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한마디 한 게 보증수표가 돼야 합니다

한마음의 인등이라는 것은
내 마음에서 마음을 내면 바로 불을 켜는 거나 한가지입니다.
불을 켜게 되면 다 같이 불이 들어와서
한 방이 다 밝아지도록 할 수 있는 도리를 취하십시오.

이 광명선원에 여러분이 한마음으로 이렇게 같이 한자리를 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 강당은 여러분이 십시일반으로, 한마음으로 뭉쳐서 건립한 것입니다. 모든 실생활 속에서 인연에 따라 주어지는 대로 찰나찰나 바꾸어 돌아가면서 마음과 마음이 모두 계발이 되고 조화를 이루고, 또 정신계의 창조력을 기르면서 창조를 해냅니다. 조그만 거든 큰 거든 다 창조인 것이고 계발인 것이고 바로 발전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49년을 설하실 때에도 바로 실천과 궁행을 위해서, 진실한 오늘을 위해서 나로부터 이 세상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알려 주신 겁니다. 물과 흙과 불과 바람의 인연이 아니었더라면 우리의 형상적인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을 겁니다. 물도 생명이고 흙도 생명이고 바람도 생명이지만 그 바람과 흙과 물이 한데 합쳐져서 온기가 생기고, 온기가 생김으로써 바로 불과 바람, 흙, 물이 한데 합쳐져서 생명들이 생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생명이 생기기 이전에는 모두 암흑 속에서 허덕이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암흑 속에서 하나하나의 생명들이 한데 합쳐져 온기가 생기니까 생명체가 나오고 그 생명체들이 진화돼서 인간까지 왔다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가 혼자서는 살 수 없고 혼자서는 이룰 수 없고 혼자서는 창조해 낼 수가 없다는 겁니다. 인연에 따라서 잘 생각을 해내면 좋은 창조력을 이루고, 만약에 나쁜 악성으로 인연을 지어서 나간다면 악행이 돼서 돌아옵니다. 바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이 있듯이 말입니다. 좋은 인연을 지으면 좋은 업보가 오는 것이고 나쁜 인연을 지으면 나쁜 업보가 되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이 이런 인연을 지어서 행하고 나가는 것도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 달마 대사가 양 무제더러 공덕이 하나도 없다고 했듯이, 십시일반으로 이렇게 시주를 해서 건립을 했다고 하더라도 한 사이가 없어야 할 것입니다. 모든 것이 정신계의, 내면세계의, 자기를 끌고 다니는 자기 주인공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신다면 공덕이 될 것이고 ‘내가 시주를 했다. 내가 좋은 일을 했다. 내가 돈을 벌어서 주었다. 내가 얼마를 주었다.’ 이렇게 생각을 하신다면 공덕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한 가정에 있어서나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세계적으로나 우주적으로나 모두가, 각 혹성들이 한데 합쳤다가 흩어지고 흩어지고 합치고 하면서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또 하나가 스무 개가 되고 스무 개가 바로 만 개가 되고 만 개가 십만 개가 되고 이렇게 해서 혹성이라는 게 벌어졌고, 별성이라는 자체는 바로 마음의 불씨인 것입니다. 마음의 불씨란 영원한 것입니다.

마음이 없었다면 여러분이 오늘 여기 이렇게 한자리를 하게 되지 못했을 겁니다. 여러분이 한자리를 함으로써 그 모든 마음의 인연들에 의해 보람 있는 작업의 결과로 강당이 저렇게 우뚝 섰습니다. 그렇듯이 여러분의 가정에서도 한 식구가, 이 식구에게 가도 하나요 저 식구에게 가도 하나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거를 잘 들으셔야 합니다.

다섯 식구가 사는데 이 식구에게 어떠한 문제가 있으면 이 식구에게 하나로 몰아 주고 저 식구에게 문제가 있으면 저 식구에게 하나로 몰아 주고, 어린애가 그러면 어린애로 하나로 몰아 주어서 이리로 가도 하나고 저리로 가도 하나로 돌아가게끔 하십시오. 한마음의 인등이라는 것은 내 마음에서 마음을 내면 바로 불을 켜는 거나 한가지입니다. 불을 켜게 되면 다 같이 불이 들어와서 한 방이 다 밝아지도록 할 수 있는 도리를 취하십시오.

