 걸.”

 

다른 용이 대답했다.

 

아무튼 우리말을 알아들은 건 네가 처음이야.”

네가 우릴 죽여주면 좋겠는데. 곧 이 녀석이 깨어날 거 같거든.”

 

난다가 그쪽을 쳐다봤다. 정말 잠들어 있던 용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리는 거 같았다.

 

그럼 어쩔 수 없이 너와 저 친구는 죽게 될 거야.”

명심해. 우린 진실과 거짓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게 하지만 저 녀석은 그렇지 않아.”

,”

이제,”

저 녀석도 우리가 돼.”

 

이윽고 세 번째 용이 눈을 떴다. 해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아침이었다.

잠에서 깨자마자 인간과 눈을 마주쳤지만 용은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순간, 난다는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무니는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특히 무니는 난다가 나머지 두 머리의 용과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더 그랬다. 난다는 용이 이제까지 했던 이야기들을 속으로 빠르게 정리해보았다. 용의 입은 죄와 벌, 둘 다를 상징했다. 죄도 주고, 벌도 주는 것이다. 그들을 만난 자들은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야 하며,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 죄와 벌을 동시에 받게 된다. 엄청난 위력의 불을 뿜어내는 곳이 용의 입인 것은 그런 이유이다. 그러나 난다는 미처 무니에게 설명해줄 시간이 없었다. 난다는 어쩔 수 없이 사르나트의 바퀴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꼭 쥔 바퀴를 들여다보고 있던 난다에게 또 다시 후끈한 열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가운데서 잠들어 있던 세 번째 용이 머리를 기울여 난다와 무니를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새벽에 살아남은 인간들인가?”

다른 용들과는 달리 굉장히 크고 울림이 있는 목소리였으며, 고대어가 아니었다. 무니의 눈이 번쩍 뜨였다. 난다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난다는 나머지 두 용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들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세 번째 용은 정작 난다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무니 쪽을 쳐다보는 거 같았다. 다시 용의 거대한 눈동자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이번엔 난다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난다는 불안해졌다. 용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는 이제 네게 질문을 하려고 한다. 무엇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택하라.”

난다는 세 번째 용 역시 자신을 우리라고 칭했다는 것에 약간의 안도를 느꼈다. 그럼 남은 두 용도 이 질문에 참여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용이 말한 는 난다가 아니었다. 그 눈동자는 어느 새 다시 무니를 향하고 있었다. 무니의 표정에는 당혹스러움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로서는 이 상황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뭘 물어보겠다는 거야?”

무니가 물었다. 난다가 급히 말했다.

대답은 제가 하겠습니다.”

하지만 용은 난다 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건 나머지 두 용도 마찬가지였다. 용의 세 머리는 모두 무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니는 도움을 청하듯 난다를 바라봤다. 난다는 무니 앞을 가로막고 섰다.

그럼, 대답도 우리가 하게 해주세요.”

용은 그런 소년이 성가시다는 듯 거대한 발에 달린 검은 발톱으로 난다를 툭 튕겨냈다. 난다는 멀리 사막의 모래 속으로 툭하고 떨어졌다. 무니는 그런 친구와 용을 번갈아보더니 말했다.

지금 뭐하는 짓이야!”

우리는 네게 질문을 할 것이다. 진실과 거짓,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

그래. 질문을 하든 무엇을 하든, 어디 해봐. 대답만 하면 되는 거지?”

난다는 모래를 털며 일어나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도대체 어쩌려고?’ 그러자 나머지 용 중 한 마리가 자그만 목소리로 뭐라고 짧게 중얼거렸다.

덩치도 큰 녀석이 무슨 목소리가 그렇게 작아!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안 들려. 아무튼 빨 리 빨리 해. 이러다간 완전히 익을 거 같으니까.”

안 그래도 뜨거운 지면에 태양까지 비추기 시작하자 그 열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난다 역시 힘겨워하며 무니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용들은 무니의 당돌함에 당황이라도 한 것인지 잠시 침묵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또 다른 용이 작은 목소리로 뭔가를 이야기했다. 아까보다는 분명하게 들렸지만, 무니는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고 난다가 있는 곳까지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짜증스러운 투로 무니가 말했다.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로 이야기하면 내가 대답을 어떻게 해? 혹시 이거 벌써 시작한 거 야, 아까 저 녀석부터?”

용들은 황당해하는 소년의 질문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가운데 용이 말했다.

답하라. 우리는 우리이거나 우리가 아니다. 진실인가, 거짓인가.”

이 말만은 무니도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었고, 난다에게도 또렷이 들렸다. 아까 다른 용들이 말하길 세 번째 용에게 질문을 받은 자는 진실을 택한다고 해서 벌을 피할 수 있었던 것도, 거짓을 택한다고 해서 벌을 받았던 것도 아니라고 했다. ‘무슨 뜻이지?’ 무슨 말장난 같기도 했다. 게다가 새로 생긴 용은 진실과 거짓을 뒤섞는다고 했다. 나무 바퀴는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었지만, 난다는 계속 읽을 수가 없었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 위기를 예지하는 것일까, 참과 거짓을 판단한 것일까. 저 질문에 함정이 있는 건 분명했다.

무니는 자신과 맞서 있는 거대한 용을 쳐다봤다. 시선을 정면으로 향하니 용의 다리만이 눈에 들어왔다.

진실 아니면 거짓, 선택할 수 있는 답이 이 두 가지 밖에 없다는 거야?”

난다는 무니의 이 질문을 듣고 이마를 쳤다. 용이 말했던 진실과 거짓 그리고 의미와 표현을 섞는다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 거 같았다. 용의 질문 자체가 그것이 진실이거나 거짓 둘 중의 하나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의미와 표현 사이에서 헤매게 된다. 즉 제대로 된 답을 선택할 기회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저 문제에서 아마 답은 진실도 거짓도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무엇을 말해도 불을 피할 수는 없다! 난다는 이런 생각을 하며 사르나트의 바퀴를 다시 들여다봤다. 이번엔 나무 바퀴의 의미가 분명히 읽혀졌다. 난다는 전속력을 다해 용과 무니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그 순간, 용이 또 다시 발톱으로 그를 더 멀리 날려 보내고 말았다. 대답을 생각해내기 위해 고민하던 무니는, 그런 친구의 모습을 보더니 잔뜩 화가 나 용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아무튼 좋아. 어리석은 그 질문에 답을 하자면, 그 말은 진실도 거짓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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