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호암미술관, 3월 27일~6월 16일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기획전
국내외 27개 컬렉션에서 92건 출품
'수월관음도' 등 일반 최초 공개도 9건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전시 전경 (1부 1섹션), 사진제공 호암미술관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전시 전경 (1부 1섹션), 사진제공 호암미술관

삼성문화재단(이사장 김황식)이 운영하는 용인 호암미술관이 동아시아 불교미술에 담긴 여성의 번뇌와 염원, 공헌을 조망하는 대규모 기획전을 연다.

호암미술관은 3월 27일~6월 16일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2023년 대대적인 리노베이션 이후 재개관한 호암미술관의 첫 고미술 기획전으로, 불교미술을 후원하고 제작했던 여성들을 조망하는 전시로 눈길을 끈다.

전시 제목인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Unsullied, Like a Lotus in Mud) 은 석가모니부처님의 말씀을 모아 놓은 최초의 불교 경전 <숫타니파타>에서 인용한 문구다. 불교를 믿고 불교미술을 후원, 제작했던 ‘여성’들을 진흙에서 피되 진흙에 물들지 않는 청정한 ‘연꽃’에 비유했다.

기원후 1세기경 부처님 가르침이 동아시아로 전해진 이래 여성은 불교를 지탱한 옹호자이자 불교미술의 후원자, 제작자로서 기여해 왔다. 당시 여성들은 불교를 통해 원(願)을 세우고 이뤄가는 성취감과 이로인해 쌓은 공덕을 타인에게 돌리는 고귀한 기쁨을 알아 갔다. 이 전시는 진흙에서 피어난 청정한 연꽃처럼 사회와 제도의 제약에서 벗어나 ‘나’로 살고자 했던 여성들을 찾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호암미술관은 전 세계 27개 컬렉션에서 모은 불화, 불상, 사경과 나전경함, 자수, 도자기 등 다양한 장르의 불교미술 걸작품 92건(한국미술 48건, 중국미술 19건, 일본미술 25건)을 한 자리에 모았다. 작품 중 한국에서는 리움미술관을 비롯해 ‘이건희 회장 기증품’ 9건을 포함한 국립중앙박물관, 불교중앙박물관 등 9개의 소장처에서 국보 1건, 보물 10건, 시지정문화재 1건 등 40건을 선보인다. 해외에서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과 보스턴미술관 등 미국의 4개 기관, 영국박물관 등 유럽의 3개 기관, 도쿄국립박물관 등 일본의 11개 소장처에서 대여한 일본 중요문화재 1건, 중요미술품 1건, 현지정문화재 1건 등 52건을 전시한다. 전시 작품 중 〈금동 관음보살 입상〉, <감지금니 묘법연화경 권1-7>. 〈아미타여래삼존도〉, 〈수월관음보살도〉 등 9건은 국내에서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것이다. 또 해외에 흩어져 있던 조선 15세기 불전도의 일부인 〈석가탄생도〉(일본 혼가쿠지)와 〈석가출가도〉(독일 쾰른동아시아미술관)를 세계 최초로 한자리에서 선보인다. 〈석가여래삼존도〉(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등 47건도 한국에서 처음 전시하는 작품이다.

이번 전시는 1부와 2부로 나눠 진행된다.

1부 ‘다시 나타나는 여성’에서는 불교미술 속에 재현된 여성상을 인간, 보살, 여신으로 나누어 살펴봄으로써 지난 시대와 사회가 여성을 바라본 시선을 이야기한다.

1부는 첫 번째 섹션 ‘여성의 몸:모성(母性)과 부정(不淨)’에서는 조선 전기와 후기를 대표하는 불전도와 중국 원대의 백묘화, 고려시대의 변상판화, 일본 에도시대의 회화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불화의 향연을 통해 불교미술 속에 시각화된 여성의 유형과 의미에 대해 살펴본다.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전시 전경 (1부 2섹션), 사진제공 호암미술관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전시 전경 (1부 2섹션), 사진제공 호암미술관

2섹션 ‘관음: 변신(變身)과 변성(變性)’에서는 본래는 남성이지만 모든 중생의 어머니가 돼 달라는 뭇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대자대비하고 자유자재한 관음보살의 응신들이 눈 앞에 동시에 현현한 듯한 특별한 공간을 만날 수 있다.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전시 전경 (1부 3섹션), 사진제공 호암미술관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전시 전경 (1부 3섹션), 사진제공 호암미술관

 

1부 마지막 섹션 ‘여신들의 세계: 추앙과 길들임 사이’에서는 고려시대 왕실과 민간에서 활발히 신봉했던 마리지천과 일본과 중국의 불화 속 부처님의 감화를 받아 선신(善神)으로 거듭난 귀녀(鬼女)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을 교화시키고 길들여야만 하는 존재로 바라본 과거의 시선을 살펴 본다.