이 정신계의 발전이란 내 마음 떠나서는 이룰 수가 없습니다. 마음 떠나서 이 건물이 어떻게 생길 수 있으며, 어떻게 생활이 있고 부처가 있고 종교가 있고 모두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은 바로 지수화풍이 바탕으로 돼 있기 때문에 광력이나 전력이나 자력이나 통신력을 충만히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정신계의 모든 작용을 다 할 수가 있으니 부처님께서는 ‘모두 각자 오신통이 다 갖추어져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내면세계를 등한시하고 물질계 50%만 가지고 살려고 하면 걸리는 게 수도 없지만, 정신계의 50%와 물질계의 50%가 서로 작용을 한다면 얼마나 걸림이 없이 평온하고 여여하게 살게 되겠습니까.

아까 얘기한 바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는 오신통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음의 눈으로 보는 거, 마음의 귀로 듣는 거, 과거의 일을 아는 거, 마음으로 남의 마음을 아는 거, 가고 옴이 없이 마음이 가고 오는 거, 그것을 이름해서 오신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얘기 들어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디 취직을 하려고 뇌물을 가지고 어느 사람을 찾아가서 단 둘이만 앉았는데 뇌물을 주니까 안 받더랍니다. “아무도 없는데 그것 좀 받고 선처를 해 주십시오.” 하니까 “너하고 나하고 있지 않느냐?” 하더랍니다. 하하하. 그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자동적으로 입력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기가 말을 함부로 하고 함부로 행을 하고, 남 보이지 않는 데 숨어서 도둑질을 하고 사기질을 하고, 이렇게 해도 ‘남이 보지 않았으니까….’ 이러는데 자기가 아는 것이 바로 입력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아는 것이 곧바로 컴퓨터에 입력이 되는 것입니다. 컴퓨터에 입력이 된다면 또 어디로 퍼지느냐? 이 우주간 한마음의 법계에서 전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주도 직결이 돼 있고 이 세상도 가설이 돼 있으니까요. 모두 인연 줄에 따라서 가설이 돼 있는 겁니다. 그러니 어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그래서 수행자들에게 계율을 지키라고 계 정 혜를 만들어 놨습니다.

그 모두가 마음의 장난인데 마음의 장난을 어떻게 해야 우리가 구덩이에서 나올 수 있으며 훌쩍 벗어날 수 있겠느냐. 마음은 어디까지나 체가 없습니다. 체가 없어서 오신통을 훌쩍 벗어날 수 있다 이 소립니다. 그래서 오신통을 훌쩍 벗어나서 누진으로 통신이 돼야 누진에서 사대로 통신이 되면서 바로 바깥의 대기권에도 모두 통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들이고 내는 레이더망, 즉 말하자면 두뇌의 바른쪽 왼쪽에 작용을 하면서 그 핵심이 거기에서 바깥 세상과 안 세상 모두를 작용을 하게끔 자동적으로 그렇게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심성 의학도 되고 심성 과학도 되고 심성 철학도 되고 심성 천문학도 되고…, 세상만사가 다 한 가지, 마음의 핵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 핵심은 더하고 덜함도 없고 흘러간다 흘러온다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은 사대로 흩어질지언정 그 마음의 핵심은 영원한 것입니다. 자기가 잘못하고 잘하고 그것도 개의치 않는 것입니다.

무식해서 맷돌이라고 그럽니다마는 잘 들으세요. 맷돌의 아래 위에 심봉을 끼워서 돌린다면 그 맷돌의 심봉은 돌아가지도 않으면서 힘만 가하게 됩니다, 힘! 맷돌이 돌아가게끔 힘만 주는 것입니다. 맷돌이 돌아가는 대로 팥을 넣으면 팥이 갈려 나오고, 인연에 따라서 어떤 음식이라도 넣으면 갈려 나옵니다. 자기 용도에 맞게 필요한 것만치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 심봉은 여러분에게 영원한 것입니다. 그 심봉에 의해서 어떻게 갈아 내느냐, 무엇을 갈아 내느냐, 어떠한 인연을 통해서 무엇을 갈아 내느냐, 나쁜 일을 갈아 내느냐 좋은 일을 갈아 내느냐, 선덕을 쌓느냐 악업을 짓느냐 이거에 따라서 바로 자기에게 주어집니다. 그러나 심봉은 어떤 걸 갈아 내든지 말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용도에 따라서 끌어다 쓰는 대로 그냥 그대로 여여하게 힘만 가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 몸뚱이 속의 업식으로부터 생각이 일어나면 그 마음이라는 놈이 그것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멋대로 몸뚱이가 움죽거리게 놔두는 것은 바로 고삐 풀린 망아지나 소가 콩밭이든 파밭이든 들어가서 막 그냥 짓밟고 먹어치우는 것과 같습니다. 어떠한 문제라도 그렇게 누가 되는 일은 삼갈 수 있게끔 자기가 자기를 리드해 나가면서 다스려야 합니다.

