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5 (수)

수리아의 검 -Ⅲ. 사막의 세 머리 용 (5)

당황한 무니 일행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앞으로 쏟아졌다. 순간 무니가 뭐야!”라고 소리치려하자, 난다가 얼른 입에 손가락을 갖다 대며 급하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들은 남카의 손짓에 따라 쪼르르 걸어가 벽 옆에 몸을 바짝 붙였다. 이어 말소리가 들려왔다.

적어도 그 어린 녀석들이 거기 있는 동안은 마을 분위기가 잠잠하겠지.”

낮고 카랑카랑한 목소리, 아침에 들었던 촌장의 목소리였다.

게다가 만약 정말 그 아이들 때문에 용의 공격을 피할 수 있다면, 그건 그걸로 최선의 결과겠지요. 누구도 애지중지하는 자기 자식을 내놓으려 하지 않으니까요. 촌장님에게 막 내 아들 남카가 그런 것처럼 말이지요.”

이 목소리 역시 무니와 난다에게 낯설지 않았다. 아침의 그 남자였던 것이다. 두 사람은 의미심장한 시선을 교환했다. ‘분명 저 자의 집에 우리 물건이 있어!’ 남카만은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자 고개를 숙였고, 그 후로 계속 얼굴을 들지 못했다. 잠시 말이 없던 촌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 자네, 그 꼬마 녀석들을 이용하자고 한 게 남카를 위해서였다고 말하고 있는 건가. 웃기는구만. 술 냄새가 아직도 난다는 건 알고 있나. 여긴 도대체 뭐 하러 온 건가. 약속 한대로 그 아이들의 짐이라면 모두 자네가 가져도 상관없다고 한 거 같은데?”

촌장의 마지막 말을 들은 남카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뭔가 생각이 난 모양이었다. 그리고 일행에게 손짓으로 이동할 방향을 가리켰다. 아이들이 다시 남카의 뒤를 따라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니가 난다에게 귓속말로 질문했다.

그런데 저 녀석 지금 우릴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방금 그 남자네 집이겠지, 아침에 봤던.”

 

잠시 후, 그들이 도착한 곳은 다 쓰러져 가는 폐가로 도저히 집이라고는 부를 수 없는 장소였다. 얼기설기 짚으로 메운 구멍 때문에 거의 움막이나 마찬가지로 보였다. 특이한 것이 있다면 집 밖으로 비쭉 뚫고 나온 원통 모양의 굴뚝이었는데, 하나로 이어지던 굴뚝이 위, 아래 두 개로 나뉘어 있어서 괴상해 보였다. 게다가 집 쪽으로 다가갈수록 뭔가 썩는 듯 역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 냄새에 잔뜩 인상을 구기던 무니와 난다는 그 지독한 냄새에 아침의 그 술 냄새도 희미하게 섞여있음을 곧바로 알아챘다. 무니가 말했다.

확실히 그 주정뱅이 녀석의 술기운이 느껴지는군.”

그때 오는 내내 별 말이 없던 남카가 앞장서서 문 대신 걸려있던 천막을 걷어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난다가 뒤따랐다.

넌 여기 있어. 누가 오는 지 망 좀 봐줘, 알았지?”

무니가 칸타카에게 말했다. 조랑말은 늘 그랬던 것처럼 꼬리를 흔들었다. 무니는 숨을 크게 한번 들이키더니 성큼성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남카의 조그만 등불에 드러난 집안은 난장판이었다. 여기저기 무엇이 들어 있는지, 혹은 들어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자루들이 널려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는 술병들이 뒹굴고 있었다. 벽 한 쪽에는 움막 같은 장소와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화덕이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아궁이가 두 군데였으며, 이상한 모양의 병들이 그 구멍 앞마다 놓여 있었다. 이어서 불빛에 비춰 보이는 것들도 온통 병이었다. 특히 무슨 실험대인 듯 보이는 커다란 탁자 위에는 온갖 모양의 병들이 빼곡했고, 여러 가지 색깔의 암석과 금속들이 쌓여있었다. 무니는 어쩐지 이곳의 풍경이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정신없는 표정으로 남카의 등불을 따라 시선을 옮기던 난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기가, 그러니까 여기가, 어디라는 거지? 누가 사는 곳이라고?”

연금술사.”

무니와 난다의 눈이 마주쳤다.

···? 그럼 아침의 그 주정뱅이가 바로 연금술사라는 거야?”

남카는 흥분한 표정의 두 소년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니는 다시 어두컴컴한 방을 휙 둘러봤다. 이곳이 익숙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유리 영감의 오두막과도 매우 비슷했던 것이다.

 

연금술사를 찾았다는 뜻밖의 사실 때문에 잠시 멍했던 무니와 난다는 일단 자신들의 짐부터 찾기로 하고, 남카의 도움을 받아 온 집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불을 환히 밝히지 못해 어두운 데다 집 안이 워낙 뒤죽박죽이라 한참을 뒤졌는데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화덕 근처는 그들이 근처에서부터 맡을 수 있었던 악취가 심해서 다가가기가 꺼려질 정도였다. 무니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도대체 이 결정적인 역한 냄새는 뭐냐? 저 쓰레기에서 나는 거 같지는 않은데 말이야.”

