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마음에 드는 녀석인데? 그렇지?”
줄에서 몸을 빼낸 무니가 수고했다는 듯 말의 목덜미를 툭툭 두드려주며 말했다. 먼저 내린 난다는 바닥의 열기에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앗! 뜨거.”
뒤이어 내려온 무니 역시 팔짝 뛰었다. 발끝을 세워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너무 뜨거웠다.
“그런데 어디서 그 용을 찾지?”
무니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난다는 사르나트의 바퀴를 꺼내 들었다.
“아. 그거! 사르나트의 바퀴? 그 이름 맞아?”
무니의 눈이 반짝거렸다. 난다가 말했다.
“응. 그런데 사전에도 간단한 설명뿐이었어. 이 수레바퀴는 지혜로운 자만이 제대로 읽을 수 있다는 거야. 말이나 글로는 이걸 설명할 수 없다고 써있더라고. 그리고 완전한 지혜를 체득하면 이 세 바퀴 전부를 움직일 수도 있대.”
“도대체 무슨 소리야? 없는 거 빼고 다 있는 책이라더니. 뭐 대단한 내용도 없잖아.”
“‘없는 거 빼고’라고 했잖아. 아무튼 아까부터 나무 바퀴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는 걸 보 면, 이 근처에 뭔가 있기는 있어. 일단 걸어가 보자.”
그들은 최대한 발을 땅에 덜 대려 노력하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흩날리는 재와 열기에 맞서며 한참을 걸어가자 일정한 속도로 돌던 바퀴가 점점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증기 같은 게 새어나오는 소리가 났다.
“갑자기 공기가 축축해지지 않았어? 점점 더 더워져.”
무니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정말 그랬다. 이마에 살짝 배어나올 정도였던 땀이 옷 안으로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눈꺼풀로 땀방울이 떨어질 정도였다. 그들은 증기가 나오는 쪽을 향해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그리고, 용을 발견했다.
그들은 눈앞에 있는 생전 처음 보는 용의 생김새와 그 거대함에 완전히 압도당하고 말았다. 한 눈에 도저히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소년들이 이제까지 접한 ‘새로움’ 중에서 가장 놀라운 경험이었다. 둘 다 넋이 나간 표정으로 한참동안 용을 바라보기만 했다. 다행히 용은 잠든 것처럼 보였다. 그 거대한 생명체는 숨 쉴 때마다 가까이 다가가기 힘들 정도의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사전하고는 좀 다르게 생겼는데.”
난다가 말했다.
“몸통이 커다란 뱀 같다. 기억나지? 우리 어릴 때 유리 영감이 딱 한 번 보여줬잖아.”
무니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전체적으로 청색을 띤 용의 몸통은 정말 그들이 언젠가 보았던 뱀 껍질처럼 청색과 녹색의 번들거리는 비늘로 덮여있었고 등 쪽으로 갈수록 그 색깔이 더 짙어졌다. 얼핏 보이는 붉은 색의 배 밑으로는 검고 날카로운 발톱도 감춰져 있었다. 난다는 호기심에 반짝이는 눈빛으로 점점 더 용 곁으로 다가갔다.
“봤어? 날개도 있어. 덩치에 비해서는 좀 작은 거 같은데, 저걸로 날 수는 있으려나.”
“야. 근데 지금 날개가 좀 움찔한 거 같지 않았어?”
난다 뒤를 따라 걸어가던 무니가 멈칫하며 말했다.
“응, 방금. 땅이 살짝 울린 거 같아.”
난다 역시 긴장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들의 느낌은 맞았다. 잠시 후,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땅이 요동치더니 용이 서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서로를 꼭 붙잡고 있던 무니와 난다의 눈이 점점 더 커다래졌다. 완전히 일어선 용의 크기가 놀라워서가 아니었다. 잠에서 깬 용이 마치 기지개를 켜듯 몸을 뒤틀자 각기 다른 방향에서 세 개의 머리가 동시에 꿈틀거렸기 때문이었다.
“머리가…… 세 개야!”
무니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건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히고 있던 난다도 마찬가지였다. 먼저 정신을 차린 무니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꼭 쥐며 물었다.
“이렇게 되면 저 중에 누구 입으로 이 약초를 가지고 들어가야 해?”
두 사람이 생각했던 용은 머리가 세 개가 아니었던 까닭에 당황스러웠다. 그들의 계획은 용을 잠재운 다음, 불을 뿜는 기관을 찾아내 잘라 버리는 것이었다. 단순하고 확실한 방법, 난다는 언제나 그런 계획을 좋아했다. 이번엔 애초의 계획이 확실함과 거리가 멀었다는 게 문제였다. ‘이제 어쩌지?’ 난다는 밤에 책에서 찾아봤던 항목 중 용에 관한 것들을 기억해내려고 애썼지만 불을 뿜는 기관 말고는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난다는 정신을 차리자는 듯 머리를 흔들고는 다급하게 사르나트의 바퀴를 다시 꺼냈다. 나무 바퀴는 여전히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난다는 그 의미를 읽을 수가 없었다. 책에서 찾아봤을 때 나무 바퀴의 의미는 ‘예지’와 ‘판단’이었다. 할아버지는 나무바퀴가 가리키는 것은 주로 위기, 나아가서는 죽음에 관한 것일 경우가 많다고 했었다. 그것이 아마 예지의 기능일 것이다. 하지만 판단이라니, 무엇을?