다스리게끔 해 주는 것은 바로 자기 마음입니다. 자기가 잘못해 놓고 부처님이 어떠니저떠니 하지 마십시오. 하하하. 부처님은 힘만 가하는 거지 요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마라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다스리면서 잘 이끌어 갈 수 있는 자기 마음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마음은 체가 없어서 문을 통해서 다니는 게 아닙니다. 마음은 사방이 다 터지고 지붕도 없고 우주 삼천대천세계를 한 찰나에 오고 가고 자유롭습니다.

그러니 옹졸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우리 수행자만 계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아니, 인간이 아니더라도 하다못해 개미라도 계율이 있습니다. 날아다니는 새들도 계율이 있구요. 그렇듯이 바로 자기 마음의 계율을 지킨다면 남이 준 계율보다도 아마 한 치도 에누리 없이 계율을 지킬 겁니다.

사람들은 시간 약속을 우습게 생각합니다. 도의나 의리도 우습게 생각하고 자기가 한마디 해 놓은 것을 우습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모두가 신용을 잃고 사람답지 못하게 살게 되는 원인이 거기에서 생기는 겁니다. 자기가 한마디 한 게 보증 수표가 돼야 합니다. 이 세상은 더하고 덜함도 없고 에누리가 없어요. 자동적으로 입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나는 죄지은 일도 없는데 왜 이렇게 고가 많습니까?” 합니다. 현재 고가 많은 이유를 한번 생각해 보시면 과거에 내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주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사는 거를 가만히 생각해 보시고 지켜보십시오. 미래가 어떻게 올 것인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참외씨를 심으면 틀림없이 참외 싹이 납니다. 그렇듯이 세상만사가 다 끼리끼리 놓여져 있습니다. 차원이 낮으면 낮은 대로 모여 있고 높으면 높은 대로 모이고요.

정신계 50%에 좀 더 가려 하는 그런 의식과 더불어 신념이 뚜렷한 분들은 정신계의 모든 정신과학을, 생활을 습득하기 위함이요 깨닫기 위함이요 행하기 위하여 이렇게 같이 모이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 시장에 가 봐도 배는 배대로 놓고 사과는 사과대로 놨습디다. 모든 게 끼리끼리 놓여 있어요. 사람들도 기사는 기사대로 모이고 정치가는 정치가대로 모였습디다. 이거 두 마디만 해도 알겠죠?

그러니 여러분이 마음먹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돌아가는 것도 천차만별로 다 그렇습니다. 가만히 보면 어쩌면 그렇게 답답하고 생각이 돌아가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벽을 치면 봇장이 울려야 되는데 벽을 아무리 쳐도 봇장이 울리지 않을 때가 있어요. 이거는 정말이지 ‘야 참, 사람사람이 귀가 뜨이고 눈이 뜨이고 마음이 좀 트여야 될 텐데 아주 캄캄이로구나!’ 이런 생각이 들 때 더 안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떡하면 저 귀를 띄어 주고 눈을 띄어 주고 마음을 트이게 할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말이 이리로 갔다 저리로 갔다 하지만 듣는 분들이 잘 건져 들으십시오.

되풀이합니다. 오신통이라고 하는 자체가 지수화풍이 바탕으로 돼 있기 때문에, 전력도 물이 아니면 안 되죠? 광력 전력 자력 통신력을 충만히 작용시킬 수 있는 능력을 여러분이 다 가지고 있다 이 소립니다. 그런데 정신계의 핵심적인 문제를, 들이고 내는 것이 바로 그 핵심에서 나온다는 걸 모르기 때문에 쓸 수도 없고 믿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용도에 따라서 전력을 끌어 쓰고 태양열을 끌어 쓰듯이 자연스럽게 자기가 작용을 해서 자기가 생활을 하려고 하질 않는다 이겁니다. 우리 마음이라는 것은 무한량이고 광대무변한 겁니다. 보이지 않는 거는 우습게 생각하고 없는 줄 알고 그러지만 이 허공에 생명이 꽉 찼습니다. 그리고 일분일초도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저 내일 어떻게 될지도 모르면서 오늘 사는 것에만 온갖 힘을 다해서 그냥 착을 가지고 붙들고 늘어진단 말입니다. 빨리 놓고 돌아가야만이 피가 돌듯이 돌아갈 텐데 온통 붙들고 늘어지니 그게 돌아가나요? 마음이 그렇다면 몸 자체도 그렇게 병이 드는 수가 많습니다. 정맥 동맥이 재빨리 돌아가야 세포 하나하나가 절대적으로 걸림 없이 돌아갈 겁니다. 그런데 그 한쪽을 붙들고 늘어져 보십시오, 어떻게 되나. 하하하. 몸뚱이가 망가지듯 생활도 망가지고 바로 사회도 망가지고 나라도 망가지는 것입니다.

