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택 스님에게 듣는 ‘봉암사 결사’ 70주년 의미와 과제

원택 스님은… 196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친구를 따라 찾아간 백련암에서 성철 스님과 첫 만남을 가졌다. 일만 번의 절을 하고서야 겨우 얻은 좌우명은 ‘속이지 마라’ 한마디. 그 후 다시 찾아간 성철 스님에게서 “니 고마 중 되라”는 한마디를 듣고 1972년 출가를 했다. 혹독한 행자생활을 거쳐 계를 받고 성철 스님을 곁에서 22년, 또 스님을 떠나보내고 난 후 24년, 이렇게 46년여 동안 큰스님을 시봉하며 살고 있다. 원택 스님은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 해인사 백련암 감원, 부산 고심정사 회주로 있다.
‘부처님 法대로 살자’는 수행공동체
왜곡된 의례·수행풍토 등 변화 시켜

齋 모두 끊어져도 반야심경 봉독만
‘수행 잘한다’ 소문 돌자 신도들 모여
성철 스님 “정성 다한 수행이 재산”
백일법문도 봉암사 결사의 연장선

“불교 인구 추락… 결사 절실한 때”
수행자의 기본으로 회귀가 필요해

석가모니 부처님께 아난이 있었다면, 성철 스님의 곁에는 원택 스님이 있었다. 원택 스님은 성철 스님의 생전 22년을 시봉했고, 사후 24년 동안 스님의 추모사업에 열중했다. 백련불교문화재단을 설립한 것도 은사인 성철 스님의 추모와 선양을 위해서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성철 스님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던 스님이기에 봉암사 결사에 대해서도 풀어 놓을 말들이 많았다.

가장 먼저 물은 것은 봉암사 결사의 의미였다. 성철 스님과 뜻을 함께 한 도반 청담 스님, 자운 스님, 향곡 스님 등이 시작한 봉암사 결사가 현대 한국불교에 미친 영향은 컸기 때문이다. 질문과 동시에 막힘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결사(結社)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의 목적을 위해 ‘위법망구’ 하는 것을 말합니다. 조선시대와 일제를 거치면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한국불교를 살리기 위해 성철 스님과 청담 스님 등이 중심이 되어 봉암사 결사를 진행했습니다. 봉암사 결사의 큰 의미는 최근에는 찾아보기 힘든 ‘자생적 결사’였다는 점입니다. 모든 일상생활을 부처님 초기 교단 형태를 갖춰가려 애를 쓰고, 청정성과 계율을 철저히 지키려고 한 것입니다. 6.25 전쟁으로 어쩔 수 없이 중단된 것은 아쉬운 점입니다.”

그렇다면 봉암사 결사는 대중에게 어떻게 알려지게 된 것일까. 원택 스님은 그 과정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지금에 와서야 ‘봉암사 결사’라는 이름이 붙여졌지만, 사실 당시에는 부처님 법대로 살아보자는 수행공동체로서의 개념이 컸습니다. 스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사리탑 조성 모연에 동참한 불자들에게 소식지로 <고경>을 창간했는데, 잡지를 만들다보니 자연스럽게 봉암사 결사에 대한 사실들이 술회되기 시작한 것이죠. 그리고 1982년 스님께서 대중들이 봉암사 이야기를 너무 듣고 싶어하니, ‘몇 번에 걸쳐 남겨야하겠다’하며 당해 음력 5월 15일 관련 법문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전해지는 봉암사 결사의 역사적 자료가 됐습니다.”

봉암사 결사 대중들의 규칙 ‘공주규약’. 18개 조항으로 이뤄져 있다.
봉암사 결사의 핵심은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정신과 이를 구현하기 위한 18조항의 공주규약이다. 부처님 법대로 살기 위해 목(木)발우를 금지하고 흙과 철로 된 발우를 만들었다. 가사와 장삼도 통일했다.

공주규약에는 부처님 가르침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핵심내용들이 들어 있다. 모든 내용 하나하나에 부처님 정신을 온전히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단순한 ‘일제 잔재 청산’이 아닌 ‘근본적 개혁’의 기치가 내포돼 있다.

원택 스님은 “수행자로서 기본을 지키고 살아가는 것”이 봉암사 결사의 근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일화를 소개했다.

