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기증, 새 생명 선물하겠다는 ‘자비서약’

올해 2월, 근무현장에서 불의의 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진 20대 남성이 장기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 안전센서 불량으로 기계에 끼는 사고를 당한 이 남성은 즉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뇌사상태에 빠졌고 환자의 보호자는 논의 끝에 환자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했다. 심장과 폐, 간, 신장 등이 6명에게 이식됐다. 환자와 가족의 숭고한 결정 덕에 죽음 문턱에 있던 환자 6명은 새 생명을 선물받았다.

장기 부전의 고통 속에서 삶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는 환자들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는 자비 실천 장기기증. 장기이식을 기다리고 있는 대기자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실제 기증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희망등록자 수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장기기증에 대한 오해와 부정적 인식 때문이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국가적 재난 상황이 지속되면서 그 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국민들이 생명의 소중함을 실감하게 된 만큼, 장기 기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제고되면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일이 필요한 때다. 뇌사 시 장기기증의 의미와 절차, 희망등록과 지원현황 등을 Q&A로 살펴본다.

Q 장기기증이란 무엇인가요?

장기기증은 뇌사기증과 사후기증 등 2가지 종류로 구분됩니다. 뇌사기증은 교통사고와 같은 불의의 사고나 뇌혈관질환 등 질병으로 뇌사 상태가 됐을 때 말기 부전 환자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장기를 기증해 생명을 살리는 일을 말합니다. 사후 기증은 사망한 후 안구 기증이 포함됩니다. 살아있는 자의 간 기증도 있는데 부부, 직계존비속, 형제자매, 4촌 이내의 친족, 타인의 기증으로 구분됩니다. 장기기증은 나이에 상관없이 개개인의 건강상태가 가장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Q 뇌사는 어떤 상태인가요?

뇌사란 뇌 손상으로 호흡 및 순환중추의 기능이 완전히 상실돼 소생 가능성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상태가 되면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맥박, 혈압, 호흡 등을 일시적으로 유지할 수 있으나 스스로 호흡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그 어떤 치료를 해도 필연적으로 심박동이 정지해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단 식물인간은 자가 호흡이 가능하고 수개월에서 수년 이내 회복 가능성이 있는 상태로 장기기증의 대상이 아닙니다.

Q 뇌사 상태에서 기증할 수 있는 장기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신장, 간장, 췌장, 심장, 폐, 골수, 안구, 췌도, 소장, 대장, 위장, 십이지장, 비장, 말초혈, 손·팔, 발·다리 등이 가능합니다. 뇌사기증자 한 명이 최대 9명의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새 생명의 기쁨을 선물할 수 있습니다.

Q 장기기증 희망등록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전국 장기이식등록기관 중 한 곳을 선택해 본인이 직접 장기기증 등록신청을 해야 합니다. 사단법인 생명나눔실천본부는 불교계 유일의 장기기증 희망등록 단체입니다. 홈페이지(www.lisa.or.kr)를 통해 온라인으로 가입하거나 전화(02-734-8050)와 팩스(02-734-8052), 방문 등으로 희망등록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2019년 7월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개정됨에 따라 만 16세 이상이면 보호자 동의 없이 장기나 인체 조직을 기증하겠다는 희망등록을 할 수 있습니다.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하게 되면 등록증이 발급되며 운전면허증을 새로 따거나 갱신할 때 장기기증 표시가 찍히게 됩니다. 

장기기증 서약을 했다고 해서 꼭 기증까지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뇌사로 인해 사실상 사망한 경우에 한해 엄격한 절차로 진행되고 조건들이 매우 까다롭기에 실제 기증까지 가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때문에 희망등록은 자신의 장기 일부를 이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 환자들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나누어줘 새 생명을 선물하겠다는 ‘자비서약’입니다. 

Q 장기기증 희망등록 후 실제 기증 절차는요?
 
뇌사자가 발생하면 한국장기조직기증원(KO DA)으로 상황 보고가 됩니다. KODA에서는 병원으로 코디네이터를 파견해 환자 보호자와 면담을 갖고 장기기증에 대한 동의를 얻습니다. 신경과 또는 신경외과 전문의 1명 이상이 포함된 뇌사판정위원회에서 참석자 전원의 만장일치로 뇌사여부가 판정되면 장기기증 수술이 가능해집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년 사망자 23만 명 중 1%인 3000명 정도의 뇌사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Q 기증 시점에 가족 동의가 반드시 필요한가요?

기증 의사가 있다면 생전에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통해 자신의 의향을 밝혀두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생전에 본인이 기증에 동의하더라도 기증 시점에 유가족이 반대할 경우에는 기증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기증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희망서약 후 가족에게 기증 의사를 밝히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Q 뇌사자 장기기증 후 장례절차는요?

수술 시작 시간은 보호자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결정합니다. 장기기증 수술시간은 대략 6~8시간 정도 소요되며 수술이 끝나고 가족 면회를 한 후 장례식장으로 안내합니다. 인체조직기증의 경우, 15시간 이내에 기증 절차가 마무리되고 염습 및 입관 후 발인에 맞춰 장례식장으로 모십니다.

Q 장기기증자와 유가족 위한 지원 제도는요?

장기기증이 이뤄질 경우 정부는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제32조에 의거해 예상범위 내에서 유가족에게 장제비 및 진료비 540만 원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은 2018년부터 매년 9월 둘째 주를 ‘생명나눔주간’으로 제정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다양한 추모행사를 개최해 기증자와 유가족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생명나눔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생명나눔운동본부는 매년 6월 남양주 불암사에서 ‘장기기증 특별 천도재’를 봉행합니다. 천도재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 이들의 극락왕생을 위한 것으로 얼굴도 모르는 이를 위해 장기기증으로 생명을 살리고 떠난 이들을 추모하는 시간으로 진행됩니다.

