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0일 범어사 대웅전 앞 영결식 엄수

원로의장 학산 스님 “불교 중흥의 기틀을 다져”
종정예하 성파 스님 “후학위한 장군 죽비 소리”
49재 2월1일~3월15일 매주 수요일 봉행될 예정

불국당 정관 대종사의 영결식이 1월 30일 금정총림 범어사 대웅전 앞에서 엄수됐다.
불국당 정관 대종사의 영결식이 1월 30일 금정총림 범어사 대웅전 앞에서 엄수됐다.

포교의 새로운 방편과 복지로 보살의 삶을 실천한 불국당 정관 대종사의 영결식이 1월 30일 금정총림 범어사 대웅전 앞에서 엄수됐다.

영결식에는 조계종 원로의장 학산 대원 대종사와 범어사 방장 지유 대종사, 조계종 교육원장 혜일 스님, 중앙종회 의장 주경 스님, 범어사 주지 보운 스님, 은하사 회주 대성 스님을 비롯한 사부대중이 운집해 정관 대종사의 마지막을 함께 했다.

범어사 방장 지유 대종사가 헌향 후 극락왕생을 발원하고 있다. 
범어사 방장 지유 대종사가 헌향 후 극락왕생을 발원하고 있다. 
문도 스님들이 헌향과 헌다 후 절을 하는 모습
문도 스님들이 헌향과 헌다 후 절을 하는 모습

영결식은 방장 지유 대종사와 문도의 헌향 및 헌다로 시작했으며 행장소개로 정관 대종사의 삶을 함께 회고했다.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학산 대원 대종사의 영결사 이후 종정예하 성파 대종사의 법어가 전해졌으며 내빈들은 추도사, 조사로 정관대종사의 열반을 안타까워했다.

화랑 스님이 정관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하고 있다.
화랑 스님이 정관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하고 있다.
영결사를 전하고 있는 조계종 원로의장 학산 대원 대종사
영결사를 전하고 있는 조계종 원로의장 학산 대원 대종사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학산 대원 대종사는 영결사에서 “정관 대종사시여! 스님께서는 일찍이 산문에 귀의하여 불교 조계종단의 최고 스승이신 동산 대종사의 슬하에서 일념정진 하셔서 불조의 공안을 투득하셨다. 사행에 나오셔서는 종단의 중요 주지 등의 소임을 맡아 원만히 수행하여 범어사와 종단의 발전과 안정된 중흥의 기틀을 다졌고, 불교 포교적인 면에서도 현대화와 대중화에 큰 업적을 남기셨다”며 “스님께서는 무상의 천변만화 속에서 변즉불변의 진상을 오늘 대중에게 보여 주셨다. 사부대중은 첨앙하고 합장발원하니 정관 대종사시여! 스님께서는 이제 적정무위락을 수용하시다가 본래서원 잊지 마시고 속히 사바에 돌아오시라”고 말했다.

일면 스님이 종정예하 성파 대종사의 법문을 대독했다.
일면 스님이 종정예하 성파 대종사의 법문을 대독했다.

종정예하 성파 대종사는 일면 스님의 대독을 통해 “대종사께서는 이 세상과의 인연이 다해 원적의 모습을 보이셨다”며 “대종사께서 보이신 수행이력과 원적의 모습은 후학을 경책한 장군죽비 소리이며, 생사본무(生死本無)의 도리를 보이신 무진법문(無盡法門)이다”고 법문했다.

조계종 교육원장 혜일 스님이 총무원장 진우 스님의 추도사를 대독했다
조계종 교육원장 혜일 스님이 총무원장 진우 스님의 추도사를 대독했다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혜일 스님의 추도사 대독을 통해 “정관(正觀)한 수행자의 삶은 언제나 수처작주(隨處作主)이니 수행처에서는 머리카락에 붙은 불을 끄듯이 한 치도 정로(正路)에서 벗어남 없이 용맹정진하셨고, 소임처에서는 도량을 세우고 융성하게 하셨다”며 “어려운 이를 만나면 복지기관을 세워 돕고, 포교 현장에서는 각계각층에 적합한 방편을 쓰고자 다양한 불국토 법인을 만드셨다. 이것이 바로 대종사님의 삶이셨으며, 다시 무상의 법문을 사바에 펼치고자 열반에 드는 모습을 보이신다. 불국당 정관 대종사님이시여! 어둠을 말미암아 빛의 가치가 드러나듯이, 매서운 추위는 한없이 따뜻했던 대종사님의 행적을 더욱 돋보이게한다”고 전했다.