“봉암사 결사를 처음 시작할 당시 성철 스님은 재주(齋主)들이 ‘재를 올려달라’하면 <반야심경>만 3번 봉독해주셨습니다. 그러다보니 재가 모두 끊어졌죠. 재주들은 떠나면서 ‘스님들은 재도 안 지내고 어떻게 먹고 사십니까’라고 걱정했지만, 성철 스님께서는 ‘산 중에 솔이 있고, 물이 있으니 굶어죽을 걱정하지 마십시오’라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봉암사 스님들이 정말 부처님 법대로 산다’는 소문이 전해졌고, 신도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전보다 재를 지내달라는 요청도 더 많이 들어왔습니다. 나중에는 너무 사람이 많아서 <반야심경> 3번 봉독하는 것을 1번으로 줄일 정도였다고 합니다. 성철 스님께서는 항상 ‘정성을 다해 수행하는 모습을 중생들에게 보이는 게 수행자의 큰 재산이다. 그렇게만 하면 절대로 굶어죽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수행자로서 기본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성철 스님이 1967년 동안거에 시작한 백일법문도 부처님 법대로 살아가는 수행자의 기본 정신이 그대로 투영된 것이라고 원택 스님은 설명했다. 

“봉암사 결사는 눈 밝은 스님들을 만들고 싶은 마음, 즉 후배양성을 하겠단 일념으로 시작한 것도 있습니다. 6.25전쟁으로 결사는 중단됐고, 이후에는 정화불사로 종단 안팎이 혼란에 빠졌습니다. 성철 스님은 1967년 해인사 방장이 되시기 전까지 수행만 전념하셨습니다. 하지만, 방장 소임을 맡은 후로는 ‘대중들도 불교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부처님이 어떤 삶을 사셨고, 우리를 어떤 삶으로 인도하려 하셨는지 알려주기 위해 백일법문을 시작하셨죠. 인재양성을 위한 하나의 교리체계로 법문을 설하시게 된 것입니다. 다들 잘 아시듯이 스님께서는 불교 역사를 중도(中道)로 회통하시면서 제대로 수행하자고 강조하셨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스님께서 1967년 백일법문을 하신 직후에 바로 책을 만들었어야했는데 그러지 못한 점입니다.”

성철 스님과 원택 스님. 해인사 인근 남산 매화봉에서 찍은 모습.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한국불교의 현재 상황으로 넘어갔다. 조계종이 2011년부터 추진 중인 자성과쇄신결사와 최근 발표된 2015인구 총조사에서 불교 인구의 추락까지 원택 스님은 쓴소리를 쏟아냈다. 자성과쇄신결사에 대해서는 100인 대중공사에 많은 기대를 했지만, 총무원장 선거제로 인해 딜레마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스님은 “대중공의를 통해 직선제 의견이 나왔으면, 가부의 결정이 있어야 했는데 중앙종회는 그냥 이월했다”며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데 현실적인 문제에 기여하지 못해 대중들에게 신뢰를 잃었다”고 평가했다.

불교인구의 감소에 대해서도 “조사방식에 논란이 있지만, 정말 격세지감을 느꼈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스님과 불자들의 각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도 했다. 

“요즘 같은 시기에는 ‘부처님 법대로’라는 봉암사 결사정신이 더욱 절실합니다. 우리 스스로  부처님 법대로 살아가는 청정승가를 만들어야 합니다. 성철 스님 말씀대로 중이 중처럼 살아가면 왜 굶겠습니까? 스님으로서 바르지 못하니까, 신도들이 신망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니 끼니를 걱정하는 것입니다. 승가 스스로 자존심을 지켜야합니다. 그것이 부처님 정신이고, 봉암사 정신이며 성철 스님의 정신입니다.”

그러면서 원택 스님은 한국불교 승단이 자신들이 잘 살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점검하고, 탁마해 눈 밝은 선지식들을 배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봉암사 결사는 성철 스님, 청담 스님 등과 같은 ‘낭중지추(囊中之錐)’ 같은 선지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결사에는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문제의식과 추진력이 있는 집단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스님의 주장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많은 스님들이 한국불교가 변화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공감하지만 실질적으로 나서는 세력이 없습니다. 성철 스님, 청담 스님, 자운 스님, 향곡 스님 등 봉암사 결사를 이룬 스님들은 본인의 원력과 능력이 모두 출중한 선지식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이처럼 대중을 이끌어갈 스님들이 이 시대에 있는가. 이런 반성 속에서 수행하고 탁마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된 눈을 갖춰서 대중을 이끌 수 있는 인물이 나와야 합니다. 봉암사 정신으로 대중스님들 자신이 큰 뜻을 가슴에 품고, 철저한 모범이 되는 수행생활을 실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철 스님은 1982년 음력 5월 15일 법상에 올라 봉암사 결사에 대해 설했다. 법문의 말미에는 그 ‘기본’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다.

“우리가 신심으로 부처님 법을 바로 지키고 부처님 법을 바로 펴서 신도들을 교화하면 이들이 모두 신심을 내고 하여 우리 스님네들이 잘 안 살래야 잘 안 살 수 없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가장 잘 사는 것이 승려다 이 말입니다. 언제든지 좋으나 궂으나 할 것 없이 이해를 완전히 떠나 신심으로 부처님만 바로 믿고 살자 이것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수행자로서 불자로서 기본을 어떻게 지키고 사느냐’다. 그 기본은 부처님의 고준한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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