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사찰 생태기행68-문경 운달산 김룡사
예전에는 사하촌에 서낭당이니 장승이니 하는 마을 지킴이들이 많았다. 그러던 것이 알고 모르는 사이에 사라져버렸다. 용케 살아남은 것들도 제의(祭儀)가 뒤따르지 않아서 젯밥 굶은 지가 오래되었다. 그런 데 비하면 운달산 김룡사의 사하촌 서낭신은 아직도 마을사람들에 의해 받들어지고 있어서 절골로 들어서는 느낌이 푸근하다.운달산(雲達山 1,097미터)이라는 지명은 신라 진평왕 때 운달조사가 이 산에 들어와 ‘운봉사(雲峰寺)’라는 절을 창건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 쓰고 있는 ‘김룡사(金龍寺)’라는 이름은 조선 중기 사하촌의 어느 장자가 운달산신에게 기도하여 남매를 얻어 아들의 이름을 용(龍)이라 지었는데, 그 후 마을과 절 이름을 ‘김룡’으로 고쳐 불렀다고 전한다.
김룡사 생태탐방은 주차장-보장문 구간, 김룡사 경내와 주변, 김룡사-양진암 구간 등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주차장에서 큰 절의 보장문까지 1킬로미터 가량은 비포장 숲길이다. 자동차들이 뻔질나게 드나든다. 사람이 있든 없든 숲속에서는 자동차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 그렇지않으면 주위의 식물들이 먼지를 뒤집어 써서 탄소동화작용과 숨쉬기에 지장을 받게 된다. 길을 건너던 동물들도 애꿎은 죽음을 당하기도 하고...
김룡사 숲은 들머리부터 그윽하다. 활엽수로는 참나무류가 주종을 이루고, 침엽수로는 소나무와 전나무가 주종을 이룬다. 특히 이곳의 전나무 숲은 소문 없이 좋은 숲이다. 몸집도 다들 좋아서 가슴 높이의 지름이 1미터에 이르는 거목들도 쉽사리 만난다.
나무들의 수종(樹種), 수령(樹齡), 생육상태가 거의 같아서 다른 숲과 구분되는 숲을 ‘임분(林分)’이라고 하는데, 김룡사 주변이 전나무 임분에 해당된다. 이곳 전나무는 씨를 받아둘 만큼 유전자가 좋아서 지난 1996년부터 2헥타르 임분에서 10년 동안 우량 종자를 받아냈다. 40년생부터 80년생까지 비교적 젊은 나무를 중심으로 170본에서 채종을 했다고 한다.
전나무가 위세를 부리기 전에는 소나무가 김룡사 숲의 주인이었다. 아니, 지금도 장송들이 곳곳에 우람하게 모여서 흘러간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위세를 부리고 있다. 부도전 주변과 대웅전 앞뒤와 석탑과 석불 주위에 남아있는 장송들도 그들 무리들이다.
운달산의 소나무들은 역사가 있다. 조선말까지도 운달산은 왕실에 숯을 공급하기 위한 향탄봉산(香炭封山)으로 대우받아 왔다. 고종 때 세운 향탄봉산사패금계(香炭封山賜牌禁界) 비석이 역사의 증인이다. 그 비석은 ‘왕실의 숯을 굽기 위해 김룡사에 하사한 숲이니 일반 백성들의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석이다. 김룡사 사찰림의 소유권을 밝혀주는 이 비석으로 해서 일제는 김룡사 사찰림을 공유림(국유림)에서 제외시켜주었다.
김룡사 일주문 이름은 홍하문(紅霞門)이다. 사뭇 감상적인 느낌을 주지만, 붉은 노을이 푸른 바다를 꿰뚫는다는 ‘홍하천벽해(紅霞穿碧海)’에서 빌려온 선가(禪家)의 글귀이다. 이에 짝하느라고 일주문 주련엔 칼날 시퍼런 글귀를 새겨놓았다.
入此門來莫存知解 이 문에 들어 오거든 알음알이를 버려라
無解空器大道成滿 비우고 비운 그릇에 큰 도가 가득 차리라.
숲 터널을 지나오는 동안 왼쪽으로는 냉골이 쉬임없이 흘러내리고 있다. 냉골은 문경 8경 가운데 하나로, 운달계곡이라고도 불리는 사하촌의 상수원이다. 냉골에는 동자승과 상추에 얽힌 전설이 흐르고 있다.