조사를 전하고 있는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
조사를 전하고 있는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
조사를 전하고 있는 은하사 회주 대성 스님
조사를 전하고 있는 은하사 회주 대성 스님

이어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과 은하사 회주 대성 스님, 윤석열 대통령, 박수관 부산불교총연합신도회 회장의 조사가 전달됐다.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는 문도대표 범산 스님과 문도스님들의 모습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는 문도대표 범산 스님과 문도스님들의 모습

대중들은 헌화하며 정관 대종사가 속환사바해 대중과 함께 해 줄 것을 기도했다. 문도를 대표해 범산 스님이 감사 인사말을 전했으며, 발인을 위해 대중들은 만장기를 들었고 스님의 영정과 위패 그리고 법구를 이운했다. 스님의 법구는 범어사 대웅전 앞을 떠나 일주문에서 노제를 지냈으며 경내 곳곳을 돌아 연화대로 이운됐다. 만장기가 줄지어 장엄한 가운데 스님의 법구는 대중들의 눈물을 뒤로 한 채 연화대에 안치됐다.

만장기를 따라 대중들이 법구와 영정을 이운하고 있다.
만장기를 따라 대중들이 법구와 영정을 이운하고 있다.
스님의 법구는 범어사 경내 곳곳을 돌아 일주문 앞에서 노제를 지냈고 연화대로 이운됐다.
스님의 법구는 범어사 경내 곳곳을 돌아 일주문 앞에서 노제를 지냈고 연화대로 이운됐다.
연화대로 이운 하는 모습
연화대로 이운 하는 모습

대중들은 “큰 스님 불 들어 갑니다. 속환사바하소서”라며 오열했고 ‘나무아미타불’ 염불 속에 스님의 법구는 지수화풍이 되어 금정산으로 흩어졌다.

거화의식을 진행 중인 모습
거화의식을 진행 중인 모습

정관 대종사는 1933년 1월 4일 경북 경주시 강동면에서 아버지 창녕조씨 병옥 선생과 어머니 밀양손씨 기윤 여사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양친께서는 산에서 기도하여 귀하게 얻은 아들이라 하여 어릴 때 집에서 산도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참전해 미군부대에서 헌병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했으며 청년기에는 춘원 이광수 선생의 장편소설 원효대사를 읽고 감동받았고, 누더기에 걸망을 멘 스님들의 모습을 보며 동경의 마음을 품었다. 이후 1954년 출가발심을 일으켜 부산 금정산 범어사의 하동산 스님을 찾아 뵙고 출가했으며 행자시절 은사인 동산 스님은 “경주에서 왔고 이름이 중환이니 경환이라하자”며 법명을 경환으로 지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큰절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다 문득 '뭐든지 바로 보면 안 될 것이 없을 터'라는 생각이 들어 곧바로 은사 스님을 찾아 뵙고 법명을 '정관'으로 하겠노라 말했다. 동산 스님께서는 "허허, 고놈 봐라. 정관으로 하되, 혹여 실수라도 하면 그게 정관(正觀)이겠느냐?"라며 꾸짖으셨지만, 이내 법명을 허락했다.

1961년 쌍계사 주지를 역임했으며 1970년 제방선원에서 14안거를 성만한 스님은 포교의 원력을 세우고 1972년 영주암 중창불사를 시작했다. 어렵고 힘든 시절이었지만 스님께서는 학생회, 청년회를 창립했으며 법당과 요사채(최정원)를 건립했다. 또한 범어사 주지를 역임했으며 사단법인 불국토 초대 이사장을 역임하며 불교사회복지의 토대를 마련했다.

정관 대종사는 불기2567년 1월 26일 오후 6시 저녁 공양 후 상좌 범산 스님과 손상좌 등 대중을 불러 "세속에 얽힌 살림살이는 때가 되면 방하착을 해야한다. 때가 되어 방하착이 안되면 안되는 만큼 큰 화가 된다. 지극한 신심으로 열심히 본래의 마음을 챙기고 정진해야 된다"는 당부의 말을 남기고 오후 7시 2분 영주암 본래지당에서 세납91세, 법랍 70세로 원적에 들었다.

49재는 2월 1일부터 3월 15일 까지 매주 수요일 봉행된다. 5재인 3월 1일은 불국정사에서 막재인 3월 15일은 범어사에서 봉행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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