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2의 고향… 오불도 반환, 당연한 일”

“한국은 제2의 고향입니다. 제가 수집했던 문화재가 도난문화재임을 알고 이것이 빨리 제자리로 갔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이제 송광사 오불도가 자기 집을 돌아가서 기쁠 따름입니다.”

도난 성보인 ‘송광사 오불도’를 보관하다 반환한 로버트 마티엘리(92) 씨는 6월 20일 기자간담회서 그간의 소회에 대하 이 같이 술회했다.

도난 성보문화재 반환 ‘善모델’
“송광사 오불도, 여행 끝내고
자기 집 찾아가서 기쁠 따름”
30년 서울서 살며 문화재 수집
“옛 것 소중함 몰라 시작했다”


마티엘리 씨가 스스로 한국을 ‘제2의 고향’이라고 밝힌 것은 인생의 1/3을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가 미군 공예·미술품 관리 및 강사로 서울에 온 것은 1958년 7월이다. 미국으로 돌아간 1988년까지 약 30년을 그와 그의 가족은 한국에서 살았다.

“한국에서 부인 산드라를 만나서 서울시청에서 결혼했습니다. 아이들도 모두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컸습니다.”

그가 살았던 집은 조계사 인근 벽돌집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지금 같이 조계사 주변이 아름답지 않았다고 했다. 오랜만에 찾은 한국의 변화상에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한국에 다시 와 기쁩니다. 한국사회가 그동안 엄청난 발전을 이뤘다는 데 새삼 놀랐습니다.”

종로에 살았던 마티엘리 씨는 자주 인사동을 찾아 한국의 전통 공예품을 수집했다. “투박하지만 손으로 제작한 공예품을 선호했다”는 마티엘리 씨는 1970년대 초 안국동의 한 가게에서 목가구와 안에 구겨진 채로 있던 오불도를 발견했다. 구매를 위해 다시 찾았을 때 목가구는 팔리고 오불도만 남아있었다. 마티엘리 씨는 이를 구입해 보존처리 전문가를 통해 수리했고, 미국으로 돌아가서는 자택에 걸어놓았다.

“나이가 들어 퇴직해 집을 좀 줄이려고 대형 문화재들은 박물관에 기증하려 했어요. 그런데 감정한 결과 도난 문화재라고 하더군요. 원래 도난품이었다는 것을 알고 당연히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문화재 수집’에 대해서도 철저한 철학을 가졌다. 문화재 수집도 “근대화되면서 한국도 미국도 옛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데 실망”했기 때문이다.

“저희 할아버지 시절은 미국의 근대화가 빠르게 진행되던 시기였습니다. 당시는 예전의 소중한 것들을 쉽게 버렸습니다. 1950년대 찾은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빠르게 근대화가 되면서 옛 것들을 소홀히 하는 게 마음이 아팠습니다. 한국 공예품을 수집한 것은 버려지는 옛 것을 보존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앞서 로버트 마티엘리 씨와 부인 산드라, 브라이언 페리소 포틀랜드 박물관장, 메리베스 그레이빌 포틀랜드 박물관 큐레이터는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을 예방하고 환담을 나눴다.

이 자리에서 자승 스님은 “도난 문화재라고 해도 돌려주겠다는 마음 갖기 힘들다. 흔쾌히 반환의 마음을 내주셔서 감사하다. 도난 문화재 반환의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라고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한편, 송광사 성보박물관은 6월 24일 개막하는 특별전에서 송광사 오불도를 불조전에 봉안돼 있는 다른 불화들과 함께 선보인다. 이에 앞서 23일에는 마티엘리 씨 일행을 초청해 오불도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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