열 가지 백 가지 만 가지가 다 하나로부터 이루어지고 하나로 가라앉고 합니다. ‘일어나고 가라앉는 것이 둘이 아니다’ 하듯이 밀물 썰물도 둘이 아닙니다. 물속에서 사는 생명들도 파도가 쳐야만이 물 밑까지 열을 받을 수 있으니까, 파도에 의해 태양열이 같이 돌아가니까요. 태양이 물속까지 비춰 줄 수는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파도가 쳐서 물이 혼합이 돼야만이 모든 생명들이 정상적으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왜 이놈의 물이 파도가 치고 이렇게 극성을 떨어?” 이러지마는 그래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서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남 생각도 할 줄 알아야지 내 생각만 하고 밀고 나가는 사람은 좀 지혜가 좁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꽃 한 송이를 꺾더라도 남이 아파하는 거를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런 마음이라면 마음씨가 갸륵한 것입니다. 어느 것 하나도 말 안 하는 게 없고 생명 없는 게 없고 슬피 울지 않는 게 없고 웃지 않는 게 없습니다.

어느 산골짜기를 지나가다가 보니까 큰 꽃나무가 있었는데, 바람이 너무 세차서 가지가 반이 뚝 잘라지다시피 해서 껍데기도 얼마 안 붙었어요. 그런데 보니까 진물이 흐르는데, 눈으로 볼 때는 진물이지만 그게 피가 흐르는 거예요. 그래서 풀잎을 손으로 뜯어서 새끼를 꽈 가지고 그거를 한데 합쳐 가지고 매 줬죠. 매 주고서 돌아서는데 너무 즐거운 거 있죠. 내 마음이 즐거우면 그 마음도 즐겁고 그 마음이 슬프면 내 마음도 슬픈 것입니다.

몇 달 있다 거길 지나가다가 보니까 진이 묻어서 그냥 한데 합쳐져서 아주 끄떡없이 붙어 버렸어요. 우리 생활 자체가 그런 것입니다. 말을 못 한다고 모두가 우습게 생각하고, 하다못해 새 한 마리든 무엇이든 생명을 우습게 생각하는데, 내 생명을 위한다면 남의 생명을 그렇게 앗아서야 되겠습니까? 남의 생명도 귀한 줄 알아야지요.

어떤 스님이 날이 저물어서 어느 오두막집에 들어갔더니 소머리를 고아서 한 쟁반을 해 왔더랍니다. 스님더러 잡수라고 그러니까 스님이 두말없이 잡쉈더랍니다. 스님이 두말없이 잡숴 놓고 하는 말입니다. “어허, 이거 소의 무명이 다 벗겨지고 한 찰나에 내가 돼 버렸구나.” 이러더랍니다. 이게 얼마나 기쁜 일이겠습니까.

여러분도 이 공부를 해 보십시오. 차에 실려서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나 돼지나 개와 같은 불쌍한 짐승들을 보았을 때 끌려가는 대로, 스무 마리든 백 마리든 모두 자기에게 넣어도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아프지 않게 안락사가 돼서 무명을 벗습니다. 무명을 벗은 뒤에 사람 속으로 들어갔으니 사람의 마음이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짝짓는 데 또 넣어 준다면 사람이 되는 거죠. 그 소도 수효대로 내주는 게 아니라 만 마리를 한 명으로 만들 수가 있고, 천 마리를 한 명으로 만들 수가 있고, 한 마리를 만 명으로도 만들 수가 있다 이 소립니다. 이렇게 광대무변한 법입니다.

이 도리를 아시는 분에 한해서는 어떠한 거든지 살생이 될 수가 없습니다. 미국 오하이오주에 있는 어느 스님이 얘기를 하는데, 개미들이 하도 들어오니까 모아 가지고 내다 놓으면서 “야, 사람들 사는 데 들어오면 네 몸뚱이가 자꾸 죽어. 그러니까 바깥에서, 너희들 노는 데서 놀아.” 이렇게 말을 했더랍니다. 그랬더니 그날부터 한 마리도 들어오지 않더랍니다. 어떻습니까? 요런가 하면, 만약에 개미들을 몽땅 집어 먹었다고 봅시다. 하하하. 집어 먹었다면 개미들은 정말 개미라는 무명을 벗고, 고생을 하더라도 인간이 돼서 아마 인간의 도리로서 이렇게 마음공부를 하게 될 겁니다. 이러니 이 공부를 한 사람과 안 한 사람의 마음의 차이가 어떠냐는 겁니다.