전나무 숲길이 끝나면 개울가에 전통해우소가 있다. 이 해우소 역시 다른 전통 해우소와 마찬가지로 경사진 비탈에 중층 다락형 구조로 서 있다. 용변칸의 톱밥은 용변을 보고난 뒤에 변조칸에 넣어서 배설물들을 덮도록 되어있다. 그렇게해서 뽀송뽀송 말려진 배설물은 건비(乾肥)가 되어 채전밭으로 실려나간다. 이것이 근래까지 내려온 김룡사의 전통유기농법이다. 하지만, 이 농법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김룡사를 찾는 관광객들이 전통해우소 이용법에 잘 지켜주어야 한다.
김룡사는 과거 여러 차례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다. 지난 1997년 겨울에도 밤중에 화재가 나서 설선당(說禪堂)과 범종루 등 주요 당우들을 태웠다.
대웅전 뒤로 산불이 내려오지 못하도록 일정 공간의 나무들을 베어내고 내화수림대를 조성한 것은 경험 끝에 나온 조치일 것이다. 내화수림대 뒤로 멋진 소나무들이 병풍을 두르고 있다. 그와 짝하느라고 대웅전 건너편 산에도 잘 자란 소나무들이 늘씬하게 자리하고 있다.
경내의 조경수로는 극락전과 응진전 앞 배롱나무, 대웅전 앞 자목련 손꼽을 만하다. 신도가 기념식수를 한 주목도 눈에 들어온다. 신도들이 자발적으로 경내에 ‘내 나무’를 한 그루씩 심는 일은 매우 뜻있는 생태사찰 만들기가 될 것이다.
일제강점기 한때 ‘경흥강원(慶興講院)’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젊은 학승들을 길러냈던 설선당은 지난 1997년 소실된 후 근래에 새로 복원되었다. 설선당 기둥 주춧돌 주위를 돌아가면서 허옇게 약을 뿌려 놓았다. 벌레들의 범접을 막기 위한 조치이다. 벌레들이 집안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 건물이 그만큰 친환경적인 건물이라는 이야기이다.
절에 있는 은행나무들은 해마다 은행을 따서 관가에 바쳐야 했기 때문 대개 암나무들이다. 그러나, 김룡사 명부전 앞 은행나무는 숫나무이다. 숫나무는 열매를 달지 않기 때문에 수관(樹冠 나무 모양)이 펑퍼짐한 암나무와는 달리 전체적으로 세로로 높이 자란다.
은행나무는 암수가 있어야 열매가 달리는데, 대성암에 있는 암나무 두 그루가 바로 김룡사 은행나무의 짝이다.
응진전 뒤로 돌아가면 고졸한 석불과 조촐한 분위기의 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다소 외지고 생뚱맞은 곳에다 석불과 탑을 조성한 것은 다분히 풍수적인 동기가 있었다. 즉, 두 석물이 자리한 곳에 지하의 암맥이 돌출해 있어서 이를 누르기 위함이다.
이러한 풍수적 견해들이 과학적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풍수적 인식과 삶의 태도가 자연환경을 지켜낸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것이다. 풍수는 고유한 자연경관을 지키고 환경 훼손을 막는 좋은 대안문화로 수용해야 할 것이다.
김룡사는 사하촌이 멀고, 좌향이 양명하여 토봉을 기르고 있다. 산중에서 토봉을 기르면 여러 가지로 이로움이 있는데, 벌들이 꽃가루받이를 해주기 때문에 생태적으로 좋고, 스님들에게 건강식품을 제공해주기 때문에 좋다. 암자나 토굴에서는 재정 확보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산중 사찰은 어딜가나 양명(陽明)하다. 좌향도 그렇지만 전각을 짓기 위해 나무를 베어내다보니 일조량이 많을 수 밖에 없다. 햇볕을 좋아하는 곤충들이 경내외에서 많이 관찰되는 것도 그런 입지 조건 때문이다.
여러 종류의 줄나비류를 비롯하여 산호랑나비, 뿔나비, 그늘나비, 네발나비, 청띠신선나비, 작은멋쟁이나비 등이 가을날 김룡사 주변에서 관찰된 나비들이다.
산호랑나비는 일반 호랑나비와 비슷하지만, 주로 산에서 많이 관찰되고 있다. 성충은 1년에 두 차례 봄과 여름에 나타난다. 가을에 보이는 애벌레들은 모두 여름형 산호랑나비가 산란해서 자란 것들이다. 애벌레는 기온이 떨어지면 번데기 속에 들어가서 겨울을 난다.
큰절에서 양진암에 이르는 비포장 숲길은 부드럽게 휘어지고 구부러진 동선이 운달산의 너그러움을 많이도 닮았다.