Q 국내 장기기증과 희망등록 현황은 어떤가요?

지난해 12월 한국장기조직기증원 발표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이후 장기 기증을 받지 못하는 대기자들이 꾸준히 늘고 있는 상태입니다. 국내 뇌사 장기 기증자 수는 2016년 573명에서 2020년 478명으로 감소했습니다. 지난해 장기 기증자는 419명에 그쳐 2018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이에 반해 장기 이식 대기자 수는 2016년 2만 4611명에서 지난해 9월 기준 3만 8264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만 대기자 수가 2500명 이상 늘었습니다. 

이식 건수가 적은 것은 장기기증에 대한 오해와 막연한 두려움으로 인해 희망등록 역시 망설이게 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2020년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장기·조직기증 인식조사’에 따르면 61.6%가 장기 기증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하지만 이 중 실제 기증 희망 등록에 참여한 비율은 14.6%에 불과하다고 보고했습니다. 참여 비율이 낮은 사유로는 주저 24.9%, 방법을 알지 못함 24.8%, 주변의 반대 15%, 복잡한 절차 5.6%가 있었습니다. 이렇듯 다양한 이유로 인해 하루 평균 5.9명이 장기이식을 기다리다가 숨지고 있습니다. 

지난 2년간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쓴 가운데 국가적 재난 상황이 지속되면서 장기기증 역시 코로나19 영향을 피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은 대부분 이식만이 유일한 대안이기에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생명나눔 운동, 불교계 넘어 우리 사회 널리 확산

 

 

1994년 ‘생명공양실천회’(초대본부장 법장)로 시작한 생명나눔실천본부(이하 생명나눔)는 불교계 유일 장기기증 등록기관이다. 설립 이듬해인 1995년, 보건복지부 지정 장기기증 희망등록 전문 홍보 교육기관으로 설립을 허가받은 생명나눔실천본부는 1995년 5월 ‘대구 가스폭발사고 중경상자를 위한 헌혈 캠페인’을 펼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이웃종교에 비해 뒤늦은 출발이었지만 불교계 안팎 동참 열기는 뜨거웠다. 설립 전 서암 前 조계종 종정 스님이 안구와 장기기증 의사를 밝혔으며 봉녕사, 운문사, 동학사 등에서 비구니 스님 159명이 장기기증에 동참하는 등 활발한 응원을 보냈다. 

1994년 설립 불교 유일 등록기관
2005년 일면스님 이사장에 취임
장기기증 희망등록자 8만여 명
환우 치료 지원도 40억 원 달해

생명나눔실천본부는 1996년 1월 ‘백혈병 환자 성덕 바우만군 살리기 운동’ 전개와 함께 자비의 헌혈봉사단을 모집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생명을 나눕시다’ ‘전국민 1인 1 장기기증운동’ 캠페인에 이어 대학생 장기기증 동아리 ‘Life-Share’도 결성했다. 이런 캠페인들은 스님과 불자들은 물론 학생, 군인 등 전 국민에게 생명 존엄과 불교계 장기기증 운동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생명나눔실천본부는 일면 스님이 2005년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날개를 달았다. 2000년,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간 이식 수술을 통해 새 생명을 얻은 일면 스님은 ‘이생의 인연이 다하는 날까지 새 생명을 다시 얻은 은덕을 갚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이사장 소임을 맡았다. 

일면 스님은 생명에 대한 교육과 홍보를 통해 불교의 사회적 역할 확대와 장기기증 운동 활성화를 위한 지속적인 활동을 펼쳤다. 다양한 활동은 전 국민에게 생명나눔의 소중한 가치를 전하며 생명나눔실천본부의 입지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2021년까지 생명나눔실천본부에 장기기증 희망 의사를 밝힌 등록자는 8만 793명이다. 설립 첫해인 1994년, 228명이 장기기증 희망등록에 동참한 후로 매년 증가한 등록자는 2000년 3110명에 달하더니 2014년에는 6420명을 달성했다. 최근 2년간은 코로나19로 주춤하긴 했지만 한 해 장기기증을 하는 이가 3000명이 채 되지 않는 상황에서 8만 명이 넘는 희망 등록자는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장기기장 뿐만 아니라 조혈모세포 희망등록인원도 5만 명을 훌쩍 넘었다. 특히 지난해에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모집목표 100%를 달성하며 53명의 백혈병 환자들에게 새 생명을 선물했다.

생명나눔실천본부 활동은 희망등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소아암 환자를 위한 모금음악회, 소년소녀가장 돕기 자선음악회 등을 개최해 수익금을 기탁하는 등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도 감싸 안았다. 이달의 환우를 선정, 난치병 등으로 고통받는 이웃을 품고 그 가족에게 도움의 손길을 전하고 있다. 2021년까지 1064명의 환자에게 전달한 치료비가 40억 원에 달한다.

헌혈증 기증,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통한 자살예방 교육 프로그램 등 생명의 소중한 가치를 전하며 불교계 자비 정신을 알리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러한 활동과 후원 내역은 매월 1만 5000부 이상 발행하는 소식지 ‘행복한 빈손’을 통해 지속적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일면 스님은 생명나눔운동에 대해 “타인은 물론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는 값진 보시”라고 설명했다. 소중한 생명을 타인에게 보시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몸을 잘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게 스님의 설명이다. 일면 스님은 “내 가족과 내 생명을 지킨다는 마음으로 장기기증 희망등록에 참여해 생명나눔운동이 불교계를 넘어 우리 사회에 널리 확산되길 발원한다”고 말했다.

임은호 기자 imeunho@hyunb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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