2부 ‘여성의 행원(行願)’에서는 찬란한 불교미술품 너머 후원자와 제작자로서 여성을 발굴해 사회와 제도의 제약에서 벗어나 자기로서 살고자 했던 여성들을 만나 본다. 저고리 안에 쓴 발원문, 사경 말미에 금물로 적은 기록, 불화의 붉은색 화기란에 빼곡히 적힌 여성들의 이름과 바람들에 주목한다.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전시 전경 (2부 1섹션), 사진제공 호암미술관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전시 전경 (2부 1섹션), 사진제공 호암미술관

2부의 첫 번째 섹션 ‘간절히 바라옵건대:성불(成佛)과 왕생(往生)’에서는 사경과 복장 발원문이 펼쳐진 공간에서 고려 여성들이 공덕을 쌓은 마음을 돌아보고, 아미타여래, 극락정토와 관련된 불화와 불상을 통해 여성들이 꿈꾸었던 이상적인 내세를 조망한다. 당대 최고 권력자의 아내 혹은 어머니였을 진한국대부인 김씨(辰韓國大夫人 金氏)가 1345년 조성한 <감지금니 묘법연화경 권1-7>이나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복장 발원문〉은 이 같은 차별적 시선을 내면화한 고려시대 여성들의 자기 인식과 이를 넘어선 성불에의 염원을 동시에 드러낸다. 반면 중국 원대 회화인 〈유마불이도〉에서는 남녀를 비롯한 모든 분별을 뛰어넘는 ‘불이(不二)’의 지혜를 읽을 수 있다.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전시 전경 (2부 2섹션), 사진제공 호암미술관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전시 전경 (2부 2섹션), 사진제공 호암미술관

2섹션 ‘암탉이 울 때: 유교사회의 불교여성’에서는 유교적 가치관이 지배했던 조선시대의 왕실 여성들이 발원한 불상과 불화를 통해 불교도이자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일의 의미를 헤아린다. 처음으로 한자리에서 선보이는 문정왕후(1501~1565)가 발원한 〈영산회도〉와 〈석가 여래삼존도〉, 〈약사여래삼존도〉는 16세기 금선묘(金線描) 불화를 통해 한 시대의 불화 양식을 선도한 독보적인 후원자로서 왕실 여성의 영향력을 살필 수 있다.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전시 전경 (2부 3섹션), 사진제공 호암미술관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전시 전경 (2부 3섹션), 사진제공 호암미술관

마지막 섹션 ‘여공(女工): 바늘과 실의 공덕’에서는 지금까지 간과되었던 자수와 복식을 여성의 일이자 예술이란 관점에서 새롭게 살펴본다. 순천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물〉 일습은 1662년 나인 노예성이 소현세자의 셋째 아들인 경안군 부부와 동료 나인들의 장수를 바라며 불상 안에 봉안한 것으로, 저고리와 배자를 포함한 556점의 복장물이 13년 만에 모두 선보인다.

호암미술관은 전시와 연계해 불교미술에 대한 연구 현황을 공유하고 전시 이해를 돕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만자 국내외 불화 연구자가 참여하는 국제 학술 포럼 <불화 속 여성, 불화 너머 여성>이 4월 18 서울 리움미술관 강당에서 개최된다. 또 고려와 조선시대 불교조각과 불교사 전문가가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는 강연 시리즈를 5월 9일, 5월 23일, 6월 6일 3회에 걸쳐 용인 호암미술관 워크숍룸에서 진행한다.

큐레이터 토크는 전시를 기획한 이승혜 큐레이터가 전시 기획 전반에 대해 이야기하고 관람객과 소통하는 시간이다. 3월 28과 4월 4 리움미술관 강당과 호암미술관 워크숍룸에서 각각 열린다. 또한 전시 대표작을 함께 깊이 들여다 보며 작품에 숨겨진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몰입감상 프로그램을 마련, △간절히 바라옵건대 △여성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가 △여성의 모습을 한 관음들을 주제로 총 11회 진행한다.

어린이 프로그램으로는 어린이 전문강사와 협업해 고려불화의 문양을 통해 고려불화의 아름다움과 특징을 이해해 보는 시간을 5~6월, 총 5회 가진다.

전시 기간 중 무료 오디오 가이드(큐피커)와 매일 오후 2시, 4시 전시 설명 도슨트(50분)를 운영한다. 전시기간 중 화~금, 매일 2회 홈페이지(www.hoammuseum.org) 사전예약을 통해 리움~호암 미술관 사이의 무료 셔틀버스를 운영하며 500여대 규모(버스 10대)의 주차장을 신설, 관람객들이 보다 편리하게 호암미술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전시를 담당한 이승혜 큐레이터는 “시대와 지역, 장르의 구분을 벗어나 여성의 염원과 공헌이란 관점에서 불교미술을 조명하는 새로운 접근을 통해 전통미술 속에서 동시대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031-320-1801

임은호 기자 imeunho@hyunb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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