최근 절 안에 연못들을 많이 조성하고 있다. 대개는 바닥에 시멘트로 방수하고, 가장자리에 조경석 두르고, 조경석 사이에 연산홍이나 회양목 심고, 분수를 세우고, 비단잉어를 풀어놓고 하는 반생태적 일본식 조경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굳이 많은 돈 들여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김룡사 연못처럼 그냥 웅덩이 파놓고 물만 끌여들이 수생태계가 이루어진다.
김룡사 연못은, 연못 물은 맑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운 생태연못이다. 창포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수생식물, 소금쟁이를 비롯한 각종 수서생물, 왕잠자리를 비롯한 곤충류, 참개구리를 비롯한 양서류, 갈겨니 같은 어류, 물총새와 같은 조류, 그리고 파충류와 포유류까지 이 연못을 중심으로 생명의 그물을 짜고 있다.
왕잠자리는 가을날 이 연못을 찾는 곤충 무리 가운데 제왕이다. 전반적으로 초록색을 띠고 있으며, 이름 그대로 몸집이 크고, 매우 도전적이다. 비행 솜씨가 뛰어나서 먹이감을 허공중에서도 순식간에 낚아챈다. 특히 강력한 턱을 갖고 있어서 몸집이 큰 다른 잠자리들도 순식간에 당하고 만다.
숲길 좌우는 침엽수와 활엽수가 섞여 있는 혼효림이지만, 전나무 숲은 어디서나 우뚝나게 돋보인다. 사찰의 등나무들은 대개 식재된 것이 많은데, 이곳에선 길섶에서 자생 등나무들이 눈에 띈다.
여여교를 건너면 오른쪽으로 정상으로 가는 숲길이 나 있다. 금선대와 화장암 방향이다. 자갈이 많은 흙길이 왼쪽으로 계류 끼고 나 있다.
까실쑥부쟁이, 개쑥부쟁이, 참취, 구절초 같은 국화과 가을꽃들을 비롯해 층층잔대, 마타리, 등골나물, 산박하, 무릇, 눈괴불주머니, 맥문동, 여로, 누린내풀, 나도송이풀, 며느리밥풀꽃, 흰진범, 며느리배꼽, 송장풀... 등이 자리하고, 습한 곳에는 여뀌 종류와 물봉선, 고마리, 물양지 등이 피어 있다.
까실쑥부쟁이는 우리나라에 쑥부쟁이 가운데 한 종이다. 가을에 자주색 또는 연보라색 설상화가 핀다. ‘까실’이 앞에 붙은 것은 잎이 까칠까칠하기 때문인데, 바로 이 맛 때문에 절에서는 봄에 어린 순을 뜯어다 나물을 무쳐 먹는다.
대성암은 비구니 수행처로, 1800년에 김룡사에 있던 청하당을 이전해 지은 것이라 한다. 팔순을 넘긴 늙은 비구니와 젊은 비구니 두 분만이 살고 있다. 해우소도 조촐하고 아담하다. 규모는 작지만, 전통 구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직접 똥을 치고 그 똥으로 농사 짓는 일도 옛 수행자들의 삶 그대로이다. 해우소 판벽에는 스님들의 손떼 묻은 농기구들이 정갈하게 걸려있다.
대성암에서 양진암으로 가는 길은 운달산 중턱을 휘돌아가는 산복도로이다. 길을 따라 산쪽으로 시멘트 장벽이 양진암까지 이어져 있다. 양서류와 파충류들에는 가을에 기온이 떨어지면 동면을 위해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이 시멘트 장벽 때문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기계(자동차)만을 위한 살생의 도로가 아니라 이제는 인간과 자연이 합일하는 상생의 길이 절집에 필요하다.
양진암은 자연에 손을 너무 많이 대서 산중암자다운 맛을 찾아보기 어렵다. 조경업자들이 산 전체를 조경하려 덤벼든 느낌이다. 자연에 너무 손을 많이 대면 그 틈새로 외래식물들이 들어온다. 사찰 주변에 분포하는 외래귀화식물들의 다양성이나 개체수를 살펴보면 고유한 환경의 훼손 정도를 짚어볼 수 있다.
양진암 마당에 서면 운달산의 한자락이 시원히 펼쳐진다. 그러나, 운달산은 고만고만한 높이의 봉우리들이 능선처럼 이어져 있어 어느 봉우리가 정상인지 가늠이 잘 안 된다. 게다가 기암이나 절경마저 눈에 띄지 않는 수더분한 육산이다보니 소문도 그만큼 적다. 산은 사람들 눈에 덜 띄는 만큼 오염이나 파괴도 적다. 이 모두가 운달산을 두고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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