“모르겠어. 읽을 수가 없어. 어차피 몸은 하나니까, 누구 입에 들어가든 상관없지 않을 까.”
난다가 고개를 들어 무니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얼어붙은 듯 한곳을 향하고 있었다. 용의 머리 중의 하나와 시선이 마주치고 만 것이다. 그가 내 뿜는 뜨거운 숨결에 옷과 머리카락이 펄럭거렸다.
“둘 다 잡아먹히면 안 되니까, 좀 떨어져 있자.”
용과 마주친 시선을 피하지 못한 채 무니가 말했다. 그 말에 난다는 주위를 둘러봤지만, 숨을 곳이 있을 리 없었다. 용이 모조리 태워버린 곳은 이미 다 사막이 되어 있었다. 멀찍이 말이 보이긴 했지만, 그쪽으로 뛰어가다가 용의 발에 밟히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그 때 무니와 시선이 마주쳤던 용이 그들을 보며 희한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무니가 난다를 툭툭 치며 말했다.
“우리한테 뭐라고 말을 하는 거 같은데?”
정말 말을 걸고 있는 것 같은 웅얼거림이었다.
“덩치도 큰 주제에 무슨 목소리가 저렇게 작아. 난다, 넌 들려?”
“쉿! 조용해봐.”
난다는 용이 내는 소리에 최대한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더니 잠시 후에 입을 열었다.
“아! 이거 고대 잠부어야!”
무니가 난다를 쳐다봤다.
“기다려봐. 좀 더 이야길 들어볼게.”
난다가 다시 용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다른 쪽에 있던 머리가 그들을 향하자 용의 말이 끊기고 말았다. 그 틈을 타 무니가 물었다.
“뭐라고 해?”
“흠. 다는 못 알아들었는데, 뭔가를 없애달라는 말도 하고, 질문에 답을 하라는 말도 했 어.”
“말이 많은 거 같던데, 고작 그것뿐이야?”
“고대어라서 말이야. 게다가 목소리도 작고.”
난다가 다시 용의 모습을 살피며 대답했다. 아까 말을 했던 용과 뒤늦게 고개를 돌렸던 용이 뭐라고 대화를 나누는 거 같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지금 대화를 하고 있는 세 개의 머리 중, 두 개는 얼굴이 같았는데 나머지 하나는 전혀 다르게 생긴 거 같았다. 게다가 그 다르게 생긴 용만 여전히 자고 있는 듯 눈을 감고 있었다. 순간 난다의 머릿속에 언젠가 용에 대해 읽었던 내용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 머리가 두 개인 용이 고대에 살았다는 건 읽은 적 있다. 이름이, 이름이……, 비리토 라? 비리토라! 그래. 그거였어. 하나는 차가운 진실을 또 다른 하나는 뜨거운 거짓을 상징 한다고. 하지만 그 용은 아주 오래 전에 신에 의해 죽었다고 했는데… 게다가 저건 머리 가 세 개잖아.”
난다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때 그들을 향해 또다시 뜨거운 바람이 훅 하고 불어왔다. 용이 다시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엔 다른 용도 끼어들었다. 난다는 정신을 모으고, 목소리를 가다듬은 다음 그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비리토라. 우리 이름을 알고 있구나.”
“네. 책에서 읽었어요. 그런데 그럼 왜 머리가, 아니 머리님이 세 개인가요?”
“우리도 전혀 모르는 일이야. 네가 읽은 그 책에 나왔는지 모르겠다만, 우린 현세에 있으 면 안 돼. 아주 오래 전에 우린 죽었거든.”
“맞아. 루드라가 탄생하기도 전에 우린 죽었어.”
나중에 끼어든 용이 말했다. 그 둘은 자신들을 ‘우리’라고 지칭했다.
“그럼 지금, 왜, 어떻게?”
아직 고대어 구사능력이 유창하지 못한 난다가 짧은 단어로 묻자, 용들 역시 간단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건 우리도 몰라. 우린 다시 태어나지 않도록 되어 있었어.”
“맞아. 그러나 우린 다시 태어났지.”
“우리 사이에 머리도 하나 더 생겼어.”
“맞아. 우린 이 녀석을 싫어해.”
이 말을 할 때 용들의 목소리는 더욱 작아졌다. 그러더니 용들은 난다에게 이제까지 있어왔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