유황 냄새야. 할아버지의 오두막에서도 가끔 이 냄새가 나곤 했어.”

난다 역시 코를 막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 곳만 제외하고 거의 모든 곳을 다 뒤져본 셈이 되자, 결국 화덕 쪽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벌써부터 멀찍이 떨어져 불만 비춰주고 있던 남카는 그래도 여전히 안 되겠는지 냄새를 피해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려 버린 상태였다. 다행히 금방 찾았다!”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난다였다. 남카와 아예 구석까지 가있던 무니 역시 그쪽으로 급히 다가갔다. 그러나 난다가 찾아낸 것은 그들의 짐이 아니라 아궁이 깊숙이에서 땅 밑으로 나 있는 커다란 구멍이었다.

뭐야? 이게 찾았다!’라고 외칠 만큼 대단한 거야? 으아! 냄새 하나는 진짜 대단하다.”

아궁이 안을 들여다보던 무니는 코를 틀어막았다. 그때 그의 눈에 이상한 문양 하나가 들어왔다. 완전히 겹쳐지기 직전으로 보이는 태양과 달이었다. 무니는 유리 영감의 책장에서 비슷한 걸 본 기억이 났다. 그 두 원을 겹치자 타원형이 만들어졌고, 그것은 왠지 아궁이 안쪽을 가리키고 있는 것 같았다.

설마 여기에 들어가자는 거야?”

. 샅샅이 다 뒤졌는데도 못 찾았잖아? 그럼 그 큰 짐들을 어떻게 했다는 소리겠냐.”

계속 인상을 쓴 채로 아궁이를 쳐다보고 있는 친구에게 난다가 말했다. 무니는 이윽고 결심한 듯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아궁이 안쪽으로 기어들어 시작했다. 입과 코를 옷으로 가린 난다도 무니를 따라 들어가자, 마지막으로 등불을 든 남카가 뒤를 따랐다.

 

구멍은 생각보다 깊었고, 남카의 실수로 등불마저 꺼지자 완전한 어둠 속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무니가 괴로워하며 말했다.

갇히는 거 다음으로 싫은 게 이런 어둠이야.”

그러나 다시 점점 시야가 분명해지더니 막 다른 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좀 이상한데? 왜 이렇게 점점 밝아지는 거지?”

맨 마지막으로 기어오던 남카가 난다에게 물었지만, 난다는 자신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때 앞서 가던 무니가 쿵하는 소리를 내며 막다른 벽 아래로 떨어졌고, “, !”하는 사이 난다와 남카 역시 순식간에 아래로 떨어졌다.

우와!” 맨 먼저 떨어진 무니가 입 밖으로 처음 낸 소리는 감탄사였다. 수많은 촛불이 환하게 밝히고 있는 공간은 놀라울 정도로 넓었다. 벽을 따라 쭉 들어서 있는 장에는 책들과 각종 도구들이 질서정연하게 정리되어 있었으며 가장 큰 책장에는 아까 아궁이 안쪽에서 봤던 것과 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바로 위의 난장판이었던 공간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아이들의 눈에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촛불들이었다. 촛대가 벽에 고정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 떠 있는데다가, 촛농이 하나도 녹아내리지 않아서 각각의 크기 그대로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되게 넓은데? 백 명은 누워 잘 수 있겠다.”

남카의 말에 무니가 뭔가 생각난 듯 말을 보탰다.

그럼 용이 나타났을 때 여기에 피신하면 안 돼? 이 정도 깊이로는 안 되나?”

글쎄. 연금술사는 도대체 언제 이런 걸 팠지? 마을 사람들 모두 몰랐어. 그나저나 이 촛 불들은 정말 신기하다.”

이렇게 무니와 남카가 이 비밀스러운 공간에 감탄하느라 넋을 빼놓고 있을 때에도 난다는 자신의 책가방을 찾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진짜 찾았다! 찾았어!”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난다는 자신이 지고 다니던 가방과 칸타카가 들고 다니던 상자까지 모두 열어보며 책과 물건들을 확인했다. 그 모습을 본 무니가 말했다.

. 그걸 꼭 지금 다 확인해야해? 얼른 나가야지.”

남카 역시 연금술사가 곧 돌아올 지도 모른다며 무니의 말을 거들었다. 그러나 난다는 종이가 없던 시절에 주로 쓰던 진흙 판부터 양피지 묶음, 책까지 뒤죽박죽으로 꺼내 뭔가를 찾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러더니 이윽고 !”하며 들기도 무거울 정도인 두꺼운 책 한 권을 상자에서 꺼내들었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는이란 이름을 가진 사전이었다.

. 그 사람이 책들을 이리저리 다 섞어놔서…….”

그러더니 난다는 금세 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 지금 그걸 꼭 봐야해? 그 사르나튼지 뭔지 찾는 건 나중에 해도 되잖아. 이 집 주인 녀석 돌아오면 어쩌려고 그래. 이러다 꼼짝없이 용한테 먹히길 기다리며 갇혀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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