인간의 몸뚱이가 천년만년 사는 게 아닙니다. 바로 이 몸뚱이가 한 철 나러 나온 겁니다, 한 철! 그 한 철 날 동안에 이 도리를 아셔야 될 것입니다. 모르면 어떻게 되느냐? 우리 절에서 천도를 잘 시킨다는 얘기도 합디다마는, 아무렇게나 염불이나 하고 목탁이나 친다고 해서 천도가 되는 게 아닙니다. 그걸 똑바로 아셔야 됩니다. 형상의 부처님과 형상인 자기가 둘이 아닌 줄 아는 스님이라야 목탁을 한 번만 쳐도 천도가 되는 것입니다. 하하하. 그런데 부처 따로 있고 스님 따로 있고 중생 따로 있고 이런다면 목탁을 천만 번을 쳐도 천도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천도가 왜 생겼느냐. 정신계의 도리를 모르고 돌아가신 분들은 의식이 항상 자기가 살아 있는 줄 알고 친척 집을 맴돌거나 자기 집에서 떠나지 못하고 묘지에서도 떠나지 못합니다. 모두 그렇게 하기 때문에 몸이 없어지고 나서 잔뜩 들어 있던 업식이 그림자처럼 나타나니까 한 발짝도 벗어날 수가 없는 겁니다. 그 업식 소굴에서 말입니다. 지금 여러분 몸뚱이 속에 업식, 의식, 모습들이 수없이 있습니다. 좀 들여다보십시오. 모습들이 얼마나 천차만별로 돼 있나. 한번 보지 않고 들여다보세요. 그 모습들이 자기 소임을 맡아 가지고 작용들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잘못 작용을 해 가지고 파워를 일으키고 해서 자기 집을 망가뜨리고 있는 사람도 있죠.

그렇듯이 온통 자기가 있다고 생각을 하니까 한 발짝도 떼어 놓을 수가 없고, 강을 건너갈래야 빠져 죽을까 봐 못 건너가고 불바퀴를 넘어설래야 타 죽을까 봐 못 가고 이러니까 오백 년이 돼도 천 년이 돼도 물가에서 뱅뱅 돌면서 한 치도 건너갈 수 없죠. 이러니 자손들이 부모를 위해서 천도를 시키는 겁니다. 자기가 병이나 낫겠다고, 또는 자기가 잘되려고 천도재를 한다면 아니 됩니다. 묵은 빚을 갚는다는 생각으로 정성을 다해서 그 길에서 벗어나게 해 드린다면 자손들은 더불어 벗어나게 될 것이 아닙니까? 한 염주 알이니까 말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잠시 잠깐만 생각하고 내 발등에 불 떨어진 것만 급하게 생각하고 온통 야단법석들을 하는 겁니다. (중략)

그러니까 우리 모두 한마음의 도리를 열심히 이루셔서 내 몸, 집, 이 시자를 튼튼하게 해서 끌고 다니시고 내 가정을 화목하게 이끌어 가십시오. ‘내 마음 주인공에다 불을 켜도 내 자식들한테 불이 들어온다. 나한테다 불을 켜도 내 남편한테도 들어오고 내 부인한테도 불이 들어올 수 있다.’ 이런 걸 잊어서도 아니 되십니다. 이것 따로 저것 따로 보지 마시고, 둘로 보지 마시고 이 마음의 도리를 하루바삐 깨치셔서…, 깨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렇게 이끌고 가신다면 편안하고, 아주 악한 것이 없어지고 선한 도리만 짓게 되고, 착한 일만 하게 되고 부드러운 말만 하게 되고 부드러운 행만 하게 되고, 그렇게 되니까 홀연히 밝게 참자기의 소식을 맛볼 것입니다.

그렇게 맛을 보신다면 그저 한생각이면 내 가정을 이끌어 갈 수 있고 내 자식의 뿌리를 도와줄 수 있고, 묵은 빚도 갚을 수 있고 얼마든지 햇빛을 줄 수도 있습니다. 또 그렇게 공부한 분들은 일체제불과도 둘이 아니요, 일체 조사들하고도 둘이 아니요, 일체 스님들하고도 둘이 아니요, 일체 모든 버러지라도 둘이 아닙니다. 그 도리를 아신다면 자유인으로서 여여할 것입니다.

※위 법문은 대행 선사 법문집 ≪허공을 걷는 길≫ 중 1992년 5월 31일 국내지원법회 법문을 정리한 것입니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