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 각오로 ‘전법포교’에 임하자

상월결사, 우리의 안일함 인정하고
‘쇄신하자’는 메시지 내부에 던졌다
이젠 지혜를 모아 실천방안 찾을 때

원력문 독송 콘텐츠 제작 보급 필요
108배하며 원력문 독송하면 더 좋아
원력문 공동 체험 통한 신불교운동을

43일간 진행된 상월결사 인도순례는 부처님의 전법원력을 되새기는 정진의 장이기도 했다.
43일간 진행된 상월결사 인도순례는 부처님의 전법원력을 되새기는 정진의 장이기도 했다.

108원력문이 새로 발표됐다. 올해 3월 14일 상월결사 인도 성지순례 기간 중 부처님 탄생지인 룸비니 동산에서의 일이다. 

108원력문은 새롭다. 부처님 탄생게가 그렇듯이 생각의 새로움과 실천의 새로움이 함께한다. 기존의 108 기도문보다 쉽고 체계적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삼법인, 사성제, 사섭법, 육바라밀, 팔정도, 십선계, 전법, 화엄, 자비, 무차평등, 실천불교, 상월결사 정신 등 불교의 핵심 메시지와 현안 과제들로 짜여 있다. 참회는 그만한다, 성불도 다음 생으로 미룬다, 금생에 중요한 것은 오직 전법이어야 한다는 게 기본 바탕이다.

새로운 108원력문은 전법의 생활화로 규정할 수 있다. 일상에서 무얼 어떻게 하는 것이 중요한지를 생각하게 한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41. 반드시 한 번 더 생각하고 화를 내지 않겠습니다. 59. 내 가족과 가까운 사람부터 정성으로 포교하겠습니다. 88.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차별하지 않겠습니다. 101. 아프고 외로운 사람을 부처님으로 여기겠습니다.” 

초등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국어다. 이웃과의 관계를 생각하고 배려토록 한다.

우리는 혼자 살 수 없다. 사회를 이루며 같이 산다. 개인의 깨달음은 불교의 귀착점이 아니다. 함께 깨닫는 게 부처님 가르침의 본뜻이다. 부처님께서도 깨달음에 이르신 후 다른 사람도 깨달을 수 있도록 돕고자 하셨다. 깨달음을 이루신 보드가야에서 사르나트까지 일주일 이상을 걸어서 다섯 수행자를 향해 진리를 설하셨다. 진리를 설하는 행위를 전법이라 하고, 진리를 주고받는 사람들을 일컬어 교단이라고 부르니 불교의 탄생은 교단 탄생과 직결된다. 두 번 말해 무엇하랴. 교단의 존재 이유는 전법 말고는 없다.

수행자가 깨달음에 몰두하다가 이웃에 소홀해지면 모두가 부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부처님의 제1과제는 시대정신에 따라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 지금은 성불할 때가 아니라 전법할 때라는 게 상월결사의 정신이다. 

한국불교가 부처님의 제1과제를 얼마나 실천했는가 하는 문제를 살펴보면 아쉬움이 작지 않다. 상월결사는 우리의 안일한 관행을 인정하고 이를 쇄신하자는 메시지를 불교계 내부에 던졌다. 방향이 올바르다면 지혜를 모아 좋은 실천 방안을 찾아야 한다. 필자는 이와 관련한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108원력문은 ‘마음먹기(生心)’의 형식을 취한다. 내가 바라는 것, 우리 사회를 위해 모두가 해야만 하는 것을 위주로 구성했다. 열심히 독송하면 스스로 마음을 낼 수 있는 자기 확인의 경험을 할 수 있다. 

즉, 내적 자발성을 유도하는 언어 반복 훈련이 구체적 실천의 중요한 포인트다. 매일 특정 시간에 독송하는 게 관건이다. 108배를 하면서 독송하면 더 좋다. 음성 좋은 스님의 오디오 독송 콘텐츠를 제작해 이를 보급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합송 체험도 권장한다. 도반들이 모여 같은 마음 같은 속도로 함께 읽으면 혼자 읽을 때와 또 다르다. 공동체 유대감이 한층 강화된다. 다 읽고 나면 경험사례를 발표하는 시간도 가진다. 이를테면 내가 확실하게 실천한 원력문에 대한 자기 점검이다. 경험에 대한 느낌, 생각, 새로운 깨달음 등에 대해 도반들과 솔직하게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는다. 이러한 방식은 각 사찰에서, 단위 학교와 포교당이며 다양한 불자 모임에서 시도해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일종의 신불교 사회운동으로 발전시켜 볼 만하다. 자기 혼자 할 때는 내적 자발성이 지켜져야 하고, 함께할 때는 공동체 유대감 형성이 중요하다.
 

윤재웅 동국대 총장
윤재웅 동국대 총장

108원력문은 하나하나가 공덕을 쌓는 일이다. 하루에 한 가지만이라도 확실히 실천하면 선근공덕이 저절로 증장한다. 마지막 원력문은 비장하고 결연하다. 

“부처님 법 전하는 데 온 삶을 바치겠습니다.” 

온 삶을 바친다는 말은 종교적 순교의 개념이다. 우리 불교는 신라의 이차돈 이래 부처님 법 전하다가 순교한 사람이 없다. 절박하지 않았다. 이제는 한가할 시간이 없다. 순교를 불사할 정도의 전법 각